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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낯선 것을 두려워 말라 (창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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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을 두려워 말라 (창 12:1-5)

사람들은 누구나 낯선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처음 가보는 낯선 곳과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 합니다. 가더라도 혼자 가려 않고 함께 가려 합니다. 우리 교회가 운영하는 신학교에 강사님들이 가시는데 어떤분은 혼자는 안 가시려 합니다. 그래서 꼭 한분을 데려 가십니다. 왜그러냐 물으니 겁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낯선 곳과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낼 때에 그 사람은 성장하고 발전합니다. 

성경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낯선 환경으로 인도하시어 일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낯선 사람, 낯선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낯선 곳, 낯선 일을 두려워하거나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러기에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여러분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요? 

1. 하나님은 낯선 것을 통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낯선 곳으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땅이고 생소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거기서 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본문 1~2절을 함께 읽습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떠나라”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어딜 떠나라는 것입니까? 

네 고향, 네 친척, 네 아버지 집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보여준 땅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가 본 땅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그 땅이 어디인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위험이 있습니다.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아브라함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시겠답니다. 그리고 이름을 창대케 하시도 복이 되게 한다고 약속하십니다. 

솔직히 아브라함은 고향땅이 편합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친척이 있는 곳이 안전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잖습니까? 고향이 최고고 대한민국이 안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평안한 땅에서 안주하는 삶을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땅, 낯선 곳으로 가라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크게 쓰신 사람들을 보세요. 기존 환경에서는 그를 들어 쓰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요셉을 보세요. 

아버지와 형들 밑에서는 그를 들어 쓰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를 우연을 가장한 오묘한 섭리로 애굽으로 내보내십니다. 그야말로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셉을 거기서 쓰시려고 합니다. 그래서 낯선 곳으로 보내십니다. 그것도 노예로 팔려가게 하십니다. 요셉은 그곳에서 온 갓 고생을 다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릅니다. 

그것도 노예 신분입니다. 그야말로 낯선 환경이고 낯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그곳에 집어 넣으셨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낯선 곳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남습니다. 

노예로, 죄수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며 연단을 받습니다. 결국 13년의 고생 끝에 하나님은 드라마 같이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우십니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만약에 요셉이 그 낯선 곳에 가지 않았다면 어찌 살았을까요? 

그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평범한 목자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낯선 곳에 내보내셔서 평범하게 살지 않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때로 낯선 곳으로 가라 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그냥 하란에 눌러앉아 살았더라면 그저 평범한 한 개인으로 살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낯선 곳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합니다. 결국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되고 그 이름이 창대해지는 복을 누립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종종 우리에게 전혀 해보지 않는 낯선 일을 맡기시기도 하십니다. 교회일도 처음 해보는 일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전혀 가보지 못한 낯선 땅을 가라고 명령하시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답니다. 2절을 보세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답니다. 내가 네게 복을 주겠답니다. 
내가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용기를 내고 도전해야 합니다. 

그런 결단과 모험을 하지 않으면 우리 앞에는 가나안 땅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후손들에게 복된 삶은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새로운 환경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아골 골짝 빈들이라도 가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인간적으로는 편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으로 모험하고 믿음으로 용기를 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새 역사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일들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복을 누리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배를 타고 거대한 태평양을 건넌 선교사들을 보세요. 그들은 전혀 가보지 못한 낯선 朝鮮(조선)을 찾아 왔습니다. 잘못된 유교 가르침으로 수염과 머리를 자르면 불효인줄 알고 살았던 이 조선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우리말도 모르고 왔습니다. 그저 하나님으로부터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명령만을 받고 이 땅에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이 땅 백성들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낯선 곳, 낯선 사람들이라고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제 우리가 그 빚을 갚아야 합니다. 아직도 흑암에 묶여 복음의 빛을 받지 못한 백성들이 온 세상에 많습니다. 복음이 뭔지,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르는 나라들입니다. 그러니 가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Z국에 신학교를 세워 운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인도에 양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전할 일꾼을 기르는 것입니다. 때로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모험이 필요합니다.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합니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보다는 모험심과 믿음을 가질 것이 필요합니다. 
낯선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아직 젊은 사람입니다. 익숙한 것에 만족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늙어 가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2. 하나님은 낯선 곳에서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우리를 낯선 곳으로 인도하시고 낯선 일을 맡기십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두려워하면 우리를 쓰시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낯선 환경이 찾아오거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들어 쓰실까를 기대하고 도전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 낯선 환경에서 친숙해지면 놀라운 복이 찾아옵니다. 

반대로 낯선 환경을 힘들어하여 못 견디거나 도피하면 복이 없는 것입니다. 
본문 3절을 보세요.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내가 낯선 곳에 가면 내게 사람들이 준비되어 있는데 그들 중에 내 동역자도 있지만 내 대적자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게 함께 계셔서 나를 축복하는 동역자들에게 복을 주시고 나를 대적하는 반대자들에게 저주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나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약속을 하실까요? 
우리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복음이 있습니다. 우리 속에는 남들에게 없는 예수님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축복하는 자는 그 빛을 누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보낸 대사입니다. 그러기에 낯선 곳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을 두려워 말고 담대해야 합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팀의 암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암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암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고 합니다. 

암에 걸린 사람들 중에 용기를 가지고 항암 치료를 받으며 끝까지 암과 싸운 사람들은 대부분 건강을 되찾는답니다. 그렇지만 암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서 마음으로부터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은 결국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겁 많은 고양이는 쥐도 못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겁을 먹으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습니다. 운동선수가 시합에 앞서 너무 긴장하고 두려워하면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습니다. 각종 고시나 대학입시를 앞에 둔 학생들도 마음속에 두려움이 넘치면 평소 실력조차 발휘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물리치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오히려 능력을 넘어서는 잠재력까지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면 새롭고 낯선 환경을 이기는 비결은 뭘까요? 
오직 하나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책임지십니다. 
아브라함은 알지 못하는 땅으로 갈 때에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기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부인을 빼앗길 뻔합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부인을 누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간섭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애굽 왕에게 재앙을 내립니다. 하나님이 그 가정을 책임지신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담대해집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바로보다 쎄구나” 깨닫습니다. 그래서 창14장에 보면 조카 롯이 잡혀가자 318명의 식솔들을 이끌고 쳐들어갑니다. 

뭘 믿고 그랬을까요? 조카 롯이 사랑스럽고 불쌍해서일까요? 아닙니다.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나타나 고향 친척을 떠나가라 명령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바로 왕을 꼼짝 못하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카 롯의 가정을 구출해옵니다. 

그런데 그도 사람인지라 두렵고 떨립니다. 자기가 쳐부순 그돌라오멜 왕과 그 세력이 복수하려고 언제 쳐들어올지 모릅니다. 그래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약속하십니다. 

창15:1절을 보세요.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도와주시겠답니다. 그것을 믿으면 겁날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만이 아닙니다. 
야곱이 나이 130세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 말씀합니다.

창46:3절에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하십니다. 

야곱에게 애굽은 내려가면 안 되는 곳입니다. 

아마도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들었을 것입니다. 아버지 이삭에게도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그곳에서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도 낯선 곳이니 두려워 떨고 있는데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출발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 일할까요? 평안함과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힘들고 어려워도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사람일까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최초의 명령은 뭡니까?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낯선 곳을 가야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도 순종해야 합니다. 

낯설고 힘든 환경에 담대하게 나서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포기하고 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어렵고 척박한 곳에서 견딘 사람들이 복을 차지합니다. 


3. 하나님은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종종 낯선 땅과 낯선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낯선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우리가 얼마만큼 순종하느냐는 것입니다. 
4절을 보세요.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나요?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75세였습니다. 여기에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어떤 믿음일까요?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여호수아도 그랬습니다. 시편기자 다윗도 그랬습니다. 
다윗의 고백을 아시지요? 시편23:4절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나와 동행하심을 믿는 것이 필요합니다. 함께 하심입니다. 

낯선 곳과 낯선 사람을 상대하는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영적인 주도권입니다. 그것을 확보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그런데 그 영적 주도권이 뭐냔 말입니다. 영적인 주도권은 다른 것이 아니고 “이일을 하나님이 기뻐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나님은 내게 맡기셨다”는 확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확신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자요,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름을 받은 자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확신이 있으면 어떤 환경이나 어떤 어려운 일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자기 확신이 있으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손에 붙들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도 당할 자가 없는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 받는 사람입니다. 

요1:6절 이하를 보세요.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세례 요한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는 사람이듯이 우리도 보냄 받은 사람입니다. 뭐 때문에 보내셨나요?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나를 통해 믿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보냄 받은 사람이고 우리도 사명자입니다. 
누구든지 가슴속에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은 선교사이고 
누구든지 가슴속에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선교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먼저 불러 주셨고 나를 낯선 사람과 낯선 곳에 보내시는 것입니다. 

어제 홍석민 형제가 OOO스탄으로 다시 떠났습니다. 직장에서 그곳으로 그를 파견했기에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한인 교회가 없답니다. 모슬렘국가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하기가 어렵답니다. 

그래서 제가 안수기도하고 보냈습니다. 그를 그리로 보내시는 하나님이 그를 그곳에 빛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주신 영적 권능이 있기를 기도합시다. 그러면 놀랍게 하나님은 그를 들어 쓰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낯선 것을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낯선 사람을 두려워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내게 복을 주시기 위해 낯선 곳으로 인도하시고 거기서 나를 크게 하십니다. 그 인도하심이 때로는 이해가 안 되고 때로는 고통스러우나 순종하면 위대하게 나를 사용하십니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물을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물과 친해야 수영을 할 수 있습니다. 낯선 상황이나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면 큰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기애 그런 상황을 즐기고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은 낯선 곳, 낯선 사람, 낯선 일을 통해 우리에게 복을 주려 하십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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