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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부주일] 행복한 가정 (엡 5: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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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 (엡 5:22-33)


지난 21일은 “부부의 날”이었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로 5월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한 것이다. “부부의 날”의 유래는 1995년 창원에 사는 권재도 목사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해 어린이 날 TV 인터뷰에 한 어린이의 소원이, “우리 엄마 아빠가 함께 사는 것이 저의 소원이예요”란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고, “부부의 날 위원회”를 조직하고 “건강한 부부와 행복한 가정은 밝고 희망찬 사회를 만드는 디딤돌”이란 표어로 이 운동을 확산시켜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2003년 12월에 국회에서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위기는 경제가 아니다. 부부가 위기다. 경제논리로 행복을 판단하니까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문제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면 심각한 부부가 많이 있다. 특별히 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되고 사회참여가 높아지면서 부부간의 대립이 심화되고 이혼율 또한 높아지고 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혼을 선언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녀들이 불행해지며 빗나가기가 쉽다. 

어느 방송사의 기자가 10대의 가출 소녀를 보호소에서 인터뷰 했다. 기자가 물었다. 
“왜 집에 안들어가는 거예요?” 그러자 이 소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들어가기 싫어요. 지옥같아요.”

행복한 가정을 원치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다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오해하고 있다. 행복한 가정의 중심에는 부부가 있다. 부부의 관계가 행복의 척도를 나타내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엡 5:18에서 이렇게 권면하였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 말씀에 이어서 연결되는 주제가 바로 부부의 문제이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이 가정과 직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가정을 거룩한 공동체의 출발점으로 말씀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된 관계로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원리에 근거하여 남편과 아내는 두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할 도리에 대하여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비결에 대하여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1.아내의 태도(22-24)

오늘 본문은 먼저 아내들이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하여 먼저 말씀하고 있다. 아내들의 입장에서는 불쾌하게 들릴 것이다.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여기서 뿐만아니라 
골 3: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아내된 입장에 있는 여성들은 꼼짝없이 남편들에 대하여 이유 불문하고 순종도 아닌 복종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아내된 여성들에 대하여 이와같은 명령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이 말씀은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복종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바울은 결코 남성우월주의자가 아니다. 그것은 창조의 질서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남자를 지으시고 그 후에 여자를 만드셨다. 이것은 가정의 질서와 통일성을 위한 것이다. 아내는 남편을 가정의 대표로서 인정하여 존경하고 복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범죄 이후 하나님께서는 가사의 궁극적 의무를 남편의 어깨위에 얹어 놓으셨다. 땀을 흘려서 가족들을 부양할 책임을 남편에게 부과하셨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해산의 고통과 함께 남편에게 순종할 것을 명령하셨다. 

24절의 말씀을 보면, 아내들의 남편에 대한 복종이 더욱 강조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예수께서 교회에 대하여 요구하는 순종은 결코 비인격적이거나 강제적이지 않다. 반대로 교회가 예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힘의 논리에 의한 수동적 순종이나 복종이 아니다. 자발적 순종이다. 그러므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결코 차등적이거나 굴욕적인 것이 아니다. 

남편들은 이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아내를 향하여 “복종”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여 강요해서는 안된다. 비인격적이고, 비신앙적이고, 비도덕적인 경우까지 복종해야 할 이유가 없다. 

아내된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란 말씀을 유념하기 바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다. 그러므로 남편을 세워주어야 한다. 조금 부족해도, 조금 못 생겼어도, 조금 무능력해도, 조금 무뚝뚝해도 남편을 인정해주고 칭찬해주어야 한다. 허물을 드러내면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것이다.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을 세워준다. 아이들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특별히 남편이 불신자인 경우에는 더 더욱 잘 해야 한다. 무시하거나 욕해서는 안된다. 

벧전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불신 남편에게는 더욱 조심스럽게 공대해야 한다. 이유는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구원을 얻기 때문이다.

한 농부가 부인의 동의를 얻어 더 좋은 말과 바꾸려고 키우던 말을 끌고 시장으로 나갔다. 
가는 도중에 살진 암소에게 마음을 빼앗겨 말과 바꾸었다. 또 길을 가다가 그 암소를 양과 바
꾸었고, 조금 더 가다가 양을 거위와 바꾸었으며 또 그 거위를 붉은 벼슬을 가진 수탉과 바꾸
었다. 마지막으로 수탉을 썩은 사과 한 자루와 바꾸었다. 

날이 저물어 여관방에서 만난 귀족 두 사람이 농부의 사연을 듣고는 󰡒집에 돌아가면 부인이 화가 나서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농부는 󰡒참 잘했다고 할 것이오󰡓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귀족은 만약 그렇다면 자기가 가진 금화를 몽땅 주겠다고 했다. 

이튿날 집에서 그간의 사연을 들은 농부의 아내는󰡒그러잖아도 식초를 만들기 위해 썩은 사과가 필요했는데 참 잘되었군요󰡓라고 말했다. 결국 농부는 내기에 이겨 부자가 되었다. 

부부관계에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은 배우자의 능력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배우자인 남편을 존중하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안데르센의 동화다. 

*아내의 남편에 대한 태도 2가지
1)그리스도께 복종하듯 하는 것이다(22, 24절)
2)머리로 인정해야 한다(23절)

2.남편의 태도(25-30)

1)희생적인 사랑(25)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본문에 사용하고 있는 “사랑”이란 용어는 “아가파오”, 곧 아가페 사랑을 뜻하고 있다. 아가페 사랑의 특징은 무조건적이며, 희생적인 사랑을 말한다. 그 사랑은 예수님께서 갈보리 언덕에서 자신을 희생하시므로 성취하신 사랑이다. 

신혼의 달콤하고 아름답던 순간들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오래 지속되어야 1년내지 1년 6개월이다. 그 기간이 지나면 생물학적으로 사랑 에너지가 떨어진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는 부부 간에 주도권 싸움이 벌어진다. 대부분은 남자의 승리로 끝나거나 아니면 파경에 이르기도 한다. 특별히 남편들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도 못하면서 일방적인 헌신을 아내에게 요구한다. 아내를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가 애를 둘씩 나놓고 어디를 가겠어?” 이런 착각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유익하다. 이전에는 안 갔지만 요즘에는 사정없이 나간다. 50대 이후에 더 잘 나간다. 젊었을 때 아내 맘 상하게 하면 늙어서 천대 받는다는 사실을 남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일시적이고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다. 시간이 지났다고 변질되는 사랑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더욱 뜨거워지는 사랑이다.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명령하는 습관은 좋지 않다.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사랑해야 한다.

2)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가꾸어 주어야 한다(26-27)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아내의 얼굴은 남편들이 만든다는 말이 있다. 
마음의 상처는 얼굴로 나타난다. 영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성결하고 성숙한 모습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아내에 대하여 폭행하는 것은 스스로 가정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폭행이란 여러 가지가 있다. 언어폭행, 물리적 폭행, 물질적 폭행, 정신적 폭행 같은 것들이다. 
남편은 왕처럼 군림하고 밖으로 다니며 온갖 못된 다 하면서도 아내에 대하여 폭력적인 태도는 아내를 전쟁터의 폐허와 같이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것들로 인해 아내는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자식들 때문에 산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3)책임지는 사랑이어야 한다(28-30)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남편들은 본문을 유심히 잘 보아야 한다. 28절의 말씀을 보면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찌니..”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30절에서는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28절의 말씀은 부부라는 존재가 엄연히 두 몸이지만 한 몸처럼 생각하라는 의미이고 30절의 말씀은 부부는 한 몸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과 교회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교회와 예수님은 한 몸이다.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도록 보호하시며 자라도록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 예수님과 교회가 한 몸이듯 부부는 한 몸이다.

1859년, 촬스 브론딘이라는 줄타기 곡예사가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서 줄타기에 성공하였다.
2차 시도, 한 사람을 그의 어깨 위에 올려 놓고 건너는 것이 었다. 그의 매니져 헨리 콜코드가 자청함. 어떤 도박사가 받치는 줄을 칼로 끊어버렸다. 줄타기를 중단하고 이렇게 말했다. 

“헨리씨 당신은 콜코드가 아니고 부론딘이 되었으며 나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내가 흔들릴 때 당신도 흔들리게 될 것이므로 당신은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잘못하면 둘 다 죽을 것입니다.”

한 몸이란 말은 100%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이혼율이 50%를 넘었다. 쉽게 갈라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로 간에 책임지지 않겠다는 마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F.비까르란 분이 말하기를 “부부란 이미 요리된 행복의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둘이 서로 합심하여 행복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다”라고 했다. 가정의 행복을 위한 책임이 남편에게 더욱 강조되어 있다. 이런 책임의식을 가질 때 아내에 대한 복종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향하신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 성결케 하는 사랑, 책임지는 사랑이다. 남편들이 예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들은 자발적으로 순종하게 될 것이다. 

서로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하게 된 한 쌍의 연인이 있었다. 남자는 아파트 한 채를 미리 사 두었고, 여자는 아파트 규모에 맞을 만한 가구와 가전제품을 점찍어 두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하루 아침에 형편이 어렵게 되었다. 그 충격으로 여자의 아버지는 쓰러져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결혼을 한 달여 앞둔 날,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여자의 두 손을 꼭 잡고 말했다. "혜원 씨, 사실 아파트는 내 것이 아니에요." 그러자 여자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괜찮아요. 전 이제 그 집에 채울 살림살이를 하나도 준비할 수 없는 걸요. " 그리하여 두 사람은 다칸 전세방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남자의 월급은 보통 사람들보다 적었지만 여자는 마냥 행복했다. 일 년 뒤 여자의 아버지는 다행히 건강을 회복해 사업을 일으켰다. 그러자 여자는 조금씩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크고 좋은 가구들을 얼마든지 살 수 있게 되었는데 남자에게 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결혼 전에 남자가 자기를 속였던 사실이 떠올랐고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자는 친정어머니에게 자신의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사실은 김 서방이 아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제는 털어놓아야겠구나." 
남편은 아무것도 해올 형편이 못 되는 신부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상할까 봐 차라리 아파트를 팔아 장인의 빚을 갚았고 매달 월급의 일부를 병원비로 썼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여자는 남편의 깊은 사랑에 행복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3.결론적 원리(31-33)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사도 바울은 부부간의 사랑의 원리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로 설명하였다. 가정의행복은 인류에게 내리신 축복이다. 그 속에는 예수님과 교회와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로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32절에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라고 외친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하여 거룩해지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처럼 남편도 아내 사랑하기를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할 때 가정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한 부부는 행복한 가정의 중심이다. 권리를 따지기 전에 먼저 자신의 위치와 책임을 생각해야 한다. 

33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처음(22절)에는 아내에게 먼저 복종할 것을 명령했으나 마지막에는 남편에게 사랑할 것을 먼저 명령하고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 요구하기 전에 동등한 입장에 있는 것이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핵심적으로 요약한다면 사랑과 존경이라 말할 수 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 사랑하며, 아내는 남편을 대할 때 교회가 주님 앞에 복종하듯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행복한 가정의 핵심은 부부다. 
부부 이외의 다른 것이 그 자리에 들어갈 때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부모님들도 섭섭하게 생각지 말아야 한다. 자식들 부부가 행복하게 잘 살 때 진정한 효도가 이뤄지는 것이다. 또한 자녀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부모의 기쁨일 것이다. 

자녀들의 문제나 직장 사업의 일로 인해서 부부간의 관계가 소홀해지지 않도록 항상 관심과 이해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일방통행은 부부관계를 깨뜨리는 마귀의 도구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가정이 행복할 때 교회가 건강하고 온전해지며 사회가 안정되는 것이다. 그 기초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행복한 가정은 주님 안에서 부부가 함께 만드는 것이다. 

1852년 4월10일, 미국의 한 시민이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사망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1883년, 미국 정부는 군함을 보내어 그 유해를 미국으로 가져오기로 결정했다. 그의 유해가 뉴욕항에 도착하는 날, 수 많은 인파가 몰려왔다. 대통령, 국무위원들, 뉴욕시장이 유해를 맞이 하기 위해 도열해 서 있었다. 

이 주인공은 위대한 정치가도, 외교가도 군인도 아니었다.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와 같은 환영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작사했던 한 곡의 노랫말 때문이었다. 이 노래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가정에 대한 위대한 가치를 일깨우는 노래가 되었다고 한다. 

1862년 남북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버지니아의 레파하녹크 강 전투에서 양쪽 진영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낮에는 전투를 하고 밤이 되면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서 양쪽의 군악대는 매일 밤 군가를 연주했는데 어느 날 밤 이변이 일어났다. 북군의 군악대가 아주 특이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 멜로디는 바람을 타고 울려 퍼졌다. 그 순간 그리운 가족이나 연인에게 편지를 쓰고 있던 군인들은 사무친 그리움에 텐트 밖으로 나와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멜로디는 강 건너 편에 있던 남부군 진영에도 울려 퍼졌다. 남부군 군악대도 덩달아서 이 음악을 연주하고 남부군도 다 함께 합창했다. 그리고 그들은 상대방이 적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강으로 뛰어나와서 서로를 얼싸안고 모자를 하늘로 높이 던져 올리며 환호했다고 한다. 그 다음 날 하루는 휴전했다고 한다. 그 가사의 내용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노래이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 .”

이 노래의 작사가는 미국의 기자겸 극작가 존 하워드 페인이란 사람이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평생에 가정을 가져 보지 못하고 타국에서 쓸쓸히 생을 마쳤다고 한다. 가정을 그리워하면서...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로버트 죠지 웰즈는 가정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요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다. 가정은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으며,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사랑받는 곳이다. Hebert.George 웰즈

실천사항
1.가정 예배 드리기
2.자기 전에 손잡고 기도하기. 기도해 주기
3.언어생활의 순화 
1)미안해요 2)괜찮아요 3)좋아요 4)잘했어요 5)훌륭해요 6)고마워요 7)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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