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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행 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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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행 1:12-14)

교회는 만인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무엇보다도 기도의 불이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가 능력 있는 교회가 되려면 기도가 있어야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를 통해 탄생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기도로 성령의 충만을 받고, 능력 있는 교회로 도약했습니다. 

기도는 우리들의 개인적인 경건의 훈련, 영성을 위해서도 필수요건입니다. 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기도가 없이는 안됩니다.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 기도하고 전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초대교회가 땅끝까지 나아가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하는데 이 일을 위해서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이 원리는 오늘 성령의 권능을 받아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 증인의 삶을 살려는 우리들에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그들은 성령이 임하기를 기다리면서 은혜의 자리인 마가의 다락방에 올라갔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이 은혜의 다락방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13절에 "다락에 올라가니..."란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 "다락"은 "옥상에 있는 작은 방"을 의미합니다. "그 다락방"은 "이미 잘 알려진 다락방"입니다. 

즉, "최후의 만찬을 나누었던 마가의 다락방"(눅12:22)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다락방에서 마지막 만찬을 베푸시며 하신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이 숨어 모였던 곳인데, 그곳에 찾아 오셔서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며, 위로해 주셨던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다락방은 제자들이 다 아는 곳입니다.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로서는 실로 잊을 수 없는 은혜의 장소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성령 보내실 것을 약속하신 그 약속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이 은혜의 장소, 다락방에 모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마가의 다락방은 실로 초대교회의 요람이요, 예루살렘 교회의 발상지며, 세계 교회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은혜의 다락방이 있습니까? 주님을 만났던 은혜의 자리가 있습니까? 

어떤 집회에서나, 산중에서 기도할 때, 아니면 정말 여러분의 집의 골방에서나 주님을 만나 뵈옵던 은혜의 자리가 있었습니까? 그 장소를 생각만 해도 은혜가 되고, 다시 가고 싶은 은혜의 장소가 여러분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험이 없습니까? 세상에 분주 복잡하고 혼란한 삶들을 뒤로하고 한번 깊은 산중이나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늘 문이 열리는 놀라운 체험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자리가 비록 사업에 부도나서 감방에 들어간 자리라도, 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그런 자리라도 하나님을 만난 자리라면 평생을 잊지 못할 은혜의 자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 두 번의 은혜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우리의 다락방은 계속 있어야합니다. 모든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을 맺는 이 은혜의 다락방이 우리에게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믿는 자가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를 결정하는 요인입니다. 

여러분들은 과연 기도를 믿습니까? 기도의 전능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이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여러분의 가정에 이 은혜의 다락방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집에 좋은 거실, 안방 보다 더 귀하고 필요한 곳은 한적한 시간에 무릎꿇고 기도하며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골방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바빠서 하나님께 기도할 틈도 없다면 그곳은 어쩌면 여러분들의 일터가 아닐는지 모릅니다. 너무 피곤해서 새벽기도도 못하는 그런 직장이라면 문제가 있습니다. 무리해서라도 세상일을 하신다면 하나님 섬기는 일, 하나님께 나아오는 일은 더욱 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기도할 수 있는 골방이 있기를 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가정이 작은 교회가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즉, 은혜의 장소, 기도의 장소, 주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신령한 학교가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주께서 친히 세우신 은혜의 시은소인 교회를 아끼며, 사랑하며, 그곳에 모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모였습니다. 히브리서에 경고를 했습니다. 말세가 되면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들이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너희는 그리하지 말고 모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주 오일제 근무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더욱 모이는 일이 어려워 질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사이버처치가 한국에도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에 사이버시대에 굳이 교회까지 나갈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습관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이 될수록 모여야 합니다. 모이지 않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모이기를 더욱 힘을 써야합니다. 주의 약속을 믿는 모든 자들이 다함께 모였습니다. 

13절에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라 했습니다. 

그 다락방에 모인 무리의 수는 모두 120명 정도였습니다. 예수님 열한 제자들이 다 모였습니다. 예수님의 모친과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들도 모였습니다. 또 예수님을 열심히 따르던 성도들도 그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기 전, 삼일만에 다시 부활 하실 것을 약속하실 때, 사실은 반신반의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는 거의 다 도망하고 배신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약속하신 대로 삼일만에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만왕의 왕으로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부탁하시고 성령의 권능을 약속하시며, 하늘로 올라가시는 그 역사적인 승천의 장면을 목격했던 자들입니다. 이에 저들은 이 약속을 굳게 믿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행1:4-5) 

오늘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이 제자들과 같은 뜨거운 중심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도 처음부터 그렇게 뜨거웠던 가슴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사랑하여서 붙들며 놓지 않으시고 성령의 충만을 입혔을 때에 비로소 증인들이 된 것과 같이 오늘 우리 교회에 모인 모든 형제자매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령 충만으로 새롭게 하시며, 뜨겁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우리들의 믿음이 도무지 변화가 없고 어떤 은혜에도 도전을 받지 않는 막히고 냉랭한 상태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는 세상이 놀라고 교회가 놀라는 사람으로 변화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회개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강퍅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도 우리들은 소망을 가져야합니다.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며 기다려야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신령한 시은소인 교회에 모여 기도할 때도, 제자들과 같이 주님의 약속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저들은 이 모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합심하여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이 기다림 속에 마침내 보혜사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우리도 약속 믿고 기도하며 기다리므로 구하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들은 모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같이 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썼습니다. 여기 "마음을 같이하여"란 "같은 마음" 이란 뜻입니다. 이는 곧, "일심동체"가 되어 기도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에는 개인의 깊은 골방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개인의 심령을 기르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건설하며 부흥시키는 일에는 모든 사람이 일심동체가 되어 일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모이고, 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는 합심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드리는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기도의 특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기도가 신음소리 같을지라도 우리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또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하여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에 기도가 능력이 있습니다. 

합심기도가 더욱 능력이 있습니다. 두세 사람 모인 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모임을 기뻐하시고 우리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드리는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일으키시고 진행하시기 때문에 우리 교회의 기도가 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대제사장은 그리스도십니다. 우리의 영원한 중보는 하나이시니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우리가 그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에 특별히 합심하여 기도드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들으십니다. 

본문에는 기도를 하되 특별히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이 오로지, 전혀 힘썼다는 "흔들리지 않고 지속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내외적인 여러가지 장벽에도 불구하고 낙심치 않고, 초지일관하는 마음과 정성으로 계속 기도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기도가 힘이 없는 것은 기도를 하되 전혀 기도에 힘쓰는 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기도를 하지만, 기도에 장애가 많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끊지 못한 우리들이 아는 죄악이 있으면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양심에 가책되는 죄부터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또 자기 심령의 혼란함으로 말미암아 기도가 막힙니다. 기도에 전념하려하나 기도가 막히는 것이 우리 내적인 장애로 많습니다. 우리들 속의 생활의 염려, 두려움, 불신과 미움 등이 우리 기도가 막히게 만듭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외적으로 우리들의 환경이 우리들의 기도를 방해합니다. 눈에 보이는 장면들이 기도에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왜 우리가 기도할 때에 눈을 감고 무릎을 꿇습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에 눈도 감고, 무릎도 꿇고 두 손도 모으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흐트러진 심령을 기도로 집중시키고, 또 자세를 바로해서 정성을 다하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조용한 산을 찾아가기도 하고, 금식이라도 해서 모든 우리 속에서 방해하는 육체의 욕심, 세상의 온갖 염려들과 단절된 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현실에 닥친 어려움과 고난이 우리들의 기도를 더 간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며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밖으로 많은 환난과 박해가 있을 때에 가장 기도가 간절하고, 진실된 기도가 드려지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거짓된 욕망들이 다 사라지고, 새로운 사명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초대교회의 증언이 되기 전에 먼저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므로 기다림으로 성령을 충만히 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 능력을 받음으로 모든 시험을 극복하며, 가장 아름다운 이상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즉 구원의 은혜가 충만한 교회, 날마다 떡을 떼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교회, 충성하는 교회, 제자의 수가 날마다 더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정상적인 교회가 되고, 정상적인 교회가 되면 양적인 부흥도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도 전도의 부흥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때에 담대함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날마다 제자의 수가 더해지는 교회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의 제목들이 많습니다. 우리들의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들이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합니다. 우리들도 은혜의 다락방으로 올라갑시다. 새벽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를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혀 기도에 힘쓰는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 받아 능력 있는 복음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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