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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 성령의 내연기관 (행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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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내연기관 (행 2:1-21)

저는 스포츠카를 한 대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한 번 몰고 나갈려고 치면 여러 가지 모든 장비를 다 점검합니다. 여기 저기 살피고 쪼이고 닦고 기름칠합니다. 그리고 연료를 채우고 차 열쇠를 꽂고 시계방향으로 틀어 줍니다. “부르릉”하는 소리가 참 즐겁습니다. 시동이 자연스럽게 걸렸지만 차 안의 엔진 내부에서는 계속되는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보통의 내연기관, 즉 엔진은 네 가지의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연료가 주입되고 다음으로 압축되고 다음에는 폭발하고 마지막으로 배기 가스를 배출하는 과정입니다. 가솔린과 공기가 적절되어 배합되어 연료 밸브를 통해 실린더로 들어가면 피스톤이 위로 올라가 혼합된 공기를 압축시킵니다. 그리고는 스팍플럭에서 스팍(불똥)을 튀겨 주면 폭발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폭발로 감자 한 개를 150미터 날려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폭발에 의해 피스톤이 밑으로 내려가며 배기 가스가 발생하고 다시 올라가며 배기 가스를 배기관으로 밀어 내게 됩니다.

어저께 밤에 설교 준비를 하며 전전긍긍하던 중 하나님께서 성령의 폭발이 마치 엔진의폭발과 같다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대대적인 폭발이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오순절날 생겨난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던 자들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대하며 한 곳에 모여든 것입니다. 마치 연료가 주입되는 것처럼 그곳에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부르릉”하는 시동소리처럼 굉음이 들리고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행 2:2-3)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 폭발로 인해 거기 있던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가 알지 못하는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행 2:4) 

놀라운 귀결입니다. 보통 자동차 엔젠으로부터는 배기 가스가 나오고 몸에도 해롭지만 성령의 엔진으로부터는 놀라운 기억이 발생하고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 생산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폭발을 유도하는 스파크(불똥)이 성령의 불씨라고 하면 엔진의 모든 작동을 성령의 역사라고 비유해 볼 수 있겠습니다.

바로 이 폭발의 힘 때문에 차가 움직이듯이 성령의 폭발 때문에 교회가 움직여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장이 모든 혈액을 펌프질하여 각 신체에 보내듯이 성령의 역사가 이같이 온 교회에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성령에 관하여 많은 말씀들이 있지만 오늘은 이 비유를 통해 말씀을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우리는 실린더에 연료를 주입하는 단계를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아무도 식용유나 참기름을 연료탱크에 공급하지는 않습니다. 폭발이 일어나려면 먼저 알맞는 연료가 공급되어야 합니다. 

성령에 불붙는 연료는 어떤 것일까요? 사실상 우리는 많은 영적인 연료는 공급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상을 살면서 각종 매체와 인간관계 등을 통해 우리는 많은 연료를 공급받고 속에 저장하게 됩니다. 너무 세상적인 것들만 가득 들어 오면 아무리 불을 붙여서 불이 붙지를 않습니다. 

오순절에 주를 믿는 자들은 모여서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예배하였습니다. 성령의 임하심을 간절히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좋은 연료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이 부어졌을 때 성령의 불이 붙고 바람이 일어 번지고 폭발하여 활활 타 들어 가는 것입니다.

적당한 수준의 옥탄가가 필요합니다. 보통 차는 87이상이지요. 성령의 기름 또한 옥탄가를 유지해야 좋은 폭발과 좋은 귀결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자면 영적 연료를좋은 것으로 잘 섭취할 뿐더로 일상생활과도 조화롭게 잘 배합하여야 합니다. 마치 연료와 공기가 적절히 배합되듯이 영적이 삶과 헌신은 일상의 삶과 잘 조화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적절한 영적 수준에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측정해 보는 것은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지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적상태를 자신 스스로 자각함으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삶을 살아감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살면 살수록 영적인 것에 민감해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영적인 삶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영적으로 무뎌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영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잘 감지가 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이미 그다지 좋지 않은 영적 상태임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빨리 수리공을 만나보는 게 좋습니다.

둘째로 성령은 충만할 때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공기와 연료가 섞어진 혼합연료가 적당히 압축되어지는 것처럼 성령은 어느정도의 긴장 안에서 잘 불붙는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이 너무 느슨하고 안락해도 좋은 징조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지나쳐도 엔진 속이 다 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적절한 엔질 오일도 필요하고 적절한 긴장도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이 혼합연료에는 불순물이 많이 들어있어는 안됩니다. 순도가 유지되어야 불이 붙습니다. 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무엇이 들끓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내 안에 분노와 미움이 가득하고 염려와 근심이 충만하여 교만과 패역이 판을 치면 성령의 폭발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요란한 굉음은 내겠지만 오히려 엔진 자체를 다 파괴시킬 것입니다. 거기엔 진정한 성령의 불도 바람도 폭발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끔 겉으로 시끌벅적 하고 난리 치는 것을 성령 받는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성령의 폭발은 내적인 것입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은혜의 역사인 것입니다. 좋은 엔진은 속에서 잘 폭발하고 밖으로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힘만 나올뿐 불필요한 기름이 센다거나 요란스러운 잡음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살 때 엔진의 소리를 꼭 확인합니다. 시끄럽고 요란하면 좋은 엔진이라 하겠습니까? 기름이 뚝뚝 떨어지면 좋은 엔진이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교회에 사람을 세울 때 무슨일이 되었건 성령이 충만한 자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엔진이 없다면 그것은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성령의 내적 폭발을 경험하면 그 결과는 반드시 은혜로 빠져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고 나쁜 나무에서는 나쁜 열매가 맺힐 뿐입니다. 사람에게서 무엇이 나오는지를 보면 그것이 성령의 열매인지 아닌지 단박에 알아 볼 수 있습니다. 

2000년 전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는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언어가 저들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왔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른 말을 사용하였으나 다 알아 듣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모든 벽과 담을 허무시고 그 말씀이 선포되는 열매를 맺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께 닿게 하려고 바벨탑을 쌓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혼동시키시고 세상으로 우리를 흩으셨습니다. 이 다양함 또한 우리의 뜻과 이상에 어긋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이요 성령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다양함을 접할 때 기뻐하고 인정하고 아름답게 여겨야하는 것입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사는 형편이 다르고, 생각과 습관과 관습과 그밖에 모든 것이 다를 때 우리는 서로 인정하고 기뻐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든 언어로 하나로 통합하신 것이 아니라 각각의 언어로 다 말하고 듣고 소통하게 하신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다른 점을 지닌 사람들을 따돌리고 자기들만의 하나 됨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약한 것을 눌러 버리고 지배적인 것만을 표방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다양함을 인정하며 기뻐하며 그 속에서 공통된 하나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성령 안에서 하나입니다. 성찬 때에 같은 덩어리에서 떡을 떼며 같은 잔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이야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요, 서로에게 하나요, 우리의 사역에 있어서 하나입니다. 

시편 133편 1절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보라 형제, 자메가 연합하는 것이 선하고 아름답지 아니한가.” 형제, 자매가 주 안에서 하나인 것은 성령의 귀한 선물입니다.

여러분의 주변을 둘러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공동체와 나라와 민족간에 벽이나 담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성령이 주장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의 귀결인지 곰곰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좋은 것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여러 분에 나쁜 것이 감지되면 성령의 치유와 회복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폭발하는 힘을 발휘하는 성령은 우리에게 앞 길을 제시합니다. 운전할 때는 앞을 보는 것이 당연합니다. 거울을 통해 간간히 뒤도 살펴야 하지만 우리는 앞을 보고 달려갑니다. 베드로는 요엘 선지자를 인용하여 말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 2:17) 

성령이라는 엔진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늘 함께하시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종말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라야 모든 것이 완성되어 그 여정이 끝날 것입니다. 시작이 예수님이였고 끝도 예수님입니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앞서 제가 스포츠카를 하나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말한 스포츠카는 제가 담임하는 교회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저 광만 내고 주차장에 보관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달릴 수 있도록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합니다. 좋은 연료를 공급하고 스팍(불똥)을 튀겨 주고 폭발이 일어나 은혜의 길고 계속 달려가게 해야 합니다. 

지금의 자리에서 멈추어 서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만족하고 방만해 져서는 안됩니다. 내가 달려갈 길을 달려가야 합니다. 계속해서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르르릉.” (지영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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