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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의 에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 (창 3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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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에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 (창 32:1-12)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누군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질문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겠습니까?  아마 자기 생명이 위협을 받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이 안전하지 못하고 어떤 위기를 만나지는 않을까 하는 것과 자신이 지금까지 애써 쌓아온 재산이나 소유물을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 다음으로 두려워하는 일일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 모두에게는 잃어버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이 이런 삶의 위기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 번 가정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시겠습니까?  제가 이 질문을 드릴 때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위기를 대처하는 방법도 세상에 속한 믿지 않는 사람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생명과 가족과 재산에 대한 위협이 닥쳐올 때 그 위기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자녀다운 대답이 나와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대답일까요?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본문 말씀을 통해서 배우고자 하는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잃어버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야곱입니다.  그렇다면 야곱,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바, 야곱이라고 하면 승부욕이 강한 사람의 심벌로 통합니다.  그는 태어나기 이전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쌍둥이인 자기 형과 주도권을 놓고 다투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어머니 뱃속에서 형이 먼저 나오니까 그것이 못마땅해서 형의 발목을 잡고 뒤따라서 나온 사람,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런 사람입니다.  꾀 많고 욕심 많고 악착같고 승부욕이 강한 그의 성격 때문에 나중에는 형의 장자권도 교묘하게 빼앗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축복까지도 가로챘습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해서 형의 미움을 사게 됩니다.  그래서 형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니까 외삼촌에게로 도망을 갑니다.  그곳에서 2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그는 자기의 성격을 어쩌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한 마디로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그는 외삼촌의 재산을 야금야금 삼켜서 거부가 되는데 성공을 했고, 외삼촌의 두 딸을 아내로 삼는데도 성공을 했습니다.  정말로 대단한 인물입니다.  마음만 먹었다 하면 못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입니다.  욕심과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입니다.  야곱, 그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지금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20년의 더부살이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실패자로서가 아니라 성공한 자로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으로서는 몹시 신경이 쓰이고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형 에서입니다.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형과는 아직도 원수지간이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도 보면 먼 사람끼리 원수가 되기보다 가까운 사람끼리 원수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형제지간에, 심지어 부모와 자식간에 원수가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생 역사에서 너무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형 에서의 원한이 풀렸을 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형을 피해서 슬그머니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형은 이미 상당한 갑부가 되어서 기반을 닦고 가나안 땅에서 실력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형을 만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그 동안 얼마나 변했는지, 자기에게 대한 감정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자를 먼저 보내어 자기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형 에서에게 전하게 합니다.  드디어 사자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와서 들려준 내용은 그야말로 기겁하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본문 6절에 보니까, 형 에서가 장정 400명을 이끌고 자기를 만나러 이곳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표준 새번역에 보면 형 에서가 부하 400명을 이끌고 야곱을 치려고 이리로 오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야곱의 머리에는 별의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갑니다.  20년 전에 그렇게 화난 표정으로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에서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아, 형이 아직도 마음이 안 풀렸구나,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야곱은 밀려드는 두려움과 걱정에 도무지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20년 동안 피 땀흘려 모은 재산과 가족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 문제였던 것입니다.  참으로 위기 중의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 7절은 그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그런가 하면 11절에서는 야곱이 하나님 앞에 자기의 속마음을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본문 1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만난 야곱,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도망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한 야곱, 그는 이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형이 부하 400명을 데리고 자기를 향해서 치러 온다는 말을 듣고서 야곱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는 먼저 자기의 소유물을 두 떼로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수천 마리의 가축을 두 떼로 나누어 그 사이를 아주 멀리 떼어놓는 것입니다.  형이 칼을 빼들고 치고 들어온다 해도 두 떼를 동시에 치지는 못할 테니까, 한 떼를 치면 다른 한 떼는 도망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라도 건져보려는 얄팍한 속셈이 아직도 그의 머리 속에는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야곱의 이런 행동을 보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비난하시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왭니까?  세상적인 눈으로 본다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그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중요한 서류나 패물을 먼저 들고 나오는 것을 보고 누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야곱의 이러한 행동은 참으로 현명한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야곱의 입장에서 볼 때 그의 이러한 행동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것은 불신앙의 행동이지 신앙의 행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은 자기가 오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 명령에 따라서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1장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는 지금 함께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까지 받고서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야곱은 이 말씀을 잊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야곱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본문 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그렇습니다.  그는 자기와 함께 하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약속을 의지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였기에 형이 400명의 부하를 이끌고 온다고 해서 겁을 먹고 재산을 둘로 나누고, 야단법석을 떨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믿음으로 현실을 판단했더라면 허둥지둥대면서 수천 마리의 소떼와 양떼를 갈라놓느라 진땀을 빼는 그런 믿음 없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본문의 말씀을 대하면서 이것은 비단 야곱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우리들 역시 야곱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신앙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할 때가 가끔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진정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우리의 행동도 믿음에 일치시켜야만 합니다.  저는 우리가 믿는 그 믿음에 우리의 행동을 일치시킬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야곱이 그 다음에 한 일은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재산을 두 떼로 나누어서 나름대로 안전한 대책을 세워놓은 연후에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지만 제가 볼 때에 그의 기도는 순서상 문제가 있습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하고 나서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놓고 나서 그제서야 기도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야곱이 한 기도의 내용을 봐도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가 드린 기도의 내용을 보십시오.  얼마나 유창합니까?  나무랄 데가 거의 없는 완벽에 가까운 기도가 아닙니까?
본문 9절을 다시 한 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기도 가운데 가장 멋진 기도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기도가 아닙니까?  정확합니다.  누가 이 기도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10절에서는 20년 동안 외삼촌 집에 있을 때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가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기도에서 감사가 빠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빠지면 그것은 기도라기보다 넋두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기도가 진짜 기도입니다.

보십시오.  지금 야곱이 그렇게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너무너무 많이 주신 은혜 때문에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외삼촌 집에 갈 때에는 내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이 요단강 건넜는데, 지금은 두 떼나 이루어서 거부가 되어 돌아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얼마나 완벽한 기도입니까?

그 다음 11절에서는 자기 마음에 있는 고통을 하나님 앞에 아룁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에 그는 "내가 주께 간구 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나를 건지시옵소서.  내가 그를 지금 두려워합니다."  얼마나 멋진 기도입니까?  마음에 있는 것들을 숨기지 않고 다 내어놓습니다.  그리고 12절 마지막에 가서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하나님이여, 도와주셔야 합니다. 약속대로 나를 도와주옵소서."  이 기도는 도무지 흠잡을 데가 없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기도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기도는 너무나도 완벽하고 청산유수처럼 잘 하는데, 그 다음에 따라오는 그의 행동을 보면 전혀 그런 기도를 한 사람답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혹은 우리 자신에게서 이와 비슷한 사례를 많이 봅니다.  기도할 때 가만히 들어보면 얼마나 기도를 잘합니까?  성경을 줄줄 외워가면서 얼마나 청산유수같이 기도를 잘합니까?  어떤 사람은 기도를 한 번 시켜 놓으면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요한 계시록까지 갑니다.  얼마나 대단한 지식입니까?  완벽한 기도입니다.  그리고 입담 좋은 사람들이나 문학적인 소질이 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기도 문장 하나 하나가 사람을 녹일 정도로 얼마나 멋지게 기도합니까?  그렇게 멋진 기도를 한 사람이 그 다음에 그 기도를 한 사람답게 살면 그 기도가 살아나고 향기가 나고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멋진 기도를 하고 나서 전혀 그런 기도를 한 사람답지 못한 행동을 하면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야곱의 기도에서 그런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야곱의 기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13절 이하에 나오는 야곱의 행동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야곱이 드디어 기도를 끝냈습니다.  그 정도로 멋지게 기도했으면 "하나님, 믿습니다."하고는 "에서야, 오너라!" 그렇게 담대하게 행동하면 얼마나 보기가 좋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야, 과연 믿음의 사람이다."라고 존경을 하겠는데, 야곱은 눈을 뜨자마자 다시금 야곱다운 교활함을 발휘합니다.  소 떼와 양떼, 나귀 중에서 얼마를 떼어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선물로 보내겠다는 것이 나쁜 생각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선물을 준비하면서도 온갖 잔꾀를 부리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면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릴까? 한 번에 550마리를 다 보내 가지고도 형의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으면 그 때는 속수 무책이니까, 그러지 말고 세 떼로 나누자. 제1단계 뇌물을 보내서 안되면 제2차 뇌물로, 그래도 안되면 제3차 뇌물을 먹여가면서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좀 너무하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그렇게 멋진 기도를 한 사람 치고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바로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선물을 보내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기보다 자기 지혜를 지나치게 의지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위기를 타개할 때 어딘가 좀 우직한 데가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간사한 지혜를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소리치고 기도했으면 믿는 사람답게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저는 우리 언양 영신교회 교우 여러분들이 어딘가 좀 우직한 데가 있는 그런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우직한 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도한 다음에는 "주여 믿습니다." 하고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짜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야 할 때는 만나야 합니다.  부지런히 다니면서 문을 두드려야 할 때는 두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 믿음으로 기도한 사람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3장 5-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야곱이 이런 말씀에 따라서 기도하는 사람답게 행동하지 못했다는 것, 이것이 야곱의 기도까지도 문제가 있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문제가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 우리는 위기라고 하는 말을 새삼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암담한 상황은 언제든지 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과연 기도한 사람답게 행동하느냐 하는 문제를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는 기도고 행동은 행동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위기를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야곱이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자 이제 드디어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기 시작합니다.  야곱은 자기 머리를 짜서 형의 마음을 풀 수 있는 방법을 다 찾아서 대책을 세우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도 얍복강 개울 물을 먼저 건너가게 합니다.  그리고 자기 혼자 얍복강 나루터에 우두커니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캄캄한 밤에 갑자기 어떤 사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아마 에서가 보낸 정탐꾼이라고 착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야곱은 죽지 않으려고 이 사람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날이 샐 때까지 두 사람은 엎치락뒤치락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 에서가 보낸 정탐꾼이라는 생각을 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생명을 걸고 이 사람과 씨름을 하는 동안 이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다는 생각을 한 야곱, 그는 이제야 그분이 하나님일런지도 모른다는 확신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야곱이 왜 혼자 남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 엄청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형 에서의 위협을 대처하기 위한 인간적인 노력을 다 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가 할 것이 없습니다.  무엇을 더 해야 될 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이판 사판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할 때면 사람들은 보통 좌불안석이 됩니다.  앉아 있을 수도 없고, 서 있을 수도 없고, 눈을 붙일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가까운 가족까지도 귀찮은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좀 떼어놓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가 얍복강 가에서 과연 기도했을까요?  물론 기도도 하기는 했겠지만 제가 볼 때는 인간적인 심리로 보면 멍청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그저 일어났다 앉았다, 왔다 갔다 하며 어찌할 줄을 몰라하는 모습이 바로 혼자 남은 야곱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이럴 때 기도가 잘 되겠습니까?  흔히들 "그렇게 급하면 기도하면 되지."라고 너무 쉽게 말합니다만 그것은 진짜 막장인생이 어떤 건지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정말 막장으로 떨어져 보십시오.  그 때는 정말 그 어느 때보다 기도가 절실히 필요한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기도가 안 됩니다.  절박한 궁지에 몰리면 하나님을 찾을 용기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그래서 멍하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생애에 있어서 최악의 궁지는 하나님의 해답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인생에 있어서 막장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곳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이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는 최선의 길은 먼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눈앞에 임박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먼저 만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먼저 만나서 은혜로 풀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에서를 만나는 일에 더 골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은혜가 문제를 푸는 열쇠라고 여기지 않고 인간적인 지혜를 총동원하는 것이 열쇠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방법이 사람의 방법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를 배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은혜와 자연이 얼마나 다른가를 눈으로 확인하는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에서라는 위기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지, 결코 자기 손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가족을 보호하고 재산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속 사람이 강건하게 되는 것임을 그는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속 사람이 은혜로 강건해지면 에서가 두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속 사람이 강건해지면 가족이나 재산에 대해서 연연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그 마음에 평강이 임할 것입니다.  그는 이 사실을 배워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며 앉았다 섰다 하는 그가 어떻게 혼자서 이런 진리를 터득할 수 있었겠습니까?  못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를 깨우치시려고 그와 씨름을 하십니다.  여러 시간 동안 씨름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야곱을 보시면서 얼마나 가소롭게 생각했겠습니까?  여전히 자기가 살아있는 야곱, 이름 그대로 간사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믿고 자신 만만한 사람입니다.  옛사람입니다.  그는 여기서 지면 끝장이다는 생각 때문에 사력을 다해서 씨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얼마나 가소로운 존재입니까?  기억하십시오.  에서를 이기기 위해서는 야곱이 먼저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안 죽겠다고 끝까지 바둥거리고 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의 허벅지 관절을 치십니다.  이제 그는 제대로 걸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기가 막하지 않습니까?  지금 에서가 달려든다면 가족을 위해서,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제일 선봉에 나가서 싸워야 하는 사람은 야곱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에서와 맞서 싸우려고 하면 무엇보다 야곱 자신이 건강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는 이제 아무 것도 못하고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그 지경까지 몰아 넣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드디어 야곱은 씨름하는 사람이 아니라 매달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 손에 매달리듯이 질질 끌려가면서도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의 축복만이 그가 온전히 사는 길임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여, 나를 축복하여 주소서."하고 매달리는 겁니다.

울며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야곱, 그의 자아가 완전히 죽은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십니다.  "네 이름이 뭐냐?"  "야곱입니다." "이제부터는 야곱이라고 부르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부르라."

여기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죽었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야곱이 정말로 하나님을 이겼습니까?  사실은 야곱이 하나님을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져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섯 살 짜리 어린아이가 아빠와 씨름하는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누가 이기겠습니까?  두 말할 것 없이 아들이 이깁니다.  아빠가 아들을 집어던지겠습니까?  조금 씨름을 하다가 아빠가 벌러덩 넘어지면서 '아이구, 내가 졌다, 졌어. 어쩌면 그렇게 힘이 세냐?'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린 아들은 입이 이 만큼 찢어져 가지고 자기가 힘이 세서 아빠가 넘어진 줄 압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아빠가 져주는 것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져주는 아빠가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야곱하고 씨름해서 질 수 있겠습니까?  야곱에게 져 주신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져주시는 것을 보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로 태어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습니다.  잔꾀를 부리면서 있는 재주를 다 피워 가지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만 에서를 이길 수 있다고 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생각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적, 우리의 위기, 어느 날 내 삶에서 당한 이 에서를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먼저 야곱은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되어야 합니다.  야곱의 그 모습으로 에서를 만날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이스라엘이 되어 에서를 만나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누구입니까?  자기가 믿던 것은 다 꺾이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부러 져주시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이 이스라엘입니다.  그 사람 앞에는 위기가 위기일 수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는 믿음으로 대처할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강자입니다.  나중에 보십시오.  에서가 야곱에게 어떻게 나옵니까?  그 모든 감정의 앙금이 다 사라지고 껴안고 감격의 상봉을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야곱을 치러 오던 에서가 이스라엘을 부둥켜안고 울며 사랑하는 자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에게도 어떤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로 준비하고 있으면 모든 위기는 위기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은혜를 쏟아 부어주시는 새로운 기회요,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스라엘이 되는 은혜와 축복이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임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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