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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 회복을 통한 영적부흥 (느 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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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회복을 통한 영적부흥 (느 8:1-12)

오늘 본문이 기록된 느헤미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인 1~7장까지는 느헤미야가 주도한 제 3차 귀환과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고, 오늘 본문에서부터 시작되는 8~13장까지의 후반부는 느헤미야가 에스라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부흥을 위한 종교개혁에 관한 내용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무사히 완공시킨 후에 그와 같은 외부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내부의 영적인 부흥을 도모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신 것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참 신이신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하셨고, 실제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70년 동안 고통의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파괴되었던 예루살렘 성벽도 이제 완벽하게 재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느헤미야는 잃어버렸던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과 신앙을 회복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대대적으로 종교개혁을 실시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시도의 첫 단계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율법책의 내용을 낭독함으로써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케 하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는 길은 영적 부흥을 새롭게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 부흥은 어떻게 시작해야 합니까? 영적 부흥은 말씀의 회복에서 시작됩니다. 

본문 1절에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놀라운 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먼저 요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는 느헤미야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백성들 편에서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했고, 알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백성들은 무너져 있던 성벽은 다 세웠지만, 영적으로 무너져 있는 자신의 마음은 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모인 것입니다. 영적으로 텅 비어있는 자신의 마음을 말씀으로 다시 채우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새롭게 각성하여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기 원해서 모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 운동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에스라가 낭독하고 해석해 주는 율법책의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기에 충분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전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기를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이 선포되었을 때, 찔림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1. 말씀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고 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된 다음에 이것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공허했습니다. 심령의 부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부흥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에게 요청했습니다. 본문의 1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백성들은 말씀에 대한 열심,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뜨겁게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3절을 보시면 백성들이 얼마나 말씀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새벽부터 오정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새벽을 6시로 보면, 정오는 12시로 무려 6시간 동안 말씀에 간절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려 6시간을 말씀 앞에 집중적으로 경청했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더구나 그들이 하루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18절 말씀에 보면 7일 동안 했다고 했습니다. 

만일 제가 오늘 설교를 6시간동안 계속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 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큰 은혜를 받겠습니까? 아니면 화를 내며 뛰쳐나가겠습니까?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예배시간 한 시간도 힘들어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시간이 조금만 길어지면 시계를 보며 안절부절 합니다. 

여러분, 이 시대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아모스 선지자의 말씀처럼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업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예전처럼 말씀에 대한 열심과 사모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려 오실 때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나오셨습니까? 오늘 강단에서 목사님이 어떤 말씀을 주실까를 기대하면서 나오셨습니까? 설교가 길고 지루하면 운 없는 날이고, 좀 짧고 재미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영적인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였는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 119:131절에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였는지 입을 헐떡일 정도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부흥을 사모하신다면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올 한해 최소한 성경을 일독하시기를 권면합니다. 하루 3장, 주일에 5장을 읽으면 1년이면 1독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스스로 읽고 듣고 묵상하는 사람이 믿음이 성장하고 큰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올 한해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말씀의 회복과 부흥을 경험하시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말씀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서는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세요.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에스라가 성경을 읽으려고 강단에 올라가 책을 폈더니 모든 백성이 다 일어섰더라고 했습니다. 일어난다는 것은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보통 국회에서 대통령이 연설하러 들어올 때 국회의원이 다 일어납니다. 그것이 나라의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예의입니다. 우리가 한 방에 있을 때 연장자가 들어오면 다른 사람들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예의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외의 표현으로 하자면, 오늘 우리도 다 일어나서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6절에 보니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 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으로 화답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에 순복하여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아멘’ 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옆 사람이 아멘을 크게 하면 좀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하고 쳐다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분이 정상입니다. 쳐다보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믿음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아멘’이란 뜻이 무엇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공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믿습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공감하면 우리는 아멘으로 화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말씀을 듣는 태도를 보면 그 교회의 영성을 알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말씀을 선포할 때 마음을 열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교회는 영적으로 살아있는 교회요, 순종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아멘’을 잘 안하는 교회는 강퍅한 교회요, 영적으로 죽은 교회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아멘으로 화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길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말씀의 권위를 높이고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가장 중요한 태도 중 하나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을 경외한다'하면서 말씀을 전혀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산다면 그 삶이 어떻게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삶이 되겠습니까? 

부모님을 귀하게 여기는 분은, 부모님의 말을 존중하여 잘 들을 것입니다. 남편을 귀하게 여기는 분은, 남편의 말을 존중하여 잘 들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모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말씀의 권위에 순복할 때 우리들의 심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영적 부흥을 맞이하게 됩니다. 말씀의 권위가 짓밟히는 곳에 성령의 역사는 없습니다. 말씀이 무시되는 곳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는 없습니다. 오직 말씀의 권위가 존중되는 곳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여러분 마음 가운데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3. 말씀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에 실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씀을 들을 때 각기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가 말씀을 낭독할 때 말씀을 듣고 울었다고 했습니다. 9절입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왜 울었습니까?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운 것은 회개의 눈물입니다. 말씀을 듣다보니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잘못이 있었구나 하고 회개하며 울었습니다. 

또 하나는 너무 기뻐서 우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왜 진작 못 들었을까, 그들은 말씀을 듣고 너무 좋아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있는 동안 말씀을 듣지 못했었습니다. 돌아와서도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니 너무 좋아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최근에 말씀 듣다가, 찬송하다가, 기도하다가 눈물 흘린 일이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에게 그런 경험이 없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점점 영적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경고로 삼으셔야 합니다. 말씀을 많이 들어도 마음에 감동이 없고 회개와 변화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은 읽고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삶에 적용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베드로가 밤새 고기를 잡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베드로야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나,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니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릴 때 고기가 많이 잡혀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이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단지 말씀을 듣고 깨닫기만 하기 위해서 설교 말씀을 들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듣고 깨달은 말씀을 이제는 자신의 생활 속에 적용함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예배 시간에 단지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듣고 내 생활이 변화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을 들으러 올 때 만족하시는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생활 속에 적용하면서 살 때 만족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변화가 주어졌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를 아픈 마음으로 울며 회개하였고, 하나님이 주시는 죄 용서함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쁨의 삶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12절에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읽어 들려준 말을 밝히 앎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3절 이후에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실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듣기 전의 모습과 말씀을 들을 후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들은 후에 삶이 변화되었듯이,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우리의 삶도 마땅히 달라져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듣기 전의 모습과 들은 후의 모습에는 분명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단지 듣고 깨닫기만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듣고 우리의 삶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 말씀을 들은 후에는 변화된 모습을 가지기 위하여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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