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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키라 (잠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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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키라 (잠 4:23)


요즘 사람들은 웰빙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영어 사전을 보면, 웰빙(well-being)의 의미를 “행복하고 건강하고 풍요롭게 됨으로써 만족스러운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웰빙에 대한 이 같은 정의는 어딘지 모르게 모호합니다. 우선 행복이라는 것이 너무나 주관적인 것이어서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도록 행복을 규정하기란 어렵습니다. 몸이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넉넉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웰빙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행복의 의미부터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쉽게 표현하자면 웰빙이란 “잘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잘 사는 것” 역시 모호한 개념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웰빙이 상업화되어서 웰빙과 관련된 상품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각종 건강식품과 음식, 의류, 심지어는 가전제품, 가방, 신발 등등 거의 모든 제품에 웰빙을 붙여서 팝니다. 마치 그런 제품을 구입하면 웰빙이 가능하다는 것처럼 선전합니다. 

그러나 굳 라이프(Good Life)의 원조로 인정받는 스코트 니어링은 요즘 유행하는 웰빙의 방법과 정반대의 생활방식을 택했습니다. 니어링 부부는 깊은 산골에 들어가서 직접 돌을 주워다가 집을 짓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밭을 일구어 채소를 길러 먹고, 가전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거의 문명과 등진 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부부는 만족한 생활을 했고 자기들의 삶의 방식을 굳 라이프라고 말했습니다. 스코트 니어링은 백세를 살았고, 그의 아내 헬렌 니어링은 91세를 살았습니다. 그가 저술한 책이 '조화로운 삶‘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그 책을 읽어 본 사람은 누구나 그들의 생활을 본 따서 살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니어링 부부에게 적합한 삶의 방식인 셈입니다.

한편, 니어링 부부를 포함해서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심신의 건강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것이 웰빙의 기초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건강입니다. 몸이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도 마음이 병들면 웰빙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함으로 마음의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 줍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마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인 존재로 지으셨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영혼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몸과 더불어 영혼을 갖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삼분설(三分說)에 의하면 영과 혼과 몸으로, 이분설(二分說)에 의하면 영혼과 몸으로 나눕니다. 그러나 어느 학설이나 본질상으로는 같습니다.

영과 혼은 무형적이고 불멸의 존재이며, 인간의 인격 그 자체를 말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영혼이 곧 나 자신이요 내가 곧 영혼입니다. 지금 제가 설교하는 것은 실은 저의 영혼이 설교하는 것입니다. 몸은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과 같습니다. 또는 영혼이 입고 있는 옷과 같습니다. 우리가 옷을 벗어도 여전히 우리 자신이듯이, 몸이 죽어도 “나”의 존재가 소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마음은 무엇일까요? 마음은 우리 영혼의 중심 기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마음을 통해서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기쁨이나 슬픔, 사랑과 미움, 동정과 분노 따위를 마음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느낍니다. 우리는 겸손한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은 마음이 겸손하다”고 말합니다. 거만한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은 마음이 교만하다”고 말합니다. 

그런가하면 우리 마음은 자주 바뀝니다. 아침에는 즐거웠는데 오후에는 슬퍼하기도 하고, 방금까지도 희망에 차 있었는데 어느새 우울하고 낙심한 상태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인데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을 아무렇게나 방치해 두면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무슨 일을 저지를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큰 일 납니다.

예를 들면, 우리 마음에 남을 미워하는 생각이 생겼다고 합시다. 그것을 그대로 두면 처음에는 사소하게 생겨난 미움의 감정이 점점 커져서 드디어는 우리 마음을 완전히 차지합니다. 그렇게 되면 미움이 주인 노릇을 하면서 여러 가지 악한 생각과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원만하던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폭언과 폭행을 유발하며, 심지어는 살인까지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대부분이 범죄의 순간에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무언가 강력한 힘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토로하는데, 이는 그 때 죽이고 싶도록 미운 감정이 그의 마음을 완전 장악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마음에 일어나는 욕구대로 행하면 결국은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고 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결론은, 마음을 방치해 두지 말고 어떤 식으로든 다스려야 합니다. 악한 감정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애당초 악한 생각과 감정이 우리 마음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나, 일단 악한 생각이 들어왔을 경우에는 그 생각을 속히 제거해서 더 이상 힘을 얻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새가 우리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그러나 새가 우리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새는 악한 생각을 말하고, 둥지를 트는 것은 악한 생각이 우리 마음에 자리 잡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이 말해 주듯이,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20세의 나이에 왕이 되어서 13년이라는 짧은 세월에 그리스와 페르샤 제국과 이집트와 멀리 인도까지 정복하였습니다. 역사상 알렉산더처럼 단 기간에 큰 제국을 건설한 사람은 없습니다. 또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시고 철학과 여러 학문을 배운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결점은 쉽게 분노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번 분노하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해서 기어코 피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한번은 잔치를 열고 즐기던 중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충성스런 장군 하나가 농담으로 알렉산더를 놀렸습니다. 그러자 그만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기어코 창을 던져 그 친구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알렉산더는 너무나 양심이 고통스러워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였고, 이 사건은 그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한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33세의 나이로 열병에 걸려 죽고 맙니다. 이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잠언 16장 32절에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방치하면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이 병들듯이, 마음도 병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 몸에 병균이 침입했을 때 저항력이 약하면 병에 걸리듯이, 우리 마음도 사악한 생각의 병균이 침입했을 때 건전한 생각의 저항력이 약하면 병에 걸리고 맙니다. 마음이 병들면 먼저 우리의 생각이 부패합니다. 그리고 그 부패한 생각이 우리의 생활을 병들게 합니다. 방탕한 생활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왜 희망을 잃고 자포자기하는 것일까요? 마음이 지치고 피곤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병들면 절대로 행복한 생활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병들면 육신의 건강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신기하게도 우리 몸의 건강은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이 사실은 성경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도 알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것을 중요한 건강비법으로 여겨왔고, 이는 현대 의학에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병들면 육신도 건강을 지킬 수 없다는 구체적인 예가 화병입니다.

한의사들의 정의를 빌리면 “화병은 화가 나는 일을 당하고 그것을 잘 풀지 못하였을 때 가슴에 응어리 즉 한으로 남아 그것이 여러 가지 신체적, 정신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화병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무려 60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먼저, 정신이 불안해지고, 신경이 예민하고, 만사가 귀찮으며, 사소한 일에도 짜증과 신경질을 냅니다. 초조하고, 정신 집중이 곤란하고 기억력이 감퇴하며, 우울합니다. 위장에도 장애를 일으켜서 속이 쓰리고 아프며, 소화가 잘 안되고, 입맛이 없고, 변비가 생깁니다. 

심장에도 악영향을 미쳐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깜짝 깜짝 잘 놀란다고 합니다. 또 가슴이 답답하고, 손발이 저리고, 허리와 팔다리가 쑤시고 아프고, 다리에 힘이 없고 쥐가 잘 납니다. 감각 기관에도 영향을 미쳐서 머리가 아프고, 눈이 침침하고 쉬 피로하며, 어지럽고, 머리가 띵하고 무겁고. 귀에서 소리가 납니다. 신경에도 영향을 미쳐서 움직이거나 말하기 싫어하며, 말을 더듬거리고, 쓰러질 것 같습니다. 기타 증상으로는, 항상 피로하고, 기운이 없고, 체중이 늘어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화병은 사람의 정신, 호흡기, 심장 혈관계, 감각기계, 소화기계, 등 어디 하나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사람은 절친하던 친구의 배신으로 물질적으로 큰 손해를 입은 것이 그만 화병이 되었습니다. 백약이 효험이 없어서 죽는 날만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오늘 내일,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때 이 분은 한 가지 깨달았습니다. “그래, 기왕에 죽을 것이라면 그 친구를 용서해 주자. 주님께서는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피 흘려 죽으셨는데 나도 그 친구를 용서해 주자.” 그렇게 생각하자 눈에 띄게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얼마 후에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였습니다. 마음의 건강이 회복되니까 몸의 건강도 좋아진 것입니다. 성경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마음을 올바로 지켜서 건강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우리 마음을 어떤 상태로 지켜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최상의 해답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 그 중에서도 팔복의 가르침에 나와 있습니다. 

첫째로,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이 가난하다 함은 겸손한 것을 말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저는 살 수 없습니다.”라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는가 하면, 교만한 마음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천사장 루시퍼가 타락해서 마귀가 된 것은 그가 자기의 영화로움에 도취되어 본분을 망각하고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것 역시 그가 왕이 되자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셨습니다. 그런즉 성도님들께서는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갖고 살아감으로 여러분의 심령에 천국을 누리시기바랍니다.

둘째로, 애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애통이란 단순히 슬퍼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애통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서 내 욕망대로 되지 않아서 슬퍼하는 것은 여기 해당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애통이란 자기의 죄와 허물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편 51편 17절에 보니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비록 부족함이 많고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사죄의 은총과 함께 풍성한 위로를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온유한 마음이란, 거칠지 않고 부드러운 마음을 말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자기를 내세우는 법이 없습니다.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 존중하기 때문에 다툼을 피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와서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온유한 사람은 곧 주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온유한 사람이 될 때 다툼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과 화목한 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넷째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찾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그렇게 갈급한 마음으로 의를 사모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자신의 의로움을 추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의로움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아무리 의로운 자라도 인간의 의는 낡고 더러운 누더기와 같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의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어엿이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상태가 될 때 불의한 생각이 침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은 곧 상대방을 불쌍히 여겨서 돕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다툼과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상대방에게 나의 기준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상대방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비결은 긍휼이 여기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대해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나를 괴롭히고 핍박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 마음에 평안이 깃들고 우리 역시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여섯째, 청결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청결한 마음이란 깨끗하고 정직한 마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본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본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 마음이 청결할 때 악한 생각이 침투할 틈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곱째, 화평케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평화를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님을 본받아서 화평케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아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덟째, 의를 위하여 핍박을 감수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 때문에 가정에서 핍박을 받거나,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할 때, 타협하는 것은 영적인 싸움에서 패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는 주님께 대한 믿음을 온전하게 지켜나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어떤 핍박도 감수할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끝까지 신앙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주님께서는 천국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여덟 가지의 마음을 잃지 마시고 항상 여러분의 마음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성도님들의 마음은 생명을 산출하는 근원이 될 것입니다.

세 번째로, 마음을 지키는 방법에 관하여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밭에 비유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는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씨는 천국 말씀을, 밭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은 곡식이나 채소를 재배하기 위함입니다. 밭에 보리를 파종하면 보리밭이 되고, 들깨를 파종하면 들깨 밭이 됩니다. 그런가하면 꽃씨를 뿌리면 꽃밭이 됩니다. 만약에 밭에 아무 씨앗도 뿌리지 않고 그대로 버려두면 어떻게 될까요? 신기하게도 잡초가 무성한 풀밭이 되고 맙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천국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함으로써 말씀의 씨앗을 마음에 많이 뿌리면 잡초와 같은 악하고 불신앙적인 생각이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 듣기를 게을리하면 온갖 종류의 악한 생각이 뿌리를 내리고 어지럽게 자라나서 우리 마음을 점령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잠언 4장 20-21절에 이르기를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나의 이르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속에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씨앗일 뿐 아니라 우리 마음을 지키는 파수꾼이기도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에 보니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성령의 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할 때 그 말씀이 성령의 검이 되어 우리 마음을 지켜줍니다. 그리하여 마귀가 악한 생각을 우리 마음에 넣으려 해도 그 뜻을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에서 자라고 있는 악한 생각을 수술해서 제거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떤 수술용 칼보다도 예리합니다. 

외과 의사들이 사용하는 해부도는 사람의 몸을 가르는 정도밖에 못하지만, 말씀의 검은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와 생각과 뜻을 수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병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침 받아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웃에 마음에 병든 사람들이 있거든 교회로 데리고 와서 말씀을 듣게 하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역사하셔서 저들의 마음을 고쳐 생명을 얻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기도로써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 하신 주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졸며 자다가 주님을 버리고 도망하는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악한 마귀가 성도들을 넘어뜨릴 때에는 우선 기도하지 못하도록 방해 공작을 합니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잠자는 상태가 되므로 마귀가 손쉽게 우리 마음에 침입해서 의심의 씨앗을 뿌려놓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지키는 방법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성령께서는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십니다. 협박하시거나 우격다짐으로 뜻을 행하시지 않으시고, 우리 마음의 귀에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만약에 우리 마음에 거룩한 욕구가 일어나거든 그것은 성령께서 주신 욕구인줄 알면 틀림없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을 잘 섬겨야겠구나, 이제 열심을 내야지 하는 생각이 나거든 그것 역시 성령께서 주신 생각인줄 아시면 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일까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라고 권면하듯이, 성령의 감동이 오거든 그것을 억눌러서 소멸시키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에베소서 4장 30절에 보니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인격적으로 우리를 대우하시고 강제로 행하는 분이 아니기에 우리가 완악하게 행할 때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언제 어디를 가든지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하신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시고 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각자의 마음을 지켜나갑시다. 마음을 잘 지킴으로 명실 공히 성도님들의 마음마다 생명을 산출하는 근원이 되어 풍성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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