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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을 주신 은혜에 감사합시다 (욥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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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주신 은혜에 감사합시다 (욥 10:12)
  
(욥 10:12)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11642-1727)은 생명을 사랑하는 미래지향적인 과학자로 알려지는데 어느 날 책상 앞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때 파리 한 마리가 빙빙 돌며 연구를 방해하자 처음에 손을 내저으며 파리를 쫓았으나 파리는 얼굴 근접 거리에서 저공비행을 하며 신경을 날카롭게 하자 참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나 파리를 잡았으나 죽이지 않고 창문을 열고 날려보내며 "자,세계는 이렇게 넓은데 왜 나만 괴롭히지?"말했다 합니다.

시인은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시 36:9)라고 합니다.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생명은 생명 자체로서 하나님의 복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는 많은 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산에도, 들에도, 바다에도, 하늘에도 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생물들은 저마다 사는 곳에서 환경과 여건에 맞는 독특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들판에 피는 한 송이 들꽃도 다른 식물들처럼 꽃을 피우고 씨를 맺고, 또 그 씨에서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등 일련의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기는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모습으로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하늘을 날아가는 철새들도 멀고 먼 동토의 이국땅에서 나침반 하나 가지지 아니하고 정확하게 자신들의 정착지를 찾아가는 독특한 생존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삶이 어느 누구의 가르침으로나 또 자신들 스스로 채득한 지혜에 의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창조해 주신 그 창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창1:1; 1:10-30).

그렇습니다. 어느 한 생물도 자신 스스로의 지혜나 능력만으로는 생존하며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삶은 그들을 창조하시고 삶의 방법과 법칙을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입니다(마 6:26-29).

육체적 생명은 그 형성되는 과정에서부터 신비한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주관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발생은 인간으로서의 형체의 형성이 되고 3개월 이후부터 모든 신체 각 부분의 점진적인 성장을 하고 이 세상으로의 탄생의 과정을 밟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 '흙을 뭉치듯'(9절) 인간의 '백체'(8절)를 태속에서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복은 '살려고 하는 의지'를 주시고 여러가지 은혜로 살아가게 하신 일입니다.
영국 웨일즈 지방의 어떤 시골에서 있었던 일이라 합니다. 한 소년이 위험한 병으로 중태에 빠져 거의 죽음 직전에 있었고 홀로 있는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려고 비가 퍼붓는 밤길 5마일을 달려가 의사에게 치료를 부탁합니다. "선생님, 저와 같이 가주세요." 그러나 의사는 여러 가지로 망설리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비오는 길은 밤길이고 5마일이나 되는 먼 거리다. 내가 가서 치료해준들 이 가난한 과부가 과연 치료비나 낼 수 있을까? 그 소년의 생명을 건져내보았자 장래에 한 노동자에 불과할 텐데 ….' 

이런 생각에 잠겨있던 의사지만 인간애와 의사의 책임감으로 일어서서 그 길을 달려갔고 소년을 구사일생으로 건져냈습니다. 나중에 이 소년은 자라서 영국의 정치계를 주름잡는 큰 인물이 되었는데 그가 바로 재무 장관, 국방 장관, 군수 장관을 역임한 로이드 경이었다 합니다. 로이드 경이 재무 장관이 되던 날 그 의사는 "비가 퍼붓는 밤길을 5마일이나 달려가서 그 시골 가난한 농가의 소년을 구한 것이 바로 영국의 큰 지도자의 목숨을 구한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라고 말했다합니다.
  
마태복음에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29-31)고 하여 생명의 신비와 귀중함을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참새는 흔하고 별로 귀하지 않은 새이지만, 그 가운데 한 마리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생명일지라도 다 소중히 여기신다는 말씀이며 돌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특히 우리 인간을 세밀하게 돌보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놓으셨다는 말씀은 바로 우리의 삶의 시작부터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삶을 세밀하게 관리하며 돌보신다는 뜻입니다.
  
시편 8편에는 "주께서는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시고, 그에게 영광과 존귀와 왕관을 씌워 주셨습니다"라고 노래함으로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십니다.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셨다는 것은 어떤 능력이나 기능면에서 조금 못하다는 것을 뜻함과 동시에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생명과 같은 생명으로 지음 받았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명의 신비가 무한하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 생명이 하나님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시야를 나 자신의 삶에 국한시키지 말고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와 그가 다스리시는 우주적 생명의 세계로 확장시킬 것을 교훈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자연적인 생명들을 주관하신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리스도에 의해 새로 태어난 영적 생명들의 주관자이기도 하십니다.

육신적인 자연의 삶을 살 때에는 자연에 내리신 은총으로만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은 자연인과는 다르게 영적인 삶의 독특한 방법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생물이 살아가려면 여러 가지의 여건을 필요로 하듯이 영적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나름대로의 여건과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어린아이에게 알맞은 조건과 환경이 있고, 어른에게는 어른에게 알맞은 조건과 환경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이제 처음 그리스도를 영접한 어린아이와 같은 영적 상태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보다는 더 자상하고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런가 하면 오래 전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영적 연륜이 장성하여 어른과도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려움이나 고난에도 잘 견디고 신앙의 힘으로 세상을 이기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돌보심이나 여건 조성이 전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이라는 존재 자체가 없다면 우리의 영적 생명은 의미가 없으며, 있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영적 생명에 합당한 독특한 영적 환경을 만들어 주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 생명만 주시고 돌보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잘못되거나 결국 멸망하고야 말 것이나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새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을 뿐 아니라 그 생명이 자라도록 알맞은 돌보심으로 지금도 인도하고 계십니다.
  
욥의 모든 재산이 한 날에 사라지고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같은 날 모두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거기에다가 악창이 그의 몸에 생겨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욥에게는 육체적인 고통도 그를 괴롭혔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몹시 괴롭힌 것은 하나님의 참 뜻을 발견하지 못한 큰 번뇌와 고민이었을 것입니다. 가중되는 육체의 고통 속에서 욥은 이제 영혼까지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욥의 육체와 영혼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우리는 원통함을 발설하겠다는 그의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괴로움을 다 털어놓겠다고 말합니다. 욥은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을 직시하여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영육간의 괴로움을 탄원합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잠시만이라고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 탄원하며 고통의 원인을 하나님께 묻기를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욥 10:9)라고 합니다.

이 질문은 실로 중요한 물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욥이 하나님께 호소한 물음은 자기의 고통을 무조건 없애 주기를 바라거나 회피하려고 하는 비굴한 물음이 아니라 자신이 당면한 그 고통의 뿌리를 알고자 하는 진실하고도 진지한 물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그는 그를 지은 창조주께서 자기의 고통의 열쇠를 쥐고 계시며,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욥은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모태에서 만드신 것을 신비하게 묘사하였습니다. 마치 젖이 엉겨 붙는 것처럼 태아의 형상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욥에게 있어서 경이적인 일이었습니다. 

욥은 자기가 당하는 극렬한 고통의 원인을 알고자 하는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존재케 하신 분임을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이 우연이나 어떤 자연적인 필연에 의해 생명이 부여된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엄위로우신 뜻에 의해 분명한 목적을 가지시고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뚜렷이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은혜로 자신을 지으시고 생명을 허락하시어 지금까지 지켜 주신 사실을 고백합니다.
이같이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에 대한 경외심은 신앙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자기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인식이기 때문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향하여 간구한 호소에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면면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욥은 이러한 사실을 '은혜'(12절)라는 한 마디로 요약하여 표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자신이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허무할 수밖에 없음을 말하며 그러하기 때문에 그는 비록 고통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이 계심을 확실히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 짐승이나 나무 같은 것으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나 생명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더욱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생을 얻고 천국까지 소유했으니 만입이 있어도 다 감사할 수 없고 내일 죽어도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성령으로 거듭남으로써 영적인 새 생명까지 얻는다는 것은 최상의 복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죽어가는 어느 성도를 심방하며 위로했더니 도리어 그는 침상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신 이 사실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고 기쁨이 충만하여 말하더랍니다.
영원한 생명, 천국의 영생복락을 허락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맥박이 멈출 때는 영원하고 완전한 생명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육체뿐만 아니라 생명과 은혜를 주시고 영을 지켜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사람에게만 영을 주시고(창2:7) 자신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셨습니다.

욥은 육적인 생명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은혜를 주신 다음에도 계속 그 영혼을 지키시기 위하여 돌보시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지키십니다.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성령으로 인도하시고 각성케 하시고, 보호하시고 도우시는 일을 하십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가르치시고 위로하시며, 거룩하게 하시며 충만케 하시며 자유케 하십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행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살후 2: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그리고 말씀 곧 성령의 검으로써 인간의 영을 지켜 줍니다.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욥이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12절)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지금까지 매 순간마다 지켜 주시고 사랑으로 보호해 주셨음을 고백함 같이 우리들도 모든 일이 아버지의 섭리 안에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는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셨다”(Your visitation have preserved my spirit)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수없이 우리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며 찾아오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하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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