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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계명을 온전히 지키라 (출 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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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을 온전히 지키라

(출20:1-17)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하나님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살인하지 말지니라. 간음하지 말지니라.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1. 한 유대인 지도자가 예수께 ‘선한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8:19-20)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그에게 ‘네가 계명을 아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율법 준수에 관한 한 내심으로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십계명 중 제5계명 이하 제9계명까지를 들어 다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십계명에 있어서 전반부 곧 제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고, 후반부인 5계명부터는 대인(對人) 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예수께서 십계명 중 하나님께 대한 계명들을 언급하지 않으시고 대인관계에 대한 계명만을 들어 지키라고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 지도자들 대부분이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주력할 뿐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는 무관심한 당시 그들의 냉혈성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는 것입니다.  

(요일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그렇다고 해서 당시 대다수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대한 계명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지킨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신앙 또한 거짓과 위선으로 오염되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웃에 대한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께 대한 계명 역시 올바로 지키라는 뜻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 유대 지도자가 십계명 준수에 대해 자신만만해 하고 있지만 십계명 앞에 그의 허점과 그 누구도 그 계명들을 모두 다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율법의 행위로는 그 누구도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율법으로는 다만 죄를 깨달을 뿐이라는 것을 깨우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예수께서 대인관계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을 때, 그 지도자는 “(눅18: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고 대답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8:22)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여기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십계명 중 남은 계명, 즉 제10계명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 10계명을 다시 보겠습니다.

(출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그 유대 지도자가 9계명까지를 다 지키었다고 했지만 마지막 계명, ‘탐심’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모든 계명을 다 범했다는 지적입니다. 예수께서는 탐심으로 가득한 그 지도자의 마음과 생활을 아시고 열 번째 계명의 핵심을 찔러 그의 거짓과 위선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탐심으로 가득하면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베푼다는 것이 심히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3:5을 보겠습니다.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예수께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고 하신 것은 바로 그 지도자의 탐심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그 지도자의 자만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정곡을 찌르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기껏 이웃을 간음하거나 살인하지 않았고, 도적질하지 않은 정도로 마치 이웃 사랑을 실천한 것인 양 자부했는지 모르나, 예수는 이웃을 위한 전폭적이고도 적극적인 헌신을 명하신 것입니다.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선생님, 모세의 법 중에 가장 큰 계명은 어느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제일 중요한 계명이니라. 그 다음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니라.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은 이 두 계명에서 나온 것이니라.”(마22:35-40)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똑같이 중요한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유대 지도자는 바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많은 재물을 소유했던 관계로 이 말씀은 너무도 무거운 짐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지도자는 심히 근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버렸습니다. 

(눅18:23) 그 사람이 큰 부자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예수께서 그 지도자로 하여금 그의 탐심을 완전히 없애도록 하여 온전히 율법을 지키는 자가 되도록 하시려는 의도에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청빈(淸貧)의 명령이 아니라, 적극적인 이웃 사랑에 대한 요구였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보다 앞서 자신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눅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리고 그 지도자의 질문,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에 대한 답으로 탐심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영생에 이르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완성이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만 영생,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그 지도자가 자기의 모든 재물을 풀어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준다고 할지라도, 그가 진실하게 예수를 따르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부족한 것이 됩니다. 십계명을 온전히 지키려면 탐심을 버리고 예수를 믿고 따라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의 제자가 되어 그 가르침을 준수하며 그리스도의 삶을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재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로마서13:8-10을 보겠습니다.

(롬13:8-10)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율법을 온전히 이루시는 신앙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예수 믿는 성도는 ‘우상숭배’와 같은 ‘탐심’을 버리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삼상15: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 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그러나 사울 왕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삼상15:9)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없고 낮은 것만을 진멸했습니다.” 

탐욕에 눈이 어두워 모든 좋은 것을 몰래 숨겨두었던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삼상15:18-19)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그러자 사울이 변명합니다. 
“(삼상15: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자신의 탐욕이 들통나자 하나님께 좋은 것으로 예배드리려고 멸하지 아니했다며 예배를 빙자하여 비굴하게 변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울에 대해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준엄하게 말씀하십니다. 

“(삼상15:22-23)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무당한테 가서 점을 보는 것과 같은 죄악이며,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하지 아니하고 비겁하게 변명을 늘어놓으며 완고하게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것은 우상숭배의 죄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왕이라도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다 결국 비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역대 왕 중 가장 악한 왕으로 꼽히는 왕은 우상숭배에 혈안이 되었던 아합 왕이 있습니다. 그는 왕궁 곁에 나봇의 포도원이 탐이 나서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나봇을 돌로 쳐 죽이고 그 포도원을 강탈했습니다

.(왕상21:1-16) 이에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그에게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열왕기상21:19-21입니다.

(왕상21:19-21) 너는 저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하셨다 하고 또 저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셨다 하라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나의 대적이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합은 아람과의 전쟁에서 적병의 화살에 맞아 피 흘려 죽어갈 때 개들이 몰려와 그 피를 핱았고, 아합의 아들 칠십 명이 한 자리에서 살해되었습니다.(왕하10:1-10) 이를 두고 열왕기하10:10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하10:10) 그런즉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이처럼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이 누릴 수 있었던 왕이라도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종이었던 게하시는 탐욕에 눈이 어두워 주인의 이름을 사칭하여 나아만 장군으로부터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 숨겨 두었습니다. 그러나 여지없이 주인 엘리사 선지자 앞에 들통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문둥병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열왕기 하5:22-27을 보겠습니다. 

(왕하5:22-27) 저가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생도 중에 두 소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 부터 내게 왔으니 청컨대 당신은 저희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나아만이 가로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저를 억제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저희가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언덕에 이르러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취하여 집에 감추고 저희를 보내어 가게 한 후 들어가서 그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대답하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엘리사가 이르되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 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이처럼 탐심, 탐욕은 치명적인 파멸을 초래하게 됩니다. 탐심은 모든 죄악의 뿌리입니다. 디모데 전서6:10을 보겠습니다.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탐심은 일만 악의 뿌리일뿐 아니라 성도들로 하여금 믿음에서 떠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탐심입니다. 믿음에서 떠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탐심은 이웃과의 관계에도 위협이 됩니다. 돈 문제가 끼어드는 순간 성도들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성도관계가 파괴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돈에 대한 탐심, 돈을 사랑함이 시작되는 순간, 이웃이나 성도가 섬김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한 대상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성도 간 동업이나 금전거래, 보증 등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돈이 필요하다면 아예 주든가, 그렇지 아니하면 주지 말던가, 빌려 줄거면 이자를 받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에 대한 말씀들을 보겠습니다.

(출22:25-27)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 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 

(신23:19-20) 네가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지니 곧 돈의 이식, 식물의 이식, 무릇 이식을 낼 만한 것의 이식을 취하지 말 것이라 타국인에게 네가 꾸이면 이식을 취하여도 가하거니와 너의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얻을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탐심은 언제라도 이웃과 성도 관계를 파괴시키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전서6:9을 보겠습니다.

(딤전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우리 안에 탐심이 자라기 시작하면 결국 시험과 함정에 빠지고 사람을 파멸시키는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망에 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께 이렇게 부탁합니다. “선생님, 내 형에게 명해서, 유업을 나와 나누라고 해주십시오.” 

이 사람은 정당한 몫의 유산을 받지 못한 자신의 억울함을 예수께서 해결해주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2:14-15)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그리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비유를 하나를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12:16-21 내용입니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 소출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 궁리하였다. 그는 혼자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을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 또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눅12:22-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소유보다 사람의 생명이 더욱 더 소중하니 마음에 탐심을 버리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일찍이 모든 탐심을 버리고 자족하는 삶을 배웠습니다. 

빌립보서4;11-12을 보겠습니다. 

(빌4:11-12)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사도 바울은 가문에 대한 명예욕도 버렸습니다. 학문에 대한 명예욕도 버렸습니다. 자신의 육체적인 모든 욕망과 명예심을 배설물로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것을 가장 귀한 것으로,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며 자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가치관을 보겠습니다. 빌립보서3:3-9입니다.

(빌3:3-9)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자족하는 비결을 배운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디모데전서6:6-8입니다.

(딤전6:6-8)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할 줄 아는 경건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탐심을 버리라는 것은 열 번째 계명입니다. 열 번째 계명을 다시 보겠습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요즈음 ‘헤드헌팅’(Headhunting) 회사가 있습니다. 다른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고급, 전문 인력을 스카우트해가는 회사를 말합니다. 물론 합법적으로 이러한 헤드헌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스카우트 당한 회사에서는 애써 인재를 키워서 다른 회사나 대기업에서 빼앗기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에 여간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이 길러놓은 인재를 탐하지 말고 자기가 교육하고 훈련시켜 인재를 키워 쓰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의 회사에서 많은 연구비를 투입하여 개발한 기술을 산업 스파이나, 그 기술을 보유한 인재를 빼가는 행위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제 10계명을 범하는 죄는 제 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는 계명을 범하는 죄와 같은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는 사탄으로부터 금단의 열매, 선악과를 먹으라는 시험을 받게 됩니다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시험입니다. 그래서 그 선악과를 보았더니 “(창3:6)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아 ‘탐심’이 발동한 것입니다. 결국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탐심’으로 그 선악과를 먹고 자기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했습니다. ‘탐심’으로 인해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제 1계명을 범하는 죄악에 빠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열 번째 계명을 범하는 죄는 제 2계명,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까지도 범하는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우상이란 자기 유익을 위해 만들어 숭배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우상숭배의 동기는 모두가 다 ‘탐심’이고 ‘탐심’의 결과가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다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탐심’ 때문에 신을 섬기는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분이시고 생명을 주신 아버지이시며, 내 죄까지 해결해주셨고, 나를 사랑하여 영생으로 인도하고 계시니 너무나 감사하여 감사와 찬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 번째 계명을 범하는 죄는, 동시에 제 2계명을 범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3계명은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말라’고 하셨는데, 탐심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팔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기도 치게 합니다. 탐심은 주의 날에도 돈을 벌거나 재미를 보거나 자기를 위해서 시간들을 다른 날과 똑같게 사용함으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는 제 4계명을 결국 어기게 만듭니다. 제 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지만, 탐심은 부모의 재산에만 관심을 갖게 하고 부모를 모시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기피하게 만듭니다. 심지어 존속 살인까지 생겼습니다. 돈 몇 푼 때문에 부모를 죽이는 패륜아들이 많습니다. 

제 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엄명하셨지만, 탐심은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전쟁을 일으켜 사람을 죽이고, 자기 유익을 위해서 술과 마약을 팔아 사람들을 망치고, 돈을 빼앗으려고 직접 살인 강도짓도 합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엄한 생명체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죄악인 것입니다.(레 17:11) 더 나아가 예수께서는 형제를 향하여 욕하거나 미워하는 것까지도 살인죄와 같은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5:21-22)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제 7계명은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탐심은 남의 여자를 욕심부려 간음죄를 짓고 자신과 남의 가정을 망가뜨리며, 수많은 남녀를 돈과 탐욕을 위해 술집에서, 유흥업계에서 매춘행위에 종사하게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계명을 확대하여 마음으로 범하는 음욕까지도 간음죄로 규정하셨습니다. 심각한 성윤리 위협 속에 살고 있는 이 세대 성도들에게 제시한 성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입니다.

(마5:27-28)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제 8계명은 ‘도적질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탐심은 남의 물건에 손을 대게 합니다. 이웃의 재산권을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재산만이 아니라 지적 재산권인 기술, 지식, 정보 등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이웃의 재산을 도적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 9계명은 ‘거짓증거를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의인을 악인이라고 거짓증언을 하고, 악인을 의인이라고 주장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열 번째 계명을 범하면 다른 모든 계명이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열 번째 계명은 덜 중요해서 가장 뒤에 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율법, 십계명의 결론을 삼으려고 맨 뒤에 주신 것입니다. 탐심, 탐욕, 욕심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시 여겨야 할 사항입니다. 야고보서1:15을 보겠습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4. 그러면 탐심을 극복하고 율법을 온전히 이룩하는 거룩하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먼저, 성령을 좇아 행하여야 합니다. 갈라디아서5:16을 보겠습니다.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들이 아무리 아홉 가지 계명들을 잘 지키겠다고 결심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뿌리 깊은 죄 된 본성이 우리를 지배하는 한 그 누구라도 율법을 온전히 지킨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의지한다면 우리의 욕된 본성을 제어(制御)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의지하는 사람만이 자기의 욕된 본성을 제어하고 이 계명들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는 것은, 범사에 이것이 자신의 뜻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하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성령을 좇아 행하는 성도의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시편119:36-38을 보겠습니다.

(시119:36-38)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Turn my heart toward your statutes and not toward selfish gain. Turn my eyes away from worthless things; preserve my life according to your word.) 

자신의 마음과 눈을 ‘주의 증거’, 곧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게 할 때 그 생명이 복되게 보존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을 온갖 육체의 소욕으로 채우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시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과 사랑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미국 시카고의 어느 한인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시카고에는 한인이 한 10만 정도 살고 있는데 이민자가 다 그렇듯이 그들도 모두 향수병을 안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유일한 낙이 하나 있다면 비디오 가게에서 고향 한국 드라마를 녹화했다가 대여해 주는데 그것을 보면서 향수를 달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모 교회 장로님이 토요일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비디오 가게에 들려 사극 ‘한명회’를 빌려 왔다고 합니다. 

주일 오전 예배 대표기도를 담당해서 한 편만 보고 자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성이 그렇듯이 다음 시간에 할 것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들게 하고 끝내기 때문에 다음 것 하나만 더 보자 하다가 그만 밤을 새워 전체를 다 보았다고 합니다. 다음날 주일 오전 예배를 드리는데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오직 ‘한명회’만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기도시간이 되어 강단에 올라갔는데 성령의 감동은커녕 머리는 하얗고 마음은 깜깜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 뱉은 첫 말이 “주여, 성은이 망극 하옵나이다.” 였습니다. 그 다음에 또 내뱉은 말이 “주여, 통촉하여 주옵소서.” 였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움과 창피를 당했는지 그날 밤에 집에 돌아와 골방에서 혼자 울면서 회개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 다음부터 기도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그릇에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거룩한 영이신 성령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성령과 말씀으로 마음의 그릇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십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삶이 되어 하나님 말씀에 약속된 축복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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