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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살렘 왕 멜기세덱 (창 1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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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렘 왕 멜기세덱 (창 14:17~24) 

창세기 14장은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전쟁 이야기입니다. 전쟁은 주로 돈 때문에 일어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엘람 왕 그돌라오멜에게 12년 동안 조공을 바쳤는데 13년째 배반을 했습니다. 그래서 엘람 왕이 주변의 세 왕과 함께 소돔과 고모라를 침공한 것입니다. 

이에 소돔과 고모라는 주변의 세 왕들과 힘을 합쳐 맞섰지만 엘람 왕을 포함한 네 왕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사람들이 잡혀가고 재물과 양식을 빼앗겼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던 롯도 잡혀가고 가지고 있던 재물도 다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당시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던 아브람은 이 전쟁에 무관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조카의 가족이 다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브람은 집에서 훈련시킨 318명의 가신들을 거느리고 구하러 갔습니다. 네 왕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기쁨에 밤새 술을 먹고 잠들어 있는 사이 아브람이 쳐들어가서 네 왕들을 다 죽이고 사로잡혀있던 부녀자들과 백성들 그리고 약탈당했던 재물까지도 다 찾아왔습니다. 

위대한 승리자가 된 아브람이 돌아오는 길에 왕곡이라고도 불리는 사웨 골짜기에서 두 명이 아브람을 영접했습니다. 한 사람은 소돔 왕이었습니다. 사람과 재물 모두를 빼앗기고 숨어 지내다가 아브람이 다 찾아서 돌아온다는 소식에 영접하러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창 14:21). 

하지만 아브람은 소돔 왕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오직 소년들의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취할 것이니라” (창 14:23~24). 

소돔 왕이 자기 덕분에 아브람이 부자가 되었다고 말할까 봐 소돔 왕의 재물은 조금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다만 수고한 가신들이 먹은 것과 동행한 자들의 분깃만 제하고 그 외에 나머지는 실 한 오라기나 신발끈 하나라도 받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을 영접한 다른 사람은 살렘 왕 멜기세덱이었습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자 살렘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아브람과 그 가신들을 맞이하면서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벌써 맨몸으로 나온 소돔 왕보다 얼마나 생각이 많고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Ⅰ. 멜기세덱은 어떤 존재인가? 

멜기세덱은 참으로 신비한 인물입니다. 창세기 14장에 갑자기 나타났다가 더 이상 언급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900여년이 지난 후 다윗 왕이 시편 110편 4절에서 갑자기 멜기세덱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시 110:4). 다윗 왕이 멜기세덱 이야기를 하더니 히브리서 5장과 7장에는 멜기세덱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멜기세덱은 어떤 존재입니까? 이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사람이라는 견해입니다. 멜기세덱은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후에 예루살렘이 되는 살렘의 실제 왕이었고 또한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멜기세덱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성육신하기 이전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견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두 번째 견해를 더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이유는 아브람에게 성육신하기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신 적이 한 번 더 있습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세 사람이 아브람에게 나아왔다고 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성육신하기 전의 예수 그리스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천사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람에게 성육신하기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수 있었다면 14장에서도 나타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만약 멜기세덱이 단순한 살렘의 왕이었다면 아브람에게 덕분에 망하지 않게 되었다며 감사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멜기세덱은 아브람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람을 축복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멜기세덱이 아브람보다 높은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히 7:7). 

그리고 창세기 14장 20절에 멜기세덱은 아브람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습니다.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십일조를 받을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분은 목사가 성도에게 십일조를 받는다고 하는데 그런 목사는 이상한 목사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목사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을 권리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과 같이 위대한 분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은 멜기세덱은 보통의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인 것이 분명합니다. 

세 번째 이유로 멜기세덱은 왕이면서도 제사장으로 두 가지 직분을 한 몸에 지닌 존재였습니다. 성경에는 왕이 제사장 직분을 겸할 수 없다고 되어있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왕과 제사장 직분을 함께 행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인 것입니다. 유다의 왕이었던 웃시야는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분향을 하려다가 그만 문둥병에 걸려서 별궁에 홀로 거하며 죽을 때가지 문둥병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은 단순히 그리스도를 예표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고 성육하기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아브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경배하며 십일조를 드렸던 것입니다. 

Ⅱ.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가? 

멜기세덱이라는 말의 의미는 ‘의의 왕’이고 살렘 왕이라는 말의 의미는 ‘평강의 왕’입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히 7:1~2). 

예수 그리스도는 의의 왕이시고 평강의 왕입니다. 죄인들에게 의를 나눠주신 왕이고 죄인들에게 평강을 주시는 왕이시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스스로 천국에 들어갈 만큼 충분히 의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분명한 선언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들이고 의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영혼에는 평강이 없습니다. 낮에는 웃고 다니는 사람도 밤이 되면 꿈자리가 뒤숭숭합니다. 근본적으로 영혼에 평강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에 100% 순종하셨고 그 순종을 근거로 죄인들에게 나누어주실 완전한 의를 마련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인들에게 나눠주신 최고의 선물은 바로 완전한 의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의가 없음을 인정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실질적으로 죄인입니다. 본인이 실질적으로 의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의 의로 우리 죄를 다 덮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우리를 덮어주셔서 하나님은 당신의 법정에서 우리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보시고 우리로 의인이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어림도 없지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 의를 받아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의를 얻은 사람은 영혼에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완전히 제거되고 죄는 완전히 용서받고 하나님의 호의를 받는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를 받게 되면 하나님의 호의의 대상이 되고 우리가 저지른 모든 죄는 과거, 현재, 미래 가릴 것 없이 다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죄의 용서와 하나님의 호의의 회복. 이 두 가지가 의를 얻은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바라보실 때 찡그리실까요? 웃으실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웃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호의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좋으신 분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많고 죄 지은 것이 많아 기도할 때마다 부끄러워도 나의 잘못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고 우리에게 호의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의를 주시는 의의 왕이시며 평강을 주시는 평강의 왕인 것입니다. 이 순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의를 얻은 사람만이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의를 얻지 못하고 불의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평강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사 57:21). 

필리핀 교도소에 가보면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다리부터 얼굴까지 문신이 다 그려져 있고 눈빛도 매섭습니다. 하지만 교도소 안에 있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얼굴부터 다릅니다. 똑같은 죄수지만 눈동자가 빛나고 얼굴이 밝습니다. 옷도 똑같은 죄수복인데 저희 의료선교팀이 만들어준 ‘Freedom in Jesus’라고 적힌 죄수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옷에 적혀진 글씨처럼 몸은 감옥에 있어도 영혼이 의를 얻었음으로 하나님과 평강을 누리기 때문에 얼굴이 달랐던 것입니다. 

침례교회 조상 가운데 존 번연이라는 훌륭한 분이 계십니다. '천로역정'의 저자이신데 이분이 고민하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받아주실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평강을 누릴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길을 걷는 도중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너의 의는 하늘에 있느니라.” 이런 음성을 듣고 존 번연은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줄로 믿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고전 1:30).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비록 실패하고 때로는 연약해서 죄를 짓지만 하늘에 계신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 의를 버리지 않는 이상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의인이 된 것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호의의 대상이 아니라 진노의 대상입니다. 언제 하나님의 진노가 떨어질지 모르는데 얼마나 위험합니까? 위험한 가운데 살지 마시고 우리의 피난처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Ⅲ. 멜기세덱이 행한 일은 무엇인가? 

멜기세덱은 아브람을 위해서 축복해주었습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람을 두 가지로 축복했는데 하나는 한밤중에 전쟁하느라 피곤한 아브람과 가신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준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것을 주의 만찬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무슨 주의 만찬입니까? 멜기세덱은 육신적인 필요를 채워준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종종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예수 믿으면 떡이 나오냐? 술이 나오냐?” 보십시오. 멜기세덱은 떡도 주고 술도 주지 않습니까? 포도주는 그 당시에는 술이 아니라 음료수였습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며 육신적인 필요를 공급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도 주시고 평강도 주시며 먹을 것도 주시고 물질적인 필요도 채워주시는 축복의 구주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질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가난하고 배고픈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춥고 배고프면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물질의 복도 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이 물질의 복에 집중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복 그 자체보다는 복 주시는 하나님에게 집중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나는 이 복을 사랑해서는 안 되고 복 주신 하나님을 사랑해야 된다. 

그러면 내가 복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 믿음을 보여드려야 된다.’ 그래서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아브람이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바친 이유는 자신의 마음이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에 있지 않고 탈취한 전리품에도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받은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에게 십일조를 드립니까? 우리 마음이 물질에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받은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물질의 복과 함께 영적으로도 축복했습니다. 

(창 14: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예수님은 복 주시는 구주이십니다. 창세기 14장에 성육신하기 이전 처음으로 나타나셔서 택한 백성을 축복하십니다. 공생애를 마치고 승천하기 전 마지막에도 역시 제자들을 축복하십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눅 24:50~51). 

예수님은 택한 백성을 항상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말처럼 복의 원천이 하나님 아버지시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 14:20).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복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께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서 “아버지 나에게 복을 주십시오. 자식의 복도 주시고 건강의 복도 주시고 물질의 복도 주시고 인기의 복도 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잘 왔다. 그런데 내가 그 복들을 다 내 아들에게 맡겨 놨으니 내 아들에게 가라. 내 아들을 믿으면 그것이 나를 믿는 것이고 내 아들을 공경하면 그것이 곧 나를 공경하는 것이니라. 나는 네게 복을 주되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을 주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잘못은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한다고 하면서도 그 아들인 예수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슬람 또한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도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공경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공경하는 신은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가 아닌 것입니다. 그들의 신은 여호와가 아닌 알라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3절에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요 5:23).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41장에서 애굽에 7년 풍년이 온 후 7년 동안 기근이 왔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바로 왕에게 가서 곡물을 달라고 요청하니까 요셉이 곡물을 다 가지고 있으니 그에게로 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메튜 헨리(Matthew Henry)라는 유명한 주석가는 이 이야기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아름답게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복의 원천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복이 우리에게로 내려오는 유일한 통로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통로는 없습니다. 다른 통로로 복을 받으려고 하면 실패하고 좌절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통로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결론 

멜기세덱은 성경에 처음으로 나타난 성육신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시며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복이 오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아브람은 사웨 골짜기에서 멜기세덱을 만나 엎드려 경배하고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골짜기는 낮은 곳을 말합니다. 아브람은 전쟁에 승리했지만 교만심을 갖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골짜기에서 멜기세덱을 만난 것입니다. 교만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을 가로 막는 최대 장애물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지 밑에서 올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낮은 곳에 있을 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예수님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낮아져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멜기세덱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며 마음과 물질로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공경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복된 인생이 되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성도님들 모두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영육의 모든 복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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