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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부주일] 늦기 전에 더 사랑하십시오 (엡 5: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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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기 전에 더 사랑하십시오 (엡 5:22-33)

얼마 전 40-50대 남녀를 대상으로 각각 설문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설문조사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로또에 당첨이 된다면 제일 먼저 바꾸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이 설문조사에 응답한 여성들의 8-90%가 남편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 질문에 대한 남성들은 여성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7-80%가 아내(마누라)였다고 합니다.

그냥 웃기에는 너무나 씁쓸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의 가르침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25절에서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했습니다. 

28절에서는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33절에서는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정립해주는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남편에게는 "아내를 사랑하라"는 명령이 주어지고 있는데 반해서, 아내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하라" 또는 "남편을 경외하라"는 명령이 주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내의 이러한 복종은 남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뢰는 아내를 향한 남편의 전적인 사랑에 대한 확신 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본문은 그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은 23절에서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된다는 말씀만 보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뒤따르는 말씀, 즉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하신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까? 자신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놓으시는 사랑으로 교회의 머리가 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25절에서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각각의 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자리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본문을 다시 보면 22절에서는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했고, 

24절에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했으며, 25절에서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부간의 관계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되고 쌍방적인 것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관계, 그리스도중심의 관계, 모두가 그리스도에게서 배우는 관계로서 정립되어야 함을 볼 수 있습니다. 

혼인은 반드시 사랑에 기초한 것이어야 하지만, 그 사랑이 그저 두 사람 사이에서의 사랑일 뿐이라면 그 사랑과 그 혼인과 그 가정생활은 온전하지도 안전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사람들끼리의 사랑과 결합과 만족은 언제 깨지고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랑과 가정과 행복을 변함없이 묶어주시고 영원히 책임지실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가정의 주인은 남편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이셔야만 합니다. 혼인과 가정은 그래서 부부중심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중심의 관계로 이루어질 때 참되고 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제일 가까워야 할 사람이 제일 먼 사람이 되고,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이 가장 큰 미움의 대상이 되어가는 세상입니다. 그것은 타락한 세상의 첫 번째 모습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향해 등을 돌리자 이어서 그들의 자식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형이 아우를 쳐 죽인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깨지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파괴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신앙인에게 있어서 기본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정의 주인 되시게 함으로써 참되고 지속적인 가정의 행복을 누리게 되길 소원합니다.

한국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소개된 글을 하나 읽어 드리겠습니다.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 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말을 건네다.
"여보, 점심은 비빔밥 대강 해먹을라 그러는데, 괜찮지?"
"또 양푼에 비벼먹자고?"
"그래 간단히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안돼."
"그런 얘기 없었잖아"
"있어서! 깜빡 하고 말 안했나보지. 오늘 중식이 만나기로 했어!"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와 아내에게 약간의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한가로운 일요일, 난 아내와 집에서 이렇게라도 탈출하고 싶었다. 내 딴엔, 근사하게 차려 입고 나가려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이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은 모양새가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폼새다.

"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나 혼자 심심하잖아. 빨리 들어와."
"애들한테 전화해 보던가..."
"애들 뭐? 내가 전화하면 받아주기나 해? 엄마 나 바쁘니까 끊어. 이런 소리하기 바쁘지."
"그럼 친구들 만나든가 그래."
"내가 일요일 날 만날 친구가 어디 있어?"

그렇다. 아내에게는 일요일에 만날 친구 하나 없다. 아이들 키우고 내 뒷바라지 하느라, 그렇게 됐다는 것이 아내의 애 묵은 레퍼토리다. 그 얘기가 나오기 전에 어서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한다.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도 않고 버티다가 마지막에는 배터리를 아예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 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여보, 손이라도 따줘."
"그러게 그렇게 먹어대더니만, 좀 천천히 못 먹냐?"
"버릇이 돼서 그렇지 뭐... 맨날 집안일 하다 보면, 그냥 대강 빨리 먹고 치우고, 이랬던 게..."

나는 아내의 어깨에서 손으로 피를 몰아서 손끝을 바늘로 땄다. 아내의 어깨가 어느 새 많이 말라 있었다. 다음 날, 회식이 있어 또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아내가 또 소파에 웅크린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여보! 그냥 들어가서 자..."
"나 배가 또 안 좋네"
"어제 체한 게 아직 안 내려갔어?"
"그런가 봐. 소화제 먹었는데도 계속 그래."
"손 이리 내 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그럼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아내는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 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여보! 병원 오니까 갑자기 괜찮아진 거 있지. 그냥 가자!"
"가만 있어 봐. 검사 받아야 하니까."
"아니, 진짜 말짱해. 아까 잠깐 그렇게 아팠나 봐!"
"병원 온 김에 검사 받고 가."
"뭐 하러 그래? 응급실이 얼마나 비싼데... 내일 병원 문 열면 와서 다시 검사 받을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 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진짜 괜찮은 거야?"
"응 나 학교 다닐 때도 시험 보기 전날이면 배 아프고 그랬어. 그런데 병원만 오면 배가 안 아픈 거야. 그게 다 신경성이라 그런가 봐."
"그러게 사람 놀래키고 그래. 아프면 바로 바로 병원 가고 그래."
"어머. 당신 놀랬어? 어유... 그래도 홀아비는 되기 싫었나 보네...."
"싫긴 뭐가 싫으냐? 홀아비 되면 젊은 마누라도 새로 들이고 좋지 뭐."

참 오래 전부터 내 곁에서 이렇게 함께 걸어왔던 아내, 그녀와 아주 오랜만에 함께 길을 걸었다. 다음날 병원에 다녀온 아내는 회사 앞에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난데, 우리 점심 먹을까?"
"나 지금 바쁜데..."
"회사 앞까지 왔는데?"
"그래. 알았다. 병원은 갔다 왔어?"
"어. 신경성 위염이래. 남편이 속 썩이냐고 물어보더라. 의사선생님이."
"나만큼 잘하는 남편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뭐 먹고 싶어?"
"죽 먹자. 요즘 좋은 죽집 많다며? 그런 데 가서 우아하게 먹어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아내를 데리고 평소 사무실 회식 때 잘 가던 횟집으로 갔다.

"여기 괜찮지?"
"횟집에서 죽도 파네?"
"어. 우리 회식할 때 자주 오는 데야."
"그런데 너무 비싸다. 죽 한 그릇에 만 오천 원씩이나 해?"
"태어나서 이렇게 비싼 죽은 처음 먹어보네"

갑자기 열심히 죽을 먹는 아내가 안쓰러워 보였다. 만 오천 원짜리 죽 한 그릇이 아까워 그릇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는 아내가 안쓰러웠다. 나는 한잔에 몇 십만 원짜리 술도 아무렇지 않게 먹는데 말이다. 아내는 태어나 이렇게 비싼 죽을 처음 먹어 본단다. 그 동안 내가 뭘 하고 살았나 생각이 들었다

"여보, 할 말이 있는데."
"어, 얘기해"
"추석 때 있잖아. 친정부터 가면 안될까?"
"왜 또 그래~ 어머니 성격 알면서~"
"20년 넘게 어머니 성격 아니까, 명절 때마다 당신 집부터 갔잖아."
"명절 때 시댁부터 가는 건, 당연한 거야."
"당신 집은 오 남매야. 우리 집은 오빠랑 나밖에 없잖아. 엄마가 얼마나 외로워하시는데."
"추석 끝나고 가면 되잖아."
"어머니도 당신도 웃겨. 당신 동생은 시댁 안가고 친정 오면 좋아하잖아. 그러면서 난 왜 안돼?"
"여보... 왜 이래. 새삼스럽게."
"그럼 이렇게 해. 추석 때 당신은 당신 집 가. 난 우리 집 갈 거야."
"어머니가 가만 계시겠어?"
"안 계시면 어떡할 건데? 나도 할만큼 했어. 맘대로 하라 그래."
"당신, 오늘 좀 이상하다."
"이십 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내가 이정도 얘기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해?"

큰소리 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노발대발하시며,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난리를 치셨다. 지난 20년 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이니 이번만큼은 노엽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말씀 드렸지만, 오히려 마누라 편 든다며 내게도 잔소리를 늘어 놓으셨다. 여동생은 여동생대로 제 새 언니 흉을 보면서 무슨 며느리가 그렇게 제멋대로냐고 했다.

자기는 임신을 핑계로 추석 전부터 우리 집에 와서 쉬고 있으면서, 제 새 언니가 친정에 간 건 그렇게 못마땅한가 보다. 아내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 우리 가족이지만, 하는 말마다 행동마다 참 얄미울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가 태연히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음악 들으면서 책 보잖아. 왜?"
"제정신이야? 어머니 얼마나 화나셨는지 알면서 명절 내내 전화 한 통화 안 해?"
"어머니 목소리 별로 듣고 싶지 않았어, 간만에 좋은 기분 망칠 필요 없잖아."
"뭐??"
"가끔 뉴스에서 주부우울증으로 투신자살하는 여자들 얘기 들으면 생각했었어. 남은 가족들은 어쩌라고 저랬을까..."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그런데, 나 이제 이해가 돼. 그 여자들은 남은 가족들이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택했을 거야."
"그게 말이 돼?"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처음엔 조금 슬프겠지만, 금방 잊을 거야!"
"여보, 정말 왜 그래? 당신 무슨 일 있어?"
"여보.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나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랬어. 그래서, 내가 어디로 갔을까 놀라서 나를 찾아주길 바랬어. 침대에 혼자 누워서 당신이 헐레벌떡 나타나 주면 뭐라고 하면서 안길까... 혼자 상상했었어. 그런데, 당신 끝내 안 나타나더라. 끝내 나 혼자 두더라."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 날 나와 아내는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 결과에 대해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가는 내내 아내는 무거운 얼굴로 아무 말이 없었다.

"죽으러 가냐?"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요즘 위암? 아무것도 아니야. 요즘은 다 고쳐."
"그래. 누가 뭐래."
"악성도 다 고친다고. 우리 회사 차대리 알지? 그 친구도 위암3기였는데, 멀쩡하잖아. 요샌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거!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고!!!" 

누구를 위로하기 위해 큰소리를 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한 건지, 나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건지... 큰소리 치면서도 운전대 잡은 손에 땀이 흥건하게 고였다. 그러면서도 난 끝까지 중얼거렸다

"암? 쳇! 그런 거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내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수술도 하기 어려운 상태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가고 싶은 데 있다고 하면 데려가 주고, 먹고 싶은 거 있다고 하면 먹게 해 주라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

자기가 뭔데. 자기가 하나님인가. 자기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아나. 내 아내가 내 곁에서 3개월을 살지, 3년을 살지, 30년을 살지 어떻게 알고... 저렇게 함부로 말을 한단 말인가. 따지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멱살이라도 잡고 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의사의 입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여보...."

아내의 음성이 조용히 귓가에 내려앉는다. 아내가 살포시 팔짱을 끼고,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댄다. 난 아내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다. 지금 그녀를 보면, 절망으로 가득 찬 내 얼굴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그러긴 싫었다.

"여보...."

난 무뚝뚝하게 대답을 했다. 

"왜?"
"미안해"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내가 아까 말했지? 차 대리도 처음에 병원 갔을 때 똑같이 말했대. 차 대리도 3개월, 아니 2개월 산다 그랬대! 그런데 지금 봐. 멀쩡하게 회사 다니잖아. 그 친구가 나보다 힘도 더 세고 야근도 더 잘해! 의사 자식들이 하는 말, 저거... 다 뻥이야! 사람 겁주고... 어? 겁줘서 돈 뜯어낼라고 하는 소리야! 믿지 마, 저런 말!!

나는 바보다. 끝까지 아내 앞에선 강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큰소리 치고 있다. 하지만 난 지금 너무 무섭다. 아내가 잡고 있는 내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너무너무 겁나고 무섭다. 아내의 따뜻한 손이 내 손을 꼭, 더 꼭 잡아준다

집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서로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 누가 암에 걸렸다, 누구 부인이 죽었다. 이런 얘기 많이 듣는 나이가 됐지만. 그런 일이 내게 닥칠 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 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처음으로 우리 집으로 장만한 이 아파트에는 아내의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다.

"여보, 우리 이사 갈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내가 말했다.
"여기 우리 둘이 살기에는 너무 넓잖아."
"됐어. 난 여기가 좋아."
"아니야. 너무 낡았어. 이 집 팔고 조금 작은 평수, 새집으로 이사가면 좋잖아."
"됐다고 하잖아."
"이 집이 당신 괴롭힐 거라고 생각하니까, 이 집... 정말 꼴도 보기 싫다."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갑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백 번 넘게 해온 소리들을 해대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또... 또 담배..."
"또... 잔소리.... 그러니까 애들이 싫어하지."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 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뭐?"
"내년 4월에 탈 거야. 2천만 원짜리데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 원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오빠가 능력이 안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 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난 깜짝 놀랐다. 집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침대와 소파 식탁 정도만 모든 것이 빠져나간 자리에 우두커니 남아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오빠한테 부탁해서 이사 좀 해달라 그랬어."
"뭐?"
"오빠가 동네 가르쳐 줄 거야. 여보, 나 떠나고 나면 거기 가서 살아."
"당신 정말 왜 이래!! 그럴 거며 당신이랑 같이 가."
"아니야. 난 새집 안 들어갈래. 거기선 당신이 새 출발해야지."
"당신은, 내가 정말 당신 잊길 바래?"
"솔직히 말하면 아닌데... 그렇다고, 당신이 나 떠나고 나서 청승 떨면서 사는 건 더 싫어."

텅 비어 있는 집의 한 구석에 우리 부부가 앉아 있었다. 베란다 사이로 스며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아내가 떠나고 난 내 삶은 지금 이 빈집처럼 스산할 거라는 걸 안다.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보, 2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 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내가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그랬나..."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그냥 빨리 자..."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여보.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어 본다.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뭐 대단한 것을 말하거나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후회 없이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늦기 전에 더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내일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뜨겁게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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