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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의 실천을 통한 영적부흥 (느 8: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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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실천을 통한 영적부흥 (느 8:13-18)

느헤미야 8장 말씀은 느헤미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인 큰 부흥이 일어났던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말씀을 듣기 위해 자발적으로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예루살렘 수문 앞 광장에 모인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래서 무려 6시간동안 일어 선 채로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경청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아멘”으로 화답 하였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중심내지는 경외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더 나아가 백성들은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계명과 자신들의 행위 사이의 큰 잘못이 있음을 깨닫고, 자신들의 죄를 아파하면서 울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충만하여 각 가정으로 돌아가 음식을 나누며 즐거워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수문 앞 광장 집회는 말씀 충만, 은혜 충만으로 마쳤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것만으로 완전한 영적 부흥을 이루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단지 이 사건은 더 큰 영적인 변화의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수문 앞 광장 집회가 끝난 다음 날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영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되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났는데,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는 백성들의 지도자들의 변화입니다.

본문 13절을 보시면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라고 했습니다. 저들은 바로 전날에 하나님의 말씀을 6시간 동안 들었습니다. 그리고 죄를 회개했고, 심령이 새로워지는 큰 기쁨을 경험하였습니다. 저들은 모두 다 그날의 감동함을 가지고 각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에 백성들 중에서 지도자들이 다시 에스라를 찾아온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에스라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라고 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이튿날에 다시 에스라를 찾아온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지금까지 받은 축복된 말씀으로 만족하지 않았고, 말씀을 더 배우고 더 알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13절에서 “밝히 알고자”는 말은 12절에서 모든 백성이 “밝히 앎이라”라는 말과는 다른 단어를 사용합니다. 12절에서 “밝히 안다”는 말은 “구별하는 정도로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13절에서 “밝히 알고자”라는 말은 “매우 지식적으로 깊이 아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백성의 지도자들은 단순히 백성들이 아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알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백성들의 지도자인 족장, 제사장, 레위인들은 율법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8:7절 하반절에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9:1절 이하에 보시면 백성들에게 율법을 낭독하고 가르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백성의 지도자들은 일반백성들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겸손하게 백성들보다 더 깊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위해 에스라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백성들을 지도하기 위해서 먼저 자신들이 말씀회복과 신앙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영적지도자들이 먼저 말씀을 회복하고 말씀의 부흥이 일어나야 하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인도하고 가르치는 항존직, 교사, 기관부서장, 구역장, 권찰의 직분을 받은 분들은 더욱 하나님이 말씀을 많이 읽고, 듣고, 묵상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도자들이 먼저 말씀회복 영적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 일반 성도들은 앞선 지도자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 18:6절에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무서운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 12:3절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한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영적인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 일을 잘 감당하면 하늘의 별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고 영혼을 실족하게 하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개인적인 영성이 풍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알아야만 성도들을 잘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영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언제,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주일날 예배에 참여하여 말씀을 잘 듣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영성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인이 생활 속에서 축복을 받고 잘되면, 그 사람은 영성이 좋은 신앙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진정한 영성을 알려면 주일날 말씀을 들은 후에 “그 이튿날”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단지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고, 은혜 받은 것만으로 만족하며 “나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깊은 영성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주일신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활신앙, 즉 신앙생활입니다.

여러분, 영성이 깊은 사람, 말씀대로 사는 사람, 말씀의 회복과 영적인 부흥을 이룬 사람은 주일날 예배를 통해 말씀의 은혜를 받았지만, 그 이튿날인 월요일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갈급한 마음으로 사모하며 듣고, 읽고, 묵상하면서 말씀을 통해 계속해서 더 변화를 받으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삶속에서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성을 가진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진정한 영성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려면 주일날 예배에 나와서 한 시간 동안 말씀을 받는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말씀의 회복과 영적인 부흥을 위해,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말씀을 날마다 새롭게 공급받아야 하며, 더 깊이 알기 위해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목회자와 지도자들이 먼저 말씀을 사모하고 날마다 묵상하며, 말씀을 실천하므로 모든 성도들이 말씀을 더욱 가가이 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깊이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살펴보다가 율법에 기록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신 중요한 계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 14절 하반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기 가운데 초막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초막절은 장막절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는 중,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감사하기 위해서 지키는 절기입니다. 

구약성경 레 23:33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초막절 규례에 대해서 상세하게 가르쳐 주시면서 이 절기를 반드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절기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17절에 중반절에 보시면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라고 했는데, 이 말은 여호수아 이후에는 한 번도 초막절을 지킨 적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호수아 당시에 초막절을 지킬 때와 같은 정식으로 지킨 적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율법을 통해 초막절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알게 된 지도자들은 말씀에 기록된 대로 초막절을 지킬 것을 백성에게 공포하였습니다.

본문 15절에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백성들이 초막절 절기를 지키더라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에 따라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칠일 동안거할 초막을 지을 때도 어떻게 지을 것인가부터, 어떤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지켜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세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알고, 세밀하게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작은 것이라고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해 버릴 것이 아니라 작은 것부터 한 가지 한 가지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면 신앙의 흉내만 낼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흉내만 내어서는 안 됩니다. 온전하게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들이 백성들에게 초막절 절기를 지키라고 공포하자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순종하되 기쁨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본문 16-17절에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 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라고 했습니다. 

모든 백성들은 자기 집에서 나와서 지붕 위에서, 안 뜰에서, 수문 앞 광장이나 에브라임 문 광장에서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면서 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초막을 짓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도자들이 명령한 것이지만 백성들 중에는 왜 이렇게 하여야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제대로 절기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을 하루아침에 실행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그리고 이미 바벨론화 되어 버린 백성들에게는 이러한 절기가 너무나 생소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백성들이 일손을 다 멈추고 일주일동안 초막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번거롭습니까? 이제 예루살렘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구획정리도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 깨끗한 도시 속에서 모처럼의 평화를 맛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막을 짓고 거기서 일주일을 살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을 산발랏 일당들의 위협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러한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시각에 이들의 모습이 어떻게 비쳐졌을까요? 멀쩡한 집을 지척에 놓아두고 나뭇가지로 엮어서 만든 집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하면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은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며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신앙회복은 언제 오는지 아십니까? 진정한 부흥은 말씀을 듣고 깨달을 후에, 모든 성도가 다 그 말씀대로 살려고 순종할 때 오게 됩니다. 신앙의 회복은 바로 말씀을 순종하며 지키는데서 완성되어 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뜻대로 초막절을 지킴으로써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바른 신앙으로 되돌아가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본래의 신앙으로 되돌아가는 바른 길입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한 교회의 영성을 보려면 그 교회 교인들의 말씀을 듣는 태도를 보라고 했습니다. 즉 말씀을 받는 태도가 개인의 영성을 측정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정확하게 개인의 영성을 아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순종인가 불순종인가”의 반응으로 그 영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말씀이던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냥 한 귀로 흘려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페퍼와.서튼 교수의 공저인 “왜 지식경영이 실패하는가?”라는 책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지식과 행동이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실패하는 사람은 똑똑하지 않아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서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식이 좀 부족해도 자기의 소신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자기가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성공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는 것으로 끝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듣고 깨달은 것을 얼마만큼 행동에 옮겼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르케고르는 기독교인들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 “집거위 교인”이라고 했습니다. 이 집거위 같은 교인들은 매 주일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열심히 듣습니다. 그러나 듣는 순간 그것으로 끝납니다.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날개를 펴고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아가라고 하시는데, 그들은 ‘아멘’이라고 대답만 할 뿐, 예배가 끝난 후에는 날개를 펼쳐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뒤뚱거리며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삶에서 실천함으로 성숙한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를 통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시고, 에스라를 통해 말씀을 회복하게 하시는 것은 결국 영적인 회복과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신앙생활이 회복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말씀을 깨닫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우리의 죄를 눈물로 회개하고, 영적인 치료를 통하여 기쁨을 누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와 이 땅에 모든 교회들도 말씀의 회복과 부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민족의 살길도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 다 되셔서, 영적인 부흥을 누리시는 우리 성도님들과 교회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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