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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하게 하신은혜에 감사합시다 (엡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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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게 하신은혜에 감사합시다 (엡 6:18)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자식이 나쁜 친구들과 사귀는 것을 알고 타일렀으나 도저히 듣지를 않자 아버지는 고심 끝에 지혜를 짜냈습니다. 싱싱한 사과와 썩은 사과를 함께 바구니에 담아놓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아들이 이해할 수 없다며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썩은 사과를 싱싱한 사과와 함께 넣어두면, 싱싱한 사과마저 썩잖아요.” 

그러나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오히려 싱싱한 사과가 썩은 사과를 싱싱하게 만들 수 있을 거야.” 

얼마 후 바구니를 들여다보니 싱싱한 사과들이 모두 썩은 사과로 변했습니다. 이를 본 아들이 소리 높여 말했습니다. “제 말이 맞잖아요. 아버지, 싱싱한 사과들이 다 썩었잖아요.” 

그제야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네 말이 맞다. 그래 이 썩은 사과처럼 나쁜 친구들과 사귀다 보면 언젠가 너도 함께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교회가 수행해야 할 사명 중에는 '교육'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통하여 보여 주신 삶의 모습이며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명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위대한 교육자이셨던 예수님의 교육 과정은 소명-교육-제자화-파송-제자의 재생산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이 교육 과정을 그대로 수행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육은 인간 구원을 위한 언행일치의 교육입니다.

'이때로부터 예수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마16:21).

십자가의 수난에 대한 이 말씀은 이 후에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간헐적으로 말씀하시고, 그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대속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교육은 공허한 이론이나 지식의 전달만의 교육이 아니라 언행일치의 교육이었으며, 그 교육의 목적은 생명의 구원에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도 자신의 신앙 고백과 삶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입술과 머리로만 복음 진리를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온 인격으로 그 진리를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교육의 방법은 영혼에 대한 순수한 사랑입니다.

(막 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그리스도는 어떤 우월감으로 인생들을 대하시고 인생들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눈'으로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타인에게 신앙을 전수할 때 필요한 마음이 바로 그와 같은 '순수한 그리스도의 사랑'일 것입니다.
  
교육이란 모름지기 '상대방이 가지고 있지 못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 자'가 나눠 주고 깨우쳐 주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성도일지라도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아무리 학식이 부족한 성도일지라도 불신 학자들이 모르는 '진리와 지혜'를 소유하고 있으며, 인생의 '영예와 영광' 또한 그러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는 이 세상에서 최대의 부자요, 최신의 지혜자요, 최고의 영예자인 셈이며, 선택받은 귀족이요, 왕족들입니다(벧전2:9).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생들을 대했다면,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된 자세와 마음과 시각으로 이웃을 대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여유로운 마음'이 바로 그리스도 사랑의 본질입니다. 이 마음으로만 피교육자들을 대할 수 있다면, 인간적인 우월감이나 혹은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으며, 모든 불신자들을 '긍휼히' 여겨 순수하게 교육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인간적인 위치에서 발로된 사랑은 한계가 있고 불안정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교회에서나 불신 이웃을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진리 교육은 '사랑으로 교육의 방법을 삼지 않는다면 무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기독교 교육의 목적이므로 그 수단과 방편까지 그 목적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교육의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알려 주시기 위해 권세와 힘을 사용치 않으시고 오직 친히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사랑으로 행치 않는 일들은 언제나 '후회'와 '시행 착오'의 요인이 됨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교육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제자 양성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합입니다.
제자는 결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각고의 훈련과 인내 끝에 제자는 만들어집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3년 동안 가르치시고 훈련하심으로써 성숙한 제자로 만드셨던 것입니다. 제자가 오랜 세월을 거쳐 다듬어지고 훈련되어야 성숙하게 되는 것은 제자의 길이 어렵고 험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요구됩니다(마16:24).

또한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못하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눅14:26).

지속적인 훈련과 반복되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습성이 몸에 배고 결단의 순간들이 축적되어 투철한 신념에까지 이르게 되어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그 길을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교육은 제자가 그 가르치는 스승을 닮아 그 스승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승의 지식과 인격을 전수받아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제자의 사명입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생활하고 함께 먹고 마시면서 예수님의 메시지와 그분의 성품과 그분의 의도를 배워야 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교육이었던 것입니다.

어린 새싹에게 부지런히 물을 주고 가꾸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듯이 어린 초 신자는 부지런히 가르치고 정성스럽게 보살피는 교육을 통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구원을 감사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복음 전하는 일에 힘쓰게 되며,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뜻을 분별하여 시대의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육성하는 것이 교육이 담당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배웠습니다. 아예 함께 먹고 자며 복음 진리를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보면 마귀를 대적하는 일에 그들 이상의 전문가 집단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변화 산에 세 제자와 함께 올라간 사이 귀신들린 아이 하나를 고치지 못해 쩔쩔 매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유는 단 하나 기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예수께서는 그 점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옳게 작동 되고 역사하는 것의 근원은 기도입니다. 
이에 대해 “기도하는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으러나 기도하기까지는 결코 기도하는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없다”(A.J.고든(Gordon)라고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제자들이 사도행전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변해 있습니까?
마귀의 방해와 핍박을 적절하게 방어하고 나아가서는 무력화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로부터 수많은 사감들을 구원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물론 복음 진리를 더 배웠습니다. 또 성령의 강력한 역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들은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들에게서 복음을 듣고 회심한 초 신자들 역시 날마다 복음 진리를 배울 뿐만 아니라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로 인해 나중에 사단이 산헤드린과 헤롯을 동원해서 박해했지만 그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무력화 시킵니까?
박해를 기회로 삼아 배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도의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대를 제외한 사마리아와 이방지역의 최초 선교는 대부분 이들 평신도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여야 합니다.
복음 진리로 제대로 무장하셨습니까? 예수를 오래 믿고,복음 진리에 관한 한 웬만한 교역자 못지않게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십니까?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더 중요한 기도의 무장이 남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몸소 기도하셨습니다.

실로 예수께서는 자신이 맡은 인류 구속 사역 중에서도 지금 당장 완수해야만 하는 사역을 성공리에 마치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구하는 기도를 하심으로 기도의 모본을 보이시고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새벽 곧 아직 날이 채 새기도 전에 기도하셨습니다.
(막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세례 받으실 때 기도하셨습니다.
(눅3: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열 두 제자를 택하시기 전에 기도하셨습니다.
(눅 6:12)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오병 이어의 이적을 베푸실 때와 그 일 후에 기도하셨습니다.
(요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제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시고자 할 때에 기도 하셨습니다.
(눅 9: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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