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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시 찾은 영원한 사랑 (요 3: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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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영원한 사랑 (요 3:14-17)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이 땅 위에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속담에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큰일이라도 한 걸음씩 차근차근 이루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중국의 고사에 ‘등고자비(登高自卑)’[중용(中庸)]라는 말이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오름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출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기본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웃의 아름다운 삼층 정자가 몹시 부러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목수에게 이웃집 삼층 정자와 똑같은 정자를 지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목수는 삼층 정자를 짓기 위하여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기초 위에 일층을 짓기 위하여 기둥을 세웠습니다. 그러자 이것을 보고 주인이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일층, 이층은 필요 없으니, 아름다운 삼층만 지으시오!”

도대체 이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어찌 일층이 없이 이층이 있을 수 있고, 이층이 없이 어찌 삼층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모든 일은 차근차근 쌓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고 하셨습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지 않는 사람은 큰 것을 맡길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한 걸음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천리 길을 갈 수 없고, 일층을 짓지 않고 이층을 지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기초부터 차근차근 밟아가야 한다는 것은 동양과 서양의 모든 철학과 종교가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기초를 다시 확인하려고 합니다. 천리 길을 가기 위한 정도가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갈 믿음의 첫걸음을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기초적인 믿음에 대하여 네 주에 걸쳐서 함께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이를 위하여 이번에는 권지현목사가 지은 ‘다시 찾은 영원한 사랑’과 ‘당신이 누려야 할 하나님의 선물’(gtm발행)이라는 아주 작은 책을 기본 교재로 하였습니다. 이 소책자는 우리가 믿어야 할 기본적인 진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우리 자신이 믿어야 할 내용일 뿐만 아니라, 믿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내용, 우리가 확신하여야 할 복음의 요약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믿어야 할 내용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여야 할 신앙의 내용인 ‘다시 찾은 영원한 사랑’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로부터 시작합니다.

  
I. 하나님(GOD)
  
일층 위에 이층, 이층 위에 삼층, 삼층 위에 사층, 사층 위에 오층, 이렇게 계속하여 올라가다가 옥상, 옥상 위에 하늘입니다. 일층부터 시작하여 옥상까지 올라가야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말하는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진리입니다. 세상의 진리는 일층에서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하늘에서 시작하여 땅으로 내려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사람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사람을 가장 정확하게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누구입니까?

1. 당신은 하나님께서 친히 낳은 자녀처럼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실 때 자식과 같은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성품을 넣어서 만든 당신(=우리)을 마치 친히 낳은 자녀처럼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라고 여기십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성경 시편 2:7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편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가리켜 ‘너는 내 아들이라(/너는 내 딸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분의 자녀라고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우리)을 다른 어떤 피조물과 비교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시편 8:4-5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편 8:4-5)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아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워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당신(=우리)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시며, 당신(=우리)을 많이 생각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희망입니다. 시편 40:5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편 40: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를 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천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꽃과 아기의 미소 그리고 아기를 안은 엄마의 품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꽃은 운반 과정에서 시들었습니다. 아기는 운반과정에서 커서 여드름 가득하고 반항적인 청소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품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모두 변하여도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품은 변함없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엄마의 품보다 더 진한 것입니다. 엄마는 아기를 노년이 되기까지 품고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백발이 되기까지 영원토록 품으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어느 여성들만의 모임에서 강사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추운 바다는 ‘썰렁해’입니다. 그러면 가장 따뜻한 바다는 무엇일까요? ‘사랑해’입니다. 여러분, 집에 가서 남편에게 해 보십시오. 그러면 남편이 여러분에게 ‘사랑해!’라고 말할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세상에서 가장 추운 바다는 ‘썰렁해’, 그러면 가장 따뜻한 바다는 무엇일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남편이 하는 말 “열바다!”

“천만번 더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사랑해”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사랑해’라는 조사 보고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사랑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바로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이렇게 사랑하시는데, 하지만 당신(=사람들)은 왜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는 것일까요? 무엇인가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죄입니다.

  
II. 죄(SIN)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罪)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1. 인간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뿐 아니라 완전한 공의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지만, 우리의 죄에 대해 그냥 눈감고 모른 척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정직하게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 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좋은 점뿐만 아니라 나쁜 점도 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모르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사야 59:2 말씀입니다.

(이사야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하나님과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서 얼굴을 돌리시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시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죄입니다.

뿐만 아니라, 범죄 한 인간은 죄의 결과로 죽음과 심판 아래 놓여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할 죄의 심각성입니다. 히브리서 9:27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어떤 사람들은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합니다. 죽음은 원래부터 모든 인간에게 정해진 자연법칙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죽음 보다 더 두려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에 대하여 알아야 할 또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한편,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범죄행위 뿐 아니라, 마음에 가득한 것의 표현인 말로 짓는 죄와,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교만과 이기심까지를 포함합니다. 이 때문에 성경은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죄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23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는 여기에서 ‘모든 사람’이라는 말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이 말은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예외 없이 모두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공허감, 무의미, 죄의식, 두려움 등의 감정은 바로 인간이 죄의 결과로 인해 죽음의 심판 아래 놓여 있는 사형수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실례지만 여러분은 자신이 이 같은 성경의 지적대로 죄인이거나 죄인이었음을 인정하십니까?

우리는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절규하였던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의 짐을 지고 가는 곤고한 사람입니다.  
  
인간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귀한 존재라는 것과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죄인인 인간의 이 엄청난 간격을 좁힐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지만 죄인인 우리를 위해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놀라운 사건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III. 예수님(JESUS)
  
사랑의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외면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죄인인 인간을 찾아오셨습니다.

1. 하나님은 죄 때문에 죽게 된 당신(=우리)을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당신(=우리)을 얼마나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시는지를 자신의 전 삶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당신(=우리)에게 사랑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성경 베드로전서 3:18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위한 값을 치르셨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로 인도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실 뿐 아니라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그분을 통해 죄 문제가 해결된 당신(=우리)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할 것임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2:14-15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2:14-15)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예수님이 행하신 이런 일들로 인해 당신(=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사람들을 죽음에서 풀어놓아 주는 길을 만드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자 인간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6).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들에게로 흐르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 구원의 길이십니다.  
  
그런데 서울로 가는 길이 마련되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서울에 가는 것입니까? 서울로 가는 길을 가는 사람만이 서울에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마련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무조건 그냥 자동적으로 하나님께 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사람이 그 사랑을 받아들여야, 영접해야 합니다.

  
IV. 영접(Receiving)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여전히 자신과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이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죄인으로 남습니다.

1.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인 예수님을 주인으로 맞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위해 아들까지 희생시키신 것은 구원을 값없이 주기 위함입니다. 당신(=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지금까지의 삶을 뉘우치고,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우리)은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어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며 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이 선포하고 있는 놀라운 사실이 이것입니다. 요한복음 1:12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단지 예수, 그 이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금도 당신(=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3:20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여기 푹신한 소파가 있고 지금 자신이 매우 피곤한 상태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소파의 안락함과 자신이 지쳐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서 소파에 앉지 않는다면, 소파가 푹신하다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정말로 알고 있다면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맞아들여야 합니다. 영접이란 나의 창조자이자 구원자 되신 그 분을 나의 가장 중심의 가장 높은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당신(=우리)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살아온 삶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통해 보여 주신 사랑을 받아들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다음의 기도문을 진실한 마음으로 고백하십시오. (모두 저를 따라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 저의 마음과 말과 행동은 / 온통 죄로 더럽혀져 있습니다. // 저는 이 같은 삶에 대해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 하나님께서 이런 저를 구원하기 위해 /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 이제 저는 더 이상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닙니다. // 저의 삶에 주인이 되어주셔서, /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구원의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구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이 단순한 믿음에 놀라운 결과가 있습니다. 조그마한 솔 씨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우리 안에 영원한 사랑이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V. 영원한 사랑(Everlasting Love)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에게 일어난 놀라운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 이제 당신은 깨어지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당신(=우리)이 만일 진실한 마음으로 영접하는 기도를 드렸다면 지금 예수님은 당신의 마음속에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신 당신(=우리)은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일서 5:12-13 말씀입니다. 

(요한일서 5:12-13)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제 당신(=우리)은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 영원토록 사랑받는 존재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영적으로 갓난아기와 같은 당신(=우리)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성숙한 자녀로 자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누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더 잘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에 힘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에는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8:20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제부터 시작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영원한 사랑을 마음껏 누리며 사랑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삶이 될 것입니다. 

(행복한 교제와 건강한 성장을 계속 할 수 있는 교회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고.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여셨습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인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들입니다. 

성경은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a)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 2:8). 

우리는 앞으로 하나님의 선물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나눌 것입니다. 먼저 다시 찾은 영원한 사랑을 확신하십시오.

바로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영원히 받는 그 분의 자녀임을 확신하시기를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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