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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 (눅 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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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 (눅 7:11-17)


누가복음 6장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날이 밝자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다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그냥 되는대로 부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밤이 새도록 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신 후에 비로소 제자들을 불러 세우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과 함께 평지에 서시니 많은 사람들이 나아왔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까? 누가복음 기자는 그 까닭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눅 6:17하반절) 그렇습니다! 말씀도 듣고 또 병 고침을 받으려고 사람들은 모였고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20절부터 49절까지의 이 말씀이 바로 평지보훈이라는 별명을 가진 귀한 교훈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의 산상보훈과 같은 말씀이지만 산상보훈에 비해서 매우 간결한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상보훈보다 간결하지만 그 의미는 훨씬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사역보다 말씀을 가르치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의 결론과 마찬가지로 평지보훈에서도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눅 6:49)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듣고 반드시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사역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어떤 백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보내서 병들어 죽게 된 사랑하는 종을 고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백부장이 보여 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가 벗들을 보내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눅 7:7하반절) 그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도 깜짝 놀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물론 예수님께서는 그 하인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성으로 가셨습니다. 동행하는 많은 무리와 함께 그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왔습니다. 그 죽은 자는 한 어머니의 독자였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습니다. 그 당시 과부의 독자라면 그 여인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자식이 없는 과부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자식의 죽음 앞에서 절망하며 통곡할 수밖에 없었던 그 과부를 예수님께서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냥 지나치실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 상황에 친히 개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과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말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관을 멘 자들은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그 옛날 엘리야나 엘리사가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서 기도했던 것처럼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창조자이시며 모든 생명의 참 주인이 되십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죽었던 자가 그 말씀을 듣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다만 일어나 앉았을 뿐 아니라 말도 하게 되었습니다. 누가의 직업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의원이었다고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의원의 눈으로 볼 때에도 분명히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죽음으로 끝났던 삶이 예수님의 말씀에 의해서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난 그 청년을 어머니에게 주셨습니다. 그 과부는 더 이상 절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비극적인 상황은 극복되었습니다. 흔히 죽음이 마지막이라고 말하지만 생명의 참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그 죽음은 완전히 극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사건을 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무엇보다 먼저 사람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두려워했습니까? 그 까닭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만 두려워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누가복음 기자가 똑똑히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눅 7:16) 그리고 예수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사건을 본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에 있어서도 우리 인간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때문에 요한복음 기자도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또한 장로 요한도 같은 고백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오셨고 돌보셨습니다.

여기서 ‘돌보셨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사가랴의 노래에도 나오는 단어입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노래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눅 1:68) 이 단어는 찾아오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 안에서 사람들은 자기 백성을 찾아오셔서 살려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아울러 사람들의 그 고백을 통해서 누가복음 기자는 죽음이 극복된 것은 나인 성 과부의 아들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사건이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 속의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해당되는 구원 역사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가버나움의 그 백부장처럼 예수님께 대한 소문을 듣고 믿을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처럼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믿고 예수님께 나아가 문제 해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 역사를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버나움의 그 백부장처럼 믿음으로 나아가 문제 해결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믿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새 생명을 얻은 나인 성 과부의 아들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 후 과부와 그 아들은 누구보다 굳센 믿음을 간직하게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오늘 우리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통해서 누구를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질문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자기 백성을 찾아오셔서 돌보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예수님이 생명의 참 주인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면 절망이 희망으로, 죽음이 생명으로 변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죽음이 지배하던 우리의 삶의 현장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불쌍히 여기사 우리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울지 말라!” 또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그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일어나 빛을 발함으로써 참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널리 전하고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참으로 복되고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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