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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처럼 사랑하사 (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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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랑하사 (요 3:16)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구약이 39권, 신약이 27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내용은 너무 방대하고 심오해 다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방대한 성경의 내용을 단 한 줄에 함축해서 담고 있는 성경 구절이 오늘 읽은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우리 한 목소리로 다시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한 절의 말씀 안에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 다 담겨 있기에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성경의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이 한 절의 말씀 안에 기독교의 정신을 담은 가장 중요한 단어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 ‘세상’ ‘사랑’ ‘독생자, 즉 예수’ ‘믿음’ ‘멸망’ ‘영생’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누구신지, 사람은 누구인지,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은 무엇이고,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죽음과 영생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의 구원의 핵심 원리를 간단명료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을 다 함축하고 있는 구절이기에 짧은 시간에 제대로 설명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이 말씀의 귀중한 내용을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알파 프로그램에서 보여 주었던 영상을 하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이 영상에서 보면 철로를 관리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기차가 탈선할 위기에 놓였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참사를 막기 위해 자신의 사랑스런 아들을 희생시킵니다. 이 아버지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기차에 탄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끊어진 철로를 연결시고 죽는 어린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고통을 모르는 채 자신들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승객들은 타락한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기차 밖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아들을 희생시키며 그들을 구원한 아버지의 통곡하는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은 당신의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 즉 세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후에 마지막으로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정성을 다해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며 불순종하며 죄를 짓습니다. 불순종의 죄를 지은 사람은 결국 에덴에서 추방당해 죽음의 고통 가운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에덴에서 쫓겨난 사람을 다시 에덴으로 회복시키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 값인 사망을 치루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그들의 죽음을 대신해 죽음의 자리로 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말할 수 없이 큰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원하는 이기적인 삶을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인 에덴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결국은 멸망의 길에 들어섭니다. 

저는 본문에 나오는 모든 단어가  소중하지만 ‘이처럼’이라는 단어에서 큰 감동을 받습니다. ‘이처럼 사랑하사’ ‘이∼만큼 사랑하사’입니다. 얼마 만큼입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죽음에 내어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나’를 구원하기위해 십자가에 죽이실 만큼 사랑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에서 ‘세상’ 대신에 우리의 이름을 넣고 ‘이∼처럼’이라고 강조하여 읽어보면 그 의미가 더 새롭습니다. 함께 그렇게 읽어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00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이라는 단어에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무한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칼 바르트라고 하는 근대 신학의 유명한 교수가 있습니다. 어느 날 시카고 대학을 방문하여 학생들에게 신학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강의가 끝난 다음에 젊은 친구 하나가 따라오면서 집요하게 질문합니다. ‘교수님, 저는 교수님께서 쓰신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몇 권을 읽었는데 감동적이었습니다. 교수님의 해박한 지식에 저는 놀랐습니다. 한평생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책을 쓰면서 깨달은 진리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진리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씀해 주시지요."’

이 교수님이 껄껄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내가 어렸서부터 교회학교에 다니면서 부른 찬송가 한 구절이지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 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이것이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고, 이것이 나의 간증이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이고 사랑의 종교입니다. 복음 중의 복음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루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어떻게 이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선물이란 손을 내밀어 받기만 하면 됩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내 것이 되는 게 선물입니다. 이 시간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두 손을 내밀며 그 분이 주시는 사랑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입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의 마음의 문을 엽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합니다. 저의 마음에 들어오십시오.’라고 기도하며 우리의 두 손을 하나님을 향해 내밀고 그 손 위에 주시는 예수님의 선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사랑을 선물로 받기 위해 하나님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사랑을 감사하며 그 사랑을 받기 위해 손을 내미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사랑을 믿고 감사하며 그 구원의 선물을 받기 위해 손을 내미는 사람을 보시고 행복해 하십니다. 당신의 사랑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만큼 소중해 졌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예수님하고 맞바꾼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100원을 주고 사면 100원 짜리입니다. 10만원을 주고 사면 10만 원 짜리입니다. 1억을 주고 사면 1억 원 짜리입니다. 100억 원을 주고 사면 100억 원 짜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내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예수 짜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얻은 구원은 값싼 구원이 아니라 값비싼 구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서 43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 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 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의 것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에 관계없이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존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아들과 맞바꿀 만큼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해 주시고 품어주시며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나도 나를 사랑하며 삽시다. 하나님께서 나는 존귀한 자로 여깁시다. 그러니 나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됨의 자존감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일어섭시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깊이 새기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백성으로서 감사와 소망을 노래하며 사는 한 주간의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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