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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임재와 방언 (행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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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임재와 방언 (행 2:1-13)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만 신앙생활을 힘있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없이는 종교생활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리고 종교생활은 피곤합니다. 우리가 피곤함을 느끼는 것은 성령 없이 기도하고, 성령 없이 예배드리고, 성령 없이 찬송을 부르고, 성령 없이 선교하고, 성령 없이 전도하면 피곤해 집니다. 그래서 그냥 단순한 육체적인 피곤함인지, 아니면 성령 없이 일하기 때문에 오는 피곤함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육체적인 피곤함이라면, 육체 관리를 좀 잘 하면 되지만, 성령 없이 뛰기 때문에 오는 피곤함이라면 성령 충만을 받아야 됩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은 기도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저들이 기도했을 때에 오순절 날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여기에는 무슨 비밀이 없습니다. 무슨 비밀을 찾으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성령 충만은 기도와 직결되어 있는 거고, 성령 충만이 있으면 신앙생활이 재미있는 거고, 없으면 피곤한 거예요. 뭐 로켓 만드는 무슨 그런 복잡한 공식이 여기에 필요한 게 아닙니다. 

기도하면 성령 충만함 받는 거고, 성령 충만함 있으면 재밋고 힘있게 권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두나미스, 권능, 그 두나미스에서 다이나마이트가 나왔어요. 다이나마이트의 어근이 두나미스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여기서 권능이 헬라어로 두나미스 입니다. 여기서 다이나마이트가 나오고 거기서 다이나믹이라는 영어가 나온 것이고, 성령이 함께 하시면 다이나믹하게 사는 것이고 없으면 피곤하게 사는 거에요. 이 성령 충만이 숙제 입니다.

우리가 성경은 많이 아는데, 성령 충만이 숙제에요. 성경만 많이 알아 가지고는 싸움만 나요. 니 해석이 옳다, 내 해석이 옳다. 우리가 다 배운 사람들이고, 자기 소견이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성경만 알아 가지고서는 니 소견이 옳다 내 소견이 옳다, 백인백색, 천인천색, 만인만색, 다 자기 나름대로 자기 시각대로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에 성경만 알면 싸움이 나는 거에요. 갈라지게 되어 있죠. 

교회들이 왜 갈라지느냐. 성경만 아니까 그래요. 그것도 잘 알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알아서 성경을 억지로 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 가지고 잘 알지도 않고 조금 아는 거 가지고 서로 니 해석이 옳다 내 해석이 옳다 이렇게 나가니까 교회가 분란이 생기고 연합이 안되고, 화합이 안되고 교회가 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이 숙제에요. 

성경도 만만한 게 아니지만, 성경은 눈으로 보이거든요. 성경은 펴면 보인단 말이에요. 성경 말씀 한 두 구절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요즘에 티비를 보면 목사님들 나와서 설교를 하죠. 인터넷 들어가면 한국의 유명한 목사님들 다 나오죠. 뭐 요즘은 설교 못 들어서 은혜 못 받은 사람이 어딨어요. 요즘에 말씀 못 들어서 은혜 못 받는 사람이 어딨어요. 요즘에 성경 한 두 구절 몰라서 신앙생활 못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홍수에요. 홍수, 말씀의 홍수, 근데 문제가 뭔 줄 아십니까? 

성령은 그리 만만치가 않거든요. 제가 가만히 보니까 신앙생활 오래 하신 분들은 성경은 좀 만만하게 여겨요. 절대 만만한 게 아닌 책인데도 만만하게 여겨요. 눈으로 보이니까. 근데 성령은 만만치가 않죠. 왜? 안보이니까. 성령에 대해서 모르니까, 성경만 알고, 성령에 대해서 모르니까 아는 건 많은데, 그 아는 것 만큼 힘이 따라 주지 않으니까 거기에서 오는 짜증이 나고 다툼이 나고 분란이 생기고 갈라지고 두나미스가 없는 교회, 두나미스가 없는 신도가 되는 거예요. 

오늘 본문의 이 오순절의 성령이 오셔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이 저들 가운데 오셨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은혜 주십니다. 2000년 전에 성령님께서 오셨어요. 그리고 성령님은 그 교회를 떠나지 않았어요. 성령님은 그 교회에 지금도 계시고, 지금도 역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의 강림은 하나의 사건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성령의 오심은 하나의 사건이에요.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함께 오신 성령님은 교회를 떠나지 않았어요. 지금도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전입니다. 그러니까 성령 충만함만 받으면 됩니다. 성령 충만함이 비밀인데 본문에 보니까 성령이 오실 때 세 가지 모습이 보입니다.

첫째는 바람, 급하고 강한 바람입니다. 

이 바람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호흡을 의미합니다. 호흡. 이 숨, 그래서 성령을 헬라어로 보면, 프뉴마. 영어로는 P발음을 안 하니까, 뉴마. 거기서 뉴모니아 라는 것이 나왔어요. 폐렴이 뉴모니아죠. 그래서 폐와 호흡이 직결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프뉴마, 성령은 호흡이에요. 바람. 똑 같은 말입니다. 성경에서 바람과 호흡은 같은 단어에요. 다시 말해서 성령이 하시는 일은 뭐냐, 하나님의 호흡을 우리에게 불어넣는 거예요. 생기를 불어 넣는 거예요. 하나님의 호흡, 

디모데전서 3장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번역을 했지만, 사실은 그 원어에는 하나님의 호흡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호흡. God’s breath. 하나님이 바람은 훅- 호흡을 불어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호흡입니다. 바람이 불었다, 예수님께서도 바람이 어디로 부는지 모르는 것처럼, 바람이 임의로 불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요.

누가 성령으로 난 자인지, 눈에 보이는 증거로서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은 하나님의 호흡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눈에 보이는 증거로서는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성령으로 난 자는 바람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으로 난 자는 다 이와 같습니다. 눈으로 보는 증거를 가지고서는 말하기 힘들어요.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호흡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숨이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영적으로 숨이 막혀서 죽어갈 때, 교회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호흡을, 하나님의 주시는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는 산소호흡기와 같은 곳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산소가 부족해서 사람들이 헐떡거리며 교회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는 생기를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그 호흡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곧 생명이고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출범시키고 제일 먼저 바람을 불게 했어요. 생명을 집어넣었습니다. 먼저, 이 바람이 불고 나서 그 다음에 성경입니다. 그래야 들을 귀가 있고, 그래야 볼 수 있는 눈이 되는 거예요. 성령을 받지 못하며 들어도 못 듣고, 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먼저 성령의 바람이 우리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서 당시 세상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보고 술에 취했다고 했습니다. 세인들의 눈에 보기에는 하나님의 바람이 들어가니까, 하나님의 호흡이 그 안에 들어가니까 마치 술 취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전혀 지금까지 자기들이 보아왔던 것과 비유할 수 없는 뭔가 지금 큰 변화가 그들 가운데서 일어났다는 것을 세인들이 보고 술 취했다고 한 것입니다. 호흡, 하나님의 호흡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생활이 피곤하지 않고 능력과 힘이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숨을 성령을 통해서 마셔야 합니다. 이건 아는 것만 가지고 안됩니다. 성령을 받으셔야 합니다. 체험해야 합니다. 능력을 받아야 힘이 나고 신앙생활이 즐겁습니다. 


둘째는 불입니다. 

불은 뭔가요. 불은 태우는 거죠. 불은 태웁니다. 태운다는 것은 소독한다는 거예요. 성경에서 불태운다는 것은 거의 소독을 의미합니다. 씻는 것과 태운다는 것은 같습니다. 성경에서 물과 불은 같은 뜻이에요. 물과 불은 방법만 다르지, 결과는 똑 같아요. 다 씻는 거예요. 소독하는 거예요. 물보다 불이 더 강한 표현입니다. 물은 씻지만, 불은 태워서 아예 소독을 한다는 거죠. 

어렸을 때, 손에 가시가 박히면, 할머니가 바늘로 그 가시를 바늘로 살을 조금씩 조금씩 파 가지고 그 가시를 빼잖아요. 근데 그러기 전에 먼저 불에 소독한 바늘을 사용합니다. 이스라엘을 보면 전쟁하고 나면 다 태우죠. 하나님이 다 태우라고 그래요. 가축 태우고 다 태우라. 그 태우는 게 왜 태웁니까. 소독이에요. 죄를 소독하는 거예요. 

성령의 임무는 뭐냐. 성령의 임무는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을 태우는 겁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을 다 태웁니다. 그래서 거룩한 것만 남게 하는 거예요. 성령께서 첫번째 바람을 불어서 하나님의 호흡을 주입시키고, 그래서 일단 생명을 얻게 한 다음에, 그 다음에는 우리 안에 있는 죄성,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을 태워버리는 겁니다. 

성경에는 불에 대한 비유가 많이 나옵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분이라고 히브리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에도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분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 소멸한다는 말은 파괴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소독한다는 의미의 소멸입니다. 성결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죄에 감염되지 않도록 하는 것. 성령으로 난 자는 죄에 감염이 안돼요. 

성령으로 난 자는 죄를 지을 수 있고, 죄에 잠깐 빠질 수도 있고, 죄가 넘어뜨릴 수도 있지만, 절대 죄가 감염시키지 못해요. 왜? 성령이 다 소독하니까. 우리가 성령의 전입니다. 근데 어떻게 소독하느냐. 불로 태워서, 그래서 불이라는 것은 바로 이 성령의 상징이에요. 불. 바람도 성령의 상징이고, 여러분 성경 읽을 때 바람하면 성령, 불하면 성령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그리고 불은 능력입니다. 두나미스라고 하는 개념은 굉장히 다이나믹한 것입니다. 두나미스는 폭발 시키고 태우고, 다이나마이트가 뭡니까. 폭발 시키는 거죠. 바윗돌을 폭발시켜 그 안에 숨겨진 다이아몬드를 캐내는 것,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실 때, 다이아몬드로 지으셨어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지으실 때, 여러분들의 인생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귀한 존귀한 다이아몬드, 근데 그것들이 쌓여 있는 거에요. 돌로 쌓여 있어요. 성령님께서 다이나마이트, 두나미스, 이 다이나마이트로 그걸 깨 가지고, 그 안에 있는 다이아몬드를 회복하도록 하신거죠. 불은 능력입니다. 불로 증기기관차가 움직이고 비행기가 날며 로켓트가 달나라에 갑니다. 그리고 불은 회복하는 거에요. 불은 태워 가지고 회복시키는 거에요. 태울 때는 아프고 뜨겁죠. 그렇지만 회복입니다. 불에 달군 바늘로 찌르면 아파요. 그렇지만, 회복을 위해서 견뎌야 해요. 

우리 안에 아직도 성령님께서 태울 그런 죄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와 씨름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성령에 대해서 논할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 가운데 죄에 대해서 졸업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오셔서 태우셔야 합니다. 내 안에 태워야 할 것들이 뭐가 있는 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 안에 태워야 할 것들이 뭐가 있는지, 그 안에 있는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서 둘러싸고 있는 바위들을 폭파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불로 오셨습니다. 회복입니다. 그래서 바람은 생명을 주는 것이고 불은 회복시키는 거예요. 성령이 오신 목적이 먼저, 호흡을 받아야 해요. 숨쉬어야 하고, 그 다음에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목사는 참으로 제일 어려운 게 사람들의 문제를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그 부담감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제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습니까? 예수님이 해결해 주고, 성령님이 해결해 주셔야지요. 결국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이 교회도 안 되고 우리의 신앙생활도 힘듭니다. 성령이 오셔서 바람이 불고 불로 태울 때, 비로소 교회가 살아나고 우리가 능력있는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기도하면서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됩니다. 성령 안에서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혀입니다. 

혀, 여기 불의 혀 같이 갈라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혀 같이 갈라진 그 혀가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자들이 자기 말로 설교를 했는데, 거기 모였던 여러 이방민족들이 신기하게 다 자기 각 나라말로 그 설교를 들은 거예요. 한국말로 설교했는데, 독일 사람은 독일 말로 그 설교를 들었고, 영국사람은 영어로 들리고, 불란서 사람은 불어로 들리고, 중국사람은 중국어로 들었다는 거예요. 8절에 보면,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성령이 혀로써 각 사람에게 내려오시는 그런 비유로 지금 말씀을 하고 있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이건 선교의 영입니다. 선교의 영. 다시 말하면, 성령께서는 구원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통역해 주십니다. 우리가 선교지에 가서 복음전도를 할 때 사실은 우리말로 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우리의 말을 통역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구원의 말이 그 사람의 영혼에 들리게 해야 해요. 그게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혀로 왔다는 것은 성령님이 통역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통역은 우리 인간의 말이 아니고, 구원의 말 구원의 언어가 각 사람의 영혼에 들리도록 했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선교의 영. 그래서 선교를 나갈 때는 성령께서 통역을 해주셔야만 선교가 되는 거예요. 돈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프로그램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선교가 성령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죠. 

교회가 크려면 선교를 해야 해요. 교회가 건강해지려면 선교를 해야 해요. 왜냐하면 성령이 선교의 영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선교의 영으로 오셨는데, 선교를 안 하면 교회가 성령을 기쁘게 하지 못하니까, 교회가 성령의 은혜를 받을 수가 없는 거죠.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면, 성령께서 복을 주셔서 그 교회는 두나미스, 즉 능력있는 교회가 됩니다. 

성령은 선교의 영이에요. 성령이 혀로 각 사람의, 우리 머리 위에 혀로 오셔서 영적으로 통역을 해서 우리의 말하는 것이 다 구원의 언어가 되고, 우리의 말이 다 영혼의 언어가 되어서 듣는 사람들이 그것을 듣고, 내가 말을 잘해서 복음을 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말 재주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말이 좀 어눌하고 실수가 있고 말 재주가 없어도 성령님이 다 알아서 통역해 가지고 그 사람을 통해서 전도하도록 하십니다. 

여러분, 초대교회가 누가 말 잘 하는 사람이 있어서 전도를 이렇게 잘 했겠습니까? 초대 교회가 계속해서 퍼져 나가는 이 복음이 확산되고 퍼져나가는 걸 보면 거기에 무슨 웅변 전공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성령님이 통역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세 가지를 봤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호흡, 생기, 또 불로 듀나미스, 능력을 주시고, 또한 우리의 죄성을 태우시고, 우리를 죄의 바이러스와 죄의 악한 습성들로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불태우시고 소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통역하셔서 우리의 삶이 구원의 언어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른 말을 해도 구원의 언어로 통역자로 우리에게 오신 성령님을 모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님이 오셔서 이 교회에 생기를 불어넣지 않고서는 교회가 시작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사도행전은 신약의 창세기입니다. 이 성령의 능력이 우리 안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삶 속에 성령의 능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성령의 능력을 가지고 선교하고 전도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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