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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침묵 (시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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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침묵 (시 13:1-6)

신앙인들에게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는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왜 하나님은 저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으시나요?”
“그래도 지금까지 나는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고 애를 써 왔고, 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 왔는데, 왜 하나님은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나요?”
“하나님은 제가 그 동안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들을 들으시기는 하신 것일까요?”
“혹시 하나님은 나에게 무관심하신 것이 아닐까요?”
“언제까지 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하나요?”

이러한 신앙적 갈등은 우리들만 겪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신앙의 인물들도 그러한 갈등을 겪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다윗이 쓴 한탄시의 내용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당한 고통을 하나님께 여러 차례 호소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에 즉각 응답하여 주시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부르짖습니다. 

주님, 언제까지 나를 잊으시렵니까? 영원히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나를 외면하시렵니까? 언제까지 나의 영혼이 아픔을 견디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나의 영혼이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여야 합니까? 언제까지 나의 영혼이 내 앞에서 의기양양한 원수의 꼴을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나를 굽어 살펴 주십시오. 나에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본문 1-3절)

고통 중에 부르짖는 욥의 기도도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말씀을 드릴 때에,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동쪽으로 가서 찾아보아도, 하나님은 거기에 안 계시고, 서쪽으로 가서 찾아보아도, 하나님을 뵐 수가 없구나. 북쪽에서 일을 하고 계실 터인데도, 그분을 뵐 수가 없고, 남쪽에서 일을 하고 계실 터인데도, 그분을 뵐 수가 없구나. (욥 23:6-9)

하박국의 기도도 불의한 일들에 대하여 침묵하고 계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절규입니다.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폭력이다!" 하고 외쳐도 구해 주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어찌하여 배신자들을 보고만 계십니까? 악한 민족이 착한 백성을 삼키어도, 조용히만 계십니까? (하박국 1:1-13)

그러면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에 관심이 없으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절대로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시되 당신의 독생자를 우리들을 위하여 희생시키실 정도로 사랑하신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들의 머리털까지 세실 정도로 우리들의 세밀한 것까지 다 아신다고 예수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통이 너무 커서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수 없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절대로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들이 당한 문제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더 좋은 일을 행해 주시려고 침묵하실 때가 있으심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기사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의 가정을 평소에 심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죽을병에 들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사람들을 예수님께 보내어서 그 소식을 알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계신 곳에서 이틀이나 더 머무셨던 것입니다. 얼마나 다급한 상황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 상황에 침묵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나사로는 죽습니다. 나중에 예수께서 나사로의 집에 가시자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원망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님,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 11:32)

절박하고 급박한 상황에 침묵하셨던 예수님을 원망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가셔서 나사로를 살려 주십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더 큰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또 예수님은 이 일을 통하여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들어내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일로 인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복음서는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더 큰 기쁨을 마리아와 마르다의 가정에 주시기 위하여 처음에 침묵하셨던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하여 때때로 침묵하시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훈련시키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양을 치던 40년간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침묵하시면서 모세를 훈련시키셨습니다. 모세로 하여금 자신을 비우는 훈련을 시키셨던 것입니다. 

요셉이 고통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특히 요셉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왕의 술 시종장의 꿈을 잘 해몽해 주어서 그가 복권하게 되었고, 그는 요셉에게 곧 감옥에서 풀어 줄 것을 약속하였었습니다. 그때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구원하여 주신다고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술 시종장은 요셉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흘렀던 것입니다. 그 2년간의 세월 동안 하나님은 정말로 요셉이 야속하다고 느낄 만큼 침묵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기간을 통하여 요셉을 더 단련시키셨습니다. 참고 인내하는 요셉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요셉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40년의 침묵 후에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요셉을 강하게 훈련시키신 후에 그를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세워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약 1:2-4)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에 우리들이 깨달아야 하고 또 가져야 하는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1) 첫째로, 만물에는 때가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때를 기다리는 믿음입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다.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통곡할 때가 있고, 기뻐 춤출 때가 있다. 돌을 흩어버릴 때가 있고, 모아들일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다. 말하지 않을(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전쟁을 치를 때가 있고,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 (전 3:1-8)

(2)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을 허락하시고, 또 피할 길도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시련과 함께 벗어날 길도 마련하여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하십니다. (고전 10:13)

(3) 셋째로,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에 우리들이 깨달아야 하고 또 가져야 하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우리들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지금도 우리를 돕고 계시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롬 8:25-27)

(4)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합하여 결국에는 선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압니다. (롬 8:28)

지난번 연회 목사 안수 예배 때에 저는 합창단의 찬양에 크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히 Mark Miller 교수가 작곡한 “I believe(나는 믿네)"라는 노래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는 1945년 독일 유태인 수용소 지하실 벽에서 발견된 다음과 같은 낙서였습니다. 그 글은 어느 무명의 한 유태인이 죽음을 앞두고 벽에 쓴 글이라고 합니다.

I believe in the sun, even when it's not shining.
(나는 태양이 비치지 않을 때에도 태양이 있는 것을 믿는다.)

I believe in love, even when I don't feel it.
(나는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때에도 사랑이 있는 것을 믿는다.)

I believe in God, even when God is silent.
(나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에도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는다.)

이것이 우리들이 가져야 하는 성숙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고통 중에 있는 우리들의 기도를 당장 들어 주시지 않는 것 같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도를 듣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통하여 우리들을 훈련시키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더 큰 축복의 그릇을 준비하게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정하신 때에 우리들에게 더 좋은 방법으로 응답하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시편 기자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침묵에 대하여 한탄하며 원망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그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본문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그러나 나는 주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 주께서 구원하여 주실 그 때에, 나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주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푸셨으므로, 내가 주께 찬송을 드리겠습니다. (본문 5-6절)

우리들에게도 시편 기자와 같은 한결같은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결국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경험하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들을 지키시고 돌보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안명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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