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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1318, 희망의 숫자 (창 49: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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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8, 희망의 숫자 (창 49:22-26) 
 
 
❚청소년의 위기

1318 여러분, 반갑습니다. 청소년들은 다 알아듣지만 어른들 중에는 “1318? 그게 뭐야?” 하는 분도 계실 것 같아서 설명 드리면 1318, 13살부터 18살까지 우리 중고등학생 청소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늘은 바로 여러분 1318 청소년들을 초청해 함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사실 요즘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청소년 여러분 아닙니까? 인생이 바빠요. 그런데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도 아닌데 왜 바쁜 여러분을 불러 어른들이 함께 예배하자고 하는가? 별 다른 뜻은 없어요. 

그냥 여러분 얼굴을 보고 싶고, 또 여러분과 1년에 한 번이라도 같이 예배드리고 싶고, 무엇보다 우리 교회 1318 청소년들을 만나 예배하며 격려하고 축복하고 싶어서 부른 거에요. 그러므로 오늘 여기 계신 어른들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청소년들과 함께 예배하면서 좀 더 이 친구들에게 관심을 갖고 격려하고 축복해 주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어른들에게 ‘청소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좀 수준 높은 어른들은 오늘 설교제목처럼 ‘1318’이 떠오른다, ‘꿈’ ‘미래’ 등 대답을 했지만 어른들의 대답 중에 1위가 뭔지 아십니까? 바로 ‘문제’였습니다. 붙여서 읽으면 ‘청소년 문제’지요. 그 다음 2위는 ‘비행’이요. 붙여 읽으면 ‘비행 청소년’입니다. 당연히 “날아다니는 청소년”이라는 뜻이 아니라 “비행을 저지르는 아주 문제 많은 청소년”을 뜻하는 말이지요. 3위는 ‘질풍노도’입니다. 

물론 어른들이 다 걱정돼서 한 대답이겠지만 이런 대답은 오늘날 어른들이 우리 청소년들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 어떤 눈으로 보고 있으냐? ‘청소년’ 하면 ‘청소년 문제’를 가장 먼저 떠올리고 청소년들을 마치 비행집단, 아주 골치 아프고 위험한 집단으로 보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어 참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이 이런 반응을 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요즘 신문을 보세요. 뉴스를 한 번 보세요. 우리 1318 세대에 관해 나오는 뉴스는 딱 둘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는 대학입시에 관한 뉴스, 대학입시가 또 바뀌었다 어쨌다 하는 뉴스고, 또 하나는 청소년 문제, 오늘 또 어떤 청소년이 사고를 쳤다 하는 뉴스뿐이잖아요? 그러니 어른들이 어찌 우리 청소년들을 걱정 안 하겠습니까? 실례로 최근 나온 뉴스 두 개를 잠시 소개할까요? 전라남도의 학 고등학교에서 담배를 피다가 걸린 학생 9명이 벌로 노인요양시설에 봉사활동을 나갔는데 거기 누워계신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여봐라. 네 이놈. 당장 일어나지 못할까” 하고 큰 소리를 치는 것을 핸드폰 동영상에 찍어 올렸다가 아주 난리가 났답니다. 

문제가 커지자 해당 학생들은 “장난으로 그런 건데 뭐 그리 큰 문제”냐고 반응했고 학교는 선도위원회를 열어 퇴학 조처 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요즘 인터넷 카페에는 청소년들이 부모나 선생님을 욕하는 내용이 자주 올라오고 있다는데 심지어 서로 누가 누가 심한 욕을 더 잘 하나 욕설 배틀까지 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뉴스는 이현호라는 프로농구 선수가 담배 피는 청소년을 야단치다가 입건된 사건입니다. 이 농구선수는 밤 8시에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동네 놀이터에 갔다가 거기서 담배를 피우는 중고등학생, 그 중에는 여중생도 있었는데 “왜 놀이터에서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냐”고 했다가 그 아이들이 욕설을 하며 대들자 홧김에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가 아이들이 경찰을 부르는 바람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청소년들 중 세 명의 부모는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돌아갔지만 두 명의 부모가 끝까지 처벌을 원해서 입건되고 법정에 서서 약식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결과는 선고유예 2년에 벌금 10만원입니다. 

선고유예는 범행이 경미한 경우 일정한 기간 같은 범행을 저지르지 않는 경우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하는 것이므로 이현호 선수는 2년 동안 같은 범행을 저지르지 않을 경우 10만원의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판정에서 판사가 물었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무섭지 않았느냐?” 그러자 이현호 선수는 “욱하는 성격 때문에 바른 소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했을 뿐”이라고 답했고, 이에 판사는 “머리를 가볍게 때리는 행위도 폭행에 해당한다”고 주의를 주었답니다. 사건 직후 인터넷은 이 문제를 놓고 뜨겁게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는 “아무리 그래도 폭력은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부분 “용기 있는 행동을 한 어른”이라는 의견이 많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뉴스를 보면 걱정이 안 됩니까? 당연히 걱정 되지요. “요즘 애들 참 큰일이구나”, 나아가 무섭지 않습니까? “어휴, 요즘 애들이 다 저렇구나, 조심해야지 괜히 나섰다가 나도 낭패 볼라” 하고 말입니다. 저도 이런 경험이 있어요. 밤거리를 여럿이 몰려다니는 청소년을 보면 괜히 겁이 나요. 옛날에는 으슥한 곳에서만 그랬지만 요즘은 아예 길거리에서 교복 입고 담배 피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야단치고 싶다가도 괜히 저 애들 건드렸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피해 간 적도 있어요. 여러분은 아닙니까? 

물론 이런 아이들은 일부분에 불과하지요. 대다수의 아이들은 오늘 여기 있는 아이들처럼 착하고 순진하고 좋은 아이들이지요. (안 그렇니 얘들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렇게 요즘 1318 청소년들이 우리 어른들과 부모들에게 걱정스러운 존재, 나아가 겁나는 존재가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이집트 피라미드에 쓰여 있는 상형문제를 해독해 보니 이렇게 쓰여 있더랍니다. “요즘 애들 버릇이 없어!”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른들이 보는 요즘 애들은 똑같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어른들이 “요즘 애들 무서워”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정말 큰 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왜 그럴까요?

❚위기가 아닌 희망을 말하자!

저는 이렇게 오늘날 우리 1318 청소년들이 걱정스러운 대상이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우리 청소년들이 사랑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받은 자녀는 잘못된 길로 가지 않습니다. 잘못된 길로 가더라도 반드시 다시 돌아옵니다. 부모의 진정한 사랑, 어른들의 진정한 사랑, 주변 사람들의 진정한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자란 자녀들은 반드시 문제아가 아니라 건강하고 바른 자녀로 자라나게 되어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 우리 부모와 어른들은 이 사실을 꼭 기억하고 자녀들에 대해, 특히 우리 청소년들에 대해 진정한 사랑과 신뢰를 부어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걱정 대신 격려를, 질타와 야단 대신 칭찬을, 사랑을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부어주면 반드시 우리 1318 청소년들, 우리 자녀들 잘 될 것입니다.

둘째, 우리 청소년들이 사랑을 받지만 잘못된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요즘 애들이 왜 사랑을 못 받아? 옛날에 비해 얼마나 잘 먹고 잘 살고 풍족한데? 부모가 얼마나 투자를 하고 잘 해주는데 사랑을 너무 받아서 문제지 왜 사랑을 못 받아?”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예, 맞습니다. 부모나 어른들이 사랑을 하지요. 그런데 그 사랑이 잘 못 된 거에요. 맹목적인 사랑이고, 나아가 자녀를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실상은 내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잘못된 자녀 뒤에는 반드시 잘못된 부모가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청소년들도 어른이 훈계하고 쥐어박았다고 경찰을 부르고 부모가 쫓아와 감히 내 귀한 자식 손찌검 했다고 끝까지 고소를 취하하지 않잖아요? 자식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부모가 있는 한 그 자녀는 바른 길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맹목적인 사랑, 또 사랑을 빙자한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어른과 부모가 있는 한 우리 자녀들은, 우리 청소년들은 영원히 ‘문제’ 혹은 ‘비행’이라는 말을 떼버리지 못하는 걱정스러운 존재, 겁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부모와 어른 여러분,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위기 대신 희망을 말해야 합니다. 자꾸 위기다 위기다 하면서 청소년들이 마음껏 자라나가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너희가 지금은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반드시 잘 될 것”이라며 희망을 말해주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들은 청소년들에게 지적 대신 축복을 해주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어른들이 하는 축복, 부모들이 하는 축복은 그대로 우리 자녀와 청소년들에게 이루어져 반드시 그들의 앞날이 복된 날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가정에 미래가 있고, 우리 나라, 우리 교회에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이 살아야 우리가 살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축복, 우리의 축복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에 나온 야곱의 축복은 부모가 자녀에게, 어른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해주는 가장 아름다운 축복의 모델이 되는 내용입니다. 야곱은 임종 직전 열두 아들을 축복합니다.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야곱은 이제 눈을 감을 때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열두 아들들에게 각자 축복의 말을 마지막 유언처럼 남기고 있는데 그 내용이 바로 창세기 49장 전체에 들어 있습니다. 

어른 여러분, 부모 여러분, 우리가 자녀들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유산이 무엇이겠습니까? 부동산인가요? 현금이 들어있는 은행 통장인가요? 아니면 부모가 누린 명예와 지위인가요? 아닙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만 의지하는 분명한 믿음입니다. 부모와 우리 어른 세대들은 이 믿음에 의지해 자녀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 야곱의 축복처럼 우리 어른들과 부모들은 우리 자녀들을, 특별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믿음으로 축복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의 열두 아들이 다 축복을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길고 진한 축복을 받은 자녀는 열두 아들 중 유다와 요셉 두 명입니다. 그 중에 우리에게 <야곱의 축복>이라는 복음성가(오늘 설교 후 부를 노래) 가사로도 잘 알려진 요셉에 대한 축복은 참으로 특별합니다. 그 내용을 한번 살펴봅시다.

첫째로,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크게 ‘번성’할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22절 말씀 함께 읽읍시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야곱은 이렇게 요셉을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고 축복하는데 이 말은 요셉과 그의 두 아들이 점점 더 번성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현재의 축복을 말한 것입니다. 저도 이 시간 우리 청소년들과 자녀들을 이렇게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잘 될 겁니다. 샘 곁의 무성한 가지처럼 번성하고 잘 될 줄로 믿고 축복합니다. 아멘!

둘째로,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점점 더 ‘성장’하고 ‘발전’할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다시 22절을 보면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즉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점점 성장해 담장을 넘어 쭉쭉 뻗어나가듯 요셉과 자손들은 지금도 번성할 것이지만 앞으로 점점 더 성장하고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축복한 것입니다.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현재의 번성을 뜻한다면 이 말은 바로 미래의 희망을 말한 것이지요. 저도 이 시간 우리 청소년들과 자녀들을 이렇게 축복합니다. 지금도 여러분은 잘 될 것이지만 미래에는 더 잘 될 겁니다. 여러분의 앞날이 점점 더 잘 되고 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셋째로, 아버지 야곱은 ‘보호의 축복’을 선언합니다. 23절과 24절을 함께 읽읍시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여기서 활쏘는 자란 대적을 뜻합니다. 우리 자녀들을 공격하고 넘어뜨리려는 그 어떤 대적과 원수의 공격에도 요셉이 도리어 굳세게 잘 견뎌내고 그들을 이겨낼 것이라고 축복한 것입니다. 요즘 얼마나 청소년들과 자녀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까? 얼마나 죄 지을 일이 많고 또 이들을 넘어뜨리려는 악한 세력이 많습니까? 우리 자녀들은 또 얼마나 많은 비난과 오해를 받고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을 지켜주시고 청소년들을 지켜주시면 어떤 원수의 공격도 이겨내고 승리할 힘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 시간 우리 청소년들과 자녀들을 이렇게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이겨낼 줄 믿습니다. 그 누가 여러분을 넘어뜨리고 해치려 들어도 하나님이 반드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일도 여러분을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런데 말입니다. 이 모든 복은 도대체 누가 주는 겁니까? 야곱이요? 야곱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꼭 기억하세요. 축복은 아버지 야곱이 하지만 그렇다고 복을 야곱이 주는 게 아닙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25~ 26절을 읽읍시다.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예, 복은 네 아버지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가 요셉을 도우실 것이고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그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요셉에게 모든 복을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꼭 기억하세요. 축복은 누가 한다? 야곱이다. 즉 우리 부모들이,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복을 빌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청소년들을, 우리 자녀들을 비난하거나 야단치지 말고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망할 놈” 하고 저주하면 진짜 망하고, 문제아라고 야단치면 그대로 문제아가 됩니다. 

하지만 희망을 말하고 복 받을 것이라고 축복하면 우리 자녀들, 우리 청소년들 그대로 축복 받고 잘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축복은 이렇게 부모가 하고 어른이 하지만 복은 누가 주신다?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바로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을, 내가 부모인 내가 책임진다? 아니란 말이에요. 청소년들을 우리 어른들이 책임진다? 아니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 어른들, 부모들은 야곱처럼 자녀들을, 청소년들을 마음껏 축복하고 희망을 말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말씀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 청소년들, 1318 세대들을 초청하고 우리 어른 세대들은 하나님 앞에서 이런 약속을 해야 합니다. “얘들아 걱정 마라, 우린 너희를 믿는다!” “얘들아 나는 못하지만 하나님이 너희를 책임져 주실 거야!” “얘들아 너희는 희망이야, 너희가 우리의 미래야, 그러니까 힘내라! 팍팍 밀어줄께!” 어른들, 부모님들 제가 하는 말 그대로 따라 하세요. “너희들은 반드시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팍팍! 밀어줄께!” 어른들이 바로 이런 마음을 품으면, 부모들이 이런 자세를 가지면 이 아이들 잘 됩니다. 반드시 잘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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