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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왼손잡이 에훗 (삿 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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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 에훗 (삿 3:12-2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12)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13)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 (1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15)

에훗이 길이가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그의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16)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매우 비둔한 자였더라 (17)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18)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아뢰려 하나이다 하니 
왕이 명령하여 조용히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19)

에훗이 그에게로 들어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이르되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 (20)
에훗이 왼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허벅지 위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21)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 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의 몸에서 빼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겼더라 (22)
<사사기 3장 12~22절>

할렐루야! 
주안에서 평안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구를 따라다니는지, 누구의 안내를 받는지 매우 중요합니다.
낯선 길을 갈 때, 새로운 일을 할 때 
누구의 안내를, 누구의 지시를 받으시는지요?

지난 4월 28일 영국 선덜랜드에서 열린 한 마라톤 대회
5천 명이 넘는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대회 중반쯤 한 선수가 1등으로 치고 나갔고
1등과 2위 그룹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한 지점에 서있던 경기 진행요원이 
1등 선수가 지나간 한참 뒤에 나타난 2등 선수에게
잘못된 길을 알려주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2등 선수가 잘못된 코스로 접어들자 2등을 뒤따르던 3등도, 
3등을 뒤따르던 4등도 모두 잘못된 코스로 달렸고
결국 2위부터 꼴등까지, 약 5천 명의 참가자들이 
모두 규정보다 264m를 덜 달렸다는 이유로 실격 처리 됐습니다.
진행 요원의 실수로 실격된 참가자들은 억울했겠지만
경기가 종료된 후에 선수들이 달린 코스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최 측은 선수들을 실격시키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고
대신 다음 번 대회에 참가할 때 
참가비를 25% 감면해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영국 일간지 Daily mail 홈페이지 내 기사 (2013. 5. 11)>

알지 못하는 길을 갈 때 누구를 보며 가느냐 …
누구의 인도를 받느냐 …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제까지 살았던 날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그 누구도 살아본 적이 없는 새날입니다.
그렇다면 전혀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 
누구에게 길을 물을 것이며, 누구의 안내를 받을 것입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요 14:6)을 따르는 삶에 
중단함이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 잘 생각해 보고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품고 있는 이 생각을 하나님이 좋아하실까?
하나님 마음에 드는 것일까? 
어떤 때는 내가 품고 있는 생각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착각하고 
함부로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여행 가 본 중에 몇 번을 가도 힘이 드는 곳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입니다. 
멀기도 하지만 차로 이동하고 음식을 먹는 일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 교회를 짓고 봉헌식을 하기 위해 가려면 
가급적 장로님들을 모시고 가려고 합니다. 
장로님들이 아프리카에 직접 가보셔야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번 여름에 신징기르교회 봉헌식을 하고 
선교사 숙소 건축이 거의 완공전이라서 
내년부터는 아프리카에 그만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몇몇 분들에게 
내년엔 가까운 곳으로 건축을 하면 좋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솔직히 좀 꾀가 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네 마음대로 하냐’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난주에 어떤 분이 무명으로 
아프리카와 아이티에 교회를 건축해달라고 헌금을 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회개를 했습니다.
우리가 선교를 한다고 하면서도, 교회를 건축하고 
선교사 숙소를 짓는 일들을 하는데 
내가 하고 싶다고 하고, 내가 힘들다고 안하겠다고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도록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에 품은 생각, 내가 입으로 내뱉는 말소리가 
하나님 마음에 드는 것인가를 생각하며 오늘을 살며
여러분의 평생의 삶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강함’

현대 사회를 ‘경쟁 사회’라고 표현합니다.
“같은 목적에 대하여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룬다”는 뜻대로 
이 시대는 기업과 기업이 더 많은 소득을 얻으려고 겨룹니다.
기업 안에서는 동료 간에 더 빠른 승진 … 
더 많은 연봉을 얻기 위해 경쟁합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경쟁하고,
경쟁하는 자녀에게 더 많은 힘이 되어 주고자
부모들은 삶의 현장에서 다른 부모들과 경쟁합니다.

경쟁 사회에서는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인정받습니다.
반면에 경쟁에서 뒤쳐지는 사람은 잊혀 지게 됩니다.

운동 경기에서 가장 먼저 들어온 선수가 있으면
가장 늦게 들어오는 선수도 있기 마련입니다.
교실에는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있으면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도 있습니다.

물론, 세상 어떤 분야에도 약자와 강자가 공존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강해지기를 원하는 세상 …
모두가 다 1등을 좋아하고 
모두가 다 앞서가고 위에 있고 싶어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투고 미워하고 짓밟고 헐뜯고 … 하는 것이
경쟁 사회에서 보게 되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공정한 경쟁은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필요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경쟁에서 이기려고만 하는 우리 삶에는
수많은 문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문 사사기에도 
경쟁에서 이긴 강자와 경쟁에서 뒤쳐진 약자가 등장합니다.
본문 3장 14절 말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삿 3:14)

이스라엘 자손이 악을 행하자
하나님은 모압 왕 에글론으로 하여금
암몬과 아말렉 자손의 힘까지 모아서
요단 서편 여리고 지역(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하도록 하셨습니다. (삿 3:13)
그 후로 18년 동안 
이스라엘은 모압 왕 에글론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에글론의 강함은 그 자신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12절을 봅니다. 
“…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삿 3:12)

에글론이 강함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있었던 까닭은 …
이스라엘을 징벌하시려는 하나님께서 
에글론을 강하게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은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힘도 …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 왕의 권력까지도 …
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것을 말해 줍니다.
모압 왕 에글론이 가졌던 강함 …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강한 군대 …
싸움에서 승리한 전략 … 그 모든 것들이 
결국 하나님의 허락 때문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의 왕 에글론을 강하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회복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위해 에글론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강한 힘에는 …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경쟁력에는 …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셨다면, 지혜, 능력, 돈을 주셨다면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힘이 세십니까? 센 힘으로 무엇을 하십니까?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배우고 알고 있는 지식이 많습니까?
그렇다면 그것 가지고 무엇을 하며 사십니까?
다른 사람보다 돈을 더 많이 버셨습니까? 
번 돈으로 무엇을 하십니까?

우리 교인 중에 어떤 분이 제게 
‘목사님, 저는 길바닥에 돈이 굴러가는 것이 보여요’라고 
하시기에 무엇이 보이냐고 물었더니 
돈이 될 만한 아이템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돈을 못 버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그분이 재벌은 아닙니다. 
저는 그 분을 만난 후로 길거리를 다니면서 아무리 봐도
제 눈엔 동전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돈을 잘 버는 재능이 있나봅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보다 가진 재능이 있거나, 
많은 유산을 받으셨다면 그것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냥 주신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숨은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수고로 … 내 노력으로 … 내 힘으로 …
내가 … 내가 … 내가 … 잘나서 
내가 강해졌다고 내가 잘되었다고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강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를 강하게 하실 수 있는 분,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약함’

모압 왕 에글론의 지배를 받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든 삶을 살게 되자 그들은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사사 에훗을 그들의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

사사기 3장 15절 말씀에 에훗에 대해 설명이 되어있는데
그의 독특한 특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삿 3:15)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 어른들은 왼손잡이를 정상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식사 때 왼손으로 수저를 사용하거나 
글씨를 왼손으로 쓰면 꾸중을 듣고 고쳐야 했습니다.
왼손잡이는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양손을 다 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릴 때 가만히 두었으면 왼손잡이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세밀한 것은 왼손으로 해야 합니다.
돈을 세는 것도 왼손으로 해야 맞습니다.
힘도 왼손이 더 센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급적 오른손으로 하려는 편입니다.
왼손에 대한 거부감에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성경 여러 부분에서 오른편은 좋은 쪽으로 묘사되지만
왼편은 나쁜 쪽으로 여겨집니다.
성경사전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에는
‘오른손잡이’라는 단어는 있지만
‘왼손잡이’를 표현하는 단어는 따로 없답니다.
대신 ‘오른손이 불구가 된 사람’이라는 뜻의 단어를
‘왼손잡이’라는 말로 사용합니다.
그만큼 고대 이스라엘에서부터 왼손잡이는 무엇인가 부족한 사람 …
정상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비전 성경 사전』 (서울: 두란노, 2006), pp. 989~990. 참조>

그리고 전도서 10장 2절에는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전 10:2)라고 했습니다.

물론, 상징적인 표현이지만 
오른쪽은 지혜로운 자와 가까운 방향이고
왼쪽은 어리석은 자를 연상시킨다는 것이 
성경에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사 에훗은 그 당시 ‘비정상적’으로 간주되던 왼손잡이였습니다.
일부 성경신학자들은 ‘에훗의 오른 손이 병들었거나 
혹은 다른 불편함이 있어서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 없는 장애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에훗에게 왼손잡이는 약점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왼손잡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불러 쓰신 것입니다.

오른손잡이가 대부분이었던 당시에 사람들은 
오른손으로 사용하기 편하도록 칼은 왼편에 차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때문에 에글론 왕의 신하들은 
왕을 만나러 가는 에훗의 왼쪽 허벅지만 주목하면서
무기를 숨겼는지 살폈을 것입니다.
혹은 에훗의 오른손에 눈에 띄는 장애가 있었다면
애초부터 무기 같은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에훗을 통과시켰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에훗은 오른편에 칼이 숨긴 채
모압 왕 에글론과 독대할 수 있었고
적장 에글론의 목숨을 빼앗는 일에 성공했습니다.
에훗의 왼손잡이라는 약점이
이스라엘 민족을 자유롭게 하는 출발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분명, 사람들의 눈에 에훗은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약점이 있는 사람, 왼손잡이였습니다. 
하지만 에훗은 바로 그 약점 때문에 쓰임 받았고
모압 왕 에글론을 포함하여 모압 사람 일 만 명을 물리치는 
사사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삿 3:29) 

우리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과 마주쳤을 때 우리는 연약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순간 지켜주심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그 지점이 하나님의 시작점이 되고, 
내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순간이 됩니다.

그러므로 약함은 부끄러워만 할 일이기도 하지만
부끄러움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걱정할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연약함이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고
겸손해 질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에게는 물의 비중과 신체의 비중을 일치시켜서
물속에서 쉽게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부레’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다에 살면서 부레가 없는 생명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상어입니다. 
이론적으로 부레가 없는 바다 생명체는 금방 가라앉기 때문에
잠시라도 움직임을 멈추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상어는 태어나면서부터 쉬지 않고 움직여야만 합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 
부레가 없다는 약점 때문에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는 상어는
바다 동물 중 가장 힘이 세고 빠른 강자(强者)가 됩니다.
<장쓰안, 『평상심』 (서울: 샘터사, 2008), p. 80. 참조.>

여러분은 남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 사람도 가지고 있는데 … 저 사람도 가지고 있는데 …’
라고 생각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그것이 없기 때문에 더 몸부림치고 더 기도하고 
더 하나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쓴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큰 복을 허락하실 줄로 믿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도전을 멈추지 않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모험하게 만들고 노력을 멈추지 않게 만듭니다.
그래서 약점이 있다는 것 때문에 강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왼손을 뻗쳐 …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두 정상적이고 깨끗한 사람만 쓰시지는 않으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애써 부정합니다.
남의 탓을 하거나 감추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약점이 있는 사람들을 선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점이 있는 사람들을 위대한 지도자로 사용하셨습니다.
- 축복의 사람 야곱은 어렸을 때 
축복을 받기 위해 부모와 형을 속였던 사람입니다. (창 27:24)
- 불같은 성격을 가졌던 모세는 살인 전과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출 2:12)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 기드온은 각종 콤플렉스로 인해
하나님마저 불신했습니다. (삿 6:13, 15, 17)
- 다윗에게는 부하의 아내를 빼앗았던
도덕적 결함이 있었습니다. (삼하 11:4)
- 라합은 기생 출신이었습니다. (수 2:1)
- 룻은 이방사람이었습니다. (룻 1:4)
- 베드로는 평범한 어부였기에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제자였습니다.
-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스스로 큰 자라 여겼던 교만이 가득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붙들어 쓰셨습니다.

세상에서도 부족함을 극복한 사람은 많습니다.
- 에디슨은 청각장애인이었으나 축음기를 발명했습니다.
- 크로스비는 시각장애인이었으나 찬송가 작사가였고,
-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다리가 불편하였으나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 베토벤은 많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서 위대한 음악을 창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그들을 사용하셨고
그들은 다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부족한 그들을 보고 쓰신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그들에게 하나님의 힘이 함께 하셔서
그들이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결코 사람의 결점에 의해 제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쓰실 것인가, 그렇지 않으실 것인가는 
나의 약점으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마음에 드는가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흔한 질그릇에도 보배를 담으시는 분이시며 (고후 4:7)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 약한 자를 택하시는 분입니다. (고전 1:27)

강한 사람은 힘이 세거나 능력이 뛰어나거나 
돈이 많은 사람이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강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모님의 간증을 듣게 되었는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가훈을 말씀해 주시는데 
제가 그 말을 듣고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함께 따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고, 사람 앞에서 웃자”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울면 사람 앞에서 울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신앙생활 하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눈물을 흘려도 하나님 앞에서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 앞에서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강하게 하실 분은 … 하나님이십니다.
약점이 있는 사람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강해질 수 있습니다.
부족함이 많아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다른 데로 갔지만 
한때 우리 교회 교역자로 있던 분이 큰 실수를 했습니다.
초췌한 얼굴로 제 방에 찾아왔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 모습에 저는 일어나라고 했고, 무릎은 하나님 앞에 꿇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사람 앞에 무릎 꿇을 일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능력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가진 게 많고, 아는 것이 많고, 똑똑하다고, 
받은 것이 많다고 자부하십니까?
그러나 한순간 무너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것을 가졌다면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부족함이 많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갖지 못했다고
단점이 있고, 약점이 있다고 해서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 단점과 함께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행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가정을 위해 … 일터를 위해 … 무슨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하고 계십니까?

세상에서 땀 흘려 열심히 살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까?
그럴 때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사람 앞에서 웃을 수 있고, 무릎 꿇을 일이 없는 것입니다.

사사 에훗이 민족을 구하기 위해
에글론을 향해 뻗었던 손은 보통 사람이 사용하는 오른손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장애라고 여겼던 약한 손, 인정받지 못하는 손 … 
하찮게 여겨지던 왼손이었습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강함을 통해 …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내 약점까지도 쓰임 받는다면
감사하며 쓰임 받기를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나 같은 사람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나는 부레도 없는데 … 나는 왼손잡이인데 …’라고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고 사람 앞에서 웃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어야 사람 앞에서 무릎 꿇을 일이 없습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이것이 없습니다. 저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없는 것에 너무나도 쉽게 절망합니다.
우리는 쉽게 내가 없는 것 때문에, 
내가 부족한 것 때문에 탄식합니다.
하나님, 연약한 우리들, 어리석은 우리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약하지만 … 부족하지만 … 없는 게 많지만 …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강하게 쓰임 받을 수 있음을 
확신하며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울고 사람 앞에서 웃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어야 사람 앞에서 무릎 꿇을 일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무릎 꿇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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