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을 잊은 자들아, 속히 깨달으라! (시 50:1-23)

첨부 1


하나님을 잊은 자들아, 속히 깨달으라! (시 50:1-23)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입니다.

중학생이 되어 여드름이 났을 때, 유난히 조숙한 친구가 “기성아, 너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구나!”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아니야!” 지금 생각하니, 누구나 다 좋아하는 이성이 생길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여드름이 무서운 것입니다. 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니 말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여드름이 더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우리가 지은 죄가 드러나는 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정말 두려운 것은 우리 마음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까지 심판주로 임하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5절 “나를 믿는 성도들을 나에게로 불러모아라....”

하나님의 백성인데, 하나님께서 왜, 그리고 무엇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사에 대한 것입니다. 
5절 “... 희생제물로 나와 언약을 세운 사람들을 나에게로 불러모아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는 희생 제사로 언약이 맺어져 있는 관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죄인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대로 짐승의 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희생 제사가 바로 드려졌는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제물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8절 나는 너희가 바친 제물을 두고 너희를 탓하지는 않는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번도 거르지 않고 제사를 드린 것에 대하여도 인정하셨습니다.
8절 ...너희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나에게 늘 번제를 바쳤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렸느냐 하는 것입니다.

14절 감사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의 서원한 것을 가장 높으신 분에게 갚아라

정말 마음에 감사함이 있어서 제자를 드리는 자에게 엄청난 약속을 하셨습니다.
15절 그리고 재난의 날에 나를 불러라. 내가 너를 구하여 줄 것이요, 너는 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생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을 때, 솔직히 제물에 마음이 있으셨겠습니까? 9-13절까지 말합니다. 온 세상의 모든 짐승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 무슨 제물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마음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하냐?” 하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예배하는 나는 정말 감사하는가?’

하나님께서는 마음은 없는데, 겉으로만 잘하는 자를 너무나 가증히 여기십니다.
그들을 악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6절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말씀하신다....

악인이라고 해서 흉악한 조폭들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오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이고 선지자였습니다.
16절 ... "너희는 어찌하여 감히 내 법도를 전파하며, 내 언약의 말을 감히 너의 입에서 읊조리느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알고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는 마음이었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17절 너희는 내 교훈을 역겨워하고, 나의 말을 귓전으로 흘리고 말았다. 
18-20절 도둑을 만나면 곧 그와 친구가 되고, 간음하는 자를 만나면 곧 그와 한 패거리가 되었다. 입으로 악을 꾸며내고, 혀로는 거짓을 지어내었다. 동기간의 허물을 들추어내어 말하고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동기들을 비방하였다. 

이런 사람을 종교인이라고 말하고 종교인이 가장 마음이 강팍한 사람입니다. 
조폭이나 방탕한 사람은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그리고 죄를 짓고 삽니다. 어쩌면 정직한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인은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은밀히 죄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다 보시고 계십니다.

21절 이 모든 일을 너희가 저질렀어도 내가 잠잠했더니, 너희는 틀림없이, '내가' 너희와 같은 줄로 잘못 생각하는구나. 이제 나는 너희를 호되게 꾸짖고, 너희의 눈 앞에 너희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 보이겠다. 

시편 기자는 바로 이것을 탄식합니다! 성령의 탄식입니다.
22절 하나님을 잊은 자들아, 이 모든 것을 깨달아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을 때에 구하여 줄 자가 없을까 두렵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두려운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2-23절에 보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던” 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주님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을 하면서도 불법을 행하다니요! 실제로는 하나님을 안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고 사는 자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한번도 불편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괴로워하였습니다. 주님을 실제로는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여행을 떠났는데 누구와 함께 같은 방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신경이 쓰이고 불편하겠습니까? 불편하지만 은밀한 죄를 짓지는 못합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신다는 것은 항상 주님을 기억하고 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법이 그치게 됩니다.

불평과 원망이 죄인 것도 하나님을 잊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광야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기적을 경험하고 살았고 매일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렇게 지키고 인도하셨으니 그들처럼 편안하고 확실하고 충분한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끊임없이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엄청난 감사 제목이 있어도 저주받을 만큼 불평 원망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불평, 원망하는 자는 명심해야 합니다. 정말 불평하고 원망할 일인가?
채찍 맞는 주님의 등을 보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르시는 예수님을 보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고도 불평하고 원망할 것이 있을까요?
십자가의 예수님을 진정 믿게 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감사할 뿐입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오죽 하면 하나님께서 “너, 정말 감사하느냐?” 하고 물으셨겠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 마음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23절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나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니,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에게, 내가 나의 구원을 보여 주겠다."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는 우리에게 정말 있어야 하는 것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예배드리는 지금, 마음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어릴 때 학교에서 이따금 소지품 검사를 하였습니다.
당황하게 됩니다. 별의 별 일들이 일어납니다. 담배나 음란물을 가져온 아이는 그것을 다른 아이 가방에 집어 넣어 버리기도 합니다. 난리도 아닙니다.
예배드리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영성일기를 쓸 때 가장 힘든 고비가 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감추고 사는 것이 잠시 편할지 모르니 결국은 큰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마음에 있지 말아야 할 것이 드러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저 자신이 목사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영성일기를 쓰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쓰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 때 생각하였습니다. 사람들 앞에 공개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하나님 앞에서는 어떻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일기를 쓰면서 매일 회개하고 또 회개하였습니다. 그래야 공개할 일기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를 변화시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드러낼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주님께 드러내어 보면 주님을 왜 빛이라고 하셨는지 알게 됩니다. 마음을 드러낸 것 뿐인데, 마음이 바뀌어 버립니다. 그러면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람도 달리 보이고 형편도 달리 보이고 세상이 온통 달라집니다.

유정옥 사모님, [울고있는 자와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는 책 다음으로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강추합니다.

“묵직한 우편물 한 통을 받았다. 다섯 장이나 쓴 그 펀지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난도질하는 글이 쓰여 있었다. 글이나 말이 비수라더니 나는 그 글에 온 몸을 찔려 피를 흘리다 쓰러질 것 같았다. 그 글들은 한 마디로 ‘너는 노숙인들을 빙자하여 네 배를 불리는 나쁜 도둑’이라는 글이었다. 편지를 다 읽어갈 무렵 내 손은 나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피를 거꾸로 솟아 오르게 히는 능욕이었다.” 

사모님은 너무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하나하나 반론을 적었답니다. 억울하고 기가 막혀 손이 다 떨렸답니다. 말할 수 없는 모멸감에 치를 떨면서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반론을 써 보니 열다섯 장이 되었답니다.
일반 편지 봉투에 넣을 수 없어 서류 봉투에 넣고 우체국으로 달려가 봉투를 풀로 붙이고 우표만 붙이면 되는데 주님께서 조용히 물으시더랍니다.
‘딸아! 그렇게 할 말이 많더냐?’  

순간 멈칫하며 두툼한 봉투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또 말씀하셨답니다.‘나는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느냐?’‘그러나 나는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도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 자서 말없이 오열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썼던 열다섯 장의 편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하였는데, 나는 바울이 겪었던 궁핍도 박해도 곤고도 스스로 다 겪을 수 있다고 자신해왔다. 그런데 그 가운데 박혀 있던 능욕이라는 것 앞에서 감당할 수 없이 분노가 폭발하였던 것이다. 
주님은 가장 자부심을 가졌던 일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릴 때도, 변명할 말이 많아 수백 장에 달할 때에도 그 능욕을 참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그 능욕을 기뻐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능욕이라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보름 쯤 지났을 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사모님! 제가 사모님께 죽을 죄를 지었어요." 그는 울먹이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지금 나의 가장 신실한 동역자로 내 곁에 와 있다. 바울은 그의 동역자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 내놓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나에게 있어서 브리스가와 아굴라같은 동역자가 되었다. 
그 날 내가 열다섯 장의 편지를 부쳤다면 나는 그를 영원히 잃었을 것이고 어쩌면 지금 나를 가장 치명적으로 공격히는 적장이 되어 있을 것이다.“
 

에배드릴 때만 감사할 수 없습니다. 항상 범사에 감사한 사람만이 예배드릴 때도 감사함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는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 된 사람에게만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감사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감사가 안되는 것은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마음 깊이 두려운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에 하나님은 약한 자, 미련한 자, 없는 자, 천한 자, 멸시받는 자를 택하여 쓰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정말 믿으면 감사가 나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성적이 나쁘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는데도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면 약한 것입니다. 
이 약한 것을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감사한 것입니다, 주님만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약해지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약해지면 교회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역이 중단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에게도 두 딸들에게도 불행이 닥쳐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바라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약해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두려움도 컸습니다. 그 때는 주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제가 약해지는 것이 제가 사는 것이고 진정 주 예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약한 것은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제 약함을 절실히 깨닫기에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다 보니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전에는 `좋다` `싫다`로 반응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형편이든지 그 형편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찾으려 합니다. 그러니 모든 형편이 다 감사한 일입니다.

김원호장로님이 쓰신 [권리포기]에 보면 한 목사님이 목회자 DTS를 마치고 울산에서 교회를 개척하셨는데, 교회가 부흥해서 전도사 한 분을 초빙해서 함께 사역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아침에 설교를 하러 강대상에 올라섰는데 성도들이 몇 명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알아보니 함께 사역하던 전도사가 교인들을 다 데리고 다른 곳에 가서 교회 개척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배신감, 분노, 스트레스를 받은 이 목사는 간에 염증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이 목사님이 하나님께 소리쳤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배신할 수가 있습니까?" 그때 하나님이‘네가 강단에서 설교한 내용을 삶 속에서 부인하고 사니까 성도들이 갈등하다가 떠난 것이다. 전도사가 데리고 나간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 목사님이 꼬꾸라졌습니다.
 
목사님이 이 일로 크게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배신해도 베드로가 부인해도 간에 염증이 생지지 않으셨다. 깨달았습니다. 정말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시 목회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러 오신 여러분, 마음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잊고 살므로 생긴 모든 마음을 십자가 앞에 드러내십시오. 빛이 비취게 하십시오. 어두운 것은 빛 가운데서 사라지고, 병든 것은 보혈로 씻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일어날 때까지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길이고 진정한 축복의 열쇠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바라보니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고후 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우리도 약한 것을 감사하는데서 약한 것을 자랑하게 되기를 기도합시다.
(유기성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