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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생활은 우선순위가 확실해야 합니다 (마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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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은 우선순위가 확실해야 합니다 (마 6:33) 
 
성경에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던 사람들의 한결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순위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혼란스러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가진 문제 중에 하나는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입니다. 신학자 존 네이스빗은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하면 삶의 목표에서 멀어진다.”고 말했습니다. 

또 찰스 휴멜은 “우리들이 삶에서 만나는 온갖 딜레마들은 시간과 물질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일의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함에서 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정말 안타까운 글을 읽었습니다. 어느 큰 저택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 집 여주인은 겁에 질려 홀로 뛰쳐나왔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갑자기 다시 불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귀중품이 들어있는 보석 상자를 안고 나오면서 “아, 이제 살았다. 내 귀고리, 내목걸이, 내 팔찌, 모든 보석을 다 찾았다. 참으로 다행이다”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사람들이 “저기 보세요. 아이들이 불이 난 집의 창가에 있어요.”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그녀는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리고 “내 아이들! 내 아이들!”하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아이들이 아직도 불 속에 있음을 알고는 발을 동동 구르며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었지만, 이미 불은 아이들의 생명을 삼켜버렸습니다. 그 여인은 물질에 눈이 어두워 보석 상자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자녀들의 귀중한 생명을 건지지 못한 것입니다. 그 여인의 우선순위는 자식들의 안전보다 보물상자였습니다.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우선순위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 우선, 하나님 제일주의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무엇보다 누구보다 하나님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생활에는 하나님 제일주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감람나무 추수할 때 감람나무 위로 올라가서 가장 위에 부분 중에 잘 익은 열매를 땁니다. 그리고 틀에 넣습니다. 그리고 시계를 보면서 5분 정도 흐르는 기름만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기름만 하나님께 드립니다. 왜냐하면 그 기름이 제일 좋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의 모습입니다. 
   
또 회당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회당에 갈 때에는 뛰어 가고 집에 갈 때에는 천천히 간답니다. 회당 갈 때 천천히 가면 하나님이 오해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집에 갈 때 빨리 가면 하나님이 오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회당에 갈 때는 빨리 가고 집에 갈 때는 천천히 간다고 합니다. 하나님 중심주의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하나님 중심, 하나님 제일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설교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선순위에 대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예배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시고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단을 쌓았습니다. 단을 쌓았다는 말은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정말 예배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건은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드렸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 하나님의 눈을 속이고 드리는 척만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정말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번제가 어떤 제사입니까? 제물을 죽이고 각을 떠서 불살라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예배에 대한 우선순위가 확실했던 것입니다. 자식보다 예배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요즘은 고3이 되면 입시준비 때문에 예배를 빼먹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부모가 교회 직분자인데도 고3인 자녀를 예배보다는 공부하는 쪽으로 돌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은 본문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본문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를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공대 다니던 시절에 은혜를 받아서 대학원을 신학교로 결정했습니다. 그 때 신앙에 관한 논문을 하나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신앙생활이 학교성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교회마다 고3생만 되면 대학 진학 때문에 학생회 모임이나 주일 예배도 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논문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대학교 4학년 때 교생실습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직접 설문지를 돌리며 논문을 썼습니다. 대상학교는 4개의 고등학교였고 설문지 문항은 30문항이었습니다. 

그런데 설문조사를 하고 난 후에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는데 학급 및 학년 석차 각 1등에서 10등 안에 있는 학생들 중에 믿음을 갖고 있다는 학생들이 85%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중에 75%가 주일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으며 학생예배는 65% 이상이 참석하고 있다는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예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성적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만나주시고 예배자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요즘은 성도들이 예배를 빼먹는 것을 가볍게 생각합니다. 조금만 바쁜 일이 있어도 예배를 빼먹고, 조금만 피곤해도 예배를 빼먹습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과의 약속인데 사람들 만나느라고 예배를 빼먹습니다. 목사인 저로서는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지금은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신부단장할 때입니다. 환난시대를 잘 통과하기 위하여 믿음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강건하게 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는데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말세지말에 일어나는 현상 중에 하나가 예배의 약화입니다. 히 10:25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기서 그 날이 가깝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세상 종말과 주님의 재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날이 가까워질수록 모이기를 폐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가 약해진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말세의 징조입니다. 
   
예배를 빼먹는 것은 습관입니다. 그런 습관은 작은 타협에서 시작됩니다. 예배를 빼먹을 만한 핑계는 아마도 5만 가지도 넘을 것입니다. 핑계를 찾으려고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니엘이 왕의 진미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했던 것처럼 예배의 성공자가 되기로 뜻을 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중심의 생활은 예배제일주의 생활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사명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닭과 개와 돼지를 불러서 “너희들은 이제부터 인간 세상에 내려가서 1년 동안 사람들을 위하여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보고 봉사하다가 올라오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년 후에 닭과 개와 돼지는 하나님께 돌아와서 보고를 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닭이 입을 열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세상에 가보니 세상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기는 하는데 시간을 몰라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마다 ‘꼬끼오!’하며 새벽을 알려 주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기쁘셔서 닭에게 벼슬을 주었습니다. 그 후부터 닭은 상으로 받게 된 벼슬을 항상 자랑하며 흔들고 다녔습니다. 

두 번째 개가 와서 하나님께 보고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세상에 가보니 도적이 많아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만 이상한 사람이 보여도 ‘멍멍!’하며 힘껏 짖음으로 집을 지켜 주었습니다.” 

개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3개의 다리를 가진 개에게 다리 하나를 더 주었습니다. 다리 하나를 선물로 받은 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네 번째 다리가 너무나도 귀하기 때문에 용변을 볼 때, 하나님으로부터 하사받은 다리에 더러운 것이 묻지 않도록 꼭 다리 하나를 들고 용변을 보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돼지가 와서 하나님께 보고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세상에 가보니 세상에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먹고 자고 놀다가 왔습니다.” 

돼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하나님께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저 돼지의 주둥이를 단칼에 치라” 

그리하여 한 천사가 하나님의 명대로 돼지주둥이를 칼로 잘라버려, 돼지의 주둥이가 없어지고, 코와 입이 붙어 있어 먹을 때마다 숨이 막혀 곤란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돼지는 자신의 코와 입이 붙어 있어 어려움을 겪다가 한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돼지 머리를 놓으면 복 받는다고 헛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리석은 인간들이 너나없이 복을 받겠다고 돼지 목을 잘라놓고 제사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웃으라고 만든 유머이지만, 이 유머가 가르쳐주고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닭이나 개와 돼지 같은 동물들에게도 각각의 목적과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인생은 사명을 발견하고 사명대로 사는 인생입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성공적으로 보이지 못할지라도 자신의 사명을 알고 사명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복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적으로는 대단한 인생을 사는 것 같아도 자기의 사명을 따라 살지 못하고 있다면 결코 복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크고 위대한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큰일보다 자신의 부르심에 충성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과학자의 길을 가는 것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합니까? 대통령의 길을 가는 것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합니까?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대통령의 길이 더 위대해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각에는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더 위대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조국 이스라엘로부터 대통령직을 제의 받았습니다. “국회는 만장일치로 당신을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봉사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을 가르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길이 대통령의 길이 아니라 물리학자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는 사명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착하게 사는 것보다 사명을 따라 사는 것이 더 올바른 삶입니다. 어느 곳에 등대를 지키는 등대지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좋았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좋은 관계 유지하며 등대지기의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동네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집에 기름이 떨어졌다고 등대지기에게 기름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착한 등대지기는 동네 사람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기름을 빌려주었습니다. 또 그렇게 몇 차례 기름을 빌려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바람이 몹시 불던 밤에 그만 등대에 기름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 폭풍 속에서 헤매던 배 한척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암초에 부딪혀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착한 등대지기, 그는 착한 사람일까요 악한 사람일까요? 이렇게 보면 착하게 사는 것보다 사명을 따라 사는 것이 더 올바른 삶입니다. 
   
바울에게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 사명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보다 사명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행 20:24을 보면 바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저와 여러분은 사명에 우선순위를 두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곽선희 목사님이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에 너무나 사이가 좋아서 그 의가 좋기로 소문난 두 형제가 있었는데, 어떤 날 둘이 함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가다가 발에 채이는 돌을 보니, 특별한 돌 같이 보여서 그것을 동생이 주워서 보았더니 금덩어리였습니다. 주먹만한 금덩어리를 얻었습니다. 이 노다지를 얻고 그는 너무 좋아서 기뻐 할 때 형님이 “그것 나 좀 보자.” 형님이 들고 이리 저리 만져보면서 하는 말이 “자, 이만하면 우리는 이제 고생은 면한 것 같다. 어쩌면 우리 둘 다 한 평생 먹고 살만큼 재산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랬습니다. 

동생이 불안해서 “그거 나 좀 봅시다.” 동생에게 넘어갔습니다. 좀 있다 형이 “나 좀 보자” 이 금덩어리는 동생에게 왔다가 형에게 왔다가 했습니다. 계속 길을 가다가 강을 만났습니다. 나루를 건너게 될 때에 나룻배를 타고 건너가다가 형이 그 금덩어리를 물 속에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동생은 펄쩍 뛰면서 “아니! 그건 내가 주워서 내 것인데, 왜 형이 물에다 던집니까?”라고 따졌습니다. 그 때 형이 말했습니다. “그 금덩어리가 내! 손에 있을 때에는 욕심이 생기고, 네 손에 있을 때에는 미움이 생기더라. 우리 둘이 서로를 생각하고 볼 때마다 서로 사랑했는데, 그 금덩어리가 우리 사이를 이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물에 넣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형은 동생과의 화목을 위하여 금덩어리를 포기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는 십일조와 헌물입니다. 말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께 돌아갑니까?”라고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십일조와 헌금은 하나님의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했다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십일조와 헌금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물질 중에 십일조와 헌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수입이 생기면 먼저 하나님께 드릴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예의인 것입니다. 우리 어릴 때는 먹을 것이 생기면 무조건 아버님 것을 먼저 떼고 나머지를 형제들이 먹었습니다. 식사를 할 때도 먼저 어른이 숟가락을 드신 후에 밥을 먹었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이 그런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른 지출보다 먼저 하나님의 것을 구별해 드려야 합니다.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십일조에는 축복의 약속이 있습니다. 말 3:10-12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당장은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길게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십일조 생활을 하면 결국은 복이 되는 것입니다. 
   
한 집사님이 처남과 함께 작은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가 작으니 수입이 적었지만 그래도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내고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러자 처남이 말했습니다. “형님, 나도 예수를 믿지만 참 어리석고 답답하네요. 넉넉할 때 말이지, 이렇게 어려운데 무슨 십일조 떼고 감사 떼고 그래요? 우리는 넉넉할 때까지 십일조 안 해요. 하나님이 우리 사정 알 거예요.” 

그래도 집사님은 부요하든 가난하든 상관없이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손대면 안 된다고 하면서 계속 십일조와 감사 헌금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회사는 점점 더 어려워져서 5년간 더 내리막길을 걸어 결국은 두 사람이 갈라섰습니다. 갈라서자마자 집사님의 사업이 기적적으로 잘 되어 큰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처남은 망해서 집사님이 처남 가족을 다 돌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것 중에 십일조 말고 또 하나는 주일입니다. 주의 날은 나의 날이 아니라 주님의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보내는 날이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보내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날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합니다. 일하고 노는 날이 아니라 주님을 예배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물질 중에 하나님의 것은 십일조와 헌금입니다. 날 중에 하나님의 것은 주일입니다. 이 두 가지는 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4. 주의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 일이라고 하면 큰 일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쉽게 집안일을 놓고 생각해 봅시다. 아버지가 밖에 나가서 돈을 버는 것도 어머니가 집안일이고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것도 집안일입니다. 또 자녀들이 가사노동을 하는 어머니를 돕는 것도 어떤 일이든지 집안일을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개는 것, 어지럽혀져 있는 물건 정리하는 것, 설거지,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일 등은 큰 일이 아니지만 집안일이고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주는 일입니다. 자녀가 왜 그런 일을 해야 합니까?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자식의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일도 동일합니다. 꼭 큰일만이 주의 일이 아닙니다. 청소, 주방일, 교사, 찬양단, 대표기도, 차량운행 등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그런 일들도 다 주의 일이요 교회 일입니다. 교회 일을 하다보면 내가 이런 일을 왜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고 때로는 그 일이 무의미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주의 종들의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주의 일을 너무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대표기도를 놓고 생각해 봅시다. 대표기도는 예배순서 중에 하나입니다. 예배순서는 어떤 순서가 되었든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표기를 순서를 맡아놓고도 자기가 기도순서를 맡았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순서를 맡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예배 참석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순서를 가볍게 생각해서인지는 몰라도 예배순서자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복장을 입고 강단에 올라와서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주의 일이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할 영적인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작은 일이라고 하나님의 일을 소홀히 한다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작은 일로 여길만한 일에도 충성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는 하나님의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충성했던 분입니다. 그는 160개의 백화점을 소유했던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신 이유는 그가 작은 일에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큰일을 맡기신 것 같습니다. 
   
그에 관한 이야기 중에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대통령으로부터 장관직을 제의 받았습니다. “당신의 탁월한 경영솜씨를 발휘해 체신부장관직을 맡아주시오” 

워너메이커는 한 마디로 거절했습니다. “나는 교회학교 교사라는 일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만약 장관을 맡아서 내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이것은 정말 큰일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교회학교 교사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때서야 그는 장관직을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 어린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한번은 기자들이 워너메이커에게 장관직이 교회학교 교사직만도 못하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교회학교 교사직은 내가 평생 동안 해야 할 본업입니다. 그러나 장관직은 한 두 해 하다가 말 부업이지요” 

워너메이커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에 충실했던 사람입니다. 
   
우선순위는 자신의 중심의 외적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중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먼저 주의 나라와 주의 의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합당한 보상을 주십니다. 본문에서는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 모든 것은 먹는 것, 마시는 것, 그리고 입는 것을 말하는데 달리 말하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신다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고 먼저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시므로 이모든 것을 더하시는 복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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