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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망의 올무가 되는 욕심 (약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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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올무가 되는 욕심 (약 1:1-11)

야고보는 예수님이 동정녀 탄생하신 이후에 마리아가 약혼했던 요셉과 정식 결혼을 하고 낳은 네 아들 중 맏아들입니다. 마태복음 13장 55절에 보면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라며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를 쓴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어머니가 같은 동생이었지만 야고보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지도 못했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빈정대기도하고 좀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천지가 진동하고 햇빛이 흐리고 바위가 터지며 무덤이 열리고 죽었던 송장들이 살아서 일어나는 모습을 본 후 그는 제자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다른 동생들도 포함한 120명이 예수님의 분부하심을 따라 기도에 전혀 힘쓴 결과 그곳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성령에 붙들리고 이끌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믿음이 너무나 인격적이어서 생각이 건전하고 말이 진실되며 행동이 성실하고 충성스러웠습니다. 그는 그 시대에 예루살렘 교회 모든 사람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를 지도자로 세워서 예루살렘 교회 목회자로, 당회장으로 사역한 일도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그는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자신을 가장 낮은 종의 위치로 낮추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올바로 증거하고 전달하기 위해 아주 겸손한 신앙 인격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야고보가 2절에서 말하고 있는 형제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고 믿고 회개하게 하심을 따라 거듭난 심령들, 성령의 인치시고 인도하심을 따라 하늘소망을 목표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2절의 시험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페이라스 모스’라고 합니다. 이것은 비록 회개를 했고 죄를 용서받아서 성령을 모셨다 할지라도 죄악의 근성이 아직은 잠재되어 있으며 영영히 없어진 것이 아닌 상태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것을 미끼로 그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고 범죄하게 해서 다시 지옥으로 가게합니다. 이것은 내부적 압력 박해입니다. 내적으로 잠재된 욕망을 마귀가 교묘하게 이용하여 신앙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주는 시험, 영어로는 템테이션(유혹, Temptation)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시험은 외압에 의한 시험으로 예수님을 바로 믿고 더 잘 믿으려고 애를 쓰니까 마귀가 주변 사람들을 동원해서 신앙심을 빼앗아 지옥으로 떨어뜨리려 하고 여러 모양으로 핍박하고 행패와 억압, 심지어 죽음으로까지 위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2절 말씀에서는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저 순풍에 돛단 듯 아무 시련도 없이 천국을 향하여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환란과 시련, 행패와 고통, 핍박 등 여러가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심지어 옥에 갇히기도 하고 재산을 몰수당하고, 가족이 유리방황하게 되는 불행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야고보서 1장 3~4절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믿는 사람은 회개하고 진리로 거듭나서 성령을 파송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늘나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면 그 인생이 사는 목적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고 방법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기도로 구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으로 당하는 고통은 기뻐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내 믿음으로 하여금 이 세상 허욕을 완전히 포기하고 초월해서 하늘의 영원하고 신령한 내세소망을 목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시기를 원하셔서 세상 줄을 끊으라는 뜻입니다.

우리 신앙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온갖 유혹에 실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잦은 실족의 미끼는 돈, 명예, 권력, 성적유혹입니다. 
만약 우리가 마귀에게 속하여 있다면 왜 시험이 있겠습니까! 이것을 항상 생각하고 마귀로부터 온갖 시험이 오면 제일 먼저‘내가 마귀에게 소속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마귀가 미워하고 질투해서 나를 괴롭히는구나’하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자신의 영적 상태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인 것으로 감사하며 찬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5장 18~19절에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영적 소속을 분명히 하라는 말씀입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을 삼킬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온갖 환란과 고통을 당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마귀가 주는 시험을 믿음으로 타개(打開)하고 극복하며 기도로 승리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 앞에 엄청난 점수를 얻게 될 것입니다. 시험을 많이 치루고 그 모든 시험을 이겨내서 하나님 앞에 합격한 사람은 다른 시험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지혜가 부족한 사람들은 믿음이 엎치락뒤치락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시험을 당하게 되면 마귀가 만들어가는 상황에 집착하게 되고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낙심을 서둘러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신앙인이라면 마귀가 아무리 자신을 괴롭게 해도 하나님 앞에 기뻐하고 감사하게 여깁니다. 

그것은 자신이 마귀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기대와 선망의 자녀로 돋보이기 때문에 마귀가 시기질투해서 못살게 괴롭히고 시험한다고 깨닫는 영감적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구하라는 것입니다(약1:5). 그러면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하고 넉넉하게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9절의 ‘낮은 형제’란 이 세상 조건으로 가진 것이 없고 명분도 없고 지위, 지식, 기술도 돈도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즉 세상적으로는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을지라도 성령이 함께 계시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도하심을 받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면 비록 그 사람의 세상 조건이 보잘 것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세상 조건은 부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깨닫고 성령을 받아 하늘소망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물질을 맡기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그의 신앙 인격이 스스로 낮은 자리로 내려가서 자신이 가진 것으로 베풀고 구제하기를 힘쓰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적 지혜를 받은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에서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천국에서 하나님이 높이신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풀에 꽃과 같이 다 없어지고 말 것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육신이 원하는 본능적 욕구를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서 영생복락의 신령한 소망을 일깨워주는 영감적 지혜를 가지고 믿음으로 살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9~12절에 보면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사라질 것들에 종노릇을 하다가 지옥 가서 영원한 유황불에 시달리지 말고 영원한 영생을 취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진수(眞髓)입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6장 17절을 보면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장재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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