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진 부자는 순간이나 버린 부자는 영원하다 (마 19:23-29)

첨부 1


가진 부자는 순간이나 버린 부자는 영원하다 (마 19:23-29)

오늘은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부자라고 하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가난한 데 무슨 부자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에 대하여 알아 둘 것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부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자의 기준은 없습니다.

빌딩을 한 개 이상 가지면 부자인가요? 10억 이상 가지고 있으면 부자라고 누가 그러던 가요? 땅을 서울에서는 1000 평 이상, 농촌에서는 10,000 평 이상 가지면 부자라고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보다 못 가진 사람이 나를 보면 나는 부자란 말입니다.

나는 정말 가진 것이 없는 데 가난한 목회자들이 나를 보고 부러워하면서 부자라고 말합니다. 나는 가진 자에 비교하면 부자가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들에 비교하면 나는 확실히 부자입니다.  

넷 향기에서 이 영원 교수가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라야 부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강의하였습니다.

첫째는 본인이 살고 있는 집을 빼고 현금으로 10억을 가지고 있다면 나름대로 부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연봉이 2억이상되면 부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마음이 부자면 부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마음이 문제입니다.  

황상민 교수는 우리 나라 부자를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1. 배고픈 부자

먹어도 먹어도 또 먹으려는 사람은 배고픈 사람입니다. 돈을 벌고도 또 벌고 또 벌면서 돈만 벌려고 하지 쓰지 않는 사람은 배고픈 부자입니다. 항상 배가 고픈 사람처럼 먹으려고만 합니다.
  
2. 품격 부자

자기의 품위를 유지하는 데 신경을 쓰는 부자입니다. 고급 승용차를 탑니다. 고급 옷을 입습니다. 화려한 집을 꾸밉니다. 항상 자기가 부자인 것을 들어 내려고 돈을 풍성히 쓰는 부자가 있습니다.

3. 철없는 부자

내 돈 내가 쓰는 데 누가 무어라고 하느냐고 하듯이 물쓰듯이 씁니다. 유투브를 보니까 아랍 석유 부자는 자기 옆에 미녀 가수를 앉혀 놓고 노래를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돈을 뿌려 줍니다. 신나게 노래를 불러댑니다. 돈이 수북히 쌓이는 재미로 노래를 마음껏 부릅니다.

빌딩위에서 10,000원 짜리 돈을 한 상자 뿌립니다. 사람들이 돈을 주우려고 미친 듯이 모이는 모습을 보면서 통쾌감을 느낍니다. 사람들을 가지고 노는 듯한 쾌감을 가집니다. 철없는 부자입니다.
  
4. 존경받는 부자

남에게 존경받는 곳에 돈을 씁니다. 누가 보아도 존경받게 행동합니다. 돈있고, 존경이 따르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우리 모두는 부자인 데 존경받는 부자로 삶이 바뀌기를 바라며 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제자들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주님이 대답하여 주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그 때 베드로가 다시 물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그 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가진 부자는 순간이나 버린 부자는 영원합니다.
성경에 부자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실 때 부자 청년이 따라와서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율법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 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러나 그 청년은 부자였습니다. 재물이 많았습니다. 재물을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심하며 돌아 갔습니다.

그리고 그 후 영원히 그 부자 청년은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쯤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가진 부자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반대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삭개오가 등장합니다. 그도 부자였습니다. 세리장이었습니다. 지위도 있었고 돈도 많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뽕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 눈에 띄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삭개오를 너무나 잘 압니다.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삭개오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 오시는 날까지 삭개오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가진 부자는 순간이나 버린 부자는 영원합니다  

예루살렘에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갑자기 장례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였습니다. 자기가 묻히려던 무덤을 주님에게 드렸습니다. 그 무덤은 세계인이 찾는 세계 제일 유명한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주님에게 내놓으니까 영원합니다.

불교 이야기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

부처님의 제자중에 교범바제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들에 곡식이 무르익는 가을 결실의 순간이었습니다. 노랗게 익은 조가 너무나 좋아 손으로 어루만졌습니다. 좁살 세 알이 손에 묻었습니다. 순간 스님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버리자니 아까웠습니다. 먹자니 도둑질이었습니다. 그러나 버리는 것보다 먹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먹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였습니다.

“남의 곡식 세 알을 거냥 먹었느니 갚아야 한다.”

그는 소로 변하여 그 주인 밭에 3일 동안 있었습니다. 주인은 자기 밭에 소가 안 가고 있으니까 끌어다가 일을 시켰습니다. 소가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주인이 부자가 되었습니다. 3년을 소로 봉사하였습니다. 3년을 채운 날이었습니다. 소가 사람의 음성으로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내일 저녁에 손님 500명이 올 것입니다. 식사 준비를 하십시오.”

정말 그 다음 날 500명 손님이 밀어 닥쳤습니다. 칼과 창 그리고 무기를 든 도둑들이었습니다. 시장하였던 도둑들은 차려놓은 500명 분 식사를 정신없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500명이 올 줄 어떻게 알았는가?”

주인이 말했습니다.
“사실 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소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도둑들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소가?”

도둑들은 순간 외양간으로 갔습니다. 순간 교범바제 스님은 소의 탈을 벗으면서 도둑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교제 교범바제다. 3년 전 들판에서 조를 만졌다. 3알이 묻어 왔다. 버릴 수 없어서 먹고 소가 되어 3년 동안 이 집 농사를 지어 주었다. 부자가 되게 하였다. 그런데 그대들은 어떤가? 창과 칼로 남의 재물을 마음대로 강탈하였다. 몇 백번 소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래도 빚을 다 갚을 수 없다.”

이 말에 감동을 받은 도둑들은 창과 칼을 버리고 모두 스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가진 부자는 순간이나 버린 부자는 영원합니다
남보다 많이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실제로 두 사람을 비교하여 보려고 합니다. 이미 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나는 미국 캘리포니이 북쪽에 있는 미국의 신문왕 허스트 성 관광을 하여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신문사를 34개나 운영하였던 초인간이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신문왕이었습니다. 지금부터 10년 전에 15억 평을 샀습니다. 여름 피서지를 건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8년 동안 건설하였습니다. 여름 3-4 달 피서를 위하여 그렇게 많은 돈을 썼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서 불황이 닥쳐 오자 완성을 하지 못 하였습니다. 

관광하는 데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부지런히 보아야 합니다. 수영장이 1천평입니다. 대리석과 금으로 된 타일이 즐비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품, 미술품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집을 다 완성하지 못 하고 죽었습니다.

만일 그가 그 많은 돈을 사회 사업에 기부하였더라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 되었을 가요? 고아원, 양노원같은 복지 시설을 지었다면 수 천개를 설립하였습니다. 자기가 들어가 보지도 못 하는 큰 별장은 오늘날 시에서 운영하는 관광지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반대의 부자가 있습니다.

나는 지난번 미국에 가서 스탠포드 대학을 둘러 보았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큰 학교이고 미국에서 명문대학입니다. 그 학교를 세우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리랜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는 미국 상원의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외아들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잘 생기고 수재이고 외아들인 그는 스탠포드의 전부였습니다.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같았습니다. 장례를 치루고 난 밤에 그 아들이 꿈에 생생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하나님 곁에 있어요. 저 대신 청년들을 도와주세요.” 꿈에서 깨어난 그는 외쳤습니다.

“아들도 살아 있고 하나님도 살아 계시구나!”

그래서 청년들이 공부하는 학교를 만들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재산을 모두 기부하여 만든 학교가 스텐포드 대학입니다. 그리고 고학생들을 모두 불러 장학금을 주어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가 죽었습니다.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내 재산에 100원짜리 동전 하나 남기지 말고 모두 청년 교육에 사용하라.”
가진 부자는 순간이나 버린 부자는 영원합니다. 왜 버린 부자는 영원한가요?
  

1. 하나님이 기억하는 사람이 되기에 영원합니다.

솔로몬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 19:17)   

부자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었다면 하나님이 꾸시는 것이고 하나님이 갚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버리는 부자는 영원하여 집니다.

어느 부자가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책망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믿지도 않았다. 그렇게 물질이 많으면서도 남에게 준 적이 없다. 지옥으로 가라.”

그 때 부자가 말했습니다.
“저 한번 거지에게 500원을 준 것이 기억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행위록을 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거지에게 500원을 준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천사에게 말했습니다.
“저 부자에게 500원을 주어서 지옥으로 보내라.”


어느 음식점에서 되어진 이야기입니다.

손님들이 여기 저기 테이블에서 삽겹살을 구워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배가 고파서 축 늘어진 거지가 동냥하러 들어 왔습니다. 주인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영업을 방해하지 말고 빨리 나가요.”

모두의 시선이 거지에게 모아졌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일어나더니 거지를 아무도 앉아있지 않은 테이블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이 분에게 달라고 하는 만큼 주세요. 내가 지불하겠습니다.”  

버린 부자가 영원하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여 주시고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가진 부자는 순간이나 버린 부자는 영원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포기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위하여 영원한 것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물질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억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기억을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물질을 포기한 부자는 하나님이 영원히 기억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부자처럼 영원하지 않은 물질 때문에 근심하며 돌아가 영원한 하나님을 포기한 삶은 그 곳에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것을 위하여 중요하지 않은 것을 포기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 것을 위하여 땅의 것을 포기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땅의 것을 위하여 하늘의 것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벌써 30년이 지난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한 분만 보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해외여행이 힘든 30년 전이었습니다. 모처럼 목사님 13분 내외 26명이 동남아 여행을 4박 5일 하였습니다. 지금은 여행의 노하우가 쌓여서 공동 경비를 미리 계산하여 다 받습니다. 그 때는 여행 노하우가 없어서 무엇에 얼마나 들지 몰라서 공동 경비를 그 날 그 날 걷어서 사용하였습니다. 목사님 한 분이 공동 경비를 걷자고 하면 비난을 하면서 한 푼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동경비로 산 물을 제일 먼저 받아 마십니다. 공동 경비로 산 과일도 안 주면 화를 냈습니다. 공동 경비로 들어가는 곳에 들어갈 때에는 먼저 들어 갔습니다. 쇼핑할 때 보면 제일 나중에 나오면서 제일 많이 사서 들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면 아는 데 돈에 어두워서 그런 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같이 갔던 목사님들은 그 목사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을 보기만 하면 그 생각이 떠오릅니다. 기껏해야 20만원 정도 안 내고 30년 동안 그 목사님은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버린 부자는 영원합니다. 
  

2. 버린 것이 모두 하나님께 쌓이기에 영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 6:20)   

버린 부자는 영원하다는 말은 버린 것이 아니라 준 것입니다. 포기한 것입니다. 그 물질은 모두 하늘 나라 하나님 창고에 들어가 보관되어 있기에 영원합니다. 그 곳에는 도적이 구멍을 뚫을 수 없습니다. 좀이나 동록같은 벌레가 먹지도 못 합니다. 이 말씀은 영원하다는 말씀입니다.

버린 부자는 영원합니다.  

중국 춘추 전국 시대에 맹상군(盟嘗君) 제후가 살고 있었습니다. 지위도 높았지만 굉장히 부자였습니다. 어느 생일날 기분이 너무나 좋아서 큰 잔치를 벌렸습니다. 산해진미가 쉴 사이없이 대접되었습니다. 술판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손님들이 왔는 지 그들이 가지고 온 선물이 창고 몇 개에 그득하였습니다.

흥이 한창 돋우어져 있을 때 맹상군은 술잔을 높이 들고 외쳤습니다.
“좋다. 정말 좋다. 이렇게 좋은 날 나를 슬프게 할 사람이 있겠는가? 나를 슬프게 할 사람이 있다면 후한 상을 주리라.”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때 눈먼 장님이 기타같은 악기인 앵금을 가지고 나와서 말했습니다.
“제가 제후님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맹상군을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래. 한번 나를 슬프게 하여 보거라.”

장님은 앵금으로 처음에는 천상의 소리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나 조금 후 지옥에서 나는 고통소리같이 아픈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조금 후 애간장이 타는 것같은 애처로운 소리를 냈습니다. 모두가 집중하고 있을 때 장님은 애절한 음성으로 노래를 앵금에 맞추어 노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나니
세상의 모든 일 뜬 구름과 같구나.
분묘를 만들고 사람들이 흩어진 후면
적적한 산속에 달은 황혼이어라.“  

노래가 끝나자 말자 앵금 줄을 세게 당기자 툭 끊어졌습니다. 맹상군은 이 때 통곡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맹상군은 자기 집에 큰 식당을 만들었습니다. 아침마다 3천명에게 밥을 먹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온 나라 거지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3천명이 밥을 먹는 소리가 20리 밖에서까지 들렸습니다.

맹상군은 자기 부를 온통 거지들에게 주다가 죽었습니다.

  

그에게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오고 있습니다. 거지중에 맹상군의 부인을 사모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맹상군에게 일렀습니다. 거지 주제에 감히 맹상군 부인을 사모한다고 건방지기 짝이 없으니 죽이라고 건의하였습니다.

그러나 맹상군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말했습니다.

"서로 좋아하여 사모의 정을 품는 것은 인지상정이니 그대로 두고 절대 입 밖에 내지 마시오."

일 년 정도 지났습니다. 맹상군은 자기 부인을 사모하는 자를 불러 말했습니다. 

"그대가 우리 집에서 산 지가 벌써 일년이군요. 그런데도 당신에게 높은 자리가 나지 않아 주지 못해 미안하오. 그런데 옆에 있는 위나라 고위층을 잘 알고 있소. 그에게 부탁하여 놓았으니 그 곳으로 가서 그를 만나시오.“

드디어 그는 위나라로 가서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나라와 위나라 사이가 안 좋아졌습니다. 위군이 제나라 공격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이 때 그 사람이 위나라 왕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제가 듣건대 제나라와 위나라는 서로 침략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었습니다. 지금 사소한 감정으로 제나라를 공격하시는 것은 선조의 맹약을 어기고 맹상군을 속이는 일입니다. 부디 제나라에 대한 감정을 푸십시오. 만약 제 말을 들어주시지 않으신다면 제가 불초해서 그런 것으로 알고 당장 제 목의 피를 내어 전하의 옷깃에 뿌리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위왕 마음이 녹아졌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포기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맹상군이 말했습니다.

"맹상군은 과연 훌륭하다. 화를 바꾸어 공으로 만들었구나.“

그는 중국에 영원히 남는 제후가 되었습니다.

버린 부자는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창고에게는 하나님을 위하여 드려진 물질만 보관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움켜쥐고 있던 물질은 결코 하나님의 창고에 들어가지 못 하고 사라지고 말기 때문에 순간입니다.
  

나는 서론에서 네 종류의 부자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배고픈 부자, 품격 부자, 철없는 부자 그리고 존경받는 부자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부자의 모델 바나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나바는 부자였습니다.

초대 교회가 은혜를 받고 유무상통할 때였습니다. 바나바의 본명은 요셉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자기 밭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사도들에게 헌금하였습니다. 부동산을 팔아 헌금할 정도로 물질적 헌신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 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4;36-37)  

초대 교회 문서를 보면 바나바는 땅부자였습니다. 특별히 예루살렘 근교에 묘지 땅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무덤부자>였습니다. 그는 이 땅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사람이었습니다. 물질을 헌신함으로 신앙이 시작되었습니다.

물질을 헌신한 사람에게는 물질의 사람이 됩니다. 후에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행 11;27-30)  

물질을 헌신하니까 물질을 사용할 일이 있을 때 바나바의 손을 사용하였습니다. 꼭 심는 대로 거둡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니까 쓸 일이 있으면 늘 하나님께서 바나바의 손에 채워주셨습니다.

존경받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가진 부자는 순간이지만 버린 부자는 영원한 것을 바나바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문호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