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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레데에서의 목회 (딛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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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데에서의 목회 (딛 1:5-16)  

디도는 사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바울의 목회 서신을 받는 수신자로서 사도행전에 나오지 않는 디도는 갈2:3을 볼 때 헬라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디모데는 유대인과 헬라인의 혈통을 가진 혼혈아였다면 디도는 이방인이었다. 

그런데 그 디도를 향해 참 아들이라 하였다. 얼마나 정이 가는 표현인가? 그리고 디도는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이라 하였으니 이 믿음은 이방인이지만 유대인을 거듭나게 한 믿음과 똑같은 일치의 믿음임을 알게 해준다.

바울은 디도를 신뢰했다. 디도에게 잘못된 교인을 향한 책임과 해야 될 목회 사명을 맡겼다. 특별히 고린도후서에 보면 디도의 이름이 9번이나 나오고 있으며 바울은 고린도에 보내는 편지를 디도에게 부탁한다. 디도는 또 그레데에서 목회를 하였다. 

그때 받은 편지가 디도서이고 디도서는 간단히 말해 그리스도인의 의무, 즉 교회와 가정 그리고 세상에서의 의무를 잘할 것을 권면받고 있는 책이다. 디도서는 디모데전후서 뒤편에 숨겨진 듯 있어서 이 말씀이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으나 제도화되는 교회의 목회와 그 목회의 주의사항을 엿보는데 있어서 아주 유익한 말씀이다.   

그러면 그레데에 남겨 둔 디도의 사역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서는 몇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1. 남은 일을 정리하는 일이다.

딛1: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남은 일’이란 어떤 일을 하다가 그 일을 다 하지 못해서 그 나머지를 마져 하려는 것으로 읽히기 쉽지만 그런 뜻이 아니다. 영어 성경으로 보면 (RSV) ‘흠이 있는 것을 고치라’는 것이다. 흠이라는 것은 고쳐서 완전한 사람을 만들라는 것이 아니다.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딛2:14) 

본래 그레데인들은 어떠했는가? 지중해 남쪽에 위치한 이 섬은 길이가 250Km, 폭은 11~56m에 이르는 섬으로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이 섬 사람들의 품성은 좋지 않았다. 

딛1:12을 보라.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이 선지자는 누군지 모른다. 고대 교부들은 이 선지자를 시인 에피메니데스(Epimenides)라고 하였는데 중요한 것은 “이 증언이 참되다”고 바울도 동의한 것이다. 

이곳 그레데에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난 것은 분명하지 않지만 행2:11을 보면 오순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예루살렘까지 왔다가 마가의 다락방 경험을 목격한 이들 중의 하나인 듯 하다. 성령의 역사를 기이하고 놀라워하며 당황하며 바라본 사람들, 자신들의 언어로 들려지는 성령의 말하게 하시는 방언의 은사를 통해서 그레데인들에게 그 분이 옮겨붙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레데인의 모습은 꾸짖음 받기에 합당한 모습이었다. 악한 짐승이라는 말 속에 먹기만 탐하고 정욕적인 삶을 사는 그림이 보여진다. 그러므로 디도의 사역,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이것을 고치라는 것이다.

딛1:13을 보라. “네가 그들을 엄히 꾸짖으라 이는 그들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하게 하고...” 믿음을 온전케 하기 위해 디도는 고치고 바꾸고 새로운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 세우기를 해야 했던 것이다. 

딛1:16을 보라.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그리스도인의 무능이 여기 있다. 하나님에 대하여 입술로는 인정한다. 그러나 행위는 하나님 없는 자와 똑같다. 디도는 이런 그리스도인의 이중적 삶을 고쳐야 한다. 말은 그리스도인인데, 행동은 넌그리스도인인 이 삶을 고쳐야 할 흠, 바꿔야할 흠으로 보고 그레데에 머문 것이다. 

교회의 목회란 쉬운 것이 아니다.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사람을 일치시켜야 하겠기에 힘든 사역이다.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목회자의 가르침을 듣고 성경공부에 나온다. 나 자신의 묵상과 기도, 여러 가지로 자신의 껍데기 신앙을 고치고 성숙해가는데 초점을 맞추려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말과 행동도 따로 놀고 내 안에 짐승 같은 탐욕들이 올라오기가 태반이다. 말만 그럴 듯 하게 늘어놓고 뒤에서 딴짓을 한다. 선한 일을 하지 못하는 성도된 우리들은 말과 행동이 일치된 예수님과 너무도 거리가 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말도 Yes로 순종했고 행위도 Yes로 순종했다. 오직 예수님은 순종하고 순종하셨다. 목회가 정말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게 하므로 흠을 고쳐서 목회자와 성도 모두 선한 일을 하는데 말과 행위가 일치된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디도는 이 언행일치의 사역을 위해 그레데에 머문 것이다.
  

2. 각 성에 지도자들을 세우는 일이다.

딛1:5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그런데 딛1:7에 보면 감독의 자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디도가 해야 할 일은 장로를 세우고 감독을 세우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각 성에 지도자를 세워 교회를 돌보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장로(presbuteros)와 감독(epskopos)이란 단어는 같은 사람에 대한 호칭을 뜻한다. 지도자에 대한 호칭이 다른 것이다. 

행20:17, 28, 벧전5:1~2을 보라. 바울은 장로를 부르기 위해 사람을 보냈고 그들을 부를 때 감독이라 불렀다. 베드로도 양무리를 치라, 즉 감독으로 장로들을 불렀던 것이다. 

장로란 단어인 presbuteros는 유대적 뿌리를 갖고 있으며 교회의 목회에 연장자란 말이다. 감독이란 단어인 epskopos는 헬라적 뿌리를 갖고 있으며 목회자의 사역 중 감독하는 측면을 나타낸 말이다. 즉 전자는 위엄을 나타내며 후자는 기능을 나타낸다. 그런 의미로 같은 사람에게 장로로 또는 감독으로 칭한 것이므로 교회 제도가 생겨난 이후에 등장한 감독, 장로, 집사의 별개 개념으로 봐서는 안된다. 디도서는 2세기 편지가 아니고 1세기 편지이기 때문이다.

디도는 교회를 이끌 지도자를 세워야 했다. 각 성마다, 마을의 가정마다 지도자가 세워져야 책망할 자를 책망하고 교회가 세상에 책망을 받지 않도록 세우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자 장로, 감독으로 세워질 이들의 자질은 이렇다. 

딛1:6~9 “책망할 것이 없고”로 시작하여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사랑만 주는 자가 아니다. 때론 책망을 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본인이 스스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 여기서 책망할 것이 없다는 것은 완전한 사람이어야 함을 뜻하지 않는다. 여기서 사용된 단어인 아넹클레토스(?ν?γκλητο?)란 비난 받을 일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일하는 지도자들, 오늘날로 말해 목회자, 장로, 권사들은 수치스러운 일로 손가락질 당할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평판이 중요한 것이다. 딛1:6을 보라. 그 비난 받지 않는 삶의 모습이란 이렇다.

① 가정 생활 - 가정 돌봄이 잘 되어야 한다.

딛1:6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고 하였다. 가정에 있어서 책임을 잘 지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교회를 돌볼 수 있다는 말이다. 자녀를 잘 돌보고 방탕을 모르는 가정 목회를 해야 교회 지도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② 청지기 정신을 가진 생활 ? 섬김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

딛1:7에서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품성이 온전히 예수님께 붙들려 청지기, 교회를 지키고 돌보고 세우는 스튜어드(steward)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지도자는 하나님의 청지기 즉 하나님의 머슴이다. 고집도 내려놓고 분냄도 내려놓고 절제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 시대 청지기직은 시간과 물질 관리에 집중된다. 시간과 물질 관리의 기본이 주일 성수와 십일조 드리는 생활이다. 안식의 시간을 바쁜 시간 속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 소득 가운데 1/10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되돌리는 것, 이것이 되는 사람은 비난을 받지 않고 칭찬을 듣는 지도자의 모습이 된다.  

③ 말씀 준수 생활 ? 영성이 개발되어야 한다.

딛1: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말씀을 믿지 못하고 말씀을 내 맘대로 가감하면 안된다. 어떤 상황, 환경 중에도 오직 성령, 오직 말씀에 대해 그대로 지켜야 한다. 말씀을 지키기 위해 지사충성(至死忠誠),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요 감독이다.
  

3.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이다.

디도의 목회 현장에도 이단들이 있었다. 딛1:14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는 것이 디도의 책임이었다. 그리고 딛1:10을 보면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았다. 

이런 자들은 딛1:11을 보면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렸다. 이것을 보고만 있으면 안된다. 딛1:11 “그들의 입을 막을 것이라” 바른 권면으로 교훈하고 또는 꾸짖고 책망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소유케 하는 것, 그것이 교회를 위한 디도의 책임이었다.   

건강한 믿음으로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디도를 그레데에 머물게 한 것이다. 바울의 아들로서 믿음의 아버지인 바울의 편지를 받아들고 디도는 이 세 가지 책임과 목회 앞에서 최선을 다했다. 디도는 바울에게서 배우고 본 그대로 충성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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