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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리더 여호수아 (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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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리더 여호수아 (수 1:1-9)

 금년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25명이 졸업했습니다. 다니던 학교를 떠나 새로운 학교나 직장으로 떠나는 졸업생들의 마음이 어떨까요?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기대감을 가진 분들이 있을 겁니다. 반면에 현재의 익숙함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간다는 것에 대하여 불안해 하거나 아직도 자신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졸업생들이 가지는 느낌을 지금부터 3400년 전 모세가 떠나고 새로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가나안을 정복해야 하는 출애굽 제2세대도 가졌을 것입니다.   

이번에 졸업하는 분들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동안 공부 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부모님들도 여러분들을 후원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졸업’하면 배우기를 마친다는 뜻이 있는데 영어 단어 graduation이란 단어에 시작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졸업함으로 한 단계를 마치지만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합니다. 

출애굽이라고 번역되는 exodus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 번째는 떠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00년 간 종살이 하였습니다. 심한 노역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세운 언약을 기억하시고 모세를 세워 그들로 하여금 애굽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Exodus의 두 번째 의미는 떠나기는 떠나되 갈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떠나면서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을 소망 중에 바라보았습니다. 때로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그들의 시선은 가나안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세한 전력을 가진 팀이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 상식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상을 뒤엎고 극적으로 이긴 팀을 신데렐라 팀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성경에 보니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강대국들을 대항하여 싸워 이기고 그들의 땅을 차지한 민족이 있습니다. 히브리 민족입니다. 그 민족을 이끈 사람이 여호수아입니다. 

히브리어인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헬라어인 예수와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금년에 저희 교회의 표어가 “새 일을 행하리라”인데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들을 통하여 새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어떻게 세우시고 사용하시는지 살펴보고 각자에 적용하면서 졸업생들을 포함하여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세우십니다.

모세가 없는 이스라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에서 모세가 차지한 비중은 컸습니다. 신명기에서 모세를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신 34:10-12). 

그런데 모세는 가나안을 바로 눈앞에 두고 그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신명기 32장에 보면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모세가 신 광야에 있는 가데스의 므리바 샘에서 물이 터질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데서 믿음 없는 행동을 하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위대한 점은 비록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가나안 정복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지막까지 충실하게 수행했다는 점입니다. 

모세는 떠났으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기는 하나 모세가 없다고 하나님의 일이 중단되지 않습니다. 모세의 죽음으로 출애굽 시대가 끝났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여전히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과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줄을 잘 서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도자는 철저한 훈련과 준비를 통하여 만들어집니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 소속이요 애굽 출생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조력자이자 협력자로 무려 40년을 섬겼습니다. 여호수아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연단을 받고 난 후의 모세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난 모세, 영적으로 성숙해진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과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미 여러 차례 전쟁을 수행한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느비딤 골짜기에서 아멜렉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모세가 산위에서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결국 아론과 훌이 모세의 양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옆에서 잡아주었고 여호수아가 이끄는 민병대 수준의 이스라엘 군대는 강력한 아말렉 군대를 섬멸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또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가나안 정탐 이후 10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새도록 엎드려 통곡합니다. 백성들은 지도자 모세에게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고, 그들 사이에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여호수아는 백성들 가운데 서서 자기 옷을 찢으며 외쳤습니다. 

민 14:9,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 사건을 계기로 출애굽 세대 중에는 갈렙과 여호수아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또한 기도의 사람입니다. 여호수아의 깊은 영성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오랜 동안 모세를 시중들며 모세가 기도하고 하나님 섬기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실 때 여호수아만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산에 올라갔습니다(출 24:12). 

모세가 진으로 돌아온 후에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출 33:11). 

민 28:18-23에 보면 모세에게 안수를 받고 후계자로 임명됩니다.
    

여호수아에게 사명이 주어집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던 탁월한 지도자였지만 가나안을 차지하기는커녕 밟아보지도 못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모세의 시종이었던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못한 가나안 정복을 그의 시종이었던 여호수아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요?

1) 모세의 능력은 사실은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모세가 위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단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통로였습니다. 모세가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 계획을 포기하시거나 전면 수정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를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일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지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교만한 마음은 버려야 합니다. 사명을 주실 때 감사함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각자에게 다른 사명을 주십니다.

모세에게 주신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광야의 여정을 통하여 신앙훈련을 시키고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주신 사명은 모세의 뒤를 이어 출애굽 제2세대를 중심으로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누가 더 위대하고 누구의 사명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충실하기만 하면 됩니다. 선교사로, 교사로, 가정주부로, 사업가로, 학생으로 각자 삶의 현장에서 충성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어떤 사명을 주십니까?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2절). 모세의 죽음이 언급되자마자 바로 다음에 “이제 일어나 건너라”는 명령이 이어집니다. 모세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죽었다면 그를 따르던 백성은 당연히 의기소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일어나 건너라”고 명령하십니다. ‘일어나라’는 앉아 있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주저앉은 상태에 있는데 낙심의 상태, 불신앙의 상태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의뢰하고 믿음으로 일어서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갈 것을 명령하십니다. 출애굽 세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하다가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여호수아와 갈렙과 출애굽 당시 20세 이하였던 사람들과 광야에서 새로 태어나 자라난 광야 세대에게 하나님께서 동일한 말씀을 전하십니다. ‘가라’는 말씀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선택적인 사항이 아니라 꼭 해야 하는 필수적인 명령입니다.  


본문에서 언급하는 가나안 땅은 어떤 곳입니까? 

1)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이미 약속하신 땅입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3절) ‘주었다’가 히브리어로 완료형 동사를 사용하였습니다. 그 땅을 너희에게 이미 주었고 그리고 지금도 주어진 상태라는 것입니다. 언제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신 그때 이미 가나안 땅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창 13:14-15,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 17: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2)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땅이면서도 점령해야 할 땅입니다. 

“이미 그러나 아직” 이 표현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지만 그가 다시 올 때까지 아직 완성은 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미 주셨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워서 차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처음 받은 명령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몇 가지 약속을 주셨습니다.

1) 모세의 말대로 그들이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완벽한 작전이나 능력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가나안 땅을 밟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들이 밟는 곳을 다 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움직이기만 하면 모든 일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다고 합니다. 4절에는 이스라엘이 차지할 구체적 목표를 제시합니다. 광야와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그들의 영토가 된다고 합니다. 4절에 언급된 땅들은 여호수아 때가 아닌 솔로몬 때에 비로소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들어왔습니다.  

2)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한평생 그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5절). 이 임마누엘의 약속은 원래 모세에게 하셨던 것인데 이제 여호수아에게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성도들에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겠다는 것보다 귀한 약속은 없습니다. 

창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삼하 5: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마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으니라’는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3)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면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여호수아서의 서론에 해당되는 본문은 1절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명령과 약속입니다. 특히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은 세 번이나 반복되어 그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여호수아에게 백성들을 인도하여 가나안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마음에 근심과 염려가 있고 원망과 두려움이 있으면 결코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하여 먼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이 일을 맡기셨을 뿐 아니라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마음을 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리더십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 여호수아의 리더십을 인정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했는데 하면서 따지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리더십에 가장 큰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사실 여호수아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모세와 비교하면 할수록 더욱 작아지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시던 것같이 여호수아를 사용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9절) 나중에는 백성들의 입을 통하여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18절)하며 여호수아를 격려합니다. 우리 자신만 들여다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넉넉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명을 이루는 비결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는 말씀의 돌판인 율법을 직접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에게는 항상 율법을 가까이 하고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다 지켜 행하라고 합니다. 

출 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하나님은 이미 여호수아를 지목하여 그의 귀에 말씀을 외워 들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늘 율법을 가까이 하라는 것은 언제나 성경을 읽으라는 것입니다. 묵상을 하라는 것은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자신에게 적용할 때 살아있는 말씀이 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실천에 옮길 때 평탄하게 되고 형통하리라는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여호수아가 그 말씀대로 순종하였더니 가나안을 정복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기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될 때는 작은 것 하나라도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작은 순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9절에 보면 말씀을 가까이 하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씀합니다. 해도 되고 안 되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려면 

1) 목표가 분명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너희 발바닥이 닿는 곳은 어디든지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광야에서 뿐 아니라 애굽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족장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던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이후로부터 단 한 평의 땅도 영구히 차지하지 못했던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확정된 땅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벅차는 감격이겠습니까? 출애굽 2세대는 7년 동안 정복 전쟁을 하면서 때로 힘들고 고달플 때도 있었겠지만 늘 이 말씀으로 위로와 용기를 삼았을 것입니다. 다윗도 시 138편 8절에서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세가 인도할 때는 이적과 능력이 많이 나타났지만 이제 여호수아가 인도할 때부터 믿음이 더 강조됩니다. 모세가 출애굽한 백성을 이끌고 홍해 앞에 다다랐을 때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는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에 발을 들여 놓자 비로소 물이 말랐습니다. 이적이 먼저 일어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니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마 21:21).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권면합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롬 4:20) 합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한 출애굽 2세대는 믿음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붙들며 가나안 정복을 이루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이 율법책에 쓰인 대로, 모든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지금 싸움에 나아가는 장군에게 하나님께서는 전략을 가르쳐 주거나 무기를 주지 않으시고 엉뚱하게 율법을 지켜 행하라고 합니다. 얼핏 보면 전혀 상식에 맞지 않는 요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은 가나안 정복의 성격을 드러냅니다. 가나안 정복은 철저하게 믿음의 토대 위에서 싸우는 싸움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충성과 순종 속에서 이루어지는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유업으로 주신 것은 단지 그곳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백성답게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설교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 날마다 읽고 묵상하는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며 그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나의 이성적인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이루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 정복하지 못할 땅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가나안 땅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주신 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향하여 우리는 영적인 전투를 벌여야 합니다. 

우리가 점령해야 할 가나안 땅이 무엇입니까?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가나안 땅’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이미 그것을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땅을 점령하기 위하여 준비하며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그 목표를 이루실 것입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믿음으로 정복해야 할 그곳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여정을 가면서 각자에게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의 목표가 분명한가? 나는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가? 나는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기 원하는가?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리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각자에게 주신 가나안을 정복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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