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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원을 누리라 (벧전 1: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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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누리라 (벧전 1:22-25)  

영원을 누리는 게 어떤 것인가요? 영원하신 하나님과 한없이 큰 영원한 세상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좋은지 육신은 몰라요. 그래서 영원 이야기를 하면 다들 별 관심이 없어요. 그저 잠깐 있을 육신 좋은 것만 원합니다. 그러나 알고 맛을 본다면 세상 좋은 것은 뒤로 갑니다. 더 큰 세상 더 큰 능력이 오니까요. 

사람은 소원하는 대로 모양이 만들어집니다. 대개 잘 먹고 잘 사는 걸 기본으로 바래요. 그보다 높은 개념은 모르니 평생 거기 집중합니다. 이건 짐승 차원의 삶입니다. 그러나 영혼과 영적 세상을 알고 영원한 나를 알게 되면 달라집니다. 중 되라는 게 아닙니다. 거기 진짜 기쁨과 능력이 있어요. 먹고 사는 건 저절로 따라오고요. 

1. 영원을 사모하라 

사람은 이 땅에서의 삶만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창조될 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기본으로 내장되었어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3:11) 이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적 도약입니다. 돈보다 명예보다 사모해야 해요. 

그러나 대부분은 땅의 것만 사모합니다. 어떤 가난한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실제가 아니고 동화입니다.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 하나님께 원망했어요. 하나님이 미안했던지 하늘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소원을 세 가지 들어 줄테니 말해 봐라.” 부부가 의논했어요. 그러나 뭘 할지가 생각나지 않는 겁니다. 소원도 쉽지가 않아요. 

화로에 마주 앉아있는데 배가 출출해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할머니가 말합니다. “순대나 한 줄 있었으면.” 그러자 순대가 떨어지며 “한 가지 들어주었노라”합니다. 할아버지가 진노했어요. “이 할망구! 그 순대 코에 붙어라.” 그대로 됩니다. 아무리 떼려 해도 안되요. 할 수 없이 함께 말합니다. “순대가 코에서 떨어지게 하소서.” 

전 세계에 퍼져있는 이 동화에 진리가 있어요. 우리가 간절히 소원하는 게 다 이런 식이라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세 가지를 이렇게 소원합니다. “첫째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둘째, 더욱 많이 벌게 해주세요.” “셋째, 최고로 많이 벌게 해주세요.” 영원히 살도록 만들어진 우리가 육신의 것만 사모하니 그 수준도 안 되는 겁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차원으로 소원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1:12) 그는 자신의 날이 아주 짧은 것을 봅니다. 영원을 말할 수 없이 사모합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영원을 바라볼 수 있다면 땅에서는 당연히 잘되고도 남습니다. 내 속에 있는 그 소원을 항상 일으키세요. 


2. 말씀을 사모하라 

1960년대 우리나라는 방 하나에 온 가족이 살았습니다. 방 하나가 침실이요 거실이요 식당이기도 했습니다. 유태영박사가 덴마크에 가자 돼지들이 우리보다 잘 삽니다. 얼마나 깨끗한지 매일 샤워합니다. 화장실, 식당, 거실, 침실, 운동장, 모두가 다 나뉘어있어요. 영양식으로 잘 먹고 노는 데 얼마나 행복한지 부럽기만 합니다. 

문 앞에 돼지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혀 있어요. 그 밑에는 잡는 날자가 적혀있어요. 우리나라는 이제야 덴마크 돼지 수준입니다. 그러나 거기 돼지만도 못해요. 아무리 잘 먹어도 행복해할 줄 몰라요. 잘 해 줘도 감사가 없어요. 거기다가 각각 적힌 대로 잡는 날짜는 다가옵니다. 그 전에 바뀌지 않으면 돼지 수준으로 끝나고 말아요. 

돼지는 육신뿐이지만 인간에게는 영원과 이어지는 문이 있어요. 육신의 생각과 죄 로 막혔습니다. 그 문을 열기 위해 하나님이 오셨어요. 육신 되신 하나님 그 분이 영원을 품고 들어오십니다. 육신이 음식을 먹듯, 영혼은 말씀으로 그분을 먹습니다. 성찬식은 보이는 말씀이고요. 이것이 인간이 돼지를 벗어나 영원 얻는 길입니다. 

맛있는 음식처럼, 말씀 사모하세요. 다윗이 어떻게 돼지 수준에서 영적 존재로 되었나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세상 사람들은 우습게 봐요.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고전2:14) 돼지 수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10:35)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세상 사람들은 죄의 법, 죽음의 법에 눌려있어요. 그러나 신자는 생명의 법, 성령의 법으로 삽니다. 이 사실을 믿고 말씀 품으세요. 그러면 벌써 천국이 경험되기 시작합니다. 


3. 천국 누리기를 사모하라 

영원을 사모하고 말씀을 먹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와서 우리 안에 영으로 들어오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를 모신 사람은 하나님을 모셨고 구체적으로 천국과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최대한 누려야 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이것이 우리 정체입니다. 예수 곧 하나님과 신자는 줄기와 가치처럼 하나입니다. 예수는 길 진리 생명이요 구원이고 천국입니다. 그는 우리 안에 우리는 그의 안에 있어요.  

신자는 천국을 받았고 천국 안에 있습니다. 훗날 죽은 뒤의 일이 아닙니다. 현실이 아닌 것처럼 무관심하면 엄청난 손해입니다. 세상 좋은 것들을 많이 가져야 천국을 경험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죄만 더 집니다. 먼저 천국을 느껴야 세상의 좋은 것들을 천국 것처럼 누립니다. 천국이 모든 것에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하게 합니다. 

천국을 누리고 더 누리기 원하는 이는 성전을 사모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 . .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성전은 천국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천국, 지금부터 최대한 누리세요. 내가 이미 받은 천국으로 현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세요. 그럴수록 장차 올 천국이 더 풍성해집니다. 하나님 의지해 하나님 경배하고 찬양하세요. 그럴수록 더욱 삶은 천국 됩니다. 부자가 더 부자가 되듯 신자는 더욱 천국을 풍성하게 해야 합니다. 기도하세요. 영원과 말씀과 천국을 사모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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