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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참회록 (시 3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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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참회록 (시 32:1-11)


참회록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의 자서전이나 일대기는 대체로 삶의 자랑스러운 부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참회록은 삶의 부끄러운 부분에 대해서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으로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삶의 부끄러운 부분을 숨김없이 고백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참회록을 읽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고 또 많은 교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회록을 썼습니다. 그 중에서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의 참회록이 톨스토이의 참회록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습니다. 또한 성 어거스틴이 쓴 참회록도 기독교인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믿음을 버리고 방탕한 길로 방황하다가 다시금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위대한 신앙과 문학의 결합체라고 할 수 있는 어거스틴의 참회록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다윗이 슬픈 노래로 참회시를 썼습니다. 참회록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의 저자가 바로 다윗이라는 말입니다. 시편에는 참회시가 모두 일곱 편 수록되어 있는데 6편, 32편, 38편, 51편, 102편, 139편 그리고 143편입니다. 특히 오늘 봉독한 시편 32편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참회시가 바로 시편 51편입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와서 책망하자 그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한 시입니다. 때문에 시편 32편은 참회시이며 또한 응답 받은 기도에 대한 감사시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하여간 허물의 사함을 받고 죄가 가려졌을 때 다윗은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여기서 허물이란 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허물을 가벼운 실수 정도로 생각하지만 히브리어로 그 말은 진지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가벼운 실수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진지한 죄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허물의 사함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죄가 하나님 앞에서 문제가 되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죄는 화살이 과녁을 맞히지 못하고 빗나갔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도 죄이지만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도 또한 분명히 죄입니다. 바른 길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바른 길로 가지 않고 그릇된 길로 간 것이 어떻게 죄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죄를 가려 주셨습니다. 보이지 않도록 덮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물론 정죄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때문에 다윗은 진심으로 참회할 수밖에 없었으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지 않았을 때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가 하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그는 뼈가 쇠할 정도로 종일 신음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단순히 아픈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죄를 자복하지 않고 그 죄를 용서 받지 못한 사람은 그 몸에서 진액이 모두 빠져나가서 뼈가 부서지는 것과 같은 쓰라린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범죄자들이 도망을 다니다가 붙잡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중에는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피해를 준 경제 사범들도 있습니다. 또 그 중에는 살인이나 강간과 같은 흉악한 범죄자들도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죄를 짓고 숨어 지내다가 붙잡힌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두 다리를 쭉 펴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숨어 지낼 때보다 차라리 붙잡히고 나니까 마음이 편하다는 것 아닙니까? 

그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끝내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전쟁을 할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린 여호수아의 군대가 뜻밖에 아이 성 전투에서 패했습니다. 그들이 왜 패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아간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아간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야 할 물건을 도둑질하였습니다. 그런데 아간이 침묵했습니다. 자기 때문에 모두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자복하지 않았습니다. 

제비를 뽑아 범인을 찾겠다고 할 때에도 그는 숨어 있었습니다. 유다 지파가 뽑히고 이어서 세라 족속이 뽑혔습니다. 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입이 타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자복하지 않았고 자복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회개도 다 때가 있습니다. 결국 그는 무서운 심판을 받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허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다 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죄를 회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죄를 회개하지 않고 버티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기회를 놓치고 끝까지 버티다가 돌무더기 속에 묻히는 것으로 그 삶을 마감한다면 얼마나 불쌍하고 또 안타까운 일입니까?

1907년 1월 14일 평양 장대현 교회에 선교사, 목회자 그리고 인근 지역에서 온 개신교 교인 등 1,500여명이 모였습니다. 규모만 좀 컸을 뿐 다른 부흥 집회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선교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기도했습니다. “민족적 우월감에 사로 잡혀서 한국인을 무시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자 집회 분위기는 돌변했습니다. 

이어서 목회자들이 일어나 회개했습니다. “양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신자들도 한 사람씩 일어나 자신들의 죄를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아내를 구박하고 첩을 두었다고 자복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남의 돈을 갚지 않고 심지어 도둑질까지 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두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은 철저히 회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시인 윤동주가 쓴 시 가운데 “참회록”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로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러운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스물네 살의 젊은 시인은 욕된 현실에 맞서 싸우지 못하는 나약함 때문에 미래에 부끄러운 참회록을 쓰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자아 성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도와 그 성찰이 이 시에서는 거울을 닦는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시인은 한 줄의 참회록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길게 쓰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받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각자 나의 참회록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꼭 누구에게 보여 줄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겸손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나의 참회록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는 참으로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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