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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만 경외하는 사람들 (사 6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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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만 경외하는 사람들 (사 65:1-9)
    
오늘은 “하나님만 경외하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시게 된 직접적인 사건을 잘 아실 줄 압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집에 가서 이새의 여러 아들들 중에서 왕이 될 사람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처음으로 큰 아들 엘리압을 보았는데, 선지자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호와의 기름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선지자 사무엘에게 들려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에 사람들의 관점이나 생각과는 다릅니다. 사람들을 외모를 봅니다. 외모라고 하면 그야말로 외모입니다. 잘 생긴 얼굴과 키와 우람한 몸을 말합니다. 얼굴이 잘 생기고, 키가 크고 우람하게 생겼습니다. 사람은 겉이 잘 생겨야 안의 심성도 잘 생긴 줄 압니다. 


옛날 어느 수도원에 훌륭한 원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제자들 중에 한 아이를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볼품도 없고, 지능이 뛰어나지도 않은 아이였습니다. 그러니 다른 제자들의 불만이 컸습니다. 이에 수도원장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면 그 아이를 사랑하는 이유를 말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원장은 제자들에게 작은 새 한 마리씩을 주고는 사람이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해질 때까지 그 새들을 죽여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해질녘이 되자 제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하여 수도원 마당에는 죽은 새의 시체가 쌓였습니다. 

그런데 원장이 특별히 사랑하는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참 뒤 돌아온 아이의 손에는 작은 새가 그냥 산 채로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사람이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새를 죽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조용하고 으슥한 곳을 찾아보아도 하나님이 보고 계셨어요. 그래서 새를 죽일 수 없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었고,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 사람을 살펴볼 때에 사람들의 관점으로 사람을 보지 않고, 먼저 그 마음을 보고, 영혼을 보고 중심을 보시고 있습니다. 

잠22:27에는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새번역에서는 “주님은 사람의 영혼을 환히 비추시고,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살펴보신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진리의 빛으로 우리의 영혼을 환히 비추어주시고,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살펴보시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 세상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 중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맞는 사람,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만나기를 바라는 성도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사람들의 눈은 속이고 속마음을 감출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진실한 속마음을 잘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내십니다. 땅 속에 금은보화를 감추고 좋은 옷을 감추어두고 후에 꺼내어 잘 살겠다고 하는 아간과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찾아내시고 하나님이 드러내시니 숨길 수 없습니다. 감출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상태를 숨길 수도 없고, 감출 수도 없고, 포장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혹 속아 넘어갈 수 있지만, 하나님은 찾아내시고 들추어 만천하에 드러내시고 맙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님 앞에서 어디로 가서 피하고 숨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내려다보시고 있습니다. 

시139:1-2에 보면 “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면 하나님은 거기에 계십니다. 스올에 우리의 자리를 펼지라도 하나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하겠습니까? 미국으로 도망가면 죄가 묻히고 맙니까? 남미로 도망치면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제가 장신대 다닐 때에 전도사로 사역한 교회에 정말 유능한 안수집사가 있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의 신임 받고, 주일학교 부장이 되면서 온 성도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목사님도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그가 동향 사람이라고 얼마나 신임하던지, 그가 수많은 성도들의 돈을 빌리는데, 이자를 잘 갚아주고, 선이자 떼어 주면서 돈을 빌리고 그렇게 수억을 가로채고 누구도 모르게 사라졌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어려워집니까? 저는 그 집사님이 부장으로 있을 때에 제가 자라난 본교회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 교회에 오면서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 선교사를 파송하려고 하면서, 먼저 사전 답사 차 파라과이의 아순숀에 계시는 이병주장로님 댁에 가서 두 주간 있었습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에 우리 교단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을 만나고 선교지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숀으로 가는 비용을 아끼려고 비행기를 네 번이나 갈아타면서 가는데, 김포에서 일본 국적기인 아나 항공편으로 나리따 공항으로 가서 브라질항공기로 갈아타고, 미국 LA로, 다시 브라질의 상파울로로 가고 거기서 다시 파라과이 아순숀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1990년도에 30만원을 절약하는데, 지금 돈 150만원 정도의 가치는 있습니다. 일본에 도착하기 전에 여승무원이 저를 찾아와서 저와 똑같은 코스로 가시는 할아버지 부부가 계시는데, 꼭 모시고 가야 한다고 부탁합니다. 저도 초행길이고, 말로 통하지 않고 어떻게 갈아타야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30만원 교회 돈 아낀다고 상파울로까지 가는 대한항공이 있었는데, 여러 번 갈아타면서 가는데, 저를 따라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분들은 아순숀에서 사업하시는 따님네로 가는데, 먼저 간 아들을 결혼시키기 위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교회 권사님의 남편이 하시는 여행사에서 표를 구매하는데, 그 할아버지에게 우리교회의 목사님을 따라가시면 돈을 아낄 수 있다고 했답니다. 자세히 말씀드리지 못합니다만 속상하는 일도 많았지만, 37시간에 걸려서 정말 잘 모시고 갔습니다. 돌아오기 전에 그 부부의 초대를 받아 아순숀에 있는 그 따님 댁으로 식사하러 갔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그 돈을 떼어먹고 사라진 그 집사가 거기 한인교회의 장로가 되어 그 날 목사님과 함께 초대를 받아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돈 떼어먹고 사라진 그 사람이 저를 보고는 사색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천사의 얼굴로 변신하는데, 얼마나 반갑다고, 세상에 이런 타국에서 성목사님을 만났다고 얼싸안고 좋아하는지 정말 사람 못된 사람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사람은 속이고 숨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멀리 반대편으로 도망친 사람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역대하16:9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고 하감하시고 살펴보시고 있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향하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전심이란 ‘신실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주님을 찾기에 갈급해야 합니다. 

시42:1에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외쳤습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 11-12)고 하셨습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온 마음이란 우리의 마음을 다하는 것을 뜻합니다. 단순한 감정적인 면이 아니라, 전인적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을 찾아 만나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삼고,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고 하는 강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은 정말 귀한 말씀을 가지고 있는데, 선문답하는 것처럼 번역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새번역으로 보겠습니다. “나는 내 백성의 기도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내 백성은 아직도 내게 요청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나를 찾으면, 언제든지 만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던 나라에게, 나는 '보아라, 나 여기 있다. 보아라, 나 여기 있다' 하고 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이해가 잘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만나주시려고 24시간 대기하고 계시고, 항상 우리를 보시고 우리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을 찾는데, 한 밤중에 찾으면 어떻게 하나,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의 기도에 응답할 준비를 하시는데 항상 준비하고 대기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요청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부르면서 달려오면 마중 나가시려고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이방나라들에도 ‘보아라, 나 여기 있다. 보아라 나 여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제멋대로 가고 악한 길로 가는 반역하는 백성들을 맞이하려고 하나님은 종일 팔을 벌리고 계십니다. 2절입니다.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새번역으로 봅니다. “제멋대로 가며 악한 길로 가는 반역하는 저 백성을 맞이하려고, 내가 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사람들의 언어로 알아듣기 쉽게 하시면서 마치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맞이하시려고 두 팔을 벌리고 계시는데, 종일 그렇게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두 팔을 벌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택하고 사랑하시는 선민 이스라엘은 동산에서 우상들에게 제사하며, 벽돌 제단에서 분향하여, 하나님 앞에서 항상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밤마다 무덤 사이로 다니면서 죽은 자의 영들에게 길흉화복을 물어보고 있었습니다. 이방 우상의 제단에 올려 놓은 돼지고기를 먹고,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이나 얻어먹고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유일하신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지니, 얼마나 탄식하실 일입니까?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이 죽은 자의 영들에게 물어보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종들이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라면 성별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심지어 이방 신전에서 나온 음식물을 먹고 우상의 제사에 참여합니다. 주상 바알과 목상 아세라를 섬깁니다. 이방의 온갖 잡신을 끌어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요, 거룩한 나라요, 구별된 사람이니 이방인들 앞에서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5절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멀찍이 서 있어라, 우리는 거룩하니, 너희가 우리에게 닿아서는 안 된다. 가까이 오지 말아라' 하고 말하는 백성이다. 이런 자들을 내가 참지 못한다. 그들을 향한 나의 분노는 꺼지지 않는 불처럼 타오른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거룩하다고 하면서 이방인들에게 멀리 떨어지라고 합니다. 이방인의 제사에 참여하고 죽은 자의 영들에게 물어보고 이방 제단에 올린 음식을 먹으면서 자기들은 거룩하다, 하나님으로 택함을 받았다, 이방인들은 개나 돼지 같으니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합니다. 마지막 날에 모든 나라를 노예로 부려먹는다고 잘못된 선민사상으로 교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꺼지지 않는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장 우상이 많이 들어오게 된 것이 솔로몬 왕 시대입니다. 솔로몬 왕이 이방 여자들을 더 좋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처녀를 맞아 결혼해야 하는데, 솔로몬이 처음 부인을 애굽 여자를 맞았습니다. 바로의 딸 공주와 정략적인 결혼을 하여 이스라엘과 애굽이 화친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시작하여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습니다. 모압, 암몬, 에돔, 시돈, 헷족속의 여자들이었습니다. 

왕상 11:2에 보면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솔로몬 지혜로운 왕이었으나, 지혜는 영원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솔로몬의 후궁이 700명이요, 첩이 300명이었습니다.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여 이방신전을 짓고 우상에게 제사하게 하였습니다. 국가적으로 예루살렘 남쪽의 민둥산, 멸망산이라는 곳에 수없는 이방신전을 건립하고 이방나라에서 온 부인들로 그곳에 나아가서 우상에게 절을 하고 제사드리게 허락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솔로몬 사후에 나를 둘로 나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우상을 섬기니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종교다원주의에 심취된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모든 종교에는 진리가 있다느니, 뭐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하면서 종교를 믿는 것부터 자기 힘이 아닌 전능한 힘을 믿으려고 하였으니, 하나님은 그런 사람도 구원해주시는 것처럼 말하는 비진리가 대단한 진리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몇 년 전에 중국어를 공부한다고 퇴근하면서 강남에 있는 한 어학원에 한 달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겨울인데, 대로변에 천막이 쳐 있고, 그 안에 젊은 여학생들이 모여 있습니다. 적은 탁자를 놓고 무엇을 설명하는데, 여러 장의 카드를 놓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타로점’이라는 것인데, 22장의 메이저 카드와 56장의 마이너 카드를 가지고 길흉화복을 해석한다고 합니다. 

세상에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그까짓 카드의 그림으로 다 담아낼 수 있습니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무당을 찾고, 점을 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의 장래가 불투명하고 좀 더 확실한 보장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십니까? 우리에게 부요하신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응답해주십니다. 

이스라엘의 북왕국의 가장 완악한 왕 아합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집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었습니다. 그가 신하를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에그론으로 보내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일어나 사마리아의 왕의 사자를 만나서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왕하1:3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왔습니다. 왕이 말합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찾아와서 하시는 말이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왕하1: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1절 말씀을 다시 알려드립니다. “나는 내 백성의 기도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내 백성은 아직도 내게 요청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나를 찾으면, 언제든지 만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던 나라에게, 나는 '보아라, 나 여기 있다. 보아라, 나 여기 있다' 하고 말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거룩성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윤리 도덕, 우리의 일상생활, 남녀교제,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성전과 같이 성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날이 멀지 않으니, 정신차려야 합니다. 의롭게 되는 의만 말하지 말고 의롭게 살아가야 하는 의를 알고, 그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어서 의롭다 하시는 은혜에 들어가 구원받았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데까지 이르도록 우리가 자라나야 하고,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 친구 목사님이 교인 집에 심방을 갔는데, 부인이 둘이 있었답니다. 남자집사님이 교회는 본처와 함께 나오고 첩으로 있는 부인은 다른 교회에 다니는데, 한 집에 두 부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참, 대단한 남자입니다. 한 지붕 안에 두 부인을 두고 있으니, 부인들도 그렇습니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이 나가야 하는데, 경제적으로 나눌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고 하면서 두 부인이 한 자리에서 심방을 받았습니다. 이럴 때에 목회자는 참으로 난감합니다. 교회는 덕을 해치고 윤리도덕이 땅에 떨어지게 되었으니, 우리 사회에 무슨 본이 되겠습니까? 한국교회에 윤리성이 없습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두 부인을 옆에 앉히고 아들 장가보내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합니다. 시작하려고 하는데, 신랑의 아버지가 의자 하나를 더 가지고 오라고 하더니 아들의 친 어머니인 부인을 오른편에 편에 앉게 하였습니다. 결혼식 분위기가 얼마나 썰렁해집니까? 주례하는 목사로서 신랑과 신부에게 무엇이라고 사람에게 권면할 수 있겠습니까? 식장의 분위기는 신랑의 아버지처럼 부인을 두 사람 얻어도 괜찮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우리 교회에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집에 딸을 시집보내는 신부의 부모님들이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 집안이 좋아서 보내나요, 두 사람이 헤어질 수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어 보내는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회개하면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죄를 지어서 멸망하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범죄한 영혼은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후에 돌아와 살길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돌아오지 않아서 망합니다. 

이사야44:22에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외칩니다. 렘8:4입니다.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산다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한 사람이 한 둘입니까? 우리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였고,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였고, 범죄하였습니다. 

폴 워셔 목사님은 미국의 개혁교회의 목사로서 성도들과 오늘의 교회를 향하여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회개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는 오늘의 교회, 회개를 말하지 않는 교회들이 ‘십자가의 구원을 값싼 복음’으로 전락시킨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회개가 없는 성화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변화되어야 하고, 성숙해져야 하고,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은 잠잠하지 않습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심판하시는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습니다. 심판하실 때에 나무를 베어낼 때에 뿌리째 뽑아버리지 않습니다. 

8절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포도송이에 즙이 들어 있으므로, 사람들이, '그것을 없애지 말아라. 그 속에 복이 들어 있다' 하고 말한다. 나도 이와 같이 나의 종들을 생각하여, 그들을 다 멸하지는 않겠다.”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심판하시는 중에도 남은 자를 남겨주시고 거룩한 그루터기를 남기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6:13입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고 하셨습니다. 

 9절입니다. “내가 야곱으로부터 자손이 나오게 하며, 유다로부터 내 산을 유업으로 얻을 자들이 나오게 하겠다. 내가 택한 사람들이 그것을 유업으로 얻으며, 내 종들이 거기에 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중에도 택하신 거룩한 백성들 하여금 돌아와 하나님의 유업을 얻게 하시고, 택하신 자들로 거룩한 산에서 살게 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세상도 얻고 하나님도 얻고 싶다면 그것을 잘못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른 순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선순위가 틀렸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얻고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살아갈 때에 세상도 보람이 있고,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을 얻은 후에 하나님을 얻겠다고 하면 둘 다 얻을 수도 없고, 멸망하게 됩니다. 오늘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에서 세상에 없는 사람들,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는 성도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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