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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처방전 (약 5: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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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처방전 (약 5:13-18)


한 부인이 정신과 병원을 찾았습니다. 남편과의 갈등으로 신경쇠약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의사가 진찰을 끝내고서는 뜻밖의 처방전을 내놓았습니다. 앞 산 중턱에 있는 약수터에서 물통에 약수를 받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퇴근하여 돌아오면 일단 그 약수 한 모금을 입안에 머금되 마시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화를 낼 때면 얼른 그 약수 한 모금을 머금으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때도 마시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이 부인이 의사의 처방대로 약수를 받아갔습니다. 밤늦게 남편이 귀가하자 약수를 한 모금 머금었습니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내에게 욕을 하고 불평을 털어놓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 부인도 맞받아쳐 싸웠겠지만 입안의 머금은 물 때문에 오히려 입술을 꽉 깨물었습니다. 잠시 후 남편은 한참 소리를 지르더니 조용해 졌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화를 낼 때마다 부인은 약수를 한 모금 머금었습니다. 신기하게 남편은 금방 조용해졌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부부 관계가 빠르게 회복되었고, 이 부인의 신경증도 뚜렷하게 호전됐습니다.
부인이 의사를 찾아서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명의십니다. 어쩌면 그렇게 신비한 약수를 발견하셨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신통한 처방을 내릴 수 있습니까?” 의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신비한 것은 약수가 아니라 부인의 침묵이지요...”

이 의사는 이 부인의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처방도 정확하게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갖가지 문제를 겪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 문제의 핵심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러니 문제의 처방도 제대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 문제 때문에 고통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일종의 ‘하나님의 처방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인생의 힘겨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 해결을 위한 처방이 있습니다. 이제 그 처방을 따르기만 하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이 소개하고 있는 하나님의 처방전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난당한 사람들에 대한 처방

본문 1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기도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우선 이 처방전에는 진단이 나옵니다. 바로 ‘고난’입니다. 여기서 고난이라는 말은 ‘카코파데오’(Kakopadeo)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악한’이라는 뜻의 ‘카코스’(Kakos)와 ‘겪다, 당하다’라는 뜻의 ‘파도스’(pados)가 합해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고난이라는 말은‘악한 일을 당하다’, ‘고통을 겪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깊이 깨닫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준비하며 나름대로 고난을 겪습니다. 어른이 되면 맡겨진 삶의 책임을 감당하느라 또 나름대로 고난을 겪습니다. 그리고 노년에는 점점 늙어가며 하나씩 잃어가며 죽음 맞을 준비에 또 나름대로 고난을 겪습니다.

성경은 이미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생이 그 자체로 고난의 연속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 3:16을 보면,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게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창 3:17을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의 삶은 그 자체로 고생과 수고 즉 고난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을 보면 모두가 다 고난을 겪었습니다. 특히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은 그 자체로 정말 큰 고난이었습니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며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40년 동안 광야생활의 정말 큰 고난을 겪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에도 끝없는 외침을 받아 견디기 힘든 고난을 겪었습니다.

신약에 와 보면 그리스도인들 역시 모두가 다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 8:18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리스도인들은 현재에 고난을 겪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벧전 2:20-21에서 이렇게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받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고 까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그 자체로 고난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더욱 이 고난을 깊이 맛보며 살아갑니다.
다음으로 이 처방전에는 하나님의 처방이 나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도하라고 처방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기도가 왜 처방이 되는 것일까요? 

우선, 고난을 이길 힘을 얻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신 우선적인 이유는 기도할 때 고난을 이길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 22편은 다윗의 기도 시입니다. 1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다윗이 견디기 힘든 고난 가운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기도하고 있고, 계속 기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22절을 보면 기도 내용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그리고 24절을 보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고난을 이길 수 있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길 수 있는 고난은 더 이상 그에게 고난이 아닙니다. 그 고난은 약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는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고난 때문에 쩔쩔매던 사람을 고난 때문에 찬양하게 만듭니다. 고난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던 사람을 고난 때문에 감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당하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도 고난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난을 이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고난을 헤쳐 나갈 길을 찾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당한 사람들에게 기도하라고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기도 중에 고난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만화를 잘 그리는 한 시골 청년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그린 만화를 들고 미국의 캔사스 시티를 찾았습니다. 이곳저곳 출판사와 신문사를 찾아다니며 자기가 그린 만화를 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도 이 청년을 받아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너무 힘이 들고 고통스러워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그 때 길거리의 한 교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 후 목사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청년의 사정을 들은 목사님은 청년을 격려하며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갈 데 없는 청년에게 일을 구할 때까지 교회 창고에서 지내며 교회 일을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창고에 쥐가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쥐를 쫓으려 했습니다. 그러다 먹을 것을 주자 쥐들은 이 청년 곁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찬찬히 쥐를 관찰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쥐를 대상으로 만화를 그리게 됐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저 유명한 미키마우스입니다. 그리고 이 청년이 디즈니랜드를 만든 월트 디즈니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고난에서 벗어날 길을 찾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고난 이전보다 더 나은 길로 나아가게 해 주십니다. 바로‘전화위복’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들에 대한 처방

본문 14절을 보면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진단은 ‘병 들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병 들었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질병에 걸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가벼운 질병에 걸려서 어렵지 않게 대처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혈압과 같은 만성적 질병에 걸려있지만 음식조절을 하고 약 처방을 통해 질병을 잘 관리해 가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들었다는 것은 질병 때문에 몸도 힘들고, 또 마음도 힘들고, 나아가 그 영혼도 힘든 상태에 빠져있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질병이 그 사람에게 해결할 수 없는 고난이 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병든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은 무엇일까요?

우선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교회의 장로란 물론 오늘의 장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초대교회 당시 아직 감독, 목사, 장로와 같은 직제가 세워져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이 말하는 교회의 장로란 포괄적으로 영적 지도자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나 전도사와 같은 교역자들을 말하고, 또 때로는 장로나 권사와 같은 평신도 지도자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병든 사람들에게 이런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병든 사람들이 겪는 고난은 혼자서 헤쳐 나오기가 정말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은퇴하신 목사님 병문안을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연세도 높으신 데다가 병세가 위중하셨습니다. 그동안 여러모로 제게 큰 가르침을 주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제게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박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 제가 너무 힘이 듭니다. 할 수 있으면 자주 와 주세요....”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사람이 정말 연약하구나. 저렇게 훌륭한 목사님께서도 병 앞에서 저렇게 약해지시는 구나”

그렇습니다. 우리가 병 들면 약해집니다. 기도도 잘 안됩니다. 때로는 믿음도 흔들립니다. 
그래서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라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을 보면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 지도자들이 병든 자를 찾아서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2000년 전 당시 상황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당시는 오늘처럼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아직 본격적인 의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제대로 없을 때입니다. 그리고 의약품이라는 것도 오늘의 민간요법 수준입니다. 그래서 당시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도 상당한 수준의 치료를 해왔습니다. 그러니까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의술적 치료도 병행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기름은 올리브유를 말합니다. 눅 10:34을 보면 병자에게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부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름은 당시의 치료제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처방은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질병 치료에 힘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치료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병든 자를 대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병원 치료를 거부하거나 뒤로 미루는 것입니다. 마치 병원 치료를 받으면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를 경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병원 치료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사람들을 현대 의술의 도움으로 무의미하게 생명만을 연장시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병든 자들을 도울 때 하나님의 뜻 안에서 현대 의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리고 15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고 또 병원 치료를 받더라도 고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랜돌프 버드라는 분이 기도가 병 치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조사 했습니다. 393명의 심장병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한 그룹은 기도자들을 모아서 환자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도록 했고, 다른 한 그룹은 누구로부터도 기도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했습니다.

10개월이 지난 뒤 두 그룹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 첫 번째 그룹이 두 번째 그룹에 비해 1/5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폐에 물이 고인 사람도 1/3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망자 수도 적었습니다.
이 연구에 동참했던 윌리엄 놀란 박사는 불신자인데, 결과를 검토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연구는 충분히 검증 받은 것 같군요. 그렇다면 우리 의사들은 처방전에 ‘하루에 3번 기도하시오’라고 적어야 겠군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런 실험을 하지 않아도 잘 압니다. 기도가 치유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기도는 병든 지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는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기도로 주께서 병든 자를 치료해 주신다는 것을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갖가지 문제를 겪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의 처방전을 붙잡아야 합니다. 고난당했을 때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처방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병 들었을 때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으라는 말씀, 현대 의술의 도움도 받으라는 말씀,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일이라는 말씀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병을 고치시는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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