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창 45:1-8)

첨부 1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창 45:1-8) 
 
 
45: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45: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45: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5: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45: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45: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금주에는 63주년을 맞는 6.25사변일이 들어 있습니다. 6.25는 북한공산군이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남침을 감행함으로 인해서 발발한 민족간의 전쟁입니다. 6.25사변은 3년간에 걸쳐 남북한을 막론하고 전국토를 폐허로 만들었으며, 막대한 인명피해를 내었습니다. 전투병력의 손실만 해도 유엔군이 한국군을 포함하여 18만 명이 생명을 잃었고, 공산군측에서는 북한군 52만 명, 중공군 90만 명의 병력을 잃었습니다. 또한 남한의 경우 99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런 동족상잔의 비극을 통일전쟁이라며 미화하고 정당화하는듯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심지어는 북침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있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날은 한일합방 다음으로 우리게는 슬픈 날이고 괴로운 날입니다. 우리 민족은 그동안 이 동족전쟁의 후유증을 겪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남과 북 모두가 다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남북이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못난 일은 그만 두고 함께 상생하고 결국 평화적으로 통일조국을 이루었으면 었으면 하는 가절한 기도와 소원을 가져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꼭 우리의 민족과 같은 문제를 앉고 있는 요셉의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애굽에 팔아먹어버린 비열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요셉은 수많은 세월을 애굽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대충 계산을 해보아도 22년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22년동안 이산가족이 된 것입니다. 이 일로 통하여 아버지는 슬픔에 쌓여 살게 되었고 그리고 그 일을 저지른 형제들도 늘 후회가 막급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이들 형제들에게는 그 무엇으로도 씻어낼 수 없는 아픈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화해란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이들이 상상을 초월하여 화해를 이끌어내고 다시 한 가족으로 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의 민족의 문제 그리고 우리들 가운데 불화하고 있는 모든 가정과 이웃들에 대한 문제 해결의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1. 요셉은 자기를 판 형제들을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며 화해를 했습니다. 
  
요셉이 애굽 땅에 팔려 오게 된 것은 형들이 분명 시기하고 미워해서 발생한 일입니다. 전적으로 형제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근친 인신매매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현상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요셉이 얼마든지 형제들을 원망도 할 수 있고, 아버지께서 그 때 그곳에 나를 심부름만 보내지 않으셨더라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한 없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공격할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나를 이렇게 놓아두셨을까? 왜 악을 행하는 형제들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방임하시고 내버려 두셨을까? 팔이라도 꺽으시고 다리라도 불어뜨리셔서 막아주실 것이지?

그런데 성경이 우리에게 제공해주시고 알려주시는 것은 
요셉은 자신에게 닥친 이러한 일들을 인해서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책임을 추궁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누구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보면 충분이 진노할 위치에 있고, 앙갚음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진노하거나, 자신의 과거의 일에 대해 앙갚음을 하려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라고 하면 누구나 그러한 복수심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팔면 팔려가고, 종이 되면 종노릇하고 억울하게 감옥에 가면 감옥에 가 있습니다. 오셉은 이렇게 언제나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무엇이 그를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까요? 

2.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창 45:7~8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했습니다. 
  
요셉이 가해자들인 형제들을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겪은 모든 일들과 사건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늘 표면적이고 현상적인 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면적으로 보면 이 사건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그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형들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물론 요셉도 처음에는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분명히 깨달은 것, 그것은 자기가 애굽에 온 것은 그냥 우연이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속에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를 팔아먹은 형들의 못된 행위 그 넘어 하나님의 행위를 생각하고 형들을 용서하며 나를 이곳에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발견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용서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그것을 바라보게 될 때 분노는 사라지고 용서하고픈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남에게 진노한다거나 앙갚음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눈을 단순히 우리 앞에 벌어지는 일과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됩니다 더 큰 눈을 떠서 벌어지는 일과 사람 그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생각하고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쓸데없는 원망, 불평, 미움, 분노를 넘어서 더 큰 사랑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인생의 한걸음 한걸음이 거져 움직여지고 있는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걸음을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늘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야 마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손길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 매순간순간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잘못을 보기보다는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습니다. 형제들이 자기에게 한 그 일이 결코 형제들만이 한 일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그 형제들을 단순한 도구로 쓰셨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서 내일을 예비하기 위하여 그리고 언약백성들이 끝까지 살아남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선생님 왜 이렇게 하십니까? 하고 물었을 때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요 13:7)"하셨습니다. 
왜 이런지 모를 일을 만나거든 이렇게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내 좁은 머리와 소견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다만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이 땅위에 임하기를 원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서 내일을 예비하기 위하여 그리고 언약백성들이 끝까지 살아남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문제 해결도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누가 원인이니 북침이니 남침이니 그런 것만 따지고 있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런 문제는 다 접어두고 이제 하나님의 섭리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성도들은 어떠한 문제를 만날지라도 그와 같은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의 도구로 쓰시기 위한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국 속담에 "벌은 물을 마셔서 꿀을 만들고, 뱀은 물을 마셔서 독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환경일지라도 그에 대한 사람의 자세가 어떠한가에 따라 그 환경은 꿀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망이나 미움보다는 꿇어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미 주신 은혜를 다시 더듬어보면서 회복의 때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실로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범위 안에서 움직이며 살아갑니다. 참새 한 마리도 그분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으며(마 10:29), 그분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성도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다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며 축복의 기회가 되도록 하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러한 사실을 바로 깨닫고 인식할 때 거친 이 세상을 힘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민족문제도 그렇습니다. 
영원히 안될 것 같은 것도 순식간에 될 수도 있고 그냥 될 것 같만 같은 것도 잘 안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남북문제는 우리 민족끼리만의 문제가 아닌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민족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올해는 6.25사변 발발 63주년이며 정전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전쟁의 포성은 멈추었으나 남과 북은 여전히 적대시를 하며 화해와 통일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난 오년은 남북관계에 있어서 잃어버린 5년이었습니다. 이제 정권도 바뀌고 특별히 6월 들어서 한가닥 희망을 보였던 남북한 당국자간 대화가 이루어질뻔 했으나 또 무산되기는 했습니다만 이것이 살려졌으면 좋겠고 전쟁의 소문대신에 평화통일의 소문이 들리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