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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섬김 (눅 7: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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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섬김 (눅 7:36-38)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땅에 군림하고 사람들의 섬김을 받기 위하여 오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세상을 섬기며 제자들을 섬기셨습니다.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음식을 공급하며 섬기시고, 병든 자들의 질병을 고쳐주며 섬기시고, 귀신들린 자에게 축사하며 섬기시고, 심령이 갈급한 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며 섬기셨습니다. 

마지막에는 당신의 몸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어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중에 제자들도 섬기는 자들이 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들의 섬김을 통해 세워집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을 비롯한 성도들도 성령이 시키는 대로 섬기며 교회를 세워나갔습니다. 오늘 아름다운 섬김의 본을 보여준 한 여인을 소개합니다. 

누가복음 7장에는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부장의 죽어가는 종을 고치셨습니다. 기적입니다. 나인 성에 가셔서는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더 큰 기적입니다. 그런데 병이 나도 다시 병에 걸립니다. 죽었다 살아나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죽게 됩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이보다 더 큰 기적, 우리가 사모해야할 기적, 기적 중의 기적을 보여줍니다. 그 기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는 것.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본문에 나타난 이름도 나와 있지 않은 여인이 구원받은 기쁨을 어떻게 섬김으로 표현하는지 같이 살펴보면서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분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참여할 뿐 아니라 여인과 같이 아름다운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복음서 모두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의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한 여자가 나아와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고 하고, 누가복음은 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그 동네의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다고 하고, 요한복음은 베다니의 한 곳에서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비슷한 다른 사건들이 기록되었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같은 사건인데 보는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기술되었다고 합니다. 

   
여인은 “회개한 죄인”이었습니다. 

37절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언급됩니다. 이 표현에 의하면 여자가 현재도 죄인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번역은 죄인이었던 혹은 죄악된 삶을 살았던 여자입니다. 이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추측일 뿐입니다. 무엇 때문에 죄인이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예수님을 만나 죄사함을 받았는지 성경에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 여인이 지금은 죄악된 삶을 회개하고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47절에서 동사 ‘사하다’는 현재완료로, ‘사랑하다’는 과거로 사용된 것이 이러한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50절을 보면 예수님은 여인의 죄 용서를 그녀의 믿음을 통한 구원 사건으로 선언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이때도 동사 ‘구원하다’가 ‘사하다’와 같이 현재완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녀의 죄 사함, 곧 구원은 지금 일어난 일이 아니라, 과거 어느 시점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자기가 사는 동네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여인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에게 베푸신 넘치는 사랑을 인하여 무엇인가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자기의 과거를 인하여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느꼈을 테지만 그런 것이 예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여인에게서 아름다운 섬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여인이 보여준 섬김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1) 말 없는 섬김

이 여인이 보여준 섬김의 첫 번째 특징은 말 없는 섬김입니다.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보다 이 향유 부은 이야기를 비교적 길게 다루고 있는데 이 여인이 행한 일을 두고 예수님과 그를 초대한 바리새인 사이의 대화는 길게 오갔으나 정작 이 여인의 대사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녀는 무엇을 바라고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예수님께 바치기 위하여 왔을 뿐입니다. 그날 그 집에 모인 사람들 중 그녀보다 더 귀한 것을 예수님께 바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인은 자신의 섬김을 과시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이 한 행동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며, 멸시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속에서 잠잠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인의 진심어린 섬김을 함부로 판단하고 비난했습니다. 그 향유를 마련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으면서, 그 향유를 사용하는 데는 참견하려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침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중심을 보시고,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세워 주셨을 때도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을 향해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나를 두고 무엇이라 하지 말고 당신들이나 잘 하십시오”라고 항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섬김을 인하여 생색내려 하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섬김을 칭찬해 주셨다고 해서 으스대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말없이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자신의 할 바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섬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을 가슴 속에 묻어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일을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제안은 필요하며, 섬김을 보다 아름답고 하려는 말이라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자주 우리의 불평을 하나님의 일에 대한 걱정인 듯 위장하여 뱉어 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 더 잘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털어놓는 것인지, 아니면 불만이나 시기로 말하는 것인지 아십니다. 누구나 억울할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그러한 것들을 사람들 앞에 떠벌리지 않고, 가슴 깊이 묻어 두는데, 그렇게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인내입니다. 그 인내는 사랑의 열매, 성령의 열매입니다. 즉 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으면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의 길을 간 사람들은 대개 말이 적은 사람들입니다. 굳이 그 사연을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려 주실 것이기에, 고난 속에서도 이러저러한 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끝없는 사랑과 희생으로 점철된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섬기시면서 한번이라도 자신의 섬김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섬김에서 오는 불만을 토로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섬김은 적고 말만 많기에 우리의 섬김은 하나님께 영광을 가릴 때가 있습니다. 지체들에게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대신 오히려 상처를 줄 때가 많습니다. 향유 부은 여인의 섬김을 통해 말을 아끼는 섬김을 봅니다. 진정으로 섬기는 자들의 섬김에는 땀과 눈물이 가득할 뿐 구차한 말이나 변명이 오가지 않습니다. 참된 섬김에는 말이 별로 필요 없습니다. 

   
2) 눈물이 있는 섬김

두 번째 특징은 눈물이 있는 섬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증거 중의 하나가 눈물입니다. 주님 앞에서 죄인 된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며 기도를 드릴 때 눈물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과거를 가진 여인, 그래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소외를 당하던 여인이 예수님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게 되었을 때, 그날 이후로 그 여인은 날마다 구원의 감격 속에, 감사가 충만한 가운데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베푸신 예수님이 자기 동네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오니 과연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벅찼을까요? 여인은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그녀의 눈물은 예수님의 발을 흥건히 적실 정도였습니다. 이 여인의 눈물은 감사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면서도 우쭐거리지 않고 도리어 감사하였습니다. 섬길 수 있는 기회와 섬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하며 충성스럽게 섬겨야 합니다. 현재 가진 것이 많고 능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어쩔 수 없이 섬김의 자리를 떠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건강할 때, 기력이 있을 때, 열정이 있을 때, 가진 것이 있을 때, 잘 섬겨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섬김의 자리에 불러 주셨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세상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고 나의 섬김을 칭찬해주지 않아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만을 섬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근래에 주님 때문에 눈물을 흘리신 적이 있습니까? 눈물은 여자나 흘리는 것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남자 분들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주님 앞에 자신을 쏟아놓으며 회개할 때 눈물이 나옵니다. 아직 주님을 모르는 형제자매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릴 때 안타까움을 인하여 눈물이 나옵니다. 고난에 처한 형제자매와 함께 아픔을 나눌 때 눈물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영접치 않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을 지으셨습니다. 눈물은 거룩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3) 사랑이 녹아든 섬김

여인이 보여준 세 번째 특징은 사랑이 녹아든 섬김입니다. 팔레스타인에는 모래가 많고 먼지도 많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샌들을 즐겨 신었는데 걸어 다니다 보면 샌들은 물론 발에까지 먼지가 많이 묻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집에 손님이 올 경우, 집주인은 제일 먼저 발 씻을 물부터 내어 놓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알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서셨을 때 집 주인은 발 씻을 물을 내어 놓지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의 식사 습관대로 기다란 소파 같은 의자 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계신 예수님의 곁으로 한 여인이 살며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예수님의 발치에 섰습니다. 예수님의 곁에 섰다는 사실만으로 그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 여인이 흘린 눈물은 그대로 예수님의 발에 떨어져 먼지로 덮인 그분의 발을 적셨습니다. 여인은 무릎을 꿇고 자기를 낮추어 예수님의 발 곁으로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고, 고단한 사역 가운데 지치고 상하신 그 발에 마음을 담아 입을 맞추었습니다.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7:38) 라는 표현에 ‘닦다, 입 맞추다, 붓다’라는 동사가 나오는데 누가는 과거 반복적인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형을 사용합니다. 계속해서 씻고, 계속해서 입 맞추고, 계속해서 향유를 붓습니다. 

머리털은 여자에게 자존심과 같은 것이지만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먼지로 더렵혀지고 물로 더렵혀져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자기의 머리털로 정성껏 닦고 나서 예수님의 발에 계속해서 입을 맞춥니다. 예수님이 주님이요 자기는 종이라는 자세로 철저하게 낮추며 예수님을 섬깁니다. 그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습니다. 향유를 붓는 여인의 섬김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비록 이 여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모든 행동은 백 마디 말보다 더 절절하게 그녀의 마음을 예수님께 전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의 마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일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미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사랑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비록 자신의 섬김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섬김은 아니지만, 억지로라도 섬기다 보면 언젠가는 하나님을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속에서 맺고 있는 자신과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한 때 더러운 죄인이었던 이 여인이 사랑으로 섬겼기에 주님이 받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도 피곤한 문제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을 베푼 만큼 돌려받지 못할 때도 있고, 배신의 두려움을 느낄 때도 있고 깊은 상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상처를 주지 않으십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부를 누리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일 뿐입니다. 인생의 참된 목표는 하나님께 온전한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힘입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베푸신 큰 사랑을 느낄 때, 비로소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섬김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성품과 영광스러운 본성을 잘 모르는 데서 나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보기 전까지 그는 스스로를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영광의 빛이 찬란하게 비쳤을 때 그는 즉시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사 6:5).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큰 지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의 죄악됨, 부족함, 한계를 인정하며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세상은 군림하는 사람에게 갈채를 보내지만 주님은 베푸신 사랑에 감격하여 종처럼 낮아져서 섬기는 삶을 칭찬하십니다. 

    
4) 전부를 드리는 섬김

여인이 보여준 네 번째 섬김의 특징은 자신의 것을 모두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 향유는 그저 귀하고 값비싼 물품이 아니라 모든 것입니다. 우리들의 섬김 속에 담긴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섬기려 하되, 스스로 한계를 정해 놓고 그 안에서만 섬기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계획대로만 진행됩니까? 공사를 하더라도 하다보면 예정보다 많이 들게 마련입니다. 섬기다보면 애초의 계획보다 더 많이 섬겨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런데 스스로 섬김의 정도를 정해 놓은 사람은 예상보다 많은 수고를 해야 할 때 갈등을 하게 됩니다. 왜 나만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느냐 하며 불평을 쏟아 내기도 합니다. 그 결과 그의 섬김은 주님이 기뻐하는 섬김과 점점 멀어집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리지 못하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가치보다 헌신을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일들의 가치가 훨씬 더 귀한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에게 향유가 귀한 것이지만 예수님보다 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인 향유를 아낌없이 예수님을 위해 부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섬김을 보시면서 “그의 사랑함이 많으니라”(47절)고 칭찬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장 44절을 보면 부자들은 풍족한 중에서 일부를 연보궤에 넣었지만 사람들에게 과시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드렸기에 주님의 칭찬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는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체를 넣었기 때문에 칭찬을 듣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거짓 경건, 남보다 낫다는 교만, 속마음은 감춘 채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행하는 가증한 행동은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부자가 드리는 그 많은 액수의 헌금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으로 감명을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주님은 섬김의 절대 양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양을 보십니다. 그것이 드리는 자의 중심, 즉 정성과 마음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섬기는 자리에 있습니까? 무엇인가 헌신을 요구받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여인과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자기의 것으로 섬기되 기꺼이 때로는 과도하게 섬기려는 마음을 가질 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무엇보다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5) 향기로운 섬김

이 여인의 섬김의 마지막 특징은 향기입니다. 여인이 예수님 곁으로 다가와 향유 옥합을 깨뜨렸고 그것을 예수님께 조용히 부었습니다. 아마도 그 방안은 금세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물론 이 여인이 향유를 부은 것은 그 방을 향기로 가득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 여인은 그저 예수님을 섬기기 원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섬김은 예수님의 몸을 향기롭게 하였을 뿐 아니라 그 방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향기의 혜택을 누리게 하였습니다. 세상일들은 시간 속에 파묻힙니다. 선행도 악행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여인의 행위가 기억되는 까닭은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기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한 일은 너무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고난당하고 죽으실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4:9에 의하면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예수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여인이 예수님께 부어드린 향유는 바리새인의 집을 온통 향기로 채웠지만 이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의 섬김은 아름다운 향기를 품고 오늘도 전해집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행한 아름다운 섬김의 스토리를 이 아침에 듣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거칠고 독선적인 사람을 만나곤 합니다. 거룩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나운 사람들, 차가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려나 예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섬김에는 시끄러운 소리만 요란할 뿐 향기는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인격 속에 깊이 배어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서는 언제나 아름다운 인격의 향기가 풍겨 나고 그 인격의 향기는 주위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분의 섬김에는 항상 향기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과 동시에 항상 그분의 인격의 향기가 풍겨 났습니다. 그리고 그 인격의 향기는 예수님께서 떠나신 뒤에도 오래도록 남아서 지금 이 순간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주님께서 향기로운 섬김으로 우리를 섬겨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그 향기를 전하며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섬김의 고단한 현장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그리스도인들로 살아가야 합니다. 
   
돈이 많다고 주님께 풍성하게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위하여 후하면서도 주님을 위하여 인색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마음 가운데 구원을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넘칠 때 힘을 다하여 드립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말만 앞세우는 사람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어리석게 보이나 그 중심에 주님을 사랑하고 열심을 가지고 일하는 자들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여인의 드림은 주님에 대한 사랑에 기인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여인의 드림은 그저 낭비로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에 대한 사랑이 담겨진 헌신에는 인간의 계산과 상상을 초월한 주님의 상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땀 흘리며 벌은 것을 자기를 위하여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한 모든 경건한 노력을 우습게 여깁니다. 

여인의 '봉헌'을 이웃을 향한 '자선'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창고에 보물을 가득 채운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오라 하시면 다 두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으면 여인과 같이 주님께 대하여 사랑과 헌신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여인은 죄 사함 받은 은혜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자기의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표현하였습니다. 

이 같은 헌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주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태도입니다. 그 여인은 아마 죽을 때까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자기와 같이 죄인이었던 사람, 소외된 사람, 상처받은 사람들을 돌아보고 위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거룩하게 낭비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사랑과 열정과 헌신에서 나오는 시간과 재물과 생명을 드리는 것은 사실은 낭비가 아니라 거룩한 투자입니다. 그것이 시간이든, 재물이든 생명이든 하나님을 위해 드려진 것은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여인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주 예수 보다 귀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인은 말없이 섬겼고, 감격에 차서 섬겼고, 사랑으로 섬겼고, 최상의 것을 전부 드리며 섬겼고, 향기롭게 섬겼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라고 바울은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사랑에 감격하며 여인과 같은 섬김의 삶을 살면서 주님 보시기에 좋은 일을 많이 행함으로 삶 전체가 향기 나는 제물이 되어 주님께 아름답게 올려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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