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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율법과 은혜 (갈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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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은혜 (갈 5:1-6)


오늘 말씀에 나타나는 강조점이 “자유”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예수를 믿는 것은 자유를 얻는 것이다.” 이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너는 자유인이 되겠느냐, 종이 되겠느냐?” 이런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누가복음 4장에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려고” 이 말씀을 시작으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사람을 자유케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선언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평생을 통해서 가장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진리 탐구”입니다. 

진리 발견이 결국 인간의 행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첨단 과학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학이라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 발견 때문에 보다 나은 인간 삶을 창조적으로 오늘날까지 이렇게 아름답게 성취한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는 왜 오늘 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자유에 대한 말을 이렇게 아주 쉽게 강조했는가? 갈라디아 교회는 신학적으로 지금 혼란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권을 믿고 고백함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인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지금 유대교에 몸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구원 문제에 있어서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국적이 무엇인가? “예수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할례당이라고 했습니다. 할례당이 주장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할례를 다 받았다. 그러므로 계속 받아야 된다. 누가복음 2장에 예수님도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도 모두 할례자들이고 그러므로 우리도 받아야 된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의 조건의 하나로 율법 준수를 말했고, 할례를 절대화해서 예수의 구원은 할례에서 완성되어져야 한다고 그렇게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것입니다.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갈라디아 교회 교인뿐만이 아니고 지금도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 구원관이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들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구원이 주어졌습니다. 여기에는 아무 이론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나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 인간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 문제가 나오니까 이때 사람들에게는 주어진 것이 율법 밖에 없으므로 율법으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시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것을 “율법주의 구원관”이라고 말을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의 주장으로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합시다. 율법이 언제 주어졌는가? 모세 시대 때 여러 가지 문서설이 있고, 그것이 집약되었다고 해서 모세율법이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 이전 사람들의 구원은 또 어떻게 됩니까? 율법주의 구원관을 도입하면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는 기초부터 다 흔들려버립니다. 

우리 하나님의 인간 권위란 구약시대, 신약시대 그 이전시대 아무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냥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만약 너희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다면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율법이 몇 개냐 하면 “하라” 하는 게 248개이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게 365개로 613개가 됩니다. 다 지킬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율법 전체를 지켜야 되니까 한명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주어져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다음 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는 방법론으로 주어진 것이 율법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주어졌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지금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그를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말할 것도 없이 철저하게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율법을 잘 지켜서, 그것이 기특하고 예뻐서 하나님이 그렇게 선택하셨습니까? 아브라함 때는 율법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 장사를 해서 팔아서 먹고 살던 사람입니다. 

그런 집안에서 자란 아브라함을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너는 오늘부터 나와 함께 일하자. 너의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타협도 없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선택해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족장들을 보면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의 의는 무엇입니까? 야곱은 객관적으로 보면 야곱 같은 사람이 몇 사람만 모여도 어느 공동체이든 그 공동체는 다 망합니다. 왜? 야곱이 가는 곳에는 항상 피해자만 생겼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가 무엇을 잘해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을 삼았습니까?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무엇입니까? “야곱 같은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져서 구원의 백성이 되고 믿음의 족장이 되고” 율법이라는 단어도 모르고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도 어느 날 하나님이 은혜를 내려주면 믿음의 조상이 되고 족장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로마서 3장 22~24절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가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묻겠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율법을 잘 지켰습니까? 율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교회 오셨습니다. 100퍼센트 누구든지 다 그렇게 예수 믿기 시작했습니다. 은혜로 나를 먼저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가끔 가다 제 주변에 그런 친구가 세 명이나 있는데 부흥회 할 때 간증집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간증집회 강사들을 보니까 확실한 게 있습니다. 평범하게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은 아무 인기가 없습니다. 과거가 험악할수록 좋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예 젊은 시절에 감옥에도 2~3번이 아니고 7~8번이라야 간의 기별이 오고 그냥 못된 짓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그런 사람에게 암흑가의 왕자라는 별명을 주는데 왜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목사님을 만들어주셨습니까? 율법을 지켜서입니까? 아니면 무엇을 잘해서입니까?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무엇입니까? 그럴지라도 하나님이 은혜를 그에게 내려주셔서 구원의 백성이 되고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졸업하기 전에 졸업하면 못 만나니까 일주일 동안 마지막 수련회를 갔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친구한테 요청했습니다. “이 친구는 과거에 주먹세계 서울을 주름잡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 암흑가의 왕자 생활을 할 때 하던 것을 속이지 말고 우리에게 한번 간증해봐.” “그러지. 나는 앞으로 과거에 내가 나쁜 짓 했던 것을 소재로 간증 집회 강사가 될 거야.” “그래. 당신은 그런 것을 하면 좋을 거야.” 그래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밤새도록 들어도 그 이야기가 은혜스러운지 어떤지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나쁜 짓 하던 이야기도 들으니까 재미있더라고요. 

사흘에 한 번씩 여자를 바꾸어 가면서 어쨌느니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친구들은 그때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듣는 것만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해본 놈은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그러면 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목사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 간증을 합니다. 간증은 누구든지 있습니다. 저도 간증이 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얼마든지 간증할 수 있습니다. 다섯 살 때부터 제가 교회에 나갔고, 주일학교 선생님 없다고 해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주일학교 선생님을 했고, 십대 중반 때 교회 종을 치라고 해서 새벽종을 쳤고, 교회 청소하고 난로 피우고, 새벽기도 열심히 하고, 산기도 다니고, 19살 때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신학교 들어가서 21살 때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교회 개척을 다섯 개했고, 지금까지 49년 3개월째 온 세계 다니면서 선교했습니다. 이거 봐요. “아멘”도 안하시지 않습니까? 이런 간증이 좋은 간증이지 깡패만 “아멘”입니까? 그러니까 지금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참 많은데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때려잡은 것입니다. “이제 그런 짓 그만하고 목사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라.”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나타나서 구원이 이루어지고 나중에 율법을 공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이질 문화권에서 살면서 이방종교에 익숙해졌습니다. 제일 익숙해진 것이 송아지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송아지 사건이 나온 것입니다. 카이로 박물관에 가보십시오. 소 경배하는 것을 박물관에 옛날 것을 갖다 놓았습니다. 소머리에 면류관 같은 것을 씌워놓고 그 앞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거 다 있습니다. “소가 우리를 먹여 살리는 신이다.” 그런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그 어려운 판에도 금송아지 만든다고 금 내놓으라고 하니까 다 나왔지 않습니까? 그래서 송아지 한 마리가 거뜬히 생긴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인도할 신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은혜를 주어서 그 우상의 소굴을 떠나 “네가 아브라함에 약속한 저 가나안 땅으로 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라.” 그래서 은혜로 백성을 구원해서 해방을 시켜주어 이제 노예 생활에서 자유함을 얻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홍해를 건너서 시내산까지 왔을 때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와서 기도한 제목, 멀리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큰 은혜로 우리 민족이 이렇게 우상의 소굴을 빠져나와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저 가나안 땅에 가서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이 “이렇게 살아라.”하고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십계명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우상을 섬기지 말고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고 안식일을 꼭 지켜라.” 이것을 주신 것입니다. 은혜로 인해 구원이 주어지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는데 지금 율법주의자들, 할례당들이 순서를 거꾸로 가르치기 때문에 오늘 말씀이 이렇게 주어진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이러한 율법의 근본정신은 잊어버리고 율법의 형식만 따랐기 때문에 예수님과 심하게 마찰한 것입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기를 보는 거울입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남을 때려잡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 날 밀밭을 지나가다가 밀 이삭을 따먹었다고 해서 안식일에 죄지었다고 금방 튀어나와서 고발합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머리채 끌고 나와서 돌로 때려죽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떡하십니까? 다 살려주시지 않습니까? 율법에는 때려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다 도망갔습니까? 

이것이 율법주의와 복음의 정신의 차이입니다. 우리 신앙이 율법주의에 빠지면 아주 험악해 집니다. 이러한 율법주의가 악해지고 또 악해졌을 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율법완성은 해야 되겠는데 도저히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회칠한 무덤과 같이 무거운 정신적 짐에 눌려 고통을 겪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오늘도 율법을 다 지키지 못했구나. 이거 어떡하지?” 그래서 회칠한 무덤같이 지키는 척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통의 백성들에게 예수님이 선언하시지 않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누가 너희를 보고 그렇게 필요치도 않은 짐을 지고 고생하라 했느냐?” 여기서 “내게로 오라.” 하는 것은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복음 앞으로 오라. 그러면 너희가 자유케 되고 구원되리라.” 이런 말씀입니다. 이게 복음의 정신이고 은혜입니다. 

그러면 율법은 안 지켜도 되는가? 우리 구원받은 백성은 율법을 지킬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조건이 아닌 은혜와 구원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하나님이 주신 법을 복음 정신에 맞추어서 열심히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여러분! 율법의 기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죄를 짓지 않게 하는 방어벽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보면 죄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내가 이 죄를 짓지 말아야지.” 그러나 죄를 없이 하는 능력은 없습니다. 죄를 없이하는 능력은 복음입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오라.”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쉽게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치러야 될 모든 죗값을 십자가에서 다 대신 치러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쉬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짐은 가볍고 쉽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 세상 모든 인류의 죄를 다 짊어졌기 때문에 살 수가 없습니다. 왜?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자신은 죄가 없으나 세상 죄를 다 짊어졌지 않습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다 지셨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죽여야 됩니다. 옛날에 양 데려다가 인간의 죄를 벗겨서 거기다 안수기도 해서 죄 있는 것을 죽여서 피를 냄으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의 기쁨을 누렸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단번에 이제는 온 세상 인류의 모든 죄를 속죄하는 방법으로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자에게는 이제는 자유다.” 이렇게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값없이 주어진 구원에 대한 감사를 율법 안에서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우리 크리스찬의 삶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유란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율법은 죄를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어떤 죄도 용서받습니다. 그 다음에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율법은 복음 안에서 나를 정죄할 능력이 없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양심의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죄지으면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이것을 소멸시켜주는 것입니다. 해방의 기쁨입니다. 마지막에는 사망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영생에 이르는 진리! “이런 자유를 너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라.” 나를 묶고 있는 모든 결박의 끈을 풀어서 하나님 자녀의 자유함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복음성가를 부르셨잖아요? “예수 결박 푸셨도다. 예수 결박 푸셨도다. 나의 결박 푸셨도다. 나는 자유해!”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주신 구원의 선물입니다. 이것을 잘못 해석하지 않게 성령의 지혜를 저희들에게 주시고 구원받은 백성의 자유함을 노래하면서 아버지가 주신 율법의 법을 훌륭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자유인의 복이 주어지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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