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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명을 잃으면... (삿 1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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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잃으면... (삿 12:8-15)
   
 
8. 그 뒤를 이어 베들레헴의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9. 그가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었더니 
그가 딸들을 밖으로 시집 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밖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칠 년이라 
10.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11. 그 뒤를 이어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12.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으매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더라 
13. 그 뒤를 이어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14. 그에게 아들 사십 명과 손자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칠십 마리를 탔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팔 년이라 
15.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사사기 12장 8~15절>

할렐루야! 
평안하십니까?
‘덥다 덥다’하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당연히 더운 계절입니다.
옆의 분에게 “여름이라 덥습니다”라고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더운 여름에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가 어디 일 것 같습니까?
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162개국 중 ‘아이슬란드’가 
가장 평화로운 나라에 선정되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유럽 서북부, 노르웨이 서쪽에 있고 … 
면적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인구는 30만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입니다. 
조사의 기준은 여러 가지입니다. 
국내 및 국제분쟁, 사회 안전, 치안, 군비확장, 폭력범죄의 정도,
전쟁 사상자, 잠재적인 테러 공격 위험 … 등 
23개 지표에 대해 1~5점을 매겨 산출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몇 위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는 47위입니다. 
북한은 152위, 최하위는 아프가니스탄이었습니다. 
<2013.6.11. 연합뉴스 기사, 참조>

그래도 우리는 1위는 아니지만 47위에 해당하는 
평화로운 나라에 살고 있으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잘 살고 남북이 통일이 되면 1위가 될 것입니다.
아이슬란드가 가장 평화로운 나라라고 해도 
우리가 나중에 가게 될 하늘나라보다 평화롭지는 못할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 있지만 하늘나라의 평화를 누리는 방법은 
‘주 예수와 동행’하는 것입니다. 
어디에 살든지 주 예수와 동행하면 
세상이 줄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평안을 누리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평안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공의 조건

나폴레옹 힐(Napoleon Hill, 1883~1907)은 
인간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한 학자입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성공을 조사해
‘성공의 법칙(The law of success, 1928)’이라는 책을 발표했습니다.
그 책에 따르면 전 세계 위대한 지도자들과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답니다.
성공한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자기가 꼭 이루기 원하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목표 사이에 끼어들어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점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목표가 있습니까?
그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니까?
그리고 목표를 이루어 가는데 방해가 되는 
습관, 친구, 주변의 조건들을 과감히 떼어내십니까?
내가 어떤 일을 이루어야 하는데 친구들이 문제라고 생각된다면
과감히 친구들을 멀리하느냐 말입니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목표에 대한 열정이 있고, 
걸림돌로 방해가 되는 것들을 배제할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목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2, 14)

바울은 예수님께 붙들린 삶을 살길 원했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는 일평생 복음 전도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구약 성경 사사기에 등장하는 사사들에게도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진 이유는,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의 침입과 지배를 받아 고통 중에 있을 때
이스라엘을 구원해 해내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평안이 없던 이스라엘에 … 
평안을 주는 것이 사사들의 임무였습니다.
때문에 여러 사사들에 관한 사사기의 기록은 대개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 그 땅이 … 평온하였더라”(삿 3:30, 5:31, 8:28)

기드온과 그 이전의 사사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그 땅이 … 평온하였더라”는 평가가 내려집니다.

그렇듯 … 사사로 지냈던 기간 동안 
이스라엘이 평온하도록 만드는 것 …
그것이 사사들에게 부여된 사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땅이 … 평온하였더라”는 표현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다가 
그 악의 댓가로 고통을 받고 고통이 너무 심해지면 회개하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또 새지도자를 세우셔서 그 땅을 평안케 하셨습니다.

곧 다시 평안을 찾던 이스라엘에
언젠가부터 평온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세 명의 사사가 등장합니다.
「입산」과 「엘론」「압돈」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생애를 기록한 말씀에는
이스라엘을 구원했다는 기록도 없고,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는 기록도 없습니다.

대신에 지금까지의 다른 사사들과는 다른 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본문 12장 9절을 보면
입산에게는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명이 있었는데
자녀들이 모두 이방 민족과 혼인했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7장 3절과 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방 민족과의 혼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신 7:3-4)

그럼에도 입산은 그 자녀들을 모두 이방 민족과 혼인시켰습니다.
입산이 이와 같이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자녀들의 결혼을 통해 이웃 민족과 정략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습니다.
분쟁이 가능한 이웃 민족과 사돈이 되면 싸울 일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변의 이웃민족과 정략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엘론에 대해서는 그가 십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아얄론에 장사되었다는 기록만 남아있습니다.
압돈 역시 자녀들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 사십 명 … 손자 삼십 명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 나귀를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자녀가 많았다는 것은 아내가 한 사람이 아닌 … 여럿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아내가 여럿 있었다면 그만큼 많은 재산이 있었을 것입니다.

압돈의 자녀들이 나귀를 타고 다녔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풍족한 생활을 누렸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사사들은 
하나님께서 주실 평안을 찾고자 일했던 사사들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평안을 누리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목회와 신학 편집부, 『사사기 룻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서울: 두란노, 2009), p. 322. 참조>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

세상에는 욕심을 위해 사는 사람과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사명(使命)은 
‘맡겨진 임무’, ‘사신이나 사절이 받은 명령’을 말합니다. 

욕심을 위해 사는 사람은 자신의 야망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뜻을 먼저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욕심을 위해 사십니까? 
아니면 사명을 이루기 위해 사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생의 목적을 물어보면 
부자 되는 것, 성공하는 것,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
그래서 이름을 남기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목적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 무엇을 위한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 자신을 위해 부자가 되려하고
- 자신을 위해 성공하려고 하고 
- 자신을 위해 명예를 얻으려한다면 
그 사람은 욕심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부자가 되려 하고
-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성공하려 하며,
- 모든 목적의 끝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 하는 것이라면
그 사람은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사명을 이루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사명이 있다면 … 세상의 욕심을 함께 끌어안고 살 수 없습니다.
욕심을 끌어안고는 사명을 이루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다하더라도
사명의 목표를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세 사람은 ‘사사’로 세우심을 받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이스라엘의 평안’이라는 사명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사명을 이루지 못한 것이 실패 중에 가장 큰 실패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온전한 ‘평안’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7절에 
“…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엡 2:17)했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약속의 백성이 아닙니다.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엡2:12)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엡2:13)
하늘백성이 되었고 영원히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치루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늘의 시민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엡2:19)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명을 온전히 이루셨기 때문에 
예수 믿는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되었으니
예수 믿는 우리도 예수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성취해 가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신 후에

“…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9~20) 는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또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세상에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 땅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합니다.
-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명을 완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예배를 드리고 난 후 
누구를 만나실 것입니까? 어디를 가십니까?
누구를 만나든지 여러분은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으로 만나야 합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이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그리스도인임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사명을 받은 사람은 힘이 들던지, 어렵든지 
손해가 나는 것 같아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명을 성취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는 큰 빌딩이나 공공기관, 거리에 사람의 이름을 붙입니다.
뉴욕에 있는 공항은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이름을 따서 JFK 공항이고, 
LA 공항은 ‘톰 브래들리(Tom Bradley)’공항입니다.

미국 워싱턴 DC에는 유명 인사의 이름을 딴 정부 건물들이 많습니다. 
그 중 유일하게 현직 공무원의 이름으로 헌정된 건물이 있습니다.
‘존 키니(John Keaney)’라는 사람의 이름을 딴 ‘존 키니 빌딩’입니다. 
올해 90세인 존 키니는 연방정부 사상 최고령 검사입니다. 
그가 법무부에 있는 동안 대통령 12명과 법무장관 27명이 바뀌었습니다. 
대형 로펌에 소속되어 변호사로 일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키니의 연봉은 1/100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연방정부 검사로만 남아있었습니다.

언젠가 키니 검사는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좋은 자리를 다 포기하고 이 자리에 50년이 넘도록 계십니까?” 
존 키니는 대답했습니다. 
“법무부 검사의 위대한 점은 옳은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이 일을 할 것입니다.”
존 키니는 더 많은 연봉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더 큰 명예와 현실적인 편리를 물리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옳은 일을 한다’는 사명에 충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부유해지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도 아닙니다.
사명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도를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2~13절에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2~13) 했습니다.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우리들도
바울 같은 고백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만 관심을 두고 산다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 어떻게 생각하느냐 /
어떻게 말하느냐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주일이 되어 교회 가는 여러분을 보고 
‘참 미쳤다. 이 더운데 교회에 가냐’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신경 쓰이고, 교회에 가는 것을 주저하십니까?

다음 주에 아프리카 모잠비크에 
<신징기르 기둥교회> 봉헌식을 위해 가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재미있고, 좋은 곳이 참 많습니다.
이 더운 여름에 놀러 갈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저는 아프리카에 갑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든지 
다른 사람이 왜 거기에 가느냐고 해도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에 갔다 올 것만 생각하면 아득하지만
아이들에게 나눠 줄 목걸이 볼펜을 준비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끈 달린 볼펜을 목에 매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재미로 하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생각하는지, 말하는지 
신경쓰는 것 자체가 사명이 없는 것입니다.
사명을 완성하고 있느냐의 여부에만 집중을 하면 됩니다.
여러분 모두 사명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도전과 변화를 위한 사명

미국의 생명교회(Life Church) 담임자이자이며, 
미국 최초로 multi-site church를 시작한 
크레이그 그로쉘(Craig Groeschel)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인생의 목표를 찾기 위해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 첫째 질문은, <무엇이 정말 나를 화나게 만드는가> 입니다. 
운전할 때 끼어드는 사람을 보거나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을 보고 화를 내는 것과 같은 
개인적인 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정의감과 도덕심에 불을 지르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닌 
돈에만 눈이 먼 장사꾼들을 보고 화를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배의 소중함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외식과 위선을 보고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실함의 가치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 
절대적인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워서 화가 나십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들을 돕는 것이 
여러분의 비전이고, 사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전에 제가 아프리카 우간다의 솔티라는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가서 본 아이들은 먹지 못해 배만 동그랗게 불룩 솟아있고
팔과 다리는 앙상하게 말라 있고 도랑에 엎드려 물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의 사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습니까?’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살리고 싶다는 마음에 
돌아와서 시작한 일이 ‘생명살리기 운동’입니다.
여러분이 한 달에 3만원씩 후원하고 있는 그 일이 한 아이를 살리는 일입니다. 
그런 답답함과 안타까움과 분노가 느껴진다면 
그것이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화가 나며 안타까움을 느끼십니까? 
무엇을 보고 거룩한 분노가 느껴지십니까?

‣ 둘째 질문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좋은 곳을 여행할 때 개인적으로 느끼는 만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관계나 활동에서 진정한 의미와 성취감을 느끼느냐는 물음입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느낄 때가 언제이십니까?
남을 돕는 일이 즐거우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섬김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크레이그 그로쉘, <카존>, 두란노, pp.52-54. 참조>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겠다는 마음에
복음을 전하고, 변화되는 사람들을 보며 기쁨을 느낀다면
여러분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명인 것입니다.
무엇에 화가 나고 안타까우십니까?
무엇에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십니까?
어떤 때는 내 마음에 답답하고 분노가 느껴진 그것이 
사업의 아이템이 되기도 하고 성공의 비결이 되기도 합니다.

1951년 미국 멤피스에 살던 케몬스 윌슨은 
가족들을 이끌고 워싱턴에 휴가를 갔습니다. 
그러나 워싱턴의 형편없는 숙박시설 때문에 
그의 휴가는 즐겁지 않았습니다. 
요금도 비쌌고, 더군다나 불친절하고 지저분하기까지 했습니다. 
호텔에 식당도 없어서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숙소에 멀리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그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억지로 참으며 여행을 마쳤습니다. 
그 후 윌슨은 미국 전역에 좋은 숙박시설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그것을 사업 아이템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누구나 안심하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호텔 400개를 짓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부푼 가슴을 안고 그는 그 계획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첫 번째 호텔의 문을 열었을 때
그는 ‘홀리데이 인(Holyday Inn)’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그가 처음 생각한 400개의 호텔은 말도 안되는 것 같았지만 
1964년에 500개, 1968년에는 1,000개, 
1972년부터는 전 세계에 3일에 하나씩 새로운 호텔이 들어섰습니다. 
[ 강헌구, <가슴 뛰는 삶>, 쌤앤파커스, pp.26-32. 참조 ]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할 때 답답하십니까? 
안타깝고 분노가 생깁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할 때 기쁨이 있습니까?
무엇을 생각할 때 가슴이 설레고 뛰십니까?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분노와 행복으로 가슴 뛰는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골1:16) 
그러므로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목표와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이 무엇인지 분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니, 이 주간에 
여러분이 해야 하는 일들은 무엇을 위한 일입니까?
좀 더 부지런하게 열심히 뛰어서 
물질과 유익을 얻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몇몇 사사들처럼 단지 식구들 배부르게 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목적입니까?
그렇다면 본문에 나오는 세 명의 사사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
그리스도의 예수의 이름과 사랑을 전하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사명을 잃으면 입산, 엘론, 압돈 같은 존재감 없는 자가 되고 맙니다.

우리 6개월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의 반년의 삶이 어떠셨습니까?
힘드셨습니까? 어려웠습니까?
그래도, 그럼에도 … 여기까지 오늘까지 살아온 것,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음주일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그리고 기둥교회 창립42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3대 절기 중 하나입니다.
반년을 / 봄을 감사하는 때입니다.
여러분을 지난 반년을 원망과 탄식으로 묻어버리시렵니까?
아니면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고 감사하시렵니까?
그리고 감사함으로 남은 6개월을 다시 시작하시렵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어떤 것을 품고 계십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담긴 진실함과 감사,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가슴 뜀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남은 6개월을 더 크게 축복하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지난 6개월을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보세요.
그리고 남은 6개월을 정말 가슴뜀으로 살겠다는 결단을 하면
하나님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해 주셨는데
여러분과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런 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임에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오게 하셨으니 
남은 날들의 삶이 더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삶이 되기 위하여
가슴 뛰는 목표를 가지고 살게 하시고
그 목표를 위하여 최선을 다해 살게 하실 뿐 아니라
목표를 이루는 일에 방해가 되는 어떤 것도 제거하는 
용단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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