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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간의 구원과 하나님의 주권(1) (롬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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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구원과 하나님의 주권(1) (롬 11:33)

어떤 예쁘장한 젊은 여성이 방송에 나와서 외국 모델의 타투(문신)를 본떠서 전신에 그림을 그린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은 기독교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관세음보살을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성경구절을 새겨놓았습니다. 
종아리에는 복을 부른다는 봉황 모양의 타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다원주의 사상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이사야 43장 11절에 『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신구약 성경이 한결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다고 했습니다(시 3:8).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인다고 했습니다(시 18:46).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했습니다(미 7:7).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다고 했습니다(욘 2:9). 
하나님은 왜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시지 않고 일부만 구원하시는가? 그들에게 구원 받지 못할 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인의 괴수까지 구원하십니다(딤전 1:15). 따라서 죄가 너무 크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돌 같은 사람도 구원하십니다.

에스겔 11장 19절에 『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똑같이 배반한 사람들 중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강제로 굴복시킬 능력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원하는(willing) 마음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인간은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음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믿게 하시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지혜가 월등해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구원의 필요성을 더 빨리 깨달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4장 7절에 『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택자와 불택자를 나누십니다.
요한일서 5장 20절에 『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인 동시에 믿음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살후 3:2).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택자들에게만 베푸십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하나님께 불평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20장 15절에 『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라고 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아더 핑크(The salvaion of God, A.W. Pink)의 하나님의 주권을 중심하고 설교하기 원합니다. 

Ⅰ. 성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구원입니다.

로마서 9장 21-23절에 『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찌라도 무슨 말 하리요 』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구원에 대해 로마서 9장 전체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타락한 사람을 진흙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택자와 불택자 간에 아무 차이도 없음을 보여줍니다. 둘은 똑같은 진흙 한덩이 입니다. 본질상 인간은 진노의 자식들입니다(엡 2:3). 모든 인간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우리의 운명이 우리 손에 달렸다면 우리는 모두 지옥의 불속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그릇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뜻에 따라 빚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원하는 것을 자신의 계획대로 집행하실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이미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들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예정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29절에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예정하신 자들을 영생에 이르도록 작정하셨습니다.

1)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작정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영생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습니다(계 7:4).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예외 없이 작정하셨다면 "다"라는 단어가 무의미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은 땅에서 축복받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영생입니다. 섬김을 위한 작정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작정입니다.
예수님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이 땅에서 아무런 섬김이 없는 자가 단지 믿었다는 이유 때문에 천국을 간 것입니다.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틀림없이 믿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믿는 마음을 주시는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이러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시기 때문에 영원 전에 작정하셨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2) 지금은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5-6절에 『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런즉"이라는 접속사는 바로 앞 절을 겨냥한 구절입니다
즉 로마서 11장 4절에 『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 "남겨두었다"라는 말은 엘리야 시대에 하나님이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게 보존하시고 참 하나님을 알도록 인도하신 사람은 7천 명에 불과한 작은 수였습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근거로 엘리야 시대에 남겨두신 남은 자가 있었듯이 이 시대에도 은혜로 참 하나님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얻은 것입니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선택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절대 이유가 없는 선택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갈보리 교회운동(택자를 찾는 운동)은 지금도 유효한 지상 최대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3) 구원은 무조건적 선택에 의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29절에 『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택하사"라는 말이 세번 반복됩니다.

이 말에서 취사선택의 개념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본문은 이와 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리라는 마태복음 20장 16절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선택은 자신의 은혜를 확대시키기 위함입니다.
그 다음은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고 자기 육체를 자랑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갈 6:14).

하나님은 자신이 영광을 받기 위해 부유하고 힘 있는 자들과 사교적이며 지성과 교양을 겸비한 자들 중에서 선택해야만 마땅합니다. 그러나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같이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눅 16:15).

하나님은 구약시대에도 당시의 패권국가나 문명이 발달한 국가를 선택하지 아니하시
고 멸시받던 유목민인 히브리인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도 거의 무지하고 천한 직업을 가진 어부들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신 의도를 잘 알 수 있습니다.

4)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선택한 동기와 목적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3-5절에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1절에 『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언제쯤 하나님이 선택된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녀로 삼으시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에덴동산 사건 이후가 아니라 신비하게도 창세전입니다.
여기서 선택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알려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들이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들이 기업이 되는, 곧 기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의 조언도 없이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5) 하나님의 선택은 구원을 이루게 하는 선택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선택은 구원에 이르도록 우리를 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다시 말하기를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어떤 과정 자체를 무시하는 경솔함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무조건이라고 해서 믿음의 조건까지도 필요없다고 한 것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에 필요한 과정도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와 진리를 믿는 믿음을 통해 성취되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에 이르도록 우리를 택하셨다는 이 사실이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될 이유가 된 것입니다. 

6)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뜻과 은혜의 결과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9절에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성경의 표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말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인간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어둡게 합니다. 

욥기 38장 2절에 『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따라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그 무엇 때문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행위에 대한 상급도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창세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뜻의 반영이며 하나님의 호의로 된 은혜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이 놀라운 은혜를 창세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말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널리 활용되고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의 대중적 언어로 평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 평범한 말이 아니라 특별한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이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죠지 비숍"(George S. Bishop)은 "영원에서 온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영원까지 계속되지 못한다. 영원에서 온 것만 영원까지 계속된다."고 했습니다. 

7) 성부 하나님의 택하심이 성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보다 앞서며 그리스도인들의 보이는 믿음의 순종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절에 『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 』은 단순히 하나님의 예지가 아니라 예지예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택자들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마음에 영원 전부터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복음을 들은 사람 중에 누가 복음을 믿을지 미리 아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은 이들이 영생에 이르도록 작정하셨다는 말입니다. 미리 아심은 미리 생각하신 계획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23절에 『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뜻이고 둘째는 그분의 미리 아심입니다. 
로마서 8장 28-29절에도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은 "아신다"는 말이 나올 때 "아신다"는 단어는 "사랑으로 아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위선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니"라고 한 것은 내가 너희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선택받아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서 믿게 한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의로 믿을 수 없습니다(행 18:27).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받은 사람은 믿고 이 선물을 못 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택의 원인은 그분이 선택하신 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이 택하신 자들을 선택하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선택하기로 창세전부터 이미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그분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오직 그분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 이것이 우리를 향한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요 우리에게 있는 놀라운 축복(Blessing Grac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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