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리석은 부자의 유훈(遺訓) (마 19:16-22)

첨부 1


어리석은 부자의 유훈(遺訓) (마 19:16-22)

어리석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발’이라고 하는데 미련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9:57~58에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하신 말씀은 이 세상에 집이 필요없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육신이 원하는 세상의 장막이나 물질적 기대심리보다는 영적으로 하늘소망이 더 낫다고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이적 기사를 많이 베푸시고 절망을 소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가시는 과정에서 부자청년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이 청년은 율법에 정통한 신앙생활을 했으면서도 마음 속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어지는 믿음,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 청년이 예수님께 16절과 같이 묻습니다.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에게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고, 체험을 주셔서 감동하게 하시고 믿어지는 믿음도 주시기에 가능합니다. 믿음도 하나님 편에서 주셔서 믿어질 때에 가질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 갈 때 어떤 입장으로 들어갈지는 은혜로 구원 얻은 다음부터 영적인 성과를 위하여 얼마나 믿음으로 살았는지, 애쓰며 헌신하고 봉사했는지에 따라서 영원히 결정되어집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천국에 가는 것도 선한 일을 행하여야 들어가는 것처럼 생각을 잘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영생이 확실히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영생에 자기도 꼭 참여하고 싶다는 의욕을 보이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청년처럼 교회 다니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천국이 있다고 자랑하면서도 자기는 그곳에 갈 자격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청년도 영생에 관심이 많고 확신도 있고 꼭 들어가야겠다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율법도 다 지켰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천국에 갈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아무리 잘 지켜도 죄를 짓지 않게는 될 수 있으나 천국에 들어갈 자격은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태어날 때 원죄를 전가받아 죄인의 후손으로 태어났고 율법을 지키기 그 이전까지 지은 죄는 율법을 아무리 잘 지켜도 사라지거나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함’으로는 하늘나라 갈 자격을 얻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신 은혜를 택하신 사람에게 성령으로 깨닫게 해주실 때, 성령이 뜨겁게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집중적인 역사를 해주실 때 그 사람은 성령의 가르치심을 따라 예수님이 자신의 죄 때문에 대신 벌을 받아 죽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믿어지게 되어서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회개함으로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을 파송시켜 주시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자녀이기 때문에 성령에 이끌려 순종해 살기만 하면 하늘나라는 반드시 그 성령이 데리고 들어가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영적인 소망을 가꾸어주기 위하여 자주 모여야 하고 계속해서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기 믿음을 비교, 점검하면서 잘못된 부분은 시정해야 합니다. 육적으로 세상에 빠져버렸으면 그곳을 헤쳐 나와서 다시금 말씀에 붙들리고 성령에 이끌리어 늘소망을 향해 새출발 하는 일을 하늘나라 갈 때까지 계속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 주어야 하며, 주저앉으면 일으켜 가며 하늘나라로 보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고 목자의 책임인 것입니다.

16절에서 청년이 영생을 얻기 위한 방법을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생명으로 바꾸어 말씀하시며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을 일러 주시며 지키라 하십니다. 그러자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다 지켰다고 장담하며 말합니다. 20절의 내용은 자신이 이 모든 계명을 다 지켰음에도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네가 진실로 하늘나라에 가고자 한다면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하십니다.

유대인이며 율법주의자인 이 청년은 하늘나라에 가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천국에 대한 믿음도 확실한데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그의 많은 재산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임을 간파한 예수님께서 그것을 지적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청년을 우리 자신과 비교하며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교회도 열심히 다니며 예배도 빠짐없이 참석하지만 여러분들의 믿음이 진실로 영생에 들어가는 길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진정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그곳에 가기 위한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재리(財利)의 유혹이 여러분들의 신앙을 잠식(蠶食)해 버렸습니다. 그것은 진짜 ‘믿는 믿음’은 없고 그저 믿는 척하면서, 실제는 세상 허욕을 위해 돈을 좇아 사느라고 정신이 없는 껍데기뿐인 신앙을 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공적인 예배에도 참석하지 않고 돈벌이 하느라 바쁩니다.

내세소망의 확신은 정말 중요합니다. 교회 다니는 목적은 하늘나라에 가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천국은 정말 있습니다. 하나님 계신 곳이 천국입니다.

돈을 좋아했던 모 권사님 이야기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에서 권사로 세움 받았던 이 할머니는 자녀가 많았습니다. 이분은 열심히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께 신유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의사가 죽는다고 했던 사람도 이분이 붙잡고 기도하면 치유 받고 살아나곤 했습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사방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찾아왔고 기도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사양하듯 받다가 나중에는 돈을 얼마나 가져왔는지 물어본 후 기도해 주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그때는 이미 60억 정도 되는 돈을 모은 상황이어서 자녀들에게 사업자금도 주고 건물도 사주었습니다. 또한 땅도 매입해서 자기 재산 늘리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기도해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그분을 떠나셨고 더 이상 기도해도 병이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권사님은 병이 나서 앓다 죽게 됩니다. 이분은 당연히 당신이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교회의 권사이며, 하나님의 도구로 병자들을 고치며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보면 당연히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거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마귀와 같은 자들이 와서 자신을 끌고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사적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중 한줄기 빛이 보이면서 천사 둘이 자기 앞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천국 문이 닫혀있고 천사들은 자기를 데리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했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권사님을 많은 병자들을 고치면서 복음이 확증되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시기를 원하셨는데 신유의 은사를 통해 자신의 이익만을 챙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버리셨고 결국 천국에 갈 자격을 잃은 것이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이 권사님은 “지옥에는 절대로 가고 싶지 않으니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돌아가서 진정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남은 생을 살다 죽어 하나님 품에 안기기를 소원한다”면서 애걸복걸 매달렸답니다.

그러다가 다시 살아나게 되어 이 권사님은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는 자녀와 손자들을 다 불러 모아놓고 말을 합니다. “내가 하늘나라 문이 닫혀 못 들어가고 마귀들이 나를 지옥의 어두운 곳으로 끌어들이기에 지옥에 갈 수 없으니 나를 다시 세상으로 보내달라고 몸부림치며 부르짖고 애원해서 다시금 세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너희들은 돌아가 내가 나누어준 재산을 빨리 정리하여 내게로 다시 가져 오거라”고 했습니다. 자식들은 그의 어머니의 태도가 너무나 진지하여 모두 정리해서 가져 왔습니다. 그분은 이것으로 하나님의 일에 모두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23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일에도 속셈을 해가면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계산적으로 믿습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희생시켜서 인류의 죄 값을 값없이 대속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옥에 갈 사람을 구속하여 하늘나라까지 상속하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결국 육신의 세상 허욕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인생을 속셈하며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누가복음 6장 3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우리는 나누고 베푸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 이름으로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입장에서 너무나 어여쁘게 여기시고 기대를 거심으로 누가복음 6장38절과 같이 후히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절대 속셈하여 주지 말라고 하십니다.

본문 속의 청년은 하늘나라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자신이 그곳에 가고싶다는 간절한 소망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계명을 모두 지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그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할 정도의 율법주의자였습니다. 

20절에 그 청년은 자신이 영생을 얻기 위해 모든 계명을 다 지켰는데 무엇이 부족한 것인지를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를 꿰뚫어 보시고 “네가 진실로 하늘나라에 꼭 들어가고 싶으면 가서 네가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고 기대하고 의지하고 있는 너의 재산을 정리해서 예수 이름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큰 상급이 있을 것이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저축한다고 헌금도 하고 몸으로 헌신도 하는데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면 하늘에 쌓아놓은 공적이 그 사람과 영원히 상관이 없게 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가 천국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고 합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고 하늘소망의 기쁨과 생기가 넘치는 신나는 믿음생활을 하며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며 헌금도 아낌없이 하던 사람이 세월이 지나며 믿음이 점점 더 자라야 하는데 반대로 세상으로 빠져들어서 재리(財利)의 유혹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해서 그만 하나님이 버리시면 천국백성이 되지도 못하고 실격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는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간에 은혜 받았을 때 섬겼던 일은 영원히 상관없는 것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9장 24절에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하신 말씀은 절대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부자는 돈을 의지하고 돈을 위하여 사는 사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25절에 제자들이 그 말을 듣고 심히 놀랐다고 하고 있는데 제자들 역시 예수님 덕분에 부자 될 기대와 욕심이 가득 차 있었다는 가장 진솔한 반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고 질문하자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답하십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에게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고 감동케 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셔서 그가 온전한 믿음으로 하늘나라를 목적 삼는 영적 소망에 순종하면 성령이 하늘나라까지 데려가 주시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작은 회사를 경영하던 중 부도가 났습니다. 잡히면 구속되기 때문에 기도원으로 도망을 가서 숨어 지냈습니다. 그곳에서도 가짜 이름을 사용하면서 지냈는데 아침, 저녁으로 집회시간이 되면 참석하라는 종을 치니까 할 수 없이 자신을 알아볼 수 없는 차림새를 하고는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에는 한 교회에서 버스 두 대가 와서는 남전도회 회장이라는 사람이 집회를 인도했는데, 가만히 보니 고향에서 함께 자란 친구였습니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은 들었지만 당시 처지가 숨어 지내는 형편이라 선뜻 나서서 아는 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 친구가 기도원을 떠날 무렵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얼굴이나 한 번 더 볼 생각으로 다가가 바라보다가 도리어 그 친구가 자신을 알아보고 덥석 안으며 “너도 이제 예수님을 믿게 되었구나. 참 반갑고 잘했다”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친구에게 말을 합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더 일찍 예수님을 믿었으면 너의 형편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했고 그는 “예수를 믿으면 부자라도 된다는 말이냐?”고 친구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아, 그럼. 제대로 믿기만 하면 엄청 부자가 될 수 있지”하고 말했습니다. 그에게는 친구의 말이 복음으로 들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친구는 “기도원에서 기도하면서 진짜로 믿음을 가지라”며 “그렇게만 되면 하나님께서 빚도 다 갚아 주시고 부자가 되게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렸을적 함께 주일학교에 다녔던 때를 생각하면서 열심히 예배에 참여하며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회개하고 믿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 친구 장로가 그 사람의 회사를 조사해보고 돈을 빌려줘서 부도는 면하게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반드시 믿음으로 살아야한다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그는 기도원을 내려와서 다시 회사를 경영하게 되면서 친구 장로가 다니는 교회에 등록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어느 전도회 모임이 있던 날, 전도를 나가기 전 목사님께서 전도는 우리의 사명이며 반드시 해야할 것이라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성과라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도를 나가는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오늘 꼭 전도해 오실 거지요?”라고 했더니 이 사람이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놀라서 “전도를 해 오시라니까 왜 고개를 저으십니까?”했더니 “제가 전도를 하면 안되지요.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면 하나님이 복을 막 주신다고 했는데 내가 전도를 하면 더 많은 사람이 그 복을 다 나누어 가지게 되는데 내게 돌아오는 것이 적지 않습니까? 내가 손해보려고 전도를 하겠습니까?”하더랍니다.

그 사람의 머리는 속셈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목사님은 자기 교회 장로인 친구가 엄청난 부담을 안고 몇 십억이나 되는 돈을 빌려주며 도왔는데 어쩌면 그것이 소용없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현재 신앙생활하는 것이 엉터리인데다가 하나님을 아는 것도 무지할 뿐 아니라 믿음의 목적이 속셈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목자도 걱정하지만, 성령님이 염려하시고 예수님이 실망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인생은 소망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물질 기대로 인한 속셈은 참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성과를 인한 속셈은 하나님의 복 받을 그릇이 됩니다. (장재효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