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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감사에서 온 기적 (행 16: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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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에서 온 기적 (행 16:11-26)


언젠가 성도 한 분을 만났더니 고생하고 사는 것이 얼굴에 역력했습니다. 그 성도는 얼마 전에 가계를 정리하였고, 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위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한 다음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목소리에도 힘이 느껴지지 않아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성도들이 사업도 잘 되고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하는데, 그렇치 못하고 어려운 형편에 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그 성도는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송구영신 예배 때 성경 말씀을 하나 받았습니다. 그 말씀이 너무 좋아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여 기대하고 있었는데, 일이 더 나쁜 방향으로 흘러 그 해 말에 가계를 정리하였고 이어서 위암 선고를 받고 지금 항암치료로 죽음과 싸우고 있습니다.”
복이 되는 성경 구절을 뽑아 좋은 일이 있을 줄 알았는데, 도리어 상황이 점점 나빠져 암까지 얻었으니 그 성도에게는 올 해가 생애 최악의 해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최악의 경험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출애굽의 경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두렵게 하여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한창 이집트를 벗어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가려던 찰나 저 먼곳에서 이집트의 정예병이 모는 전차가 흙바람을 일으키면서 질주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해방을 약속하셨는데, 해방은 고사하고 잘못하면 이집트 군사들의 창칼에 모두 죽게 생겼습니다. 바닷가에 진을 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아마 전체적인 상황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바로(람세스 2세)의 궁중에서 바로는 장자를 잃은 슬픔과 엄청난 재앙에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신하가 들어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떠났다고 보고합니다. 두려움과 절망, 그리고 아들을 잃은 슬픔이 갑자기 분노로 바뀝니다. 람세스 2세의 표정에 그 특유의 강인함이 살아납니다. 
옆에 있던 신하 중에서 강경파가 기회를 놓칠세라 이스라엘 백성을 잡아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정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특별전차까지 출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국가적인 운명이 걸린 전쟁에서나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람세스 2세의 마음이 얼마나 분노로 불타오르고 있었겠습니까? 특별전차 600대, 이것만 해도 엄청난 전력인데 그 외에도 전차란 전차는 모두 출동합니다.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종종 깜짝 놀랄 일을 하는 람세스 2세였으니 직접 전차를 타고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장군들이 모두 중무장을 하고 나섭니다. 성문이 열리면서 마차가 달려나가는데 천지가 흔들립니다. 큰 흙먼지가 일고 무서운 피비린내가 벌써 바람에 실려오는 듯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을 알아내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아직까지 이집트 영토 안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로는 국경수비대에 의해 속속 보고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닷가를 향해 수많은 철병거가 질풍처럼 내달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즉각 사태를 알아차렸습니다.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아우성이 터져나옵니다. 

나쁜 소문은 더 빨리, 더 부정적으로 사람을 꺾는 법입니다. 모세를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절망에 빠져 통곡합니다. 길은 없습니다. 절망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하나님은 람세스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을 시켜버립니다.
신앙은 어려운 일에 부닥칠 때 그 위기를 관리하는 데서 참모습이 드러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원망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신앙인의 가정은 불평하지 않고 감사합니다. 어려움은 우리를 큰 사람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훈련 프로그램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어려움이 우리를 큰 사람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훈련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 선교에서 큰 성과가 없어 고민하고 있던 중 드로아에서 밤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 속에서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바울에게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고 간절히 청했습니다(행16:9).
사도 바울은 이 환상이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 생각하고 아시아에서의 선교활동을 접고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

마게도냐는 오늘의 유럽으로, 성령께서는 이 환상을 통해 세계 선교의 방향을 유럽으로 향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만일 성령께서 바울의 발걸음을 아시아를 향하도록 했더라면 아시아는 일찍 문명의 꽃을 피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바울의 발걸음을 유럽의 땅 마게도냐로 인도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 가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강변에서 자색 옷감 장사를 하는 루디아를 만났는데, 그 당시 자색 옷감은 값이 몹시 비쌌습니다. 그래서 자색 옷감 장사는 돈이 많은 거상들이 하는 장사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바울의 전도를 받아들여 세례를 받고 바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도의 집은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손을 대접하기를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권면합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3). 
또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벧전4:9). 이것이 바로 성도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바울은 빌립보에서 자신의 선교 사역을 도울 여성 지도자 루디아를 얻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루디아만을 만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여러 주인들에게 고용되어 점을 쳐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었습니다.
귀신 들린 그녀는 바울과 실라를 보고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행16:17)고 여러 날 외치며 따라 다녔습니다.
그녀 안에 있는 귀신이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의 종인 것을 알아본 것입니다. 여러 날 바울과 실라를 귀찮게 하며 따라 다니자 바울은 심히 괴로워 그녀에게서 귀신을 내쫒았습니다. 
바울이 그녀에게 있는 귀신을 내쫒자 그 여자가 온전한 정신이 돌아오니 점궤가 나올 리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의 주인들이 자기의 수입이 끊어지게 된 것을 원망하여 바울과 실라를 로마 당국에 넘겨 버렸고, 시민들도 그녀의 주인들에게 매수되어 바울과 실라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하며 고소했습니다.

그 당시 마게도냐는 로마의 속국이라 오직 로마 황제만 신으로 섬겨야 했는데, 예수를 신으로 전하는 사도 바울의 말씀이 그들에게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바울과 실라는 옷을 찢기고 많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갖혔습니다. 감옥에서는 발에는 차꼬를 차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아시아에서 선교 활동의 문이 닫혀 기도하던 중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왔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선교에 큰 진전이 있어야 했는데 자색 옷감 장사를 하는 루디아를 만나 그녀를 동역자로 얻은 것 외에는 별 진전이 없이 곧 이런 엄청난 시련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시련은 이기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는 유럽의 관문 빌립보에서 죽음의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더 이상 살 의욕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한 잘못이라고는 귀신들린 점장이 하나를 고쳐 그 여자를 예수 믿게 한 것 뿐입니다. 이것은 잘못이 아니기에 도리어 하나님의 상급을 받을 일입니다.
그런데 상은커녕 감옥에 갇혀 그것도 발에 차꼬까지 차게 되었으니, 참으로 신세가 가련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억울해서 억장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발에 찬 차꼬란 정말 무거운 형벌입니다. 차꼬는 움직일 수 없도록 죄수의 발을 구멍에 넣고 자물쇠로 채워 놓는 것입니다.

어떤 차꼬는 머리와 팔과 발을 동시에 묶을 수 있도록 구멍이 다섯 개나 있었습니다. 차꼬에 차이는 것은 정말 괴로운 형별이었습니다. 
우리 또한 삶을 살아가다보면 삶의 차꼬에 차여 꼼짝할 수 없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무엇인가에 붙잡혀서 꼼짝 못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서 그만 어떻게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돈을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고 그 어디에 도움을 청할 데도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 중 하나가 병으로 생사의 가름길에 놓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두가 다 인생의 한밤중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한밤중에는 사람들이 다 잠들어 있습니다. 한밤중은 누구도 도와 줄 수 없는 때입니다. 완전히 팽개쳐진 때입니다.
인생의 한밤중 철저한 고독 가운데 있을 때는 기도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 같습니다. 

인생의 한밤중을 만나면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생각과 언어 그리고 심장은 다 멈추어 선 것 같습니다. 세상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바울이 바로 이런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환상을 보고 그곳에 온 결과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습니다. 
오늘 맥추 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 중에 이런 어려운 형편에 처한 성도가 있을런지 모릅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 차꼬와 매맞음과 아무도 도울 수 없는 한밤중 고독과 두려움에 처한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위기에 처해 감사해야 함에도 실상 무엇을 감사해야 할 지 모르는 상태에 있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의 위기에서 바울이 어떻게 했는지를 보십시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행16:25).
바울과 실라는 그 죽음의 지하 감옥에서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은혜로 그곳 빌립보에 와서 복음을 증거하여 자주 옷감 장사 루디아와 그 귀신들린 여자를 건진 것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감사기도와 찬송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세상을 떠나더라도 천국을 향하고 있음을 기뻐하며 감사와 찬송을 했습니다. 이렇게 한밤중에 드리는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독일의 유명한 음악가 바흐가 노년에 시력을 잃었습니다. 바흐는 유명한 안과의사의 희망적인 말을 듣고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시간이 지난 후 붕대를 풀었을 때 침대에 둘러서 있는 자녀들과 친구들과 성도들이 물었습니다. “보이세요?”
바흐는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되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구나”고 대답했습니다.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 때 바흐는 거기서 모인 이들을 도리어 위로하고 하나님께 감사찬송을 드렸습니다. 
“나 무슨 말로 주께 다 감사드리랴
끝없는 주의 사랑 한 없이 고마워
보잘 것 없는 나를 주의 것 삼으사
주님만 사랑하며 나 살게 하소서“
바흐는 이 찬송을 지어 불러 믿음의 승리를 노래했습니다. 실상 바흐의 일생을 보면 그날 이후 더욱 위대한 음악가로 서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한밤중에 감사기도와 찬송을 드리자 큰 지진이 나서 감옥 터가 움직이고 곧 문이 다 열리며 깨어난 모든 사람이 다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바울과 실라 뿐 아니라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자유를 얻었습니다. 감사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밤중이라도 우리가 감사기도와 감사찬송을 드릴 때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감사가 없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맥추감사절에 그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 우리의 삶에 새로운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기가 왔을 때 절망하는 것은 신자가 할 바가 아닙니다. 위기의 때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가장 절호의 순간입니다. 신앙으로 위기를 기회로 살려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전병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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