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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 범사에(어떤 상황에도) 감사하라! (살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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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어떤 상황에도) 감사하라! (살전 5:18)

①사랑하는 아이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한 쪽 다리를 많이 다쳤습니다. 위로하러 온 지인들에게 오히려 생명을 잃지 않은 것과 그래도 남은 한쪽 다리는 멀쩡하니까 감사하다고 고백합니다. 

②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떻게 위로할지 몰라 민망해 하는 조문객들에게 오히려 천국에 먼저 가서 평안히 안식하고 계실꺼니까 감사하다 고 고백하고 찬송하며 기쁨으로 보내줍니다. 

③어려운 경제로 아들이 실직을 했습니다. 참 안됐다고 혀를 차는 이웃들에게 병들어 입원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이번 기회에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기회가 될테니까 더욱 감사하다고 고백합니다. 

④여름 장마에 논밭의 곡식이 다 쓸려가 버리고 남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매년 계속 풍년을 들게 하신 하나님께서 흉년도 허락하시는 것은 고난을 통해 나를 낮추려 함이라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게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①외동아들이 대학입시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동안 학원비다, 과외비다 쏟은 게 얼마인데? 갓바위 계단이 닳을 정도로 오르내린 게 몇 번인데 부처님도 무심하시지.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흥, 그 놈의 점쟁이 말도 다 거짓이었군! 

②사랑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위로하러 찾아온 조문객들의 옷을 붙잡고 하소연을 합니다. <나는 어떻게 살라고? 우리 자식들은 어떡하라고! 가려거든 빚이라도 남기지 말고 가지. 정도 주지 말고 가지. 이 야속한 사람아, 뭐가 그리도 급해서 이리 빨리도 떠났소!> 하며 슬퍼 통곡을 합니다. 

③그동안 잘 나가던 남편의 사업이 졸지에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연일 채권자들의 독촉과 협박이 이어집니다. 집안에서는 싸움 소리가 연일 끊이지 않습니다. 

더 이상 힘들게 살기 싫다는 아내의 불평과 원망의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가고, 아이들은 갑자기 학원이다, 과외다 다 끊겨버리고, 기가 죽어 세상에서 방황합니다. 결국 고통을 견디지 못한 아내가 집을 버리고 나가 버렸습니다. 그 동안 이 부부와 가족의 사랑은 돈 때문에 유지되어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④집에 큰 도둑이 들었습니다. 장롱 속 깊숙이 숨겨둔 금패물과 보석들이 몽땅 털려버렸습니다. <아이구, 올해에 삼재운이 들었다고 하더니만 액땜했네 그려. 더 이상 액운이 안 끼이도록 불공을 드리고 좀 더 비싼 부적이라도 다시 사와야겠다. 이번에는 설마 지켜주시겠지.> 

이게 바로 이 땅만 바라보고 살면서 잘못되면 원망하고, 잘 되면 좋아하는 세상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에는 조건 없는 구원의 진리와 감사가 있다면, 세상종교는 다분히 기복적이고 현세적이고 공로주의적입니다. 

심지어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을 돌리는 신앙이 기독교라면, 세상종교는 잘 되고, 형통하고 복 받기를 바라서 빌어보는 기복종교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상종교들도 겉으로는 동일하게 <구원>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실상은 차원이 다르고 또 모든 게 공로주의 입니다. 그래서 복을 주지 않는 신으로 판정나면 미련 없이, 가차 없이 차버립니다. 이것이 기독교와 세상종교의 크나큰 차이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감사의 신앙을 깨닫지 못해 자신에게 불행이 닥치면 절망하고 원망하다가 하나님을 떠나버립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감사절을 맞이하여 <왜 우리가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 감사의 근본적인 원리를 다시 되새기면서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본문 살전 5장18절은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감사의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왜 인생은 하나님께 감사를 하며 살아야 하는가? 심지어 고난과 불행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 분명한 이유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이 시간 <범사에 감사해야할 이유>를 통해 감사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1.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세상만물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것이고, 삼라만상의 움직임과 자연의 이치도 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흐르는 강물을 지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산을 만드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해와 별을 지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저와 여러분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세상만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거기다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며 우주의 중심을 잡고 계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살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중력의 작용과 계절의 변화와 별들의 움직임을 잡고 계신 분도, 물이 밑으로 흐르게 하고, 얼음이 위에서부터 얼게 하고, 봄이 되면 만물의 싹이 돋게 하고,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게 하고, 상처가 나면 딱지가 앉고 살이 붙게 하는 것도, 뼈가 부러지면 진액이 흘러나와 다시 붙게 하는 것도, 보이지 않는 전파가 먼 곳까지 흘러 전화통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들판에 쑥 한 포기도, 민들레 한 송이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존재합니다. 이 세상에 어떤 일도 우연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만물은 하나님 없는 삶을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셨기에, 내가 존재하고, 모든 것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역사하시기에 우주와 만물이 중심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것도 하나님을 떠나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피조물된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가운데 마땅히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욥1:21)의 말씀처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하면서 나에게 생명을 주셔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을 감사하고, 나 같은 죄인을 값없이 구원해 주심도 감사하고, 세상만물을 붙들고 다스려주심도 감사하고, 지금도 역사를 이끌어주셔서 감사하고,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심에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바라기는 오늘도 우릴 만드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에, 하나님의 통치 영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마땅히 감사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인도를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릴 사랑하셔서 친히 우릴 만드셨고, 또 우릴 너무도 사랑하셔서 구원하셨기에, 언제나 우리를 선으로 인도하시길 원하십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마치 부모가 자녀 잘 되기를 바라듯이, 언제나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롬 8장28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우리의 고난에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뜻이 숨어 있습니다. 시119:71에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듯이, 고난도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우릴 향한 사랑과 그 깊은 뜻을 이뤄가고 계십니다. 

곧 우리를 낮추셨다가 더 연단시켜서 높이시기 위해, 하나님을 더 의지하도록 하기위해,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하기위해서, 때론 하나님의 영광과 선한 역사를 이뤄가기 위해서, 나에게 그런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일시적으로는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릴 복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인생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모든 것이 다 무너질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아무 희망도, 소망도, 비전도, 미래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릴 망하게 하고, 나를 버리려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내팽개쳐 버릴 것 같으면 나를 처음부터 아예 만들지도, 이 땅에 보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언젠가 한번 소개한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를 잘 알지 않습니까?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要塞) 근처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옹(老翁)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노옹의 말[馬]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치하하자 노옹은 조금도 기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화가 될는지." 

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옹의 아들이 그 오랑캐의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랑캐가 대거 침입해 오자 마을 장정들은 이를 맞아 싸우다가 모두 전사(戰死)했다. 그러나 노옹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었기 때문에 무사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세상에서 복(福)이 화(禍)가 되고, 화(禍)가 복(福)이 되는 것은 그 변화가 너무 깊어 감히 측량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일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야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을 단순히 운명론적으로나 불가지론적인 것으로 치부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선한 뜻 가운데 일어난 것으로 믿습니다. 즉 성도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만 두고 보기에는 그 고난이 내게 불행인 것 같아 보여도, 멀리 두고 보면 하나님께서 그 일이 내게 유익이 되고, 도움이 되고, 선이 되도록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 고난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 위기를 호기로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주가가 떨어져도 하나님의 선한 인도를 믿기에 감사합니다. 남편의 사업이 망해도 감사합니다. 자녀가 시험에 떨어져도 감사합니다. 나에게 질병이 찾아와도 감사합니다. 강도를 만나도 감사합니다. 교통사고가 나도 감사합니다. 

무엇이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은 방향으로 이뤄질 것을 믿으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나에게 선을 베푸시고 복이 되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각자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확신하기에, 범사에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조건적인 감사로 내가 무엇을 받거나 누리거나 좋은 일이 있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에, 조건 없이 순종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감사해야만 합니까? 
오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유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기서 보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인데, 거기에 수식어가 이렇게 붙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라는 것을 강조합니까? 

우리가 예수를 모르는 자라면 아예 이런 요구도 하시지 않겠지만, 우리는 이제 예수 안에서 완전히 뒤바뀌어진 인생, 예수 안에서 의미가 달라진 인생, 소속이 달라진 인생, 예수 안에서 목적이 달라진 인생, 가치관이 달라진 인생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세상과 짝하며, 세상적인 목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영화를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구원을 얻었고, 천국을 소망하는 자들이기에,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린다 해도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으로 뒤바뀌어져야겠습니다. 

그래서 롬 14:8처럼,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이제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 사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러니까 이제는 주를 위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 그 자체가 이제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당연히 이루어 드려야 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감히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이면 겸손히 받고 순종해야만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인생의 주인되시고, 주권자되신 하나님의 뜻이니, 온전히 순종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환경적으로 감사할만한 조건이 전혀 없다고 해도 감사해야 합니다. 비록 사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벼이삭에 알곡이 없고, 마늘의 소출이 없어도,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그래도 감사해야 합니다. 

비록 내가 기대했던 소망이 이뤄지지 않고, 원하는 열매가 없고, 가진 것도 없다 할지라도, 그래도 감사하는 겁니다. 때로는 내 감정이나 기분이 허락하지 않고, 때로는 내 생각이나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감사합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감사입니다. 

일본 National사의 창업자 마쯔시다 고노스케를 일본인들은 "경영의 신(神)"이라 부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살이의 시작은 참으로 고달프고 불운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파산으로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자전거 점포에서 심부름꾼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11살부터 가게에서 일하면서 어머니가 보고 싶어 울면서 일하곤 하였다. 그렇게 시작한 그가 후에 산하 570개 기업에 종업원 19만 명을 거느리는 회사를 이룩하였습니다. 

그에게 어느 날 한 직원이 물었습니다.
"회장님은 어떻게 하여 이처럼 성공하였습니까?"

마쯔시다 회장이 다음같이 답하였습니다.
“아 나는 세 가지 하늘의 큰 은혜를 입고 태어났네. 가난과 허약한 몸과 못 배운 것, 세 가지네... 

나는 가난 하였기에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는 잘 살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네.

약하게 태어났기에 건강의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아 건강에 늘 힘써 겨울철에도 냉수마찰을 날마다 하며 90살이 넘었어도 건강을 지키며 살고 있네. 

또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였기에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늘 나의 스승으로 받들고 있네. 그래서 배우는데 노력한 결과로 많은 상식과 지식을 얻었다네. 

이렇게 불행한 환경이 나를 이만큼 성장시켜 주기 위하여 하늘이 준 시련이라 생각되어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네." 

불운을 행운으로 역전시키고, 역경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 자신을 극복하여 나감에 인생살이의 진가가 깃들어 있지 않겠습니까?

마쓰시타 고노스케에게 한 기자가 경영비결을 물었을 때 그는 웃으면서 “나는 몸이 약합니다. 그래서 항상 건강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러다보니 나를 대신해서 일을 해주는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없으면 나는 사업을 할 수가 없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직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할 것인가, 이것에 대해서 늘 생각을 하고 아이디어를 모읍니다”고 말했습니다. 직원들에게 항상 감사하면서 경영을 한 것이 마쓰시타의 경영비결이었던 것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고, 듣지고 못하고, 말할 수도 없었던 헬런 켈러는 “나는 받은 것이 너무 많아 못 받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아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생활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것이 어렵다고 해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가. 3주 동안 뗏목을 타고 표류하다가 구조된 에디는 “마시고 싶은 깨끗한 물과 먹고 싶은 밥만 충분히 있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불평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성경도 “항상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 한탄하지 맙시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합시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전능하신 창조주가 되시고,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고, 우주의 통치자가 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에, 그 분의 통치 영역에서 일어나는 범사에 대해 마땅히 감사를 드려야 할 줄 믿습니다. 

ⓑ또한 나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확신하기에, 범사에 감사드려야 될 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에, 순종하며 감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조건적인 감사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성도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도 이런 감사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하는 삶에 은혜와 복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대로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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