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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드로와 고넬료 (행 10: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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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고넬료 (행 10:24-38)


오늘 말씀 가운데는 두 사람의 이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입니다. 베드로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 나라 공안 당국의 감시를 받으며 조심스럽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갈릴리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로마 사람으로 현역 장교로 유대 나라에 파병된 군인 신분입니다. 유대 나라 중에 가이사랴 지방은 지역적으로 지중해 해변가에 위치한 항구 도시입니다. 로마에서 군인들이 배를 타고 유대 나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닿는 장소입니다. 

이곳에 로마 군 부대 본부가 있어서 유대 나라 전역을 감시, 감독하는 지휘권이 있는 유대 나라 사람들이 생각할 때 기분이 좋지 아니한 장소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나오는 두 사람은 국적상 원수가 됩니다. 하나는 지배자 중의 한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식민지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현역 장교로서 유대 백성을 감시하는 직분이요 베드로는 평민으로서 감시를 받는 소시민적 사람의 시민입니다. 국적이 다른 원수 관계요 직업의 차이가 큰 두 사람은 거주지도 하나는 북쪽 지역인 가이사랴요 하나는 남쪽 지역인 욥바에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만나야 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관계이며 만나봤자 피차 감정이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하나님의 소개로 만나게 되고 그 만남은 기독교 역사를 새롭게 하는 역사의 전환점을 만들게 됩니다. 무엇이 그들을 만나게 했으며 무슨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것이 오늘 말씀의 중심이 되겠습니다. 

먼저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관계에 있으면서도 서로 공통점을 소유하고 있음이 나타납니다. 공통점은 두 사람이 똑같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넬료는 로마 사람이요 직업 군인으로서 유대 나라에 와서 살다가 유대인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믿음 생활이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했는지 하나님이 감동하셨다고 나타나 있습니다. 이 사도행전이라는 성경은 각 장마다 특징이 나타나는데 그때마다 인물이 하나씩 소개됩니다. 

7장에서는 전체가 스데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8장에는 빌립 집사의 전도하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9장에는 사울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는 성경 기록이 되고 오늘 10장에는 전체가 고넬료라고 하는 로마 장교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공통점은 두 사람이 똑같이 기도 시간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기도시간이 본문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평소에 아주 잘하는 사람들도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군다나 낮과 밤의 차이가 없어지는 요즘 같은 문화에서는 따로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 늘 기도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사실 새벽기도 인구도 전체의 5퍼센트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고넬료는 직업 군인이라서 항상 비상근무를 해야 되는 직업의 어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대개 옛날 군대 사회는 무지스럽고 거칠고 잔인한 것이 통하는 사회가 되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고요하게 신앙생활을 잘하고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분위기가 잡혀있는 사회가 아닙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로마 사람으로 식민지 백성을 향해 무력행사를 하기 위해서 현역의 몸으로 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식민지 백성의 종교를 받아들이고 보통 이상의 열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한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그렇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감동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어떻게 하고 있었는가? 이렇게 나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똑같이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 사람을 기도 속에서 연결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세 번째 공통점은 각자 환상을 보게 됩니다. 고넬료는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노라.” 이런 말을 했는데 이 기도와 구제에서 기도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고 구제는 돈이 필요합니다. 아마 우리 일상생활에서 시간을 내고 돈을 쓰는 일은 누구나 쉽지 않은 제목입니다. 그 중요한 것을 아주 잘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무나도 감동하셔서 지금 이 고넬료에게 큰 축복을 하나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상급으로 고넬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의 내용은 무엇인가? 베드로의 심방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네가 지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시간을 많이 써서 날마다 그 시간에 기도를 하고 돈을 많이 써서 구제를 했는데 어찌나 잘하고 많이 했는지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큼 잘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주 큼직할 상급을 내려주실 만합니다. “너 어려운 사람들 구제하느라고 참 돈 많이 썼다. 

이제 내가 너에게 큰 재물을 선물해 주겠노라.” 하시든가 고넬로가 군인이니까 “너는 이제 진급을 해서 별을 달고 그 지휘관 생활을 훨씬 잘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겠다.” 이래야 좋을 것 같은데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으니 베드로에게 심방을 오라고 청하라.” 이런 상급을 주었습니다. 심방 한번 오는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해서 그런 일을 지금 시키고 계신 것인가? 베드로는 사실 그것도 모르고 자기 나름대로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여기 보면 베드로가 좀 배가 고팠다고 했습니다. 뭐 먹고 싶은 상태에서 기도를 하니까 무엇을 잡아먹으라고 하늘에서 보따리 하나가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열어보니까 자기가 일평생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유대인의 부정한 동물이 가득 찼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이런 것은 내가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나이다.” 여러분! 예루살렘에 한국 식당이 없습니다. 허가를 안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간 이후에 생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온 세상에 한국 식당이 지금 어디나 있기 때문에 음식 불편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없습니다. 돼지고기를 먹을까봐 허가를 안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 먹는 종류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 것들만 가득했는데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그것을 잡아먹으라고 하니까 “나는 이런 부정한 동물을 한 번도 잡아먹은 일이 없나이다. 깨끗하게 살았나이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깨끗하다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두 사람의 기도 중에 환상을 보여주셔서 연결을 시켜주셨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사상과 위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두 사람이 만날 수 없는 상황을 말해줍니다. 로마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로마인은 당시 세계 정복자의 권위가 있습니다. 그들의 우월감은 유대 민족 같은 사람들은 형편없는 노예 취급을 합니다. 로마 군인 장교는 정복자의 권세를 행사할 수 있으며 명령할 수 있으며 때로는 약탈도 하고 어떤 때는 부녀자 강탈을 하고 수틀리면 죽여 버립니다. 옛날은 그러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식민지 백성에게 자기 집에 심방 한번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습니다.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시켰습니다. 고넬료는 즉시 하인을 불러서 그가 있는 욥바로 사람을 파견했습니다.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이라고 했으니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계신 베드로 선생을 빨리 모시고 와라.” 베드로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로마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유대 사람들을 멸시 취급한다면 유대인들은 종교적으로 로마인들을 멸시합니다. 

“너희들은 다 부정한 사람들이야.” 유대인들은 다른 종족과 교제를 하는 그 자체가 죄라고 오늘 성경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가 생각하는 로마인은 부정한 동물에 속합니다. 멸시 취급합니다. 그런데 ‘내 입안에 넣으라고 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그런 신학적인 의문을 생각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전부 고넬료 이야기를 설명하니까 ‘아! 하나님이 나를 로마인들에게 보낸 것이다.’ 그렇게 환상을 해석하고 따라 나서서 가이사랴 고넬료 로마인의 집을 심방 온 것입니다. 욥바에서 가이사랴까지 35킬로미터 정도입니다. 

먼 길로 심방을 갔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의 심방을 맞이하기 위해서 일가친척, 친구들을 자기 집에 다 모아들이고 기다리고 있다가 베드로가 도착하니까 베드로를 보고 하나님을 만난 듯 행동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당신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데 우리가 듣고자 모였나이다.” 행동은 어떻게 합니까? “베드로가 들어오는데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려 절하니” 로마 군대 지휘관이 식민지 백성 앞에 발까지 엎드려 절하겠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목이 뻣뻣한 사람들이 점령군의 군대 지휘관일 수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부하 다루듯 합니다. 

직업에서 굳어진 행동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 친척 사람들을 다 모아둔 그런 자리에서 갈릴리 어부 출신 유대 식민지인에게 발까지 엎드려 절을 합니다. 자신의 위치를 완전히 평가 절하했습니다. 베드로가 뭐라고 여기 말합니까?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사람 취급을 안 하고 하나님 취급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했습니다. 고넬료가 초청자로서 이렇게 오시게 된 동기를 전부 설명했습니다. “사실 내가 이 나라에 와서 당신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을 믿고 살다가 감동을 받아서 그동안 기도를 열심히 했고 나름대로 구제활동을 열심히 했더니 하나님이 나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서 복을 주셨는데 바로 베드로 사도의 심방을 받으라는 축복을 주셔서 오늘 이렇게 오시게 되었나이다.” 

베드로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 34절에 보면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사실 베드로는 유대니즘이나 내셔널리즘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아브라함의 혈통 후손에게만 전해야지 이방 사람에게는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상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아! 로마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것이다.’ 깨달았다고 비로소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일장 설교를 했더니 설교 도중에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하여서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그 시간에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두 사람의 만남이 무슨 역사 창출을 해냈는가? 유대나라 사람이 아닌 다른 민족으로서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것이 8장에 에티오피아 간다게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이고 10장에 와서 고넬료가 최초의 사람들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베드로는 유대인의 국수주의 민족관에 사로잡혀서 타민족에게 복음 전할 생각을 절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으로 베드로는 선교 사명을 깨닫고 로마를 향한 눈이 비로소 열리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로마 백부장으로서 세 사람이 예수님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이 발견됩니다. 마태복음 8장에 하인이 병들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와 길에서 만나 간구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내가 만나보지 못했다.” 이렇게 칭찬하시고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현장 지휘하던 백부장 지휘관이 그 변하는 초자연적 내용을 보고 “이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오늘 성경말씀 고넬료 백부장과 베드로의 만남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말씀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환상이 보입니다. 반드시 베드로나 고넬료같이 똑같지 아니하여도 영적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장래 일에 대한 역사 비전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전을 보십시오. “나는 꿈이 있다.” 그 꿈이 얼마 안가서 이루어집니다. 이게 기도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도적 관찰입니다. 그 다음에 구제는 하나님의 기억에 남을 만큼 상달되는 힘이 있다는 것이 여기 나타납니다. 

어떤 청년 하나가 이민을 와서 살게 되었는데 방송을 들었습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 신장 이식이 필요한데 기증자가 필요하다.” 이 청년이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내가 왜 이 방송을 듣게 되었는가 나도 선한 일을 한번 해야지.’ 그리고는 병원으로 달려가서 종합 검사를 하고 가능했기 때문에 서슴지 않고 자기 배를 열고 하나를 떼어서 환자에게 주어서 그 환자는 아주 건강하게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자기 수술비로 190만원 정도를 지불하고 소리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가족들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 사람을 찾아야지요. 찾아보니까 주유소에서 종업으로 일하고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어휴! 어떻게 알았습니까?” “네! 잠간 계세요. 지금은 제가 일이 바쁩니다.” 그리고 그 주유소 가스통에다 “알 필요 없음.” 그리고 어디론가 살아져 버렸습니다. “그의 마음 하나님 기억에 남았으면 됐음.” 이게 구제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제일 큰 상급은 무엇인가? 영적 은혜입니다. 

그렇게 많이 기도하고 돈 많이 쓴 것에 대한 상급이 베드로 사도 심방 와서 설교 한번 듣는 것인가?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가? 대단합니다. 만약 고넬료에게 하나님께서 다른 것을 주신다고 하셨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그런 것은 안주셔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대로마의 지휘관이라는 권세도 내게 있고 돈도 내게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영적 은혜를 고귀하게 내려주신 것에 대한 감격입니다.” 그 가족들은 로마 사람으로 최초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고넬료는 자기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자기 고국인 로마로 돌아갔고 베드로는 땅 끝까지 전도를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역시 로마로 갔습니다. 역사가 흐르고 또 흘렀습니다. 

유대 땅에서 활동하던 두 사람은 로마 땅에서 같이 활동하다가 주어진 자기들의 생을 거기서 둘이 마감했습니다. 그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자라고 또 자라서 마침내 고넬료의 집안 세례로부터 시작한 복음의 전파는 로마를 세계 복음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세계 교회 중심의 대성당을 건축하고 지하에 자기 무덤을 만들고 안장되어 있습니다. “너희들은 가난한 약소민족 노예 신분들이야! 나는 대로마 점령군의 지방 사령관이다.” 

하고 베드로를 보지 않고 하나님같이 보았던 한 이방인의 신앙이 그렇게 잔인하게 핍박을 가하던 대로마를 뒤집어엎는 기초 공사가 되었고, “너희는 부정한 동물이야. 영적으로 야만 족속이야.” 하고 무시하던 베드로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깨달음을 통해서 절대 금물인 이방인에게 과감하게 세례를 준 것이 세계 교회 역사의 변화 지점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매동 갈보리교회가 바로 욥바의 기도실이 되고 가이사랴 기도 장소가 되어서 우리 모두의 만남이 세계 복음화의 기초 역할이 되는 축복이 계속되어 지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은 역사하십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을 통해서 세계 역사의 전환점을 삼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하나님의 교회와 일꾼들을 선택하여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중심에 서서 하나님의 역사 진행에 쓰임을 받는 주의 청지기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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