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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을 따르는 자 (롬 8: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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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을 따르는 자 (롬 8:5-14)
 

“영에 속하라.” “영을 따라 살라.” 성경에 계속 나옵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항상 방언하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예언하고 종일 기도만하는 사람인가요? 사도행전에 영에 속한 사람 바울의 충격적 모습이 나옵니다. 14장에는 전도하다 유대인 군중에게 처참하게 돌에 맞는 장면이 나옵니다. 

피투성이로 쓰러지고 돌 더미 밑에 깔립니다. 시체는 끌려나가 성 밖에 버려집니다. 손도 못 쓰던 제자들이 모이자 바울은 일어납니다. 툭툭 털고 자기 발로 성에 들어가요. 오랫동안 누워서 치료하지 않아요. 다음날 걸어서 다른 성으로 이동해 설교합니다. 영에 속하면 이 세상에 살아도 이 세상을 넘어섭니다. 도전해볼만합니다. 

1. 영의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할까요? 베드로도 바울도 사슬에 묶고 겹겹이 지켜도 감옥을 넘어섭니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억지로 참는 게 아니라 초월입니다. 빈손으로 영적 세계에서 자원을 가져와 교회를 세웠습니다. 

세상의 고통과 부요함에 눌리지 않습니다.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고 징계 받는 자 같으나 죽지 얺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영에 속한 사람, 바울입니다. 

세상에서 누구나 돈과 건강과 권력에 의지합니다. 그것들을 하나님처럼 섬깁니다. 만약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한다하면 돈이 하나님입니다. 만약 돈이 많이 있으니 걱정 없다고 하면 여전히 돈이 하나님입니다. 바울에게 물질은 원하고 명령할 때 돕기 위해 오는 종입니다. 절대로 섬길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만 섬길 대상입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자신의 한계나 물질적 눌림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나 복된 소식이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쉽게 말하면 아무도 나를 “죄인이다 병자다. 실패자다. 가난하다”고 말할 수 없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해방되었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번역하면 “구세주 구원”입니다. 모두에게 해당하는 죄의 법 사망의 법에서 해방입니다. “생명의 법, 영의 법”을 믿고 따르는 게 조건입니다. 돈 없다. 실력 없다. 병들었다. 두려워하면 사망의 법입니다. 

2. 영으로 살기 소원하라 

세상은 중요해도 신자보다 아래입니다. 이용할 대상입니다. 하나님 경배하고 순종하면 세상이 종입니다. 강하고 악이 강해 보여도 영적 힘이 없어요. 하나님만 확실하게 잡으면 우리는 영의 사람이 됩니다. 지난 번 터키 대학교수를 말씀 드렸어요. 아무리 맞아도 다시 일어나 복음을 전했어요. 그 권세에 다 눌려 어찌할 바를 몰라요.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하나님만 참 영이시고 거기서 모든 게 나왔어요. 그 영을 섬기고 그의 말씀대로 생각합니다. 세상 거부하라는 게 아닙니다. 영과 말씀에 복종시킵니다. 몸과 영혼처럼 주종관계가 분명해요. 하나님 섬기면 물질이 따라와요. 그래도 거기 안 빠져야 해요. 

돈 없어 공부 못한다. 사업 못한다. 이건 돈 믿는 것입니다. 육입니다. 돈 많으니 걱정 없다. 몸이 건강하니 문제없다. 이것 역시 돈을 믿고 영을 따르지 않습니다. 바울은 비천이건 풍부건 매 맞음 억울함에 눌리지 않았어요. 또 다른 나라 또 다른 법을 선택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모든 좋은 것은 영적 세상에서 옵니다. 그 반대는 아닙니다. 우리 삶에서도 그래요. 영적 일은 가난하다고 몸이 약하다고 못하고 부자라고 열심 있다고 잘 하는 게 아닙니다. 가난도 돈도 건강도 병도 믿을 대상이 아닙니다. 믿을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그런 것들을 말씀에 비추어 고치고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두 세계 사이에 있어요. 그러나 대부분 육의 세상을 따릅니다. 그것은 죄의 법 사망의 법아래 있어요. 정죄합니다. 약하다, 부족하다, 병들었다, 늙었다고 선언하고 짓누릅니다. 거기다 선포하세요. “나를 속이지 말라. 나는 생명의 법, 성령의 법 아래 있다. 무한한 능력의 세상이다. 나도 바울처럼 영의 사람으로 살겠다.” 

3. 영의 법을 선택하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육신적인 상황을 이기고 바울처럼 감옥도 죽음도 넘어서려면 영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에게만 하나님 아들의 삶이 펼쳐집니다. 함께 도전합시다. 신비한 능력으로 삽니다. 

이런 삶은 무조건 기도만 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도통하고 신비체험 많이 했다고 자랑하고 예언하고 그런다고 영에 속한 사람이란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영적인 체 하는 사람들이 미신적이고 세상 욕심으로 충만한 경우 많이 보았어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세상 물질만 추구합니다. 속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배나 기도나 성경공부 새벽기도 등 교회 모임은 우리 영이 살도록 돕습니다. 그렇게 살고자하는 신자들이 모인 곳마다 가야 합니다. 전교인 수련회는 특별한 훈련장입니다. 무조건 가야 합니다. 그러나 간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에요. 얼마든지 육을 따라 갈 수 있어요. 영과 말씀을 사모하세요. 나와 가족의 영이 살아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기 비결이 있어요. 영이신 예수 안에 있어야 영의 삶을 삽니다. 영인 말씀대로 하나님과 나 자신과 세상의 질서를 잡으세요. 죄의 법, 사망의 법은 내 한계를 지적합니다. 죄인이요 무능하고 가난하다고 합니다. 안 된다고 합니다. 생명의 법 성령의 법을 따르세요. 

영의 법대로 하면 나는 의인이요, 능력자요, 복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영광의 존재입니다. 잘 믿어지지 않으면 해당되는 성경 말씀을 계속 반복해 읊조리세요. 기분이 안 좋아도, 몸이 아프고 슬퍼도 계속 예수 안의 나를 주장하세요. 그리고 영적 세상에서 도움과 신기한 인도를 끝까지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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