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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눅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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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눅 11:2-4)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그 말씀을 가지고 죄와 세상을 이기게 하셨다는 말씀을 상고한바 있다. 우리의 영적인 삶에 있어서 말씀이 들이쉬는 숨과 같다면 그것과 더불어 우리에게 주신 또 다른 승리의 도구는 바로 내뱉는 호흡인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주기도문]이라는 본문의 내용은 마태복음에서 보다 명확하게 다루고 있고 이 말씀은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의해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내용이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모범적인 기도의 모형으로 다만 주님께서 직접 경계하셨듯이 이 내용을 의미 없이 반복하는 주술적인 자세는 경계되고 있다.(마6:7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기회만 있으면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에서 끌어내리려는 마귀의 역사는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될 것이라고 베드로 사도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5:8~9)고 경계를 당부한다. 

그것을 능히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준비된 자세가 필요하고 그런 무장의 자세로 늘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위한 기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섰다고 자위하다가는 넘어질 수 있고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할 수 있으면 마귀 사탄은 택하신 자들도 미혹한다고 증거하고 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24:24; 막13:22) 

Ⅰ.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케 하기 위해서…(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마태복음에서 이 부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9~10)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것은 단순히 그냥 사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용기와 위엄과 영광을 가지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삶이 되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 됨의 삶이고 승리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43:7) 

그럼에도 그것은 어떤 개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 각자의 자세에 따라서는 어려운 것이 아닌 이유는 이러한 승리의 원인이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 아버지부터 구하고 받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기도는 첫째로 중요한 도구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육신으로 계실 때 항상 모범을 보이셨다. 주님은 언제나 피곤하실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깨어 기도하셨던 이유는 그날 그날의 힘을 아버지로부터 받기 위한 모범을 보이셨던 것이다. 

어제나 오늘도 나 자신의 움직임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세상과 죄와 어둠과 악으로부터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구하는 자세야 말로 믿음의 사람들이면 가져야만 할 자세이고 이를 위해서 하나님과의 Hot-line 즉, 기도라는 도구를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의 역사는 이미 이 창조 세계 속에 나타나고 있고 직접 다스리시는 하늘에서 존귀함을 받고 계시지만 오늘 우리 각자(내)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 속에 그 영광이 함께 하기를 소원하는 고백이 바로 기도의 첫 번째 목적이라는 말이다.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각자의 삶에 나타나는 것이야말로 승리하는 삶이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삶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바울이 이것을 당부하고 있는 내용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는 것이다. 

시편의 기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인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 대부분은 우리 삶에 있어서 필요를 구하는 기도가 많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구해야 할 첫째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임을 다시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패배하는 일이 없이 승리하는 인생이 될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이 들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기도의 첫 번째의 시작에서 하나님의 영광 된 이름과 뜻을 구하는 것을 가르치고 계시다. 

Ⅱ. 우리의 매일의 필요를 받기 위해서…(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6:11)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생각하면 무엇보다도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를 생각하게 된다. 이 만나의 거둠과 먹음, 그리고 그것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땅에서 난 것을 먹을 때 비로소 더 이상 내리지 않는 일들 속에서 매일의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의 의미를 배울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매일을 먹고 살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하늘에서 주시지 않으면 육신의 양식조차 먹을 수 없고 영적인 양식은 더욱 그렇다. 우리 각자가 매일의 필요를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주셔서 먹게 하셨던 만나로 생각할 수 있다면 삶에 많은 변화를 가능케 할 것이다. 

만나는 사람이 농사로 얻어진 음식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일하지 않거나 게으름을 조장해서는 안된다. 다만 우리의 수고와 애씀보다 하나님께서 주셔야 받는다는 고백과 자세가 필요하고 또 지나친 욕심도 안되며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좋지 않은 냄새가 낫던 것 모두도 일용할 양식으로서의 교훈이다. 

육신의 삶에 너무 집착하여 매일의 양식을 하나님으로부터 구하지 않고, 하루를 지나도록 두지 말라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썩어서 냄새가 나게 해서도 안됨을 교훈 받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신령한 양식을 구하지 않는 것도 하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합당치 않은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교인들처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3:17) 라는 착각 속에 사는 삶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사실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신 약속은 죄의 고통에 시달리며 진정한 쉼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먼저는 주님의 백성인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약속이다. 

오늘도 겸손히 일용할 양식 즉, 매일의 영육간에 필요를 하나님께 구하는 겸손과 순종의 자세를 가진 자라야 세상과 죄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Ⅲ. 지속적인 용서와 시험에서 승리를 위해서…(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6:12~13)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기도의 요청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거리를 휘졌고 다니다 보면 먼지가 묻고, 세상을 살다 보면 죄에 노출 될 수 밖에 없어서 그 죄의 해결을 위해서도 우리에게 기도라는 귀중한 도구를 주셔서 죄와 악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선물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죄를 다 용서받았다 할지라도 살아가면서 짓게 되는 죄의 문제는 분명 기도라는 귀한 약속을 통해서 해결 받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뜻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그러나 이 은혜에서도 주님께서 주신 또 다른 약속은 죄 용서받은 즉, 은혜의 사람이라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 하오니…” 라는 삶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탄의 참소에 약한 것이 우리 사람들이고 이러한 사탄의 참소에 담대히 맛 설 수 있는 힘은 사죄의 은총이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이며 주님의 희생과 부활이 나뿐 아니라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 하오니…” 라는 자연스러운 삶의 자세를 가질 것이고 이러한 죄를 수시로 해결 받는 사람이라면 사탄의 참소에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믿음의 담대함을 가질 것이다. 
기도로 승리를 얻게 되는 이 부분에서 마지막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라는 기도의 능력이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죄를 해결 받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그 결과도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기까지는 끊임없이 시험에 노출되어 살 수 밖에 없는데, 바로 이러한 부분을 해결 받게 하시려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라고 하는 귀한 도구를 두고 가신 것이다.[내 이름으로] 

사람 스스로는 시험을 받으면 十中八九 시험에 들게 마련이다. 그런 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시험 받을 때 도움을 주시려고 기도하도록 하신 것이다. 죄악 된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시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그럼에도 기도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얻어서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는 장치는 역시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이다. 
여기에 대한 분명한 약속을 바울은 고리도전서 10:13절에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확인해 주고 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친히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에 기도하는 자를 시험에서 건지신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확인해 주고 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2:18) 

그리스도인들은 패배자들이 아니다. 주님께서 먼저 이겨 주셨고 그를 순종하고 따르며 기도하는 자들을 능히 이기게 하실 것이다. 기도는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가장 큰 승리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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