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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간절한 마음으로 섬기는 일꾼들 (고후 8: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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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마음으로 섬기는 일꾼들 (고후 8:16-24)


본문에 바로 앞서는 글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연보를 해줄 것을 간곡하게 권면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권면의 연속입니다. 본문 마지막 2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다시 한 번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게도냐 교회들이 그들 자신의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한 것처럼 고린도 교회 신자들도 예루살렘의 성도들에 대한 사랑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고, 그렇게 해서 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신자들을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그렇게 권면하는 24절의 글을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 말은 그 앞에서 한 모든 말을 상기시키며 “그러니까 염려하지 말고 믿고”의 뜻이 담긴 말입니다. 즉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그들이 거둔 연보가 과연 정확하게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나 의심은 전혀 할 필요 없이 마음 놓고 연보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그런 권면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자기들이 거둔 연보가 바르게 관리되고 그들의 뜻대로 온전히 예루살렘에 전달될 수 있으리라고 전적인 신뢰를 갖도록 그가 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거둔 연보를 받기 위하여 믿을 만한 사람들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소개하는 글입니다. 

사도 바울이 제일 먼저 소개하는 사람은 디도입니다. 본문 16-17절에서 사도 바울은 쓰기를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디도에 관하여 말하며 두 번씩이나 강조한 것은 그의 마음의 “간절함”입니다. 이 간절함은 다른 말로 하면 “열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이라고 썼습니다. 

즉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신자들을 위하여 가지고 있는 열심과 같은 열심을 디도가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디도가 고린도 교회 신자들을 위하여 사도 바울만큼이나 열심을 갖고 있었는데 고린도 교회에 다녀오라는 권면을 받고는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즉 더 열심히 자원하여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런 열심을 하나님께서 디도의 마음에 주신 것을 감사한다고 썼습니다. 그 열심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순수하고 진실한 열심일 것입니다. 사적인 욕심이나 동기가 없는 열심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23절에서 다시 한 번 디도에 대해 언급하며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라고 합니다. “나의 동료”, “나의 동역자”란 말은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바울의 삶과 사명을 꼭 같이 나누고 있는 이란 뜻입니다. 바울의 편지 속에서 이런 영예를 얻은 사람은 디도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이 자신 있게 그를 보내는 것이고 고린도 교회 신자들은 전적인 신뢰를 가지고 그를 영접하며 그에게 연보를 맡길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신자들의 연보를 받아오기 위하여 디도만 보낸 것이 아니라 다른 두 사람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에 대해서는 본문 18-19절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누구라고 이름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그 형제”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미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여러 교회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복음을 위하여 일하는 가운데 두루 칭찬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그가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말은 바울이 일방적으로 지명한 사람이 아니고 여러 교회가 선정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그 선정에 있어서 바울의 의중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튼 공개적이고 객관적인 선정의 과정을 거친 검증된 사람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도록 여러 교회에 의해 선정된 것인가 하는 데 대해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이란 바로 여러 교회들로부터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연보를 거두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우리와 동행”한다는 것은 여러 교회에서 거둔 연보를 전하기 위하여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에 동행할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즉 그는 디도와 함께 고린도 교회에 다녀와서는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에도 같이 갈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 교회가 그를 그런 일을 하도록 택한 것은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라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동일한 주”라고 한 우리말 번역은 좋은 번역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 자신”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원”이라 한 것은 사도 바울의 “선한 의지”를 뜻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영광을 위하여”라 함으로써 연보를 거두고 그것을 잘 관리하는 일이 결코 세상적인 일이 아니고 영적인 일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도와 함께 고린도로 보낸 두 사람 중 다른 한 사람에 대해서는 본문 22절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 이 사람을 말하면서도 사도 바울은 “간절함” 즉 “열심”이란 말을 두 번씩이나 쓰고 있습니다. 그가 여러 가지 일에 열심인 것을 여러 번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를 크게 믿고 있으며, 그러기에 그는 더욱 더 열심을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앞서 언급한 사람을 언급할 때는 “그 형제”라고 한 데 반해 이 사람에 대해서는 그저 “우리의 한 형제”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이 사람의 열심을 사도 바울 자신이 여러 번 확인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자신의 전적인 신뢰를 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디도와 함께 고린도 교회에 다녀오도록 보낸 두 사람을 소개한 사도 바울은 본문 23절 하반절에서 그들을 가리키며 쓰기를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합니다.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란 말은 여러 교회가 선거를 통해 뽑아 보내는 정식 대표들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디도가 바울이 지명해 보내는 대표라면 이들은 여러 교회가 뽑아 보내는 대표들이라는 말입니다. 또 그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것은 그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했으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중요한 사명을 맡겨 고린도 교회로 보낸 이들이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섬기는 즉 열심 있는 사역자들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열심이 있어야 할 것이며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들을 들어 크게 쓰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교회 일은 열심만으로 되는 것은 아님을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심만으로 된다면 사도 바울은 스스로 “나의 동료요 나의 동역자”라 부르던 디도 한 사람만 보내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디도 외에 여러 교회에서 칭찬 받고 열심 있는 사역자들로 인정 받는 두 사람을 함께 보낸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많은 경우 서로 믿고 은혜 가운데 일들이 이루어지곤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일들은 아주 객관적이고 정확하며 투명해야 합니다. 

특히 돈이 관련된 일일 때는 그렇습니다. 공금을 다루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항상 의심과 비방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에서 돈을 다루는 일도 한 점의 의혹이 없도록 조심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를 거두어 전달하는 일을 자기 혼자 하거나 디도 한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여러 사람이 함께 하게 한 것은 혹시라도 연보를 거두고 관리함에 있어서 부정이나 소홀함이 없을까 의심하는 사람과 근거 없는 비방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런 생각을 사도 바울은 본문 20-21절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주 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아주 양심적인 사람들이 어떤 일을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지만 그 일의 객관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남겨놓지 않아서 오해를 사거나 의혹을 받는 경우를 봅니다. 그런 사람들이 흔히 “나는 하나님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떳떳하게 말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런 말만 가지고는 신자들 사이의 의혹과 비방을 잠재우기에 부족해서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조금 귀찮더라도 교회의 덕을 세우고 교우들이 늘 마음이 편하고 화평하기 위하여 최대한 투명하며 정확하고 객관적인 관리상태를 보여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돈은 물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돈이라는 것은 달리 생각하면 주인이 없는 돈으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내 것 아닌데 뭐.” 하는 생각에 젖어 너도 나도 마구 낭비하거나 남용하기 쉬운 게 교회 돈입니다. 자기 용돈 쓰듯 교회 돈 쓰다가 교인들 시험 들게 만들고 교회 안에 평지풍파 일으키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일에 열심 있는 우리가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깨끗한 양심으로 교회 일을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 혼자 속으로 깨끗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객관적이고 정확하며 투명하게 교회 일을 하는 노력을 함께 기울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 같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교회를 섬기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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