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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벧후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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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벧후 1:3-11)
   
오늘 여기에 모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놀라운 것들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시는 신기한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영생)을 얻게 하시고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3절). 뿐만 아니라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습니다(4절). 

이 약속들은 미래에 속한 것들로써 3:4,9,12절에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영접하는 약속이며 3:13절에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약속이고, 1:11절에 영원한 나라에 넉넉하게 들어가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들은 돈으로도, 또 다른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도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이기에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여! 우리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는(앎)것 한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시는 신기한 능력으로 영생을 얻게 되었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는 경건에 속한 것들을 얻었고 예수 그리스도 재림 때 그분을 영접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인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이 엄청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큰 복을 받은 성도에게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들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자가 되게 하려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감화 감동을 주시고 신성한 삶을 살게하여 주시는 것입니다(4절).

그러면 이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은 성도가살아야 할 신성한 성품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이 성품으로 살기 위해 더욱 힘을 써야 한다고 하셨고(5절,10절) 게으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8절). 

신성한 성품은 믿음에 덕을 더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게 되고(로마서10:9-10, 요한복음1:12), 구원 얻은 사람 속에 하나님의 씨가 거하게 됩니다(요한일서3:9). 그러나 믿음만으로는 신성한 성품의 씨는 있으나 완성품은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 위에 덕을 더하라고 하였습니다(5절). 이는 3절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덕을 의미합니다. 곧 도덕적 탁월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33년을 사시면서 나타내 보이셨던 도덕적 탁월성이 믿음을 가진 성도에게 나타나야 합니다. 부모공경, 형제우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향한 사랑과 섬김, 겸손과 온유의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한 도덕성입니다.

또 덕에 지식을 더하라고 하였습니다(5절). 성도가 도덕적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 또는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12살 때 이미 그의 지식이 탁월하여 예루살렘 성전의 선생들이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가르치고 그렇게 사셨습니다. 

성도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려면 성경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지킬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지식이 없는 종교적 열심은 도리어 힘써 하나님께 거역하는 것이라고 로마서10:2-3절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 지식에 절제를 더하라고 하였습니다(6절).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절제된 삶이었습니다. 절제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아무리 좋은 지식도 절제를 더하지 않으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은 것입니다. 자기조절 능력이 있을 때 신성한 성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왕 삼으려고 할 때 절제하여 숨으셨으며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할 때 자신의 고민을 절제하시고 자진해서 십자가를 지졌습니다, 절제된 삶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또 절제에 인내를 더하라고 하였습니다(6절). 참을 줄 모르는 절제는 의미가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참을 수 있습니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으니 이 사실을 지식으로 알고 있는 성도는 절제된 삶을 주님 오실 때까지 인내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분의 인내는 십자가로 보여주셨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신성한 성품이셨습니다.

또 인내에 경건을 더하라고 하였습니다(6절). 경건은 성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헌신된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6:38). 내 아버지의 뜻은 영혼구원이라고 요한복음6:39절에서 말씀하셨으니 곧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거룩한 척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순종하고 사는 삶이 경건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오셨으며(마가복음1:38) 십자가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또 경건에 형제우애를 더하라고 하였습니다(7절). 이는 육신의 피를 나눈 형제우애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성도의 교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에서도 중요한 신앙고백으로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베드로전서1:22절에서도 성도를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하였고, 3:8절에서도 부탁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3:16절에서는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또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하였습니다(7절). 믿음으로 시작된 신성한 성품이 사랑으로 완성이 되고 있습니다. 사랑은 신의 본성입니다. 사랑은 고린도전서13장에 모든 덕목의 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랑은 대가를 바라는 사랑이 아닙니다. 거저 주는 사랑입니다.

이런 신의 성품들이 성도에게 있을 때 흡족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품들이 없는 성도는 맹인과 같고 과거에 죄 용서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다시 죄 가운데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구원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8절). 날마다 힘써서 더욱 힘써서 성도를 부르시고 택하여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들과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들(3-4절)을 굳게 하라고 하였습니다(10절). 이렇게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삶에 더욱 힘쓰는 성도는(5절,10절)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신다고 하였습니다(11절). 또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일을 행하면 실족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모두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일에 더욱 힘쓰는 성도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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