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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가 없으신 예수님 (막 1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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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없으신 예수님 (막 15:6-10)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넘겨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로 고발을 당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나님께 바쳐지는 어린 양은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예수님은 세상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에 걸쳐 유대인들에게 심문을 당하신 후, 빌라도에게 넘겨지셔서 네 번째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후, 예수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판결에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눅23:6∼7 말씀과 같이,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분봉 왕 헤롯에게 보냈습니다. 갈릴리는 헤롯의 관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분봉 왕 헤롯 앞에서 다섯 번째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헤롯은 여러 말로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이에 헤롯은 예수님을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도로 보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마지막 여섯 번째 심문을 당하게 되셨습니다.  

빌라도는 그의 관정 앞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눅23:14 말씀입니다.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계속해서 눅23:15 말씀입니다.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빌라도가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를 찾지 못한 것처럼, 분봉 왕 헤롯도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에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이와 같이 제안했습니다. 눅23:16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예수님을 따끔하게 혼내서, 예수님이 백성을 미혹해서 민란을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예방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발한 자들이 원하는 바는 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바는 예수님을 죽여서 없애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빌라도가 보니까, 유대인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정 앞에는 많은 백성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러다가는 예수님 때문에 민란이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이에 빌라도는 명절에 시행하는 사면제도를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바라바는 예수님 때문에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때문에 내가 살았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이 사실을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우리의 유월절 양이십니다. 

막15:6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이 때의 명절은 유월절을 가리킵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이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해방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광복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하나님이 애굽의 모든 처음 난 것을 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양을 잡아 그 피를 그들의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의 장자를 치실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른 피를 보시고, 그들의 장자는 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집은 넘어가셨습니다. 여기서 넘어가다는 뜻의 유월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때 잡은 양을 유월절 양이라고 불렀습니다.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다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성전에서 유월절 양을 잡아 하나님께 희생을 드렸습니다. 이렇듯 유월절은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광복절이 되면, 대통령 특사로 형무소에 갇힌 죄수들이 풀려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되면, 로마의 총독 빌라도가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유화 정책이었습니다. 로마는 식민지 백성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때로는 채찍을 가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당근을 주어서 그들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로마는 각처에서 Pax Romana, 곧 로마의 평화를 도모했습니다. 

요19:14 말씀과 같이, 때는 제 육시 곧 아침 여섯 시였습니다. 눅23:13 말씀을 읽어봅니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이 때 빌라도의 관정 앞에는 예수님을 고발한 공회 의원들 이외에도 이미 백성이 모여들었습니다. 

빌라도는 그 곳에 모인 백성을 이용해서, 예수님을 풀어주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고발하는 공회 의원들의 마음은 돌과 같이 굳어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생각하기에, 분명 일반 백성은 예수님을 좋아하리라고 여겼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백성에게 선한 일을 많이 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들을 고치셨고, 귀신들을 내쫓으셨으며, 죽은 자들을 살리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람들이 주릴 때, 이적을 행하셔서 그들을 배불리 먹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온 백성은 소리 지르며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빌라도도 온 백성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부하들을 통해서, 온 백성이 예수님을 환호 속에 맞이했다는 보고도 받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빌라도가 생각하기를, 분명 백성은 유월절에 놓아 주는 사면의 대상으로 예수님을 요구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빌라도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공회 의원들을 너무 과소평가했고, 반면에 백성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습니다. 

그 동안 빌라도는 어찌하든지 예수님에 관한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에게 예수님을 넘겨 준 자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요18:31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또한 빌라도는 예수님을 분봉 왕 헤롯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예수님을 백성의 판단에 맡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빌라도 자신이 예수님에 대하여 결정을 내리도록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전5:7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우리의 유월절 양이십니다. 성전에서 유월절 양들이 희생을 당하는 바로 그 시각인 오후 세 시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의 피로 씻음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는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각자가 필히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씻음을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멸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의 피로 씻음을 받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를 보시고, 우리를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넘어가십니다. 빌라도처럼 피하거나 미루지 말고, 바로 이 시간 예수님에게 믿음과 사랑을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 때문에 바라바가 살았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바라바가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살았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바로 내가 산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때문에 살게 된 바라바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막15:7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바라바는 민란을 꾸민 자였습니다. 민란이라 함은 로마에 대해서 폭동을 일으킨 것을 뜻합니다. 눅23:19 말씀과 같이, 그 민란은 성중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바라바는 최근 예루살렘 성중에서 일어난 폭동에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바라바는 그 민란중에 살인도 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 때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폭동을 진압하려는 로마의 군인을 죽였을 것입니다. 그만큼 바라바는 과격한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죄질이 아주 나쁘고 위험한 인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요18:40 말씀과 같이, 바라바는 강도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의 옷까지 벗기고 때려서, 거의 그를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강도는 무자비한 존재로 인간 쓰레기와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마27:16 말씀을 보면, 바라바를 가리켜 유명한 죄수라고 칭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악명이 높은 죄수였습니다. 그러니까 바라바는 로마에도 위협적인 존재였지만, 유대인들에게도 해를 끼치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시금 오늘 본문 막15:7 말씀을 읽어봅니다.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말하자면 이 때 바라바만 체포된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같은 죄목으로 체포된 자들이 있었습니다. 

막15:27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두 강도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바로 이들 두 강도가 바라바와 함께 체포된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시 바라바는 예수님이 못 박히신 바로 그 십자가에 달려야 할 인물이었습니다. 

벧전3:18 전반부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과 같이, 의인이신 예수님이 불의한 자인 바라바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이십니다.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으십니다. 반면에 바라바와 같이, 나는 불의한 자입니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나는 으뜸가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의인이신 예수님이 불의한 자인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불의가 예수님에게 옮겨지며, 또한 예수님의 의가 내게 옮겨집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내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나를 대속하신 예수님께 내 몸과 마음을 다 바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분봉 왕 헤롯도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마27:19 말씀을 보면, 빌라도의 아내도 예수님을 가리켜 옳은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습니다. 

막15: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이미 말씀드린 대로, 때는 아침 여섯 시경이었습니다. 빌라도의 관정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때 모인 무리 가운데는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고발하는 공회 의원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구경삼아 모여든 일반 백성도 많이 있었습니다. 

공회 의원들은 언성을 높이며 계속해서 예수님을 고발하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모여든 백성은 깊은 관심을 가지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빌라도가 다시금 관정 밖으로 그의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이에 온 무리가 빌라도에게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했습니다. 명절인 유월절을 맞이했으니까, 전례대로 그들이 요구하는 죄수 한 사람을 놓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내심 빌라도가 바라던 바였습니다. 

막15: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했지만,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제 그는 예수님을 놓아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공회 의원들의 반발이 너무 거세어서, 그는 예수님을 놓아 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무리가 그에게 나아와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했습니다. 이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 주기 위하여, 그들에게 유도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빌라도는 공회 의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백성이 예수님을 좋아하기 때문에, 백성은 예수님을 놓아 주기를 원하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백성의 힘을 빌려서, 예수님을 놓아 주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마태복음을 보면, 이 때의 상황을 좀더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27:17 말씀입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그러니까 빌라도는 먼저 무리에게 바라바와 예수님 가운데 양자택일을 하도록 질문했습니다. 그런 후에 빌라도는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처럼, 무리가 예수님을 택하도록 유도하는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이 때 빌라도가 유도적인 질문을 던진 이유가 있었습니다. 

막15: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이 때의 대제사장들은 공회를 대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때는, 주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괴롭혔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계실 동안은, 주로 대제사장들이 앞장서서 예수님을 대적했습니다. 

당시 대제사장들은 성전을 관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두 번씩이나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 때문에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몹시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공회 의원들이 그에게 예수님을 고발한 의도를 알았습니다. 그들은 가이사에게 충성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고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기해서, 빌라도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귀신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과 인기를 시기했습니다. 

눅23:2 말씀과 같이, 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세 가지 내용으로 고발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백성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자칭 왕이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바보가 총독의 자리에 오를 수는 없었습니다. 빌라도는 그들이 자기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허울 좋은 구실을 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빌라도는 그들이 시기로 자기에게 예수님을 넘겨 준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역으로 백성의 힘을 이용하여 공회 의원들의 기를 꺾어버리려고 했습니다. 물론 공회 의원들은 바라바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들은 기필코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 백성은 예수님을 요구할 것이라고 빌라도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빌라도에게 한 가지 일이 생겼습니다. 마27:19 말씀입니다.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지난 밤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잡아 오도록 그의 군대를 파송했습니다. 그런 후 그는 그의 아내와 함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빌라도의 아내는 꿈에 예수님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습니다. 걱정하는 일이 꿈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미신을 믿습니다. 빌라도의 아내는 두려운 나머지 빌라도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기가 꿈에 예수님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운 사실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옳은 사람이라 부르면서, 예수님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말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사이에 대제사장들과 공회 의원들은 그 곳에 모인 백성을 충동했습니다. 바라바를 달라 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바라바는 로마를 공격한 애국자이지만, 예수님은 성전을 공격한 신성 모독자라고 백성을 충동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이방인들의 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리함으로 예수님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죄도 함께 담당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빌라도가 이 사실의 증인이었습니다. 분봉 왕 헤롯도 증인이었습니다. 빌라도의 아내도 증인이었습니다. 율법이 요구한 대로 세 사람의 증인이 있었으니까,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음이 확실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우리의 유월절 양이십니다. 둘째로, 예수님 때문에 바라바가 살았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씻음을 받았기 때문에,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장이라도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부리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바라바와 같은 나를 살리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이번 한 주 간도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예수님으로 가득한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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