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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라 (시 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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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라 (시 100:1-5) 
 
 
시 100: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100: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100: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100: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편 100편은 '감사의 시'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시편입니다. 이 감사의 시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4절의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입니다. 이 시에는 원망이나 불평이나 비애가 전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의 문"는 누구의 문이며 무슨 문입니까? 그의 문은 하나님의 문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려 가는 자들 앞에 서 있는 성전문입니다. 썩어질 육신을 입고 있는 사람이 영적인 하나님 앞으로 나갈 때 열고 들어가야 할 문입니다. 사람이 이 문으로 들어갈 때 감사함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그의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이며, 비밀번호입니다. 

1. 우리는 다른 문이 아닌 '그의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양의 문이라"하셨습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양들이 풍성한 꼴을 얻고 생명을 누린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다른 문이 아니라 "그의 문으로 들어가라"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문들이 참 많습니다. 종교의 문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다른 문으로 들어가서 예배하면 안됩니다. 오직 "그의 문"으로 들어가서 예배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의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다른 문으로 들어가면 구원이 없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그분만이 우리를 지으신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우리는 그의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의 문에 들어가며"라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1) '그의 문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일을 시작하는 것'을 뜻입니다. 
우리는 모든 처음 무엇을 시작할 때를 가르켜 한문으로 '입문'했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입문'한다는 것은 처음 무엇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슨일을 시작할 때면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할 때 예배자가 품어야 하고 고배해야 할 것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첫문장이 무엇이어야 합니까? 감사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엇이든지 처음해야 할 일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2) '그의 문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같은 종류의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동문, 동기라는 표현을 합니다. 같은 문으로 들어간사람들입니다. 
성전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모드ㅜ가 예배자가 되려는 것입니다. 감사하려는 자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곧 감사하며 살기로 한 것과 같습니다. 감사로 사는 자의 동류요 집단이 된 것입니다. 
학교문을 들어가는 것은 학문을 하려 들어가는 것이며 군대의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군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3)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문 밖의 것들로부터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문을 통하여 행복과 불행까지 출입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문에 관한 여러 민속과 풍습이 생겨났던 것이 사실입니다. 관혼상제 때 중요한 의식이 문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세시풍습의 많은 부분이 문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문 밖으로 모든 것으로부터 구별된다는 선언입니다.    

2. 그의 문으로 들어갈 때 감사함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의 문으로 들어갈 때는 반드시 감사함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영국의 성경 주석가 '메튜 헨리'는 "감사는 산수에서 더하기(+)와 같아서 모든 것에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진다. 어떤 일이든지, 어디서든지 감사하면 플러스의 축복이 주어진다. 그러나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빼기(-)와 같아서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없어진다"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감사하는 마음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불평하는 마음에 마귀가 거하며 또 축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 왔다가 불평의 문으로 나가 버린다. 감사하면 감사할 조건이 오고 불평하면 불평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또 오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딤전 4:4절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 주의 덴버(Denver)>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두 남녀가 자동차 안 에서 졸도해 있는 것이 발견됐습니다. 자동차 가스인 일산화탄소가 차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모르고 문을 잠그고 잠든 채 있다가 두 사람이 함께 졸도한 것입니다. 달려온 구조대는 잠겨진 차안에서 두 사람을 구해내기 위하여 결국 자동차의 유리창을 깨뜨리고 사람을 꺼내어 인공호흡을 시키고 응급조치를 하였습니다. 구조대의 재빠른 조치로 두 사람은 죽음을 간신히 면하고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기가 막힌 일이 발생했습니다. 죽음에서 살아난 청년이 경찰서에 들어오더니 청구서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그 청구서는 다름이 아니라 구조대가 그들의 목숨을 살려내기 위하여 자동차의 유리창을 깨뜨린 것을 수리하고 가지고 온 청구서였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위험에서 살려준 구조대에게 감사해서 선물이라도 사가지고 와서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감사는 커녕 자신들을 구해주기 위해서 자동차 유리창을 깬 것에 대한 수리비를 청구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문열고 들어오면서 감사함으로 들어오셔야 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감사하십시오.

일본의 유명한 평신도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는 "하나님이 만일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 배신이나 죽음으로 하시지 않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그리고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로,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도록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감사가 사라진 것은 저주받은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문제는 가난도 아니고, 질병도 아니고, 실패도 아닌 감사함이 없는 마음입니다. 

3. 왜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의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까?
  
두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까닭입니다. 
3절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했습니다. 
왜 우리가 그의 문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의 문으로 들어갈 때 감사함으로 들어가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가를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것, 바로 그분의 소유입니다. 우리는 그의 백성이기에 그가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므로 그가 먹이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어찌 그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으며 그 문으로 들어가면서 불명부터 하고 원망부터 할 수 있겠습니까? 감사함으로 그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도리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롬 9:20절에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하였습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5절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편기자는 여호와의 절대 선, 절대 인자, 절대 성실하심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누가 뭐래도 지금 사건이 어떻게 전개된데도 절대 선하시며, 절대 인자하시며, 절대 성실하신 분이시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지 말라 하신 것은 그것을 하면 안되겠기에 하지 말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것은 당연히 해야 복이 되겠기에 하라 하신 것입니다. 
  
기뻐할 일이 있고 형통할 때는 찬송하고 감사할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곤고할 때는 찬송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성도들은 상황이 어떻든 간에 하나님은 마땅히 찬양받으시고 감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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