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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창조적인 신앙과 기도 (행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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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인 신앙과 기도 (행 12:1-4)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당하기 있을 때입니다. 2절과 3절에 나오듯이 요한의 형제라고 하는 야고보는 헤롯에 의해 칼로 죽임을 당했고, 유대인들은 이 같은 분위기를 지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헤롯은 유대인들이 교회 핍박하는 일을 지지하자 그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기 위해 베드로를 잡아다 옥에 가둡니다. 

무교절 기간이 끝나면 베드로를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었죠.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베드로가 위험에 처하면서 교회라는 공동체 또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고통스럽고, 힘들고, 또 어떤 면에선 공포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어떤 점에선 교회의 존립, 존재 자체가 어려운 직면에 처해 있게 되었던 것이죠. 

잘 생각해 보면 교회는 쉽게 형성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회는 시작부터 항상 죽음의 위협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계기로 시작되었고 제자들과 또 후에 바울의 헌신적인 기도와 땀으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핍박과 위협 속에서도 '모이기를 힘쓰며 기도하며' 이루어낸 것이 교회입니다.

사실 교회만이 아닙니다. 그 어떤 것도 어떤 위협 속에서 자유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 삶은 항상 고통과 죽음의 위협 속에 있지요. 우리 건강이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몸은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병균과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고요. 언제 어디서 어떤 위험이 닥쳐 올지 우리는 막연하게 미래를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기본적으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위협 속에서 살아 내는 것; 다만 위협에 꺾이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 속에서, 힘든 과정 속에서 진한 생명력으로 살아내는 것;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숨쉬고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수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능동적인 것이고, 적극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그냥 되는대로.'가 아니라 '만들어 내는 것'이 창조적인 신앙입니다. 무질서와 삶의 포기의 위협 속에서 삶에 질서를 더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창조적인 신앙입니다. 

교회는 그 시작부터 이러한 신앙고백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교회에 위기가 닥쳤다고 하지만, 교회는 항상 위기 가운데 있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신앙적인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박해는 없어졌을지라도, 거짓과 욕심과 게으름의 위기는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고 유혹합니다. 그 위협과 유혹의 실체를 인정하고 대처하기 위한 책임감과 내실을 갖추었을 때 그 모든 위기들을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신앙적인 성장과 부흥을 경험했었지요. 하지만 닥쳐온 유혹과 위협들에 오히려 눈을 감고, 책임을 피하며, 아무일 없다는 듯이 수동적인 자세로 임했을 때, 우리는 결국 큰 위기에 놓여있게 되었습니다.

위협에 있다는 것 또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이 우리가 이미 실패했고, 끝이라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우리가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이기에 "아직" 살아 있다는 반증이 됩니다. "아직" 기회가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고통 없이 모든 것이 원만하게 해결되고, 문제 없이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통과 아픔이 있어도 그 과정이 때로는 치유의 과정의 일부일 수도 있고,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단계일 때도 있습니다. 십자가는 그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위협과 유혹 앞에서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신앙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는 기도입니다. 사도행전은 그 위협 속에서 베드로와 교회를 이끌어내는 힘이 기도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도는 남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한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고, 삶에 대한 자신의 자세를 제대로 재정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곤경에 빠져있을 때 기도한다는 것은 그 곤경 속에서 자칫하면 틀어질 수 있는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다시 스스로에게 각인 시키며 하나님이 주시는 여러 은혜의 통로들을 열어놓는 노력입니다. 또한 그 곤경 속에서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자세와 삶의 태도를 다시 가다듬으며 능동적으로, 또 창조적으로 문제에 대처하여, 삶을 살아내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기도란 자신이 원하는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하나님께 여는 수단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것은 신자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을 받을 통로들을 열어놓고 있지 않고, 오직 자신이 원하는 것만 고집하고 있으면 더욱 곤경에 처할 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길은 멀어지기만 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꼭 한 방향 - 자신이 정한 방향 - 으로만 한정시키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방향을 하나님의 방향으로 열어서 자신의 지경을 넓히고, 마음을 넓히고, 가능성을 넓히고, 삶을 넓혀가는 것이 바로 기도의 기능이겠지요. 

교회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기도로서 가능성을 넓히고 교회의 삶을 넓혀 가면 능력이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기도하며 우리 삶 속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창조적인 신앙인의 자세이고, 그것이 우리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교회는 자연적으로 더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고 더 능력 있는 일들을 해 나갑니다. 삶이 풍성해져서 그렇습니다. 곤경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곤경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더 커져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기도함으로써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내며 우리 함께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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