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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흙 한 덩이의 가능성 (롬 9: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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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한 덩이의 가능성 (롬 9:17-24)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갖고 계신 계획은 참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계획입니다.고려청자,이조 백자,모든 것이 참으로 훌륭한 그릇이지만 그 처음은 다 미약한 한 덩어리 진흙밖에 아무것도 아니었듯이 우리 인생도 진흙 같은데.정말 별 것 아닌 몸을 갖고 살아가지만 이 진흙같은 몸들이 하나님 손에 잡히면 놀라운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일을 하는 보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진흙 한덩어리같은 것도 주님께서 쓰시려고 하면 귀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우리는 스스로 진흙 한 덩어리로 보는 겸손이 있어야 하며 동시에 이것은 큰 믿음을 요구하기도 합니다.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진흙입니다.처음 사람 아담은 진흙으로 만들어졌으며 우리가 스스로 볼 때 진흙 한 덩어리같아도, 하나님,나를 뜻대로 만들어 주옵소서,라고 기도드려야 하지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불평하지 말아야합니다.

본문에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롬9:19‘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 바울 사도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롬 9:20‘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말하겠느뇨?’

롬 9:21‘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그릇을 만드는 분이 진흙을 가지고 반죽하여서 지금 어떤 그릇을 만들려고 합니다.그 때 그 그릇은 토기장이의 뜻대로 어떤 형체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이 분명히 토기장이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서 창조주시고 나는 피조물이며 그분께 모든 주권이 있음을 시인하는 겸손함이 있어야합니다.여기서 말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우리를 만드실 권한 이 있으시다,라고 생각하고 그분 앞에 겸손하여야한다,는 말씀입니다.

겸손해야 합니다.하나님,원하시는 대로 저를 만드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찬송가549장,"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합소서"(1절)‘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합소서,이 기도속에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가능성을 보게됩니다.이 때문에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가 있으신 것입니다."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26:39)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귀한 그릇으로 예정되었고 선택받았습니다.가장 귀한 일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 자기를 부인하는 일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영혼 구원의 그릇,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거룩한 모태,이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귀한 일은 거룩한 모태를 사용하는 일입니다.우리가 태신자를 품고 기도하는 일,귀한 일입니다.담는 그릇, 품는 그릇, 낳는 그릇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2.진흙 한 덩어리같은 나에게서 한없이 영광을 받으소서.하나님께서 불신자들 속에서 예비하신 그릇 중에는 하나님께서 깨뜨려 부수시는 그릇이 있다는 것입니다.세상 권세는 깨어지기 위해 존재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존재합니다.

롬 9:23 ’또한 영광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롬 9: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불쌍히 여김을 받는 일을 위해서이고 우리가 연약한 모습을 지니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불쌍히 여기심을 받기 위해서입니다.우리를 긍휼의 그릇,불쌍히 여기심을 받는 그릇으로 택하신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연약한 그릇,깨어지기 쉬운 그릇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우리를 택하셨고 불쌍히 여기셨으며 우리를 지금 구원하고 계십니다.우리는"긍휼의 그릇"이지"진노의 그릇"이 아닙니다.예수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양들입니다.예수님은 우리를 지금 불쌍히 여기시는 눈으로 보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의 성패는 그분 손에 있으므로 겸손하시고거룩한 모태를 여시기 바랍니다.진흙 한덩어리같은 우리에게서 주님은 무한한 가능성을 보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공했어도 교만하지 말 것은 우리는 여전히 진흙 한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가능성이 있습니다.겸손하기만 하면 우리를 새롭게 빚으셔서 새인생이 시작되지만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축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지음받은 존재가 지은 존재를 향하여 왜 나를 이렇게 만드셨고왜 나를 이 모양으로 빚으셨습니까?라고 항거할 수 없습니다.

19절 말씀을 보십시오.주님이 진흙을 향하여 하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지음을 받은 존재가 지은 존재를 향해서 나를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 있느냐?라고 감히 반항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나라를 움직이고 역사를 움직이시는 참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중요한 것은 그릇이 어떻게 생겼느냐가 아니라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본문 22절입니다."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께서 어떤 그릇은 고급스럽게, 어떤 그릇은 평범하게 만드십니다.어떤 그릇은 크게 어떤 그릇은 작게 만드십니다.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토기장이의 손에 달린 일입니다.무슨 그릇을 만들든 그것은 토기장이의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에게는 자기 원하는 대로 적당한 그릇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그릇도 그의 권한을 넘볼 수 없고 그가 하는 일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토기장이는 자기 생각대로 일을 행하실 뿐입니다.다만 만들어진 그릇은 주인이 처음 의도하신 목적을 따라 충실히 사용되면 그만입니다.그러므로 실상 어느 그릇이 더 귀하냐 천하냐,크냐 작으냐,강하냐 약하냐,모양이 아름다우냐 미우냐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대로 하나님 안에서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천한 그릇이면 어떻고 귀한 그릇이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목적대로,토기장이의 목적대로 맞게 쓰여지면 되는 것 아닙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내던져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사람에게는 참 특이한 습성이 하나 있습니다.그것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서 타인에게 그 책임을 돌리려는 습성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볼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나님은 공평한 분일까?"라고 의심하기도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런 우리들에게 20-2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그렇습니다.우리는 내가 하고 싶은 것,필요한 것을 하고 싶을 때,자신이 부족한 것과 만나게 되면,'하나님이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라고 생각하는데,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바라보면서,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일을 기대하시는구나!"라고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바울은 어떤 작품을 만들 때,내가 만드는 것을 생각하고 가장 적합한 것을 손으로 만들게 되듯이,하나님께서도 우리 각 사람을 만들 때,하나님이 쓰일 물건으로 만드셨다고 강조합니다.그러므로 작품은 자신이 가진 것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며 이미 주어진 것을 가장 값지게 보이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가장 적합하게 창조하시고,하나님의 형상을 넣어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세상의 어느 것 하나라도 허트게 만드신 것이 없고,모든 것을 필요에 따라 지으셨습니다.우리가 이것을 믿을 때,내 삶에 대한 새로운 안목이 열리고,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먼저,긍정하시면,새로운 것을 바라보고,행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핑계대는 삶'에서'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으로 바뀌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긍정의 방향키를 잡으라

좋은 소식이 있을 때 그것은 바로 마음자세를 바꿀 때 나쁜 소식이 좋은 소식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마음자세를 조정하면 인생을 변화시키는 비결을 체험할 것입니다.마음 속 긍정의 방향키를 잡을 때 목표했던 곳으로 가는 길은 조금 더 행복해집니다.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은 이제 내려놓으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긍정의 항해를 기대하며 믿음의 돛을 활짝 펼치십시오.우리가 긍정의 방향키를 잡고 앞으로 전진할 때 삶을 세밀히 살피시는 주님의 은혜의 물결이 우리 자신이 꿈꾸는 것 이상의 비전으로 우리를 안내할 것입니다.

오늘 이 천한 그릇인 우리가 값이 나가게 되는데는 높은 주인,주인이 훌륭한 분이 가지고 있어야 값이 높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4장7절에 보면"이 질그릇 속에 보배가 담겼으니"라고 했는데 그 보배라는 단어가 남성명사 단수로 하나밖에 없는 보배라는 것인데 그 보배가 내 질그릇에 담겨 있으니 그 능력이 얼마나 큰지 그것이 하나님에게 있고 질그릇에 있지 않다고 하면서 그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역사를 하실 때에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왜냐면 질그릇에 담긴 보화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도록 한다"고 했습니다.그러나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이 질그릇은 정말로 가치없는 그릇이지만 담겨 있는 것이 좋아서,담겨 있는 것이 비싸서 아무리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하여 죽을 맘이 생각이 나고 쓰러지고 좌절할 맘이 생겨도 낙심치 않게 한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그 속에 보화가 있기 때문입니다.또한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가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트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했는데 여러분은 그런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내 몸에 담고 있다고 그랬고 예수의 생명이 내 몸에 있다 그랬습니다.그래서 낙심치 않은 이유는 단지 그것입니다.이 질그릇에 원망과 불평을 담아놓으면 이것은 남을 죽이는 것이 되고 시기와 질투를 담아놓으면 이것은 자기를 죽이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 속에 생명의 보화인 그리스도를 담아놓기를 바랍니다.그러면 보화가 귀하기 때문에 주인이 지킵니다.보화가 값이 나가기 때문에 그릇이야 어떻든간에 그 보화 때문에 그릇이 귀함을 받습니다./


향기 나는 진흙

한 나그네가 향기를 발산하는 한 덩이 진흙을 얻응 후 물었습니다. 
“네가 그 유명한 바그다드의 진주냐? ”진흙은 아니라고 대답했고 
“그럼 너는 인도의 사향이냐? ”또 아니라고 대답했더니
“그럼 너는 무엇이냐?”
“나는 한 덩이의 진흙일 뿐입니다만 향기가 나는 이유는,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아무리 향기가 없는 꽃도 향기가 있는 꽃과 같이 어우러지면 향기가 나는 것이고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함께 어우름이 있어야 향기가 나는 법입니다.삶의 행복과 불행도 서로 어우러져야 그 참맛을알 수 있고, 슬픔은 반으로 줄며,기쁨은 배가 됩니다.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어려울 때 서로 기댈 수 있는 풍요로운 어우름, 여러분도 그 어우름의 주인공이 되어 보십시오.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기 위해서 토기장이로서 우리 같은 진흙을 만세전에 이미 택하여 세우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진흙 같은 우리를 하늘나라 공장인 교회로 불러 오셔서 예수님의 보혈과 말씀으로 우리를 회개시키고 깨끗이 씻어주셨습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들을 때 우리 마음속에 감화,감동이 오므로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마음을 씻고 또 말씀으로 정결함을 받지 않습니까?우리가 죄인 된 그대로 교회 와서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회개시켜 주시고 보혈로 씻고 말씀으로 정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흙같은 우리를 택하셔서 교회라는 거룩한 하늘나라 공장에 데리고 오셔서 말씀과 보혈로 씻어 깨끗한 진흙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릇을 만들기 위하여

이제 이 진흙을 가지고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진흙을 부드럽게 부서뜨려야 합니다.토기장이가 진흙을 싣고 공장에 오면 공장에서 깨끗이 씻고 난 다음에 그 진흙을 찰지게 만들기 위해 부서뜨립니다. 진흙 그대로는 뭉쳐있으니까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그것은 그릇이 되지 않습니다.잘 부수어 깨끗이 하고 짓이겨야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하늘나라의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말씀과 성령과 보혈로 씻어주신 다음에 우리를 깨뜨리십니다.그냥 쓰다듬어서 깨뜨려지지 않고 두들겨야 깨지는 것처럼 시련과 환난을 통해서 깨어집니다.

시편 51편17절에“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상하게하시고 징계를 내리셔서 우리를 깨뜨리십니다.우리가 부들부들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야 합니다.단단한 흙에는 물이 스며들지 못합니다.진흙을 부서뜨려야 비로소 토기장이가 원하는 그릇의 모양을 만들 수 있습니다.진흙 그대로 물을 섞어 놓으면 물섞인 진흙이 찰지지 않고 그것을 잘 짓이겨야 합니다.

우리는 순종과 말씀의 물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가 하나님 손에 말랑말랑하게 찰지게 되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우리를 깨뜨려서 말씀과 순종을 통해서 찰지게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깨어져야 순종하지 자기중심에 서서 뻣뻣하게 있을 때는 순종하지 않습니다.나무가 뻣뻣하게 있으면 바람이 불면 꺾어지는데 대나무는 바람이 불면 허리를 굽혀서 바람 부는 대로 순종해 꺾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뻣뻣하게 서있으면 하나님의 명령에 반항하다가 깨어질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순종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허리를 굽히고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해야 하나님의 손 위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일본의 뇌성마비 시인 미즈노 겐조는 1946년 초등학교 4학년 여름에 심한 이질에 걸려서 불구자가 되었습니다.뇌성마비가 되어 눈 외에는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습니다.이런 극한 절망 속에서 미즈노는 한 목사님을 만나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그의 마음속에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마음속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희망의 복음입니다.좌절과 절망과 죽음에 처한 사람도 말씀을 들으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희망이 솟아납니다.미즈노는 희망이 넘쳐났습니다. 마음속에 희망이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서 매일 성경을 읽었습니다.

어머니가 미즈노를 기대어 앉게 한 다음 성경을 펼쳐주면 한 면을 읽고 다시 책장을 넘겨주면 또 읽고 하는 식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왜냐하면 전신이 마비되고 눈만 움직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늘 성경을 넘겨줘야 했습니다.

어떤 때는 어머니가 책장을 넘겨주지 않고 앉아서 졸았기 때문에 한 면을 수십 번씩 번갈아 읽었다고 했습니다.이렇게 성경을 읽으면서 희망을 얻은 미즈노는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벽에 붙여놓은 알파벳을 어머니가 차례로 하나씩 짚어갈 때 자기가 말하고 싶은 글자가 나오면 눈으로 깜박깜박해 표시했습니다.어머니가 그 글자를 적고 또 쭉 짚어 맞는 글자가 나오면 눈을 깜박깜박해 어머니가 그것을 적고 그래서 시를 적습니다.그러니 한 단어를 만드는데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겠습니까?

이렇게 하나하나 쓴 시가 지금은 여러 권의 시집이 되었습니다.그의 시 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내가 괴롭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리라.모든 형제 자매들도 괴롭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지지 않았으리라.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없었으리라”

고난중에 말씀을 만나자 그의 영혼이 찰지게 되어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빚어졌던 것입니다.미즈노는 그런 고난을 통해서 마음이 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사용하는 시인이라는 그릇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 마음을 찰지게 만들어 주십니다.

옛날 사람들은 찰진 흙을 녹로에 얹어 녹로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찰진 진흙으로써 그릇을 만들었습니다.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택한 진흙으로 불러서 깨끗하게 씻어서 하나님의 손으로 녹로에 얹어서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들어갑니다.하나님이 만드신 그릇 중에는 기뻐하는 그릇도 있고 소망으로 넘치는 그릇도 있고 사랑으로 넘치는 그릇도 있고 구제를 하는 그릇도 있고 가르치는 그릇도 있고 형형색색의 그릇이 있습니다.어떤 사람은 아무 사업을 안 한다고 할지라도 얼굴에 언제나 기쁨이 넘치는 그릇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만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합니다.아무리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워도 그분의 얼굴만 보면 태양처럼 빛나고 즐거움이 넘칩니다.하나님의 기쁨의 그릇이 되어 수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어떠한 사람은 위로의 그릇이 되어서 사람들마다 위로를 받고 사람들을 격려하고 힘을 주고 위로해주는 놀라운 그릇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형형색색의 그릇으로 만들어주시는데 평범한 기쁨을 나타내는 그릇도 있고 소망을 나누는 그릇도 있고 사랑을 나누는 그릇도 있고 구제를 나누는 그릇도 있고 어떤 그릇이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로 그릇을 만드십니다.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우주와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그릇된 것을 우리는 기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불가마에 넣어 굽다

녹로에 얹어서 하나님이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면 그 그릇을 불가마에 넣어서 구워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한 질그릇은 그냥 깨어집니다.아무리 녹로에 얹어서 좋은 형태의 그릇을 만들었을지라도 굽지 않은 그릇은 그대로 깨어집니다.이러므로 불가마에 넣어야 되는데 우리의 불가마는 시련과 환난의 불가마가 있고 성령의 뜨거운 불가마도 있습니다.

먼저 시련의 불가마를 지나가야 합니다.불로 굽지 않는 진흙은 쉽게 부스러짐같이 우리도 시험과 환난의 불가마를 지나지 아니하면 아무리 하나님이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어 놓으실지라도 우리는 쉽게 부서지고 쓸모없게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은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통하게 만들어주십니다.불같은 시련을 겪지않은 인생은 어려움 앞에서 쉽게 굴복하고 말고 시련을 통해야 순종하는 강한 신앙인이 만들어집니다.하나님께서 만드시는 그릇은 불가마에 구워야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이 선택한 진흙이라도 이것이 구워져야지 시험과 환난을 통하여 속이 강해지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그렇지 않고 약한 진흙으로 있으면 하나님이 사용할 수 없어서 그냥 부스러지고 맙니다.이렇기 때문에 시련을 통해야 순종하는 강한 신앙인이 만들어집니다.나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쓰실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좌절하고 절망하고 스스로를 버리면 하나님이 사용할 수 없지만 하나님 앞에 나와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주님 손에 내 인생을 맡기고 나는 ‘할 수 있다.하면 된다.해보자’는 긍정적인 꿈과 믿음을 가지면 어떠한 형편에 있는 그릇이라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우리는 하나님의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어떠한 처지든지 하나님이 사용하는 놀라운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고 난 다음 어떠한 시험과 환난의 불가마를 통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우리를 아름다운 하나님의 그릇으로 만들어서 구원하십니다.어려운 시련과 성령의 불가마를 통해서 충만해지면 하나님은 우리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놓는 그릇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어떤 형편이든 우리 자신을 하나님 손에 맡기면 하나님께서 최선의 그릇을 만드십니다.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십니다.우리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으면 우리는 사용하려고 택한 진흙이기에하나님께 맡겨 놓으시고 기도하고 찬미하시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으로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할 수 있다.하면 된다.해보자’는 마음을 가지십시오.감사하고 찬양하고 믿으십시오.주님께서는 우리를 놀라운 그릇으로 만들어 내실 것입니다. 

거장의 손에 잡힐 때/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흡사 우리나라 3일장이나 5일장처럼 향토 냄새 풋풋한 시장이 광장 여기저기에 서는데 남녀노소 누구나 몇 가지 물건을 들고 나와 팔기도 하고 서로 교환하기도 하는 풍경을 쉽게 구경할 수 있습니다.

어느 마을 빈터에 새벽 장이 섰습니다.물건이 진열된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값싸고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 흑은 진귀한 골동품 찾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한 모퉁이에 빛 바래고 먼지투성이 악기 몇 점을 땅바닥에 펼쳐놓은 채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그 곳에도 열댓 명의 구경꾼이 모여 저마다 관심 있는 악기를 만져 보며 흥정을 했습니다.

악기 주인이 헌 바이올린을 들고는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이 바이올린 얼마면 사겠소?"몇몇 사람이 1마르크에 사겠다고 하더니 한참 후 누군가 2마르크에 사겠다고 손을 들었습니다.그리고는 더 이상 값을 높이 부르지 않았습니다.노인이 결정을 내릴 순간 누군가"나는 3마르크에 사겠소" 하며 바이올린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이때 멋지게 차려 입은 신사 한 분이 노인의 손에 들린 바이올린을 소중히 받아 자세히 관찰했습니다.깨끗한 손수건을 꺼내 먼지를 털고 악기 구석구석을 닦았습니다.흐트러진 바이올린 선을 매만져 높고 낮은 음을 튕기며 조율을 하고 는 반짝이는 바이올린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너무도 아름다운 곡을 연주했습니다.

하얀 손수건 위에 갈색의 바이올린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신사는 조용히 그곳을 떠났고 그의 등뒤로 보내는 박수 소리는 멀리까지 들립니다.거장의 손에 잡혔던 바이올린은 단번에 3천 마르크를 부른 새 주인을 맞게 되었습니다.진흙 한덩이와 같은 우리 인생이 거장과 같으신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며 이땅에 아름답게 펼쳐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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