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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신앙생활 (느 12: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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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신앙생활 (느 12:27-43)

세계적으로 유명한 설교가인 스펄전 목사님께서 신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설교학을 강의하면서 이런 유명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천국의 기쁨을 설교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먼저 여러분 표정 관리에 주의하십시오. 천국의 기쁨을 설교할 때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가슴을 활짝 펴고 웃으십시오. 그 다음에 천국을 이야기하십시오. 그러나 지옥의 고통에 관하여 설교를 하시기 원하신다면 여러분은 특별한 표정을 연출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모습이 바로 지옥의 모습이니까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평소 우리 신앙인의 모습이 구원받은 자로서의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모습을 지적한 것입니다. 기쁨이 넘치는 표정과 행복한 신앙생활이 곧 천국의 백성의 모습입니다. 근심에 찬 얼굴과 염려와 고뇌에 찬 모습은 결코 천국백성의 모습이 아닙니다. 

시편 126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백성들의 모습을 그려 놓았습니다. 1-3절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나라 가운데서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도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사오니 우리는 기쁘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기쁨과 환희와 감격을 잃어버리고 있습니까? 오늘 축복의 시간, 은혜의 시간에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마음이 열리고, 기쁨으로 충만하시고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 봉헌식을 거행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 봉헌식의 분위기를 본문 43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하였음으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이 말은 한마디로 온 성안에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 찼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도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기쁨의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가 이 지역뿐만 아니라 포항을 너머 온 지역에 퍼지기를 소망합니다.  

교회는 기쁨과 환희와 축제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기쁨과 즐거움을 얻고 돌아가셔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힘들고 어려워도 교회에 와서 웃음을 회복하고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배하는 이 성소가 기쁘지 않고, 예배 시간에 감격과 즐거움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당연히 황폐하여 지고, 메마르고, 고통스럽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날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43절에서 “이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이 날’이란 예루살렘 성벽의 봉헌식을 행한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중건된 예루살렘 성벽을 보고 이처럼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기쁨은 단순히 일반적인 건물로서 예루살렘 성이 다시 재건된 것 때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성전과 예루살렘 도성은 파괴되었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않고 다른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나 성의 멸망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이었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대로 그들의 죄를 갚으셨고, 그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예루살렘의 성전을 이방인의 손에 넘겨 버리셨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이 무너진 채로 140년 동안이나 고통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통하여 예루살렘 성을 다시 재건하게 하셨습니다. 성전재건 공사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로부터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과 방해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이 일을 결코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것은 단순히 성을 다시 쌓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들이 다시 성벽을 재건한다는 것은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이제 다시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율례와 법도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상황이 얼마나 비참한 것이며, 절망스러운 것이었던가를 백성들은 너무나 명확하게 인식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에게는 성벽이 완공된 것도 기쁜 일이지만, 정말 백성들을 기쁘게 하였던 것은 그들이 이제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비록 다시 지어진 성의 외적 위용은 처음 것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지만, 하나님을 다시 모시고자 하는 간절한 기대로 인해 그들은 큰 기쁨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기쁨과 즐거움도 회복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우리 교회를 통해 기쁨의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곳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임재를 날마다 경험하며, 하나님의 천국의 백성으로 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깨어지고 멀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외형적으로나 내용면에서도 훨씬 좋은 교회들이 많습니다. 비록 외형적인 건물은 다른 교회들 보다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108년 전에 이곳에 교회를 세워 주시고 죄사함을 받게 하시며, 구원의 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날마다 교회를 통해 천국의 기쁨을 누리시며 이 성전을 사랑하고 아끼는 삶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본문 31-42절에 기록된 말씀은 예루살렘 성벽 봉헌식 때 행한 특별한 행진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면 제사장들과 악기를 다루는 레인인들, 그리고 백성들의 방백들이 두 팀으로 나누어 양쪽 방향으로 성벽 위를 악기를 불며 행진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곳에서 합류하여 찬양을 부르며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는 절차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느헤미야가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에 모여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이러한 특별한 행진을 하게 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백성들이 땀 흘려 수고하여 성벽재건을 완성한 것에 대한 기쁨을 함께 나누기 하기 위함입니다. 

느헤미야 1장에서 그려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낙담과 절망의 골짜기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느헤미야를 비롯해서 함께 있는 백성들이 꿈을 꾸기 시작하였습니다. 비전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비전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비전을 감당하기까지 많은 눈물과 아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마침내 비전이 성취되었을 때 얻게 되는 기쁨은 이 세상의 어떤 기쁨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리들이 성벽의 돌 하나하나를 밟을 때마다 그들의 감회가 어떠했겠습니까? “아, 여기가 바로 내가 내 손으로 돌멩이를 날라서 쌓아올렸던 곳이지.”, “처음 시작할 때에는 도저히 안 될 일로만 보였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시니까 이 대공사가 정말 완성되었구나.”라는 등의 온갖 추억과 감사가 새롭지 않았겠습니까? 

느헤미야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가 행렬들의 출발점으로 택한 골짜기 문은 바로 그가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 밤에 몰래 성벽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나갔었던 바로 그 골짜기 문이었습니다. 그 비참한 몰골의 성벽 잔해를 혼자 바라보면서 암담했던 그날 밤을 되새겨 볼 때에, 이제 오늘 바로 그 골짜기 문으로부터 이처럼 기쁨에 넘친 축하행렬이 출발해 가는 것을 보면서 느헤미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을 누렸을 것입니다. 

이처럼 성벽 봉헌식은 남이 이루어 놓은 것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백성들의 손으로 직접 성취해 낸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시간이었기에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8절을 보시면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벽의 주인공인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 당시 힘들고 어려운 여정가운데 있을 때는 맨 앞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벽이 완공되고 봉헌하게 되었을 때는 맨 뒤에 있습니다. 이 말은 성벽재건 공사에 일등공신이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는 내가 먼저 전면에 나서서 협력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비전이 성취되었을 때는 나를 드러내지 않고, 보이지 않게 섬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일은 결코 어떤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회의 일은 한 사람의 영웅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참여하는 자,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자들에게 물론 어려움이 있습니다. 힘들 때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고통과 고독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비전을 성취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시간에 예배를 드리는데도 드러나지 않게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 예배당을 깨끗하게 청소한 분이 있기 때문에 정돈된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강단에 화분을 기증하신 분이 있기에 삭막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준비된 찬양대를 통하여 우리는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주방에서 봉사하는 성도님들이 있기 때문에 맛있게 점심을 먹을 수 있습니다. 여유 있게 3부 예배를 드려도 되지만 교회학교 학생들을 섬기기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1부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들이 있기 때문에 교회학교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유치부 성경학교가 은혜가운데 잘 끝났습니다. 땀을 흘리며 수고하신 교사들과 주방에서 봉사를 하신 분들을 보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안내하시는 분, 주차 관리하시는 분들의 수고가 있기 때문에 좁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질서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일에 내가 먼저 헌신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의 일에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욱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에 모여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그런 특별한 행진을 하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 산발랏과 도비야가 엄청나게 방해를 했습니다. 느 4:3절 말씀에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의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들은 성벽이 지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방해와 조롱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지은 이 성은 수많은 백성들이 이렇게 올라가서 찬양을 해도 무너지지 않는 든든한 성이라는 사실을 사마리아와 수많은 조롱하였던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이 행렬을 통해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친히 지켜 주신다는 확신 있는 믿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 121:5-8절에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라고 재난과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두려움을 느끼고 같은 압력에 시달리고 같은 고민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으며 그분과 동행하며, 그분의 통치를 받고 있음을 알고, 어떤 고민과 의심, 사고와 모든 악에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 현실에서의 삶을 지켜 주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바닷물이라도 배 안에 물이 차지 않는 한 그 배를 침몰 시킬 수 없듯이,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우리 내면에 침투하지 않는 한 우리를 해칠 수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입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 삶 속의 완전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으며 담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얼마 전에 어떤 집사님에게 “목사님의 얼굴에 요즈음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담임목사님이 웃음이 사라지면 성도들도 웃을 수 없습니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며칠 동안 웃음이 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하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행복한 목회, 기쁨이 충만한 생활이 되도록 기도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교회 생활이 즐겁고 행복하십니까? 기쁘고 즐겁지 않다면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있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주인공이 아니라 구경꾼으로 생활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힘들고 어려워 근심과 염려와 불안으로 지쳐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처럼, 교회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 일, 하나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심으로 성취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 가운데 언제나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세상의 모든 염려와 걱정과 근심을 떨쳐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예배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하시는 복된 예배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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