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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우는 백성 (고후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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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우는 백성 (고후 10:1-6)


고린도후서 10장부터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자기를 겨냥한 여러 가지 비난에 응수합니다. 그를 비난한 자들은 본래 고린도 교회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고 중간에 들어온 자들인데 그들 때문에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인이 된 유대인들로서 바울의 권위에 도전하며 사도들로 자처하는 선교사들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의 바울에 대한 비난은 주로 그의 외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권위도 없고 말도 잘 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 그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고후10:10) 바울의 대적자들은 특히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충동하여 바울에게 그가 사도임을 증명해보이라는 요구를 하게 했습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사도로서의 증거는 기적이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 같은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사악한 자들로 보았으며 고린도 교회에 더 이상의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차단해야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도전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대응의 첫 부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대응은 자기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보다 고린도 교회를 어리석은 자들과 거짓 복음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1-2절을 봅니다: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사도 바울은 여기서 그가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을 대할 때는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대하기를 원한다는 그의 기본적인 바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자기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는 그러나 담대히 대하겠다는 즉 거리낌 없이 질타하겠다는 단호함을 보입니다. 그러니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그를 비방하며 대적하는 자들에게 현혹되어 그들과 함께 자신으로부터 질타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경고도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한 것이 그 말입니다. 

우리는 본문 2절에서 이미 사도 바울에게 던져진 한 가지 비방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육신에 따라 행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기준에 의해 산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적 동기에서 행동하고 경솔하며 일관성이 없고 그래서 신뢰할 수 없는 자라는 비판(고후1:17 참조)과 상관있는 말일 수 있습니다. “육신에 따라 행한다”는 것은 또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았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다음 절인 7절에서 사도 바울은 쓰기를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합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했음을 믿어줄 것을 강하게 요구한 것은 그가 “육신에 따라 행한다”는 비난을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았다”는 비난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라는 비난에 대한 사도 바울의 응수는 곧바로 본문 3-5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3절에서 그는 먼저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일단 자기가 “육신으로 행한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비방하는 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뜻으로 “육신으로 행한다”고 인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잘못된 인간의 기준을 따라 산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갖는 육신적 한계 안에서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자기 안에 초자연적인 힘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자기가 질그릇과 같이 연약한 존재임을 말한 것입니다. 그가 신체적 연약함과 육체의 가시를 안고 살고 있다는 뜻으로 “육신으로 행한다”고 쓴 것입니다. 

일단 자기 자신의 육체의 연약함을 인정한 사도 바울은 곧 이어 공격적인 응수로 돌아섭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한 것입니다. “육신에 따라 싸운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인간적인 수단을 의지하여 싸운다는 것입니다. 승리하기 위하여는 수치스러운 수단도 동원하여 싸운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라.” 한 것은 이기기 위하여 속임수나 교활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싸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기만을 가지고 싸운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싸우는 방법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라고 하지만 싸움 자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실제 군대간의 전투장면과 전투의 전개방법을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투라는 것이 대항하는 적진을 무너뜨리고 적군들을 포로로 잡으며 항복을 받아내는 것임을 사도 바울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본문 4-5절에서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한 데서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린다”는 한 말이나 “모든 생각을 사로잡는다”는 말이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한다는 말은 모두 전투에서의 승리와 연관되어 쓰이는 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비방하는 대적들과의 싸움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그가 이해한 군대의 전투를 비유 삼아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를 대적하는 그 어떤 적들도 다 무너뜨릴 수 있고 그가 전하는 복음을 대적하는 그 어떤 세상의 사상도 다 정복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는 확신에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투는 맨손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적보다 우수한 무기를 가져야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며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할 수 있는 무기라고 확신한 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은 본문 4절에서 말합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사도 바울은 그의 대적들이 “육신에 속한 것”을 무기 삼아 그에게 도전해오고 싸움을 거는 데 반해 자기의 무기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대적들이 사용하던 “육신에 속한” 무기는 어떤 것입니까? 예를 들면 수사학이나 웅변술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현란한 화술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그것을 통해 사람들로부터 돈을 벌곤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들을 의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은 늘 자연스럽고 평이하며 직선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값없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고후11:7). 사도 바울이 “우리의 싸우는 무기”라고 한 것은 무엇을 가리켜 한 말이겠습니까?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였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을 것입니다. 

자기와 함께하시고 지키시며 능력 주시는 성령의 역사였을 것입니다. 그가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가진 하나님나라의 소망이었을 것입니다. 자기를 사도로 세우시고 온 천하에 다니며 전하라고 사명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기를 비는 기도의 힘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그의 개인적인 대적들뿐 아니라 교회와 복음과 하나님나라의 대적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사도 바울이 취한 무기였던 것입니다. 

오직 그것들만을 가지고 싸우기로 한 그의 다짐이 바로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 하나님의 능력이라.”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복음을 위한 위대한 전사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전사이기도 했지만 그는 또한 무장을 바로 했습니다. 그가 싸울 싸움을 위하여 갖추어야 할 무장이 어떤 것인지를 바로 알았습니다. 그가 취한 무기들이야말로 그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릴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는 세상의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무기였습니다. 

그런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승리가 확실한 것입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싸우는 백성을 이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맞서며 그 앞에서 스스로를 자랑하고 그보다 더 높게 스스로를 높이는 세상의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진리를 간파하고 외친 것입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높아진 것”이라고 한 것은 바울을 적대하는 자들의 거짓 지혜와 교묘한 논리일 것입니다. 거짓 지혜는 십자가의 지혜를 부인하는 모든 세상의 지혜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세상의 그 어떤 지혜와 논리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이길 수 없음을 사도 바울은 이미 고전1:18-2:13에서 천명한 바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사도 바울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군사들입니다. 우리에게도 싸워야 할 싸움이 있습니다. 반기독교 세력들이 창궐하며 이단들이 범람하는 오늘날 우리의 싸움은 더 절박하며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싸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무장을 하여야 합니다. 무장은 바르게 해야 하고 완벽하게 해야 합니다. 마귀의 계략이 날로 교묘해지고 그의 공격이 날로 더욱 악랄해지기 때문에 우리의 무장도 날로 더욱 튼튼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엡6:10-18에서 쓴 것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군사 된 우리가 분명히 마음에 새기고 힘써 지켜야 할 신앙의 좌우명입니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이 하나님이 주시는 전신갑주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 전쟁, 오늘의 믿음의 싸움을 싸워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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