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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겉과 속 (눅 11: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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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 (눅 11:37-41)
 
 
11: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11: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이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11: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11:40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11:41 오직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지금은 과일의 계절입니다. 수 없이 많은 과일들이 쏱아져 나와서 소비자의 입맛을 돋구고 있습니다. 국내산도 있고 수입산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일은 겉과 속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겉을 보니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해서 비싼값을 주고 사왔는데 맛이 돈의 가치에 미치지 못할 때 기분이 상하기도 하고 본전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과일을 사는 데는 자신이 터득한 특별한 노하우같은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찮은 과일 하나도 그러는데 사람이 앞과 뒤가 다르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심히 불쾌하고 실망스럽고 괘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앞과 뒤,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앞과 뒤,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갖는 사람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앞과 뒤, 겉과 속을 다르게 하는 것이 잠깐은 문제를 모면할 수 있을지로지만 결국은 사람 사이에 믿음을 잃게 만들고 맙니다. 믿음을 잃은 삶은 자기 영혼의 분열도 초래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끝내 깨지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히하시고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삼상16:7에서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했습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앞과 뒤가 같은 사람, 속과 겉이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겉과 속"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매 그 집에 들어가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잡수시기 전에 일부러 손을 씻지 아니하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바리새인들을 교훈하시고자 그렇게 하신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자 38절에 "이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것을 바르게 잡아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교훈할 구실을 찾아서 그것을 통하여 말씀을 주시고자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마침 바리새인에게 초대를 받을 기회가 생겼고 이 기회를 바리새인을 교훈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여기신 것 같습니다.

사실 자녀들을 훈계할 때도 구실이 있을 때 하는 것과 구실이 없는데 느닷없이 하는 것과는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다릅니다. 
일부러 손을 씻지 않고 식탁에 앉음으로써 바리새인으로 하여금 반응을 일으키게 하고 그 반응에 따라서 교훈을 하신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수님께서 손을 씻지 않고 점심식탁에 앉은 것을 바리새인은 이상히 여기는 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과 같은 교훈을 주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정한 것을 조장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을 나쁘다고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름철에 요즘처럼 무덥고, 습도가 높기까지 하는 때는 손씻기만 잘해도 많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손을 부지런히 잘 씻어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손을 깨끗이 씻는 외적인 정결예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속 사람의 정결과 속사람의 강건과 속사람의 거듭남에서 오는 것입니다. 

1. 바리새인들은 매우 주의 깊게 외적인 정결은 준수했지만 내적인 사악함은 무시했습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인격과 삶과 신앙의 특징 중의 하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보다는 유전으로 내려오는 유대인들의 관습을 훨씬 더 중요시했습니다. 주님은 처음으로 바리새인들의 가장 큰 잘못이 무엇인가를 지적하시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외적인 것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내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면서도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초대한 사람을 면전에 두고 매우 강한 어조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단순한 실수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질적인 병패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거룩함을 보이려고 그릇의 겉을 닦듯이 철저히 예식을 준수함으로서 자신들의 외양을 포장하지만 그 속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오늘 본문에서 사용하신 단어 중에 "탐욕(하르파게스)"은 "채어가다"라는 말인 하르파조에서 온 말로 "강탈", "약탈"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독(포네리아스)"은 '악한 자'를 뜻하는 포네로스에서 온 말입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이 겉으로는 종교적인 순결성을 지닌 것처럼 보이나 그 중심은 얼마나 욕심이 많고 악한 자들인가를 잘 표현해 주는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겉뿐만 아니라 속도 창조하셨으며 겉뿐만 아니라 속도 정결케 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 같습니다. 

일예로 그들은 그들의 구제 사업을 자랑하였습니다(마 6:1-4, 눅 18:11,12).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 마음을 바치지 아니했습니다. 외적인 정결을 이루는 방법은 내적인 정결을 이루는 것입니다. 자신의 밖에 있는 것을 구제하는 것보다 자신의 속 사람부터 구제하는 것이 선결 문제인 것입니다. 
  
상스러운 말을 정결케 하는 방법은 이를 닦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정결케 하는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어리석은 자들아"라고 하셨습니다. 겉만 깨끗하게 포장을 하면 속의 추악함이 감추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 앞에서 용납될 수 없는 어리석은 짓임에 틀림없는 일입니다. 잠 26:23절에서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하셨습니다. 은을 입혀서 실제로는 없는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그 은이 낮은 은이기 때문에 결국 그 본심을 드러내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이렇게 꾸짖으신 것은 그들이 가치를 전도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동기가 악했기 때문입니다. 겉과 속의 우선 순위를 둔다고 하면 가치의 경중을 따진다고 하면 당연히 속이 우선되어야 하고 속의 가치가 더 큰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뒤바꿔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과는 달리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삼상 16:7).

미국의 뉴욕에서 풍선을 파는 사람이 풍선을 많이 팔기 위하여  아이들이 많이 모일만 곳에 자리를 펴고 각종색갈의 풍선을 불어서 공중에 띄었습니다. 흰풍선 노랑풍선 파랑풍선 그리고 검정 풍선... 그러자 그 풍선 장수 주위에 아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풍선은 순식간에 많이도 팔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수줍음 많은 흑인 소년이 그 풍선을 한참 바라 보더니  용기를 내어 풍선 장수에게 물었읍니다. "검정색 풍선도 공중에 뜨나요?" 그는 아이를 내
려다 보며 말했읍니다. "물론이지. 풍선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은 색깔 때문이 아니라 그 풍선 안에 들어 있는 것  때문이란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것, 믿음, 성령의 역사가 우리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것입니다. 결코 겉에 나타난  피부색이나 체구의 크고 작음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3. 7월 8월은 교회 안에서 각종 성경학교와 수련회들이 있습니다. 쉼과 훈련이 벌어지는 떄가 이 때입니다. 
이 기회들을 통해서 '속' 다듬기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살면서 우리는 속을 다듬는 시간보다 겉을 위장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삽니다. 쉬더라도 그 쉼의 힘이 저 뼈속, 저 깊은 영혼 속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배우고 훈련하고 익히고 확신하여 거하는 것도 깊이 스며들여 내것이 되기까지 잘 훈련해야 합니다. 

사람은 영적 존재입니다. 몸 안에 영혼이 있고, 영혼이 우리를 끌고 갑니다. 영혼이 메마르면 몸도 마음도 메말라 버립니다. 영혼이 지치면 몸도 마음도 삶도 무너집니다. 영혼이 메마르지 않도록, 지치지 않도록 물을 주어야 합니다.  

내면은 놓아둔채 외모 집착, 외형만 집착하는 것은 복음적이지 않고 예수적이지 않습니다. 
실속형, 내적 풍부함을 갖추는 것이 복음적이고 예수적인 것입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삶보다는 실속형 삶을 사는 우리 교회와 우리 성도들이 되도록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들은 밖에서 잘보이는 부분만 가꾸는 자가 아니라 밖에서 보기에는 너무 깊어서 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잘 가꾸는 삶을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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